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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드 버냉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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콱!
키이이익!
준은 악셀을 거칠게 밟았다. 200마력의 가솔린 엔진이 급가속하자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며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준은 황무지를 달리면서 흥분했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후. 기분 더럽군.’
거친 몸싸움 끝에 군인 네 명을 쓰러뜨리고 일부는 큰 상처를 입었다. 굳이 그렇게 까지 했어야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그들을 따라 갈 수도 있었다. 아니면 대흉근으로 겁을 주어 쫓아보낼 수도 있었다. 그자들이 다소 거칠기는 했지만 어쩌면 명령에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때문일 수도 있었다. 자신이 과민 반응을 한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 아니야.’
준은 고개를 저었다. 만약 준에게 힘이 없었다면 그는 무력하게 끌려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도록 강요받게 되었을 것이다. 상대를 우습게 생각한 것은 저쪽이 먼저였다. 가진 힘을 무기로 무리한 요구를 한 것도 저쪽이었다. 그러니 이쪽에서 사정을 봐주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 줄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늘 그런식이지.’
준은 지난 4년간의 엔지니어 생활을 떠올렸다. 그리 먼 옛날도 아니건만 이제는 어린시절의 추억만큼이나 희미해진 기억이다.
생각해보면 늘 고통스럽거나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처럼 하루일이 끝나면 나름대로 보람도 생겼고, 때때로 질좋은 식사가 나오면 기뻐하기도 했다. 가끔 선원들이 끼워주는 포커판에 끼어들때도 있었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지껄이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결국 이 생활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체감할때면, 그 어둡고 두려운 미래에 떨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을까.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때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뭐, 지금이라고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권력자 한 사람의 욕심이 수십, 수백만의 인간을 옭아매는 무서운 힘이 되어 개인의 삶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그것은 얼마나 잔인한가. 개별 사건에서 가해자들이 가지는 우월감은 또 얼마나 천박한가. 그 조각난 권력의 가장 아래에서, 그 조차도 가지지 못하는 이들에게 가하는 폭력은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
그것의 직접적인 피해자였던 준이 그러한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저 위, 플랫폼 어디에선가 이 행성의 흙 한번 밟아보지 않았을 자가 밴디트들이 창궐하는 이 순간에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불쾌했다.
“클라이드 버냉키라고 했던가.”
시어도어 대령에게서 들은 그의 인물평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개인의 욕망에 충실하고, 능력보다는 권력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타입. 정부에서 일하는 이들 대부분이 그런 이들로 채워져 있지만, 그중에서도 클라이드는 그 정도가 심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능력으로 환산되는 연합정부에서 그는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여 알카트뢰즈 행성의 관리자가 될 수 있었고, 조만간 다른 행성의 관리자로 옮겨갈 예정이라고 했다. 준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승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대형사건이 터졌을 때, 그런 이가 할만한 선택은 무엇일까.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사태를 수습하고 행성을 정상화 시킬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후임자가 올때까지 사태를 덮어두고 최대한 잡음이 나지 않도록 정보를 은폐하려 할 것인가.
‘전자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건 너무 희망섞인 생각이겠지.’
하지만 마냥 덮기에는 사건이 큰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거기에 준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어도어 대령이 사라진 게 타격이로군.”
그가 있었다면 어떻게든 막아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불릿타임과 관리소장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가 사라진 이상 클라이드에게서 준을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패했다고?”
“네. 만날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제임스는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클라이드 소장은 턱을 괸 채 손에 쥔 펜을 탁. 소리가 나게끔 책상위로 던졌다.
거기에는 준 알스버그의 신상에 대한 자료가 펼쳐져 있었다.
“준 알스버그...”
델타폰과 니들건의 제작자로, 현재 알카트뢰즈의 중요인물로 떠오르고 있는 자. 그의 물건으로 인해 결정체 수입이 폭증했고, 또한 그로 인해 밴디트들이 창궐하기 시작했다. 후자는 마냥 준의 탓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사안이었지만 실제로 니들건이 테러에 사용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니들건으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나...”
클라이드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정체 수익의 증가는 그를 기쁘게 만들었지만, 그 정도 돈은 후에라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었다. 조용하게 별탈없이 지내면서 이곳을 떠나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일단 사건이 터진 만큼 어떤 식이 되었든 그에게 문책이 들어올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또 상당히 많은 돈을 뇌물로 뿌려야 할 것이다. 게다가 사태는 현재진행형이었다. 믿었던 군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황. 그가 아무리 밴디트들을 처리해달라고 요청을 해도 불릿타임에서는 조사가 필요하다며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놈들도 괜한 피해를 키우고 싶지는 않겠지.”
현재 불릿타임은 비상전시상태에 돌입해 있었다. 행성위의 모든 군부대는 전시체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소규모 부대들은 모두 철수해 주둔지에 모여들고 있었다. 일단 밴디트들로부터의 소규모 테러에 의한 피해를 줄이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다 보니 작은 도시들에셔 피해가 속출할 수밖에 없었다. 군대의 움직임이 소극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놈들이 적극적으로 일반 수형자들의 도시를 공격했다. 나하라는 시작에 불과했던 것이다.
“도시를 철수 시켜야 합니다.”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허나, 클라이드에게 그것은 아예 선택지에 들어있지조차 않은 결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결정체 수익이 타격이 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흩어진 수형자들이 밴디트들의 먹잇감이 될 뿐입니다.”
“놈들도 헌터들이다. 그렇게 쉽게 당하지만은 않을거야.”
“허나...”
“됐다. 다른 방안은 없는가?”
“현재 상황으로는 수형자들이 자기방어가 가능할 정도의 무기를 공급하는 것이 최선
입니다.”
“화기는 불가능할테고, 역시 그 놈이 있어야 해.”
그가 말하는 그놈은 다름아닌 준이었다. 준이 보급하는 니들건이 어느정도 방어에 도움이 되었고, 실제로 니들건으로 무장한 도시들은 성공적으로 밴디트들을 격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가 여전히 부족했다.
그래서 클라이드는 준을 설득해 수형자 모두에게 니들건을 보급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결정체 수익도 늘고, 어느정도 밴디트들의 공격에도 면역이 생길 것이라는 판단에서 였다.
헌데 시작부터 상황이 틀어져 버린 것이다.
“그자를 불러들일 방법이 없겠나?”
“석방을 조건으로 삼으면 가능할 것입니다.”
제임스는 시어도어 대령이 준과 가석방에 대한 약속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현재 그가 사라진 지금, 그 약속을 지킬 사람은 없어진 상태였다. 따라서 다시한번 그것을 미끼로 삼는다면 준을 낚을 수 있을 것이었다.
“가석방 심사는 최소 1년이니 그때로 하면 되지 않을까?”
“가능하면 니들건의 보급이 완료된 시점으로 잡으셔야 합니다. 미끼는 달콤할수록 좋은 법이니까요.”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일을 처리하기엔 부담이 크다만...”
“그 정도가 아니라면 그는 협조하지 않을 겁니다.”
“어쩔 수 없군. 자네 의견대로 하지.”
클라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합의 법은 허점이 많은 만큼 정해진 규정에서는 까다로운 면이 있었다. 이건은 아마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일개 수형자의 편의를 봐주는 것과, 밴디트들의 발호를 막는 일.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면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준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에는 검둥이와 시미가 따르고 있었다. 지도에 표시된 위치는 현재로부터 약 3킬로미터 전방. 험비를 타고 갔다가는 쉽게 눈에 띄게 마련이라 차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하고 있었다.
-형님. 놈들과 싸울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혼자서 처리하지 못하겠다는 판단이 들면 도망 칠 생각이지만.
-굳이 혼자 오셔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헌터들을 이끌고 움직이면 더 좋았을 텐데요.
-나도 그 생각을 안한 건 아닌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 게다가 정보가 쉽게 노출 될 위험도 있고.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시죠?
-뭐, 겸사겸사 퀘스트도 해결할겸.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던전보다는 던전핵을 지닌 이들을 처리하는 쪽이 훨씬 경험치를 많이 주는 편이었다.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는 다소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녀석들이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 해도, 이미 한번 경험한 적도 있고. 그때보다 더 강해졌으니 큰 문제는 없을거야.
-하긴 그도 그렇습니다. 어쨌든 전 형님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몸이 근질근질 한 상태였는데 경험치도 먹고 좋죠.
그는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며 혀를 할짝였다.
-아무거나 먹다가 걸리면 죽는다.
-걱정마십쇼. 저도 조심하고 있으니까.
검둥이는 사실상 던전핵을 먹은 인간과 별 다를바 없는 존재였다. 펠로우쉽에 의해 일정부분 통제되고 있기는 하지만 언제든지 인간에 대한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것이 사람을 먹는 것로 촉발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준은 항상 그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외도로서의 식인 본능을 인간의 지능만으로 견뎌내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 것이다.
그런 것에 비하면 시미나 대흉근은 통제하기 수월한 편이었다. 골렘들은 애초에 지능이 낮아 명령에만 충실하고 시미는 고기를 먹지 않다보니 식인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다.
혹시나 정찰을 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밴디트들을 주의하며 천천히 걸어가던 일행은 멀리 놈들의 도시가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근처 언덕에 몸을 숨겼다.
이제 선택할 것은 정면으로 쳐들어가느냐, 아니면 몰래 숨어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일단 준은 후자를 선택했다. 일단은 놈들의 정황을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찌되었든 도시의 주변인 이상 순찰을 위해 인근을 돌아다니는 병력 한둘쯤은 있기 마련이었다.
한 삼십분쯤 몸을 숨기고 기다리자, 멀리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깨에 소총을 매고 있는 밴디트 두 명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준이 있는 곳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대체 윗놈들은 무슨 생각인거야.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거면 뭐하러 굳이 사람을 모을 필요도 없었잖아.”
“다 생각이 있겠지. 조금만 참으면 된다니까 기다리자고.”
“젠장. 어딜가도 똑같아. 여기나 저기나.”
“어차피 더 도망칠데도 없어. 여기를 완전히 점령하고 나면 우리들의 시대가 열릴테니까 그때가서 마음껏 자유롭게 살아도 되잖아.”
“쳇. 정말 그런때가 올까?”
“그렇게 생각해야지. 아니면 그때가서 또 도망치던가.”
“크크크. 밴디트에서 도망치면 이제 뭐가되려나.”
“그러게나. 나도 이제는 좀 편안하게 살고싶다.”
“그나저나 고기는 아직 남아있지?”
“충분해. 아직 일주일은 더 버틸 수 있을걸.”
“쳇. 다 좋은데 군인들은 지방이 별로 없어서 맛이 없단 말이지. 윗대가리들은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다던데.”
“억울하면 너도 실력을 쌓던가.”
가만히 녀석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준은 머리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냉철스킬이 발동한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놈들의 머리를 날려버렸을지도 모른다.
준은 가까스로 충동을 누르고는 녀석들이 더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이윽고, 놈들이 준의 공격범위 안에 들어왔을 때 준은 녀석들의 뒤로 재빨리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