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2 ----------------------------------------------
협동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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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시어도어 대령이 탁자를 톡톡 치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래서. 헬기를 두 대나 소모하고도 녀석을 죽이는데 실패했다는 말이군.”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지금 잘 못 입을 열었다간 책임을 뒤집어쓰고 문책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쓸모없는 놈들.”
시어도어 대령은 준의 얼굴을 떠올렸다. 녀석은 자신의 계획을 위해 이용하는 말이었다. 칼 레이건의 폭주 당시 만난 그 애송이는, 생각보다 큰 효용가치가 있었다. 만약 니들건과 델타폰의 도움이 없었다면 밴디트들을 설득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의 소용은 다했다. 델타폰을 잃는다면 그것은 아쉬운 일이겠지만, 알카트뢰즈를 점령하고 나면 그정도 손해는 얼마든지 벌충할 수 있었다.
“그 녀석을 얕보지 말라고 했거늘...”
애초에 준의 습격계획을 짤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준의 실드였다. 외도와 동일한 항력을 사용하는 준에게 화기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그에 대한 대처로 니들건을 사용할 것이 제안되었다.
몇 번의 전투로 준뿐만 아니라 그가 데리고 다니는 외도들에게도 니들건이 데미지를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남은 것은 강력한 힘을 가진 밴디트들을 다수 모아 그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어도어 대령의 생각은 달랐다.
문제가 실드라면, 실드가 사라진 이후에 싸우면 된다. 아주 간단한 생각이었지만 그 발상에 모두들 찬성을 표했다. 실제로 준은 크로마시티의 지배자와 싸우는 와중에 EX필드는 물론 체력도 상당히 깎인 상태였다.
하지만 모든 예상이 들어맞았음에도 그를 죽이는 것에 실패하고 말았다. 시어도어 대령은 입맛이 썼다.
“아무리 강하다 한 들 그자는 혼자입니다. 병력을 이끌고 오스트로스를 점령해버리면 끝나는 것 아닙니까?”
모두들 침묵하는 가운데 머리를 바짝 깎은 사내 하나가 입을 열었다. 시어도어 대령의 심복인 스메르찬 대위였다. 그는 일찌감치 시어도어 대령으로 부터 명령 받아 밴디트들을 포섭하는 중책을 맡아 움직이고 있었다.
“하긴 그곳을 점령하면 나머지는 일도 아니겠지.”
시어도어 대령의 최종목적은 알카트뢰즈의 통제권 획득이었다. 일단 수도를 점령하면 플랫폼으로 향하는 거의 모든 왕복선을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관리소가 위치해 있는 플랫폼에서도 이렇다할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알카트뢰즈를 빼앗긴 클라이드가 강습양륙함을 불러들여 알카트뢰즈를 재탈환 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경력에 먹칠을 해가면서 까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리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일단 행성위에 주둔해 있는 군대만 제거하면 문제는 모두 해결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한다.”
시어도어 대령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밴디트들은 현재 세 개의 큰 덩어리로 나뉘어져 있었다. 하나는 시어도어 대령이 직접 통치력을 발휘하는, 그의 직속부대가 중심이 된 세력인 북부군. 나머지는 동부와 서부 지역으로 모여 든 밴디트들이었다. 그 셋은 알카트뢰즈의 도시들을 넓게 포위하는 형태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을 동시에 움직여 최외각의 개척도시들을 점령하고, 시선이 그쪽으로 빠진 사이 오르트 탄약고를 점령하는 것이 일 단계 작전이었다.
그렇게 시시각각 밴디트와 시어도어 대령의 세력이 움직이고 있는 사이. 준은 클라이드 버냉키를 만나기 위해 플랫폼으로 향하는 왕복선에 몸을 싣고 있었다. 레이크 시티로 돌아간 그를 맞이하기 위해 사람이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준도 거절하지 않고 동행에 응했다. 저쪽에서 병기를 운용하는 상황에서 준 혼자 힘으로 그들을 맞상대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우웅-
반중력 엔진에서 나는 소리와 함께 왕복선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VIP를 위해 제작된 고가의 왕복선이었지만, 그곳에 올라탄 준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델타포럼에는 시시각각 종군기자를 자처하는 수형자들이 사진과 영상정보를 올리고 있었다. 밴디트들의 습격은 산발적이지만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고, 헌터들은 점점 더 불안감에 빠져들고 있었다. 사람이 적은 도시들은 아예 관리소의 허락없이 자의적으로 철수하는 곳도 있을 지경이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데 반해 주어진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군대와 정부 양측은 별다른 움직임 없이 조용하다는 것도 불안감을 키우고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창밖으로 펼쳐 진 짙은 갈색의 전경을 보며 준은 생각을 정리했다. 밴디트의 갑작스런 발호에는 몇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결정체 폭탄이었다. 그때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볼칸이 레이크시티에 왔다가 돌아가는 중에 당한 그 테러는 여러모로 이상한 점이 있었다.
‘어떻게 이동하는 군인들의 트럭에 테러를 가했을까?’
테러를 시행하기 위한 다른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차라리 나하라에서 쓰던지, 아니면 하던대로 군부대를 습격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다른 곳도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밴디트들은 레이크시티를 건설하고 돌아가는 볼칸의 공병부대를 시험대로 선택했다. 그것은 군부대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군내에 스파이가 있었음을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두 번째는 공격헬기의 등장이었다.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숙련된 조종사가 필요하다. 밴디트 내에 그런 인재가 있을가능성은 희박했다. 결국 이는 군대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혹은, 그들과 별개의 다른 군 조직이 준을 노리고 있거나.
그리고 그런 일을 계획할 만한 사람을 준은 단 한명 알고 있었다.
‘시어도어 대령.’
그렇지 않아도 루나에 의해 그자가 밴디트와 손을 잡은 것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상황이었다. 사막의 폭풍 작전의 실패 이후 모습을 감춘 그가, 어쩌면 밴디트들과 손을 잡고 고의로 작전실패를 기획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 한번의 실패에 전체 병력의 3분의 1가량이 날아가 버렸다.
‘최소한 군 내부의 인물이 이 일에 연관되어 있는 것 만큼은 틀림없다.’
일단 준은 판단을 미루었다. 시어도어 대령의 존재가 확인 된 것도 아니었으니 아직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었다.
생각에 잠긴 사이 궤도로 올라선 왕복선이 플랫폼에 안착했다. 준은 아래 보이는 갈색의 행성을 보았다. 황무지로만 이루어진 쓸모없는 행성이었지만, 어느새 준은 그곳에 익숙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떠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벌써부터 마른 모래바람과 뜨거운 햇살이 그리워지고 있었다.
실내는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이탈리아 원목으로 만들어진 탁자가 한 가운데에 있었고, 벽에는 커다란 종교화가 걸려 있었다. 중국 청나라 시기의 도자기와, 그리스 시대의 그릇이 한 자리에 놓여있었고, 그외에도 유명 회화와 조각장식의 레플리카들이 눈에 띄었다. 예술품의 배열은 정성들여 한 티가 났고, 가품을 보란 듯이 내어놓은 것으로 보아 단순히 부를 과시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예술품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았다.
뚜벅. 뚜벅.
뒤로 알카트뢰즈가 보이는 거대한 투명창 앞에 앉아있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준을 향해 다가왔다. 실내에서 느낀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달리, 그는 탐욕스러운 공무원의 전형처럼 생긴 인물이었다.
“클라이드 버냉키라고 하네.”
“준 알스버그.”
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가벼운 악수를 나누고 난 후, 클라이드는 미소를 지으며 준을 실내 가운데에 있는 낮은 탁자로 안내했다.
“듣던대로 어린 친구로군. 일단 앉도록 하지.”
어린친구라는 말에 유독 강조를 한 클라이드의 속내를 짐작하며 준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서로가 서로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기에 가능하면 자극하지 않는 편이 좋았지만 저쪽에서 이렇게 나온다면 준도 가만히 있을 이유는 없었다.
준이 입을 열었다.
“서로 길게 할 말은 없을 것 같은데. 용건만 간단히 하고 끝내지.”
“성격이 참 급한 친구로군. 이왕 온김에 며칠 쉬다가도 괜찮지 않은가? 이곳에 여자친구도 있다고 들었는데.”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군. 날 보자고 한 이유나 말해. 쓸데없는 짓 할 생각말고.”
“아아. 협박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으니까 신경쓰지 말게.”
거듭 자리를 권하는 클라이드의 말에 준은 하는 수 없이 소파에 앉았다. 비서인 제임스가 차를 내오고 잠시의 신경전 끝에 클라이드가 본론을 꺼내들었다.
“자. 어디부터 말하면 좋을까. 현재 밴디트가 발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적어도 이런 높은 곳에 앉아서 보고만 받는 이들보다는 많이 알고 있지.”
“다행이군. 이야기가 빠르겠어.”
준의 도발에 클라이드의 표정이 잠시 굳었지만 제임스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자, 그는 못마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현재 추정되는 밴디트의 숫자는 대략 1만 2천 가량이네.”
“전체 인구의 10퍼센트가 넘는 군.”
그 말에는 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밴디트의 숫자가 그렇게 많아질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책망의 뜻도 담겨 있었다. 클라이드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는 놈들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지. 하지만 자네가 나타난 이후 놈들이 조직화 하기 시작했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자네가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주기를 바라네.”
“사실관계는 똑바로하지. 그게 나 때문은 아니잖아.”
“그 부분은 정정하도록 하지. 어쨌든 놈들의 위협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 잖는가. 거기에 자네의 역할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에게 책임을 묻자는 건가? 그럴거면 너무 늦은 것 같은데.”
“단지 놈들을 처리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것 뿐이지.”
“군대는 뒀다가 어디다 쓰려고?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 아닌가?”
대화가 이어질수록 클라이드의 표정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져갔다. 군과의 갈등문제는 그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제임스도 함부로 입에 담지 않는 소재였다.
“내부의 사정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흠... 그래서 결국 날로 먹겠다는 생각이군.”
“물론 그에 대한 보상은 어느정도 생각하고 있네.”
솔직히 말하자면 클라이드는 이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임스의 의견에 따라 준을 초대하고 그의 의사를 묻고 있긴 하지만, 마음같아서는 당장에 철창에 박아버리고 말을 들을때까지 고문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일을 그르칠 것이라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끓는 속을 삭히고 있는 것이었다. 불릿타임은 자신의 명령을 거부하고 군대를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직접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플랫폼의 치안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했다.
때문에 어떻게든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눈앞의 사내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가 알카트뢰즈의 수형자들에게 가진 영향력에 대해서 이미 제임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애송이는 오만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이며 자신의 제안을 귓등으로 흘려듣고 있었다.
“싫다면?”
“지금 너에게 결정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클라이드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제임스의 표정이 급격히 구겨졌지만 그는 이미 꼭지가 돌아버린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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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한 편 더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