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4 ----------------------------------------------
클라이드 버냉키
*
*
*
“...어?”
“헉!”
쿵. 쿵.
갑작스레 나타난 준에게 대항하기도 전에 녀석들은 바닥에 머리를 처박혔다. 녀석들은 준의 얼굴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신음을 흘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끄으... 대체...”
“조용히 해. 지금부터 입을 열면 한군데씩 부러뜨릴 테니까.”
“네. 네.”
두 사람은 땅에 얼굴을 박은 채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상대가 적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었다.
준은 두 사람의 밴디트들의 뒷목을 지그시 누르며 입을 열었다.
“저 도시 안에 사람이 얼마나 있지?”
“그... 그것이... 끄아악!”
“머리 굴릴 생각하지마라. 대답만 해.”
준은 염동력을 이용해 입을 연 사내의 손가락을 비틀었다. 도대체 무엇에 당하는지도 모른채,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이, 이백 명입니다.”
“정확한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좋군.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던 건가?”
“네. 그렇습니다. 대부분 죽이고 무기를 탈취했습니다. 이 소총도 그때 얻은 겁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전차도 있다는 이야기겠지?”
“아, 아마도... 흐극. 네 있습니다.”
준은 녀석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밴디트들이 무기를 탈취했다면 이제 놈들은 단순한 테러범의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젠장. 이래서야 공격하기 전보다 더 상황이 안좋잖아.’
차라리 니들건만 있을때라면 괜찮지만, 놈들이 총기로 무장하기 시작하면 일반 도시들로는 녀석들의 공격을 막는다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물론 연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전차를 운용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두 번 정도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어떻게 군인을 상대로 승리한거지?”
“모릅니다. 크아악!”
준은 다시한번 사내의 손가락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는 정말 아는게 없는 듯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는 덜덜 떨면서 눈을 감고 있는 다른 사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는대로 이야기해.”
“그, 그저 시키는대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도시 바깥에 숨어있다가 군인들이 오는 시각에 맞추어 폭탄을 터뜨렸습니다. 그게 답니다. 전투라고 할 것도 없었고, 우리는 그저 도망치는 적들을 사냥한 것이 전부입니다.”
“결정체 폭탄을 터뜨렸다는 말인가?”
“그, 그렇습니다.”
“그건 대체 누가 공급하는 거지?”
“그건 위에서 지급하는 거라 저희도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물건을 이런 일개 졸개들이 멋대로 취급할 리가 없었다. 그는 그들에게서 무기를 빼앗았다. 그중 폭탄으로 보이는 붉은색 결정체들이 몇 개 있었다.
준은 그것을 살폈다. 생긴 것은 일반 결정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놈들에게 물어보니 마나를 일정량을 밀어넣고 던지는 방식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경우에 따라서 시한폭탄처럼 사용하기도 한다는 데, 그건 이런 식으로 개인이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따로 관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이건 루나에게 맡겨서 분석을 해봐야겠군.’
공유하고 있는 인벤토리에 결정체 폭탄을 넣은 그는 루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루나. 지금 물건 하나 넣었으니까 분석 좀 부탁해.
-아. 그렇지 않아도 지금 연락 하려는 참이었는데. 음... 이건 결정체네요? 이게 그 소문의 폭탄인가요?
-그래. 그런데 무슨 소식이라도 있어?
-네. 어그로시스템 프로토타입이 나왔어요. 실험실 단계에서는 성공한 것 같은데 실전에 사용해 볼 필요가 있어서요.
-그럼 그것도 인벤토리에 넣어둬. 내가 사용해보고 말해줄테니까.
-네. 부탁드려요. 그리고 참. 요즘 기지 분위기가 영 좋지 않던데, 몸 조심해요. 밴디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인가봐요.
-그렇지 않아도 지금 그쪽을 살펴보고 있어. 시어도어 대령에 대한 소식은 없어?
-그게... 조금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어요.
-이상한 소문이라니?
-그가 적과 내통했다고 해요.
-시어도어 대령이?
-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일방적으로 패배할 수 없다면서... 어쩌면 그들과 손을 잡고 알카트뢰즈를 손에 넣을 생각이었던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그럴 리가. 이런 작은 행성 하나를 차지하자고 그런 위험부담을 짊어질 필요가 있나?
어찌되었던 시어도어 대령은 상당히 고위직의 인물이었다. 가만히만 있어도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없는 인물이었고, 충분한 권력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감옥행성 하나 차지하자고 그런 위험한 도박을 할 이유는 없었다. 만약 들통나기라도 한다면 지명수배자가 됨은 물론이고, 정상적인 삶을 살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런 방법으로 알카트뢰즈를 손에 넣는다고 해도 밴디트들이 통치하는 행성을 연합정부에서 그냥 내버려 둘리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그냥 나돌리는 없었다. 가만히 그 이유를 생각해보던 준의 머릿속에 시나리오 하나가 그려졌다.
-책임 회피로군.
-네?
-이번 실패를 시어도어 대령에게 덮어씌우려는 작정이지. 어차피 사망했다고 여겨지니 후환도 없을거고, 적과 내통했다고 하면 내부단속에 대한 말은 있을지언정 패배에 대한 이유는 되니까. 어쩌면 관리소쪽에서 흘리는 소문일지도 몰라. 그 둘 사이가 서로 좋지 않다고 했지?
-네. 한 행성에 권력자가 둘이 있는 셈이니까요. 군인들은 철새처럼 왔다가는 관리소장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고, 관리소쪽에서는 명령권자의 말을 듣지 않는 군인들을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그걸 핑계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걸 거야. 그런 골치아픈 문제는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고,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야지.
-그럼 지금 보낼게요. 참. 그리고 선물 하나도 넣었어요. 나중에 보세요.
-선물?
-나중에 봐요. 그럼 이만. 전 일하러 갈게요.
준은 루나의 인벤토리를 확인해보았다. 거기에는 꽤 커다란 크기의 기계하나와 스마트패널이 하나 놓여져 있었다.
“선물이라더니...”
준은 스마트패널을 꺼내들고는 피식 웃었다. 뭔가 로맨틱한 선물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 쳐도 스마트패널은 지나치게 실용적인 물건이었다. 물론 현 시점에서 준에게 꽤나 필요한 물건인 것은 맞았다.
그것만 있으면 호랑이길드와의 통신도 가능했고, 세상일이 돌아가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화면을 띄워보니 바탕화면에 그녀의 사진이 있었다. 준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고마워. 잘 쓰지.
준은 메시지를 남기고는 다시 눈앞에 엎으려 있는 밴디트들을 보았다. 그는 이 녀석들과 함께 저 도시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해 둘 것이 있었다.
“혹시 도시 안에 포로로 잡힌 군인들이 있나?”
“네. 몇몇은 살려둔 채 창고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물론 협상을 할 생각으로 잡아 둔 것은 아니겠지?”
준의 말에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인간의 고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밴디트들 입장에서 그들은 신선한 고기일 것이다. 굳이 죽이지 않고 살려두기만 해도 상하지 않고 저장되는 셈이니 살려두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이 갇혀 있는 위치만 파악하면 되겠지.”
어차피 200명 정도의 작은 도시였다. 풀어주기만 하면 알아서 빠져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퀘스트가 발동되었습니다.
시어도어 대령의 밴디트 구축 작전이 실패하면서 많은 수의 군인들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들은 적들의 도시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연명하고 있습니다. 사용자는 아래의 목적을 달성함으로서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습니다.
보조퀘스트를 완료함으로서 추가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포로구출(0/30)
보조퀘스트
-밴디트 처치(0/100)
-던전핵 파괴(0/1)
포로의 정황을 파악하자 퀘스트가 발동되었다. 퀘스트의 내용을 읽은 준은 픽 하고 웃었다.
-결국 이 도시를 제거하라는 이야기군.
-보조퀘스트는 어디까지나 선택사항입니다.
그에 시스템에 가볍게 화답했다. 어차피 보조퀘스트라고 해도 상당한 경험치를 주는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같은 퀘스트라고 할지라도 던전핵이 끼어있는 퀘스트를 해결할 경우 훨씬 많은 경험치를 주기 때문에 반드시 달성해야 했다.
퀘스트와 함께 맵에 던전핵의 위치가 표시되었다. 적들의 도시 안이었다.
“단순해서 좋군.”
준은 입술을 핥았다. 모든 준비가 끝난 지금. 남은 것은 적들을 제거하는 일 뿐이었다.
도시의 이름은 벨벳시티였다. 준은 두 명의 밴디트를 앞세우고 벨벳시티를 향해 걸었다. 시미는 준의 앞주머니 속에 숨었고 검둥이는 그냥 보면 평범한 개에 불과했기 때문에 별달리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도시의 입구에 들어서자 소총을 든 사내 하나가 앞을 막았다.
“뭐야? 벌써 교대시간이야?”
“아아. 오다가 도망자를 발견해서.”
준은 고개를 푹 숙이고 밴디트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오기 전에 외도와의 싸움에서 망가진 옷가지를 하나 꺼내어 갈아입었기 때문에 그냥 보면 거지꼴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는 준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뒤를 따르는 검둥이를 보곤 입을 열었다.
“이건 뭐야?”
“아. 이 녀석이 데리고 다니던 놈인가 봐. 잡아먹을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친구라면서 안된다는데.”
“쩝. 알았어. 안으로 데려가.”
생각보다 보안은 허술한 편이었다. 최근 밴디트들도 병력증강을 위해서 도망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라는 이야기에 이 방법을 택하긴 했지만 정말로 이렇게 쉽게 도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는 몰랐다.
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시안의 모습은 다른 수형자들의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데드맨시티때도 그러했지만, 생각해보면 그만큼 정부에서 수형자들에 대한 대우가 엉망이라는 이야기였다. 사실상 아무런 지원이 없는 밴디트와 일반 수형자가 거의 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니 밴디트들이 늘어나지.’
준은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두 사람의 안내에 따라 포로들이 갇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시 안은 상당히 한적했다. 몇몇은 건물 앞에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아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길가에 드러누워 있었다. 시체인가 생각했더니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
“술은 어디서 구하는 거지?”
델타스토어에서도 술은 아직 올려두지 않았다.
“다른 도시에서 구해옵니다. 식량은 반출하기 까다롭지만, 오히려 술은 경계가 느슨한 편이라 손쉽게 구할 수 있죠.”
“그런가.”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밴디트들에게서 늘상 풍기는 이상한 냄새중의 일부는 술때문이기도 한 모양이었다.
“저곳인가?”
“네.”
“앞장서.”
준은 두 사람을 앞세우고 커다란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서른 명에 가까운 포로를 수용하는 곳인 만큼 그 크기가 상당히 컸다. 멀리서 보면 마치 축사같은 느낌이었다.
끼익-
안으로 들어서자,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준은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배설물과 인간의 채취가 뒤섞여 끔찍하리만치 고약한 냄새가 환기조차 되지 않는 건물 안에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곳에서는 일주일만 살아도 질병에 걸리겠군.”
“병균은 불에 구으면 사라집니...흡.”
그는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준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어, 어쨌든 안으로 들어가시면...”
그는 횡설수설하며 준을 이끌고 안으로 향했다. 건물 안은 좁은 복도가 이어져 있었고, 양쪽으로 닫힌 방이 있었다. 목조로 만들어진 문은 음식물을 넣기 위한 작은 틈 외에는 완전히 밀폐되어 있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문을 열자, 지독한 냄새와 함께 오물로 가득 찬 좁은 방안이 드러났다. 그곳에는 몸을 웅크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한 사내가 있었다.
“내, 내 차례인가...?”
일단 이곳에 한번 들어오면 두 번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문이 열렸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 그의 눈은 공포로 떨리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