0175 ----------------------------------------------
세파트 점령전
*
*
*
‘한 마리는 소. 네 마리는 인간이라. 저 네 마리는 왜 비슷한 형태인 거지.’
던전핵을 먹은 인간은 대체로 렌덤하게 형질이 바뀐다. 속성도 멋대로 받고, 형태도 마찬가지였다. 헌데 저기 새롭게 나타난 인간형 외도는 서로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었다.
“뭐, 어차피 때려잡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겠지.”
준은 니들건을 허공에 스무 개 정도 띄웠다. 저렇게 큰 녀석들을 니들리스 시리즈로 때려잡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창을 든 녀석은 팔길이와 창 길이까지 합쳐서 리치가 거의 30~40미터는 되어 보였다. 공격은커녕 접근하기도 전에 저 긴 창에 얻어맞아 사망하게 될 확률이 높았다.
새롭게 나타난 외도들을 보는 밴디트들과 펠로우쉽의 반응은 서로 달랐다. 밴디트들은 환호하며 더욱 결렬하게 총을 난사했고, 펠로우쉽 쪽의 움직임은 다소 둔해지고 있었다.
“아니. 저 녀석들은 왜 외도가 나타났는데 좋아하는 거야? 외도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밴디트들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외도를 보고 좋아한다는 건 이미 저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인간의 편에서 돌아섰음을 확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던전핵을 먹은 저들을 아군으로 인식하고 좋아한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그들은 저 변이외도의 먹이가 될 뿐이었다.
인간을 배반한 자들의 최후는 그렇게 비참한 종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아무리 성토해봐야 저들이 준의 말을 들어줄리 없었다.
‘일단 우리쪽 사기를 좀 올려야겠는데...’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쉽게 영향받는다. 방금전까지 준이 전차를 파괴하고 골렘형제들과 검둥이의 놀라운 활약을 눈으로 보고서도, 저 대형외도의 위용에 주눅이 들어 소극적으로 전투를 수행하고 있었다.
여전히 펠로우쉽 쪽이 전체적으로 우세인 상황이었지만, 아직도 수적으로는 밴디트 쪽이 훨씬 압도적이었다. 애초에 근접 전투에 들어선 무렵의 전력비가 삼천대 육백이었다. 근접전에서의 니들건의 우위와, 개개인의 능력이 앞서는 점, 그리고 파티시스템을 이용한 빠른 의사소통을 통해 난전을 피하면서도 소규모 접전에서 계속되는 우위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 지금의 우세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거기에다 준이 녀석들의 가운데를 치고 들어가면서 전체 밴디트들의 부대를 둘로 쪼개어 서로 연계할 수 없도록 한 점도 주효했다.
하지만 결국은 펠로우쉽이 힘을 내주지 않으면 이 전투는 이길 수 없었다. 준 혼자서 저 거대한 외도를 제거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남은 이천의 밴디트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정신들 차리고 공격해. 저 녀석들은 내가 어떻게든 처리할텐까.
준은 펠로우쉽 통신을 이용해 전체 병사들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사기를 단기간에 끌어올리기란 무리였다. 때문에 준은 무언가 눈으로 보여줄 것을 찾아야 했다.
머리속으로 방법을 골몰하다, 준은 문득 방금 자신이 상대했던 303전차를 떠올렸다.
‘될까?’
백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실행 해 보는게 나았다. 준은 시스템에 명령을 내렸다.
-전차 설계도를 하나 찾아줘. 제작 가능 한 걸로.
-제작 가능여부는 시스템에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끙. 그럼 일단 설계도만이라도 찾아봐.
-인터넷이 필요합니다.
준은 시스템의 요청에 따라 인벤토리에서 스마트패널을 꺼내들었다. 시스템이 그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 사이 펠로우쉽의 진영이 조금씩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전차가 파괴될때만 해도 도망치기 급급했던 밴디트들이 새 아군의 등장에 반전하여 다시금 무섭게 반격을 하기 시작한 때문이다.
준은 아쉬운대로 골렘 3호와 검둥이를 계속 펠로우쉽을 지원하도록 두고는 대흉근과 골렘 1,2호만을 앞세워 적 외도를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 둘을 뺐다가는 완전히 밀려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네놈이 준 알스버그라는 녀석인가?”
머리가 웅웅거릴 정도로 큰 소리가 어지간한 3층건물 크기의 버팔로에게서 흘러나왔다. 준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그렇게 유명인사였나? 그보다 소가 말을 하다니 세상 참 말세로군.”
녀석과의 거리는 거의 1km가 넘었다. 듣기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놀랍게도 녀석은 준의 말에 대답을 해왔다.
“크흥. 곧 죽을 놈이 기세하나는 등등하군. 고작 이런 돌덩어리들을 앞세워 나를 막으려 든다면 큰 오산이다.”
“아니 나도 그 녀석들만을 상대로 싸울 생각은 없는데.”
준은 시스템 메시지를 들으며 입을 열었다. 그의 눈앞에 여러장의 설계도가 촤라락 스치고 지나갔다. 거의 대부분 지난세대의 전차들이었다.
준은 개중에서 가장 만만해 보이는 설계도를 한 장 골라 제작스킬에 올렸다.
그리고는 인벤토리에서 강철바를 살펴보던 준은 남아있는 재료가 채 10톤이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재료가 필요한데...’
무언가 써먹을 것을 찾던 준은 저 멀리 자신이 파괴한 두 대의 전차를 발견했다. 그것을 재료로 사용하면 되겠다고 생각한 준은 매크로 3번, 매크로무브를 이용해 빠르게 그쪽으로 달렸다. 갑자기 준이 이동하는 것을 본 버팔로가 경계하며 그런 준의 움직임을 쫓았지만, 애초에 서로가 상당히 먼거리에 있다보니 당장 특별한 행동을 취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준의 목표인 파괴된 전차와 버팔로와의 거리도 거의 400미터는 넘는 거리였다. 놈은 그자리에 서서 준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하고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준으로서는 행운인 셈이었다.
고철덩어리가 되어버린 전차에 손을 올리자, 시스템메시지가 울려퍼졌다.
-T34전차를 제작하시겠습니까?(네/아니오)
준은 ‘네’를 선택했다. 그러자 눈앞에서 시커멓게 타버린 303전차의 모습이 천천히 가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흠. 지루하군.”
하지만 전차 크기의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들어가는 시간이 길었다. 잠시 준이 무엇을 하려는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던 버팔로가 재미없다는 듯 땅을 박차고 골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쿵!
가만히 서있던 대흉근을 향해 돌진한 버팔로가 엄청난 힘으로 대흉근을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마치 버스에 치인 사람처럼 대흉근은 종잇장처럼 허공을 날아, 2중대와 밴디트가 한창 전투를 하고 있는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쿠우웅!
“헉?”
“이게 뭐야!”
서로 총과 니들건을 난사하고 있던 전장이 일순간 정지회면을 보듯이 멈추었다. 그만큼 버팔로의 힘은 강력했다. 준은 대흉근의 체력바가 10퍼센트 이상 날아간 것을 확인했다.
‘단 일격에 3만의 체력이 날아가다니. 엄청나군.’
푸식! 푸식!
대흉근을 날려버린 버팔로는 콧바람을 뿜어내며 다시한번 바닥을 벅벅 긁었다. 돌진 직전의 모습이었다. 준은 그 앞을 골렘 1,2호로 틀어막았다. 그가 달려드는 경로에 준이 제작을 하고 있는 위치가 겹쳐있었기 때문이었다.
콰앙!
다시한번 버팔로와 골렘이 부딪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흉근처럼 허무하게 허공으로 날아가는 일은 없었다. 두마리의 골렘이 합심해서 막은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흉근에 비해 체중이 많이 나가는 녀석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인지, 두 골렘의 체력이 각각 1만 씩 빠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막기만 해도 체력이 저렇게 빠지다니. 상대하기 괴로운 녀석이군.’
게다가 적은 그 녀석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버팔로가 골렘 1,2호에게 막히자, 근처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인간형 외도 네 마리가 무기를 휘두르며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쿵쿵쿵쿵쿵...
워낙 거대한 녀석들이 움직이다 보니 걸음을 뗄 때마다 지축이 뒤흔들렸다.
파앙!
가장 앞서 달리던 창잡이가 골렘 2호를 향해 창을 찔러넣었다. 순식간에 20미터의 거리를 격하고 창이 돌풍을 일으키며 골렘 2호의 어깨를 찔렀다.
째앵!
마치 세계 자체가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골렘 2호의 어깨가 반쯤 깨어지며 뒤로 물러섰다. 그저 창을 찔렀고, 그 공격이 성공한 것 뿐이다. 하지만 스케일이 커지니 그들이 주는 박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준은 손끝이 저릿저릿함을 느끼며 전투를 지켜보았다. 녀석들의 크기는 하나하나가 10미터에 육박했다. 그런 녀석들에게 매크로샤워나, 매크로어택을 날려봐야 간지럽기만 할 뿐이었다. 크기에 비해 결정도가 낮음에 안심할때가 아니었다. 크기 자체가 힘이 될 수가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쿵쿵쿵.
바닥에 볼성사납게 뒹굴고 있던 대흉근이 자리에서 일어나 땅을 박차며 달려왔다. 녀석은 엄청난 힘으로 그대로 버팔로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쿠웅!
하지만 대흉근의 체중으로는 어림도 없는 공격이었다. 버팔로는 고개를 슬쩍 틀고는 그대로 뒷다리를 들어 대흉근을 걷어찼다.
그리고 그사이 대흉근이 몸을 휘청이더니, 그 공격을 피해 버팔로의 배 안쪽으로 파고 들었다.
“음?”
순간적으로 체술을 훈련받은 무술가 처럼 움직인 대흉근의 모습에 준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골렘답지 않게 몸이 꽤나 유연해져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코앞에서 적의 공격을 흘리고 안쪽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저 녀석도 성장하고 있었군.”
단순히 노란색에서 초록색으로 진화한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대흉근은 계속되는 전투를 통해 하나하나 싸움의 기술을 익혀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투박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골렘 1,2,3호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휘청!
녀석의 배 아래로 몸을 집어넣은 대흉근은 순간적으로 중심이 흔들린 버팔로를 들어올려 그대로 뒤집어 버렸다. 힘도 힘이지만, 버팔로의 힘을 역이용한 놀라운 체술이었다.
쿠웅!
“우웃?”
버팔로가 뒤집어지며 바둥거리자, 대흉근이 그대로 녀석의 다리 하나를 꺾으며 바닥에 누웠다. 소를 상대로 관절기를 걸어버리는 대흉근의 위엄에 준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뿌드득!
“크윽!”
하지만 버팔로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녀석이 온힘을 다해 마구 몸을 움직이자, 체중에서 차이가 나는 대흉근이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결국 녀석의 다리를 하나 놓치고는 휙 나가떨어졌다.
콰앙!
“윽.”
준은 골렘 1,2호와 인간형 외도들이 맞붙는 순간 전해지는 충격파에 몸을 숙였다. 뒤에서는 펠로우쉽과 밴디트의 전투가, 앞에서는 골렘과 외도의 혈투가 전개되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준은 시미와 함께 제작이 완료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준은 마침내 완전한 모습을 드러낸 T-34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급조된 1인승 탱크(B급)
이 전차는 41년형 T34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제작자에 의해 탑승기술을 배우지 않은 이도 운용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으며, 그로 인해 본래의 성능에 비해 낮은 출력을 보입니다.
B급 이상은 특수효과가 붙습니다.
특수효과 : 짧은 시간 동안 은폐가 가능합니다.
“좋아.”
준은 손가락을 튕기고는 재빨리 탱크의 뚜껑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상당히 심플했다. 원래라면 있어야할 각종 계기판과 복잡한 조종간, 관측장비, 포탑바스켓 등은 철판으로 덧대어져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은 콘솔과 속도계, 동축기관총, 그리고 포탄의 잔량을 확인하는 디스플레이 하나뿐이었다.
T34는 본래 자동화시스템이 되어있지 않은 전차였던 만큼, 이는 실제의 디자인과 상당히 달라 거의 준의 커스텀전차나 마찬가지였다.
기관의 움직임에 대해 통달한 준이 아니라면 변경하기 힘든 구조였다. 즉석에서 고친만큼 그 효율은 꽤나 떨어지겠지만 어차피 그런 부분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준에게 중요한 것은 이 전차에 달린 주포였다. 그것만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엔진효율이라던가 신뢰도라던가 안정성이라던가 하는 문제는 사소한 것이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