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3 ----------------------------------------------
조짐
*
*
*
준도 시어도어 대령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이쪽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결정체 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결정체의 숫자도 줄일 수 있고, 겸사겸사 이쪽에서도 돈을 벌 수 있었다.
놈들 입장에서도 당장 급한 물건들이 많기 때문에 원거리택배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지고보면 양심에 찔린 다는 것을 제외하면 꽤나 괜찮은 사업이었다.
“그럼 난 상점으로 가볼게. 아무래도 오늘 하루종일 바쁠 것 같아.”
원거리택배는 제작이나 요리처럼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물건을 전송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점의 물건을 직접 손으로 만질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생각보다 주문물량이 많을 경우 재고가 모자라 전송이 늦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물품을 구매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마지막 희망이다보니 벌써부터 주문이 밀려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돈을 많이 버는 녀석인데, 저러다 재벌 되겠군.”
마스터가 웃음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사실 마스터도 만만치 않을거야. 기분 나쁠 까봐 말 안했는데 그 녀석들 음식도 엄청나게 궁하거든.”
“끙. 나도 밴디트들은 마음에 안 드는데.”
“누군들 마음에 들겠어.”
준의 말에 마스터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오전에 사냥을 나갔던 헌터들이 펍안으로 들어섰다. 막스의 인맥을 따라서 온 헌터들로, 하급헌터 다섯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다른 팀 하나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스터가 음식을 준비하는 사이 아카샤 넷에 접속해보니 새 업데이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어느새 델타폰도 7000개를 넘게 팔려나간 상태였고, 덕분에 델타포럼도 상당히 북적이고 있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요리 시식기였다. 누군가 마스터의 요리를 구입한 다음 그것을 사진을 찍어 올린 것이다.
맛에 대해서는 대체로 좋은 평이었지만 비싼 가격에 비해서는 그다지 만족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여러장의 사진과 함께 업로드 되어 있었다. 댓글들의 반응도 대체로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야. 이거 하나에 3EP나 받아먹으면 솔직히 사기 아니냐? 1크리스탈이면 일주일 식사는 해결되는데 이걸로 사먹으면 하루치 밖에 안되잖아.
-ㅇㅇ. 내 생각도 그럼. 아무리 마스터쉐프라지만 너무 비쌈.
-근데 이거 정말 마스터쉐프가 만든거임?
-주인장이 보장하는 거니까 확실하지 않을까? 누가 나하라출신 있으면 확인 좀.
-내가 나하라에 살아봐서 아는데. 이거 마스터쉐프가 만든 거 맞음. 펍에서 자주 먹던 맛임. 그때보다 더 맛있긴 한데 그래도 가성비는 꽝임.
-동감. 멀리 원정나갈때 아니면 사먹지 마시길.
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댓글들을 읽었다. 그가 생각해도 음식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딱히 별다른 태클을 걸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먹을 사람은 먹을 거고, 당장은 밴디트들에게만 팔아도 꽤나 수익이 남는 상황이었다.
-마스터쉐프 인지도로 사기치려는 모양. 솔직히 주인장 돈 벌만큼 벌지 않았음? 이제 좀 베풀어도 될 것 같은데.
-지금까지 처먹은 결정체 값만 해도 조단위는 넘을 듯.
-나 지금까지 쟁여놨던 결정체들 다 털림. 거의 100개는 될 듯. 이정도면 호구 인정?
-인정. 근데 나도 한 그 정도 쓴 듯.
-니들 결정체 다 쓰기 전에 꼭 니들건 하나씩 사둬라. 그거만 있어도 그동안 쓴 거 다 복구 할 수 있음.
-야동 보느라 다 써서 살 돈이 없음.
-미친. 대체 얼마나 처본거야?
-인종별로 다 모음. 이거 올리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취향이 다양해서 좋음. 나름대로 선별해서 올리는 듯. 그런데 이거 저작권 안걸리나?
-저작권 끝났답니다. 이거 벌써 100년도 전 거임.
-헐. 그럼 나 조상님들 야동보는 거임? 여기 나오는 분들 벌써 다 돌아가심?
-그렇다고 합니다.
-오늘 부터 고추 안설듯.
=노노. 저거 구라임. 최신 영상들 인코딩해서 올리는 거임.
준은 재빨리 댓글을 달았다.
-그럼 저작권은 어떻게 함?
=감옥에서 별걸 다 따지네. 나중에 밖에 나가면 협의 할 거임.
사실 저작권 문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부분이었다. 어차피 감옥안까지 쫓아와서 저작권료를 내라는 놈들이 있을리가 없는데다가 법적으로 준은 수형자 신분이었기 때문에 저작권료를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일단 영상물들의 저작권 부분은 알카트뢰즈에서 나간 이후에, 정식으로 기업을 세우고 나서 협의할 생각이었다.
-헐. 이거 신고하면 주인장 죄목 하나 추가 됨.
=어떻게 신고 할 건데.
-시바. 생각해보니 그렇네. 먼저 퇴소하는 놈 없음?
-나 다음달에 출소인데 감옥에서 자기네 야동 파는 놈이 있다고 신고하면 됨?
-ㅇㅇ. 그러면 될 듯.
=그러면 야동 내려도 불만없음?
-신고한다는 놈 아닥해라. 주인장님. 3D영상은 안 만들어 줌?
=기술이 없음. 나중에 출소하거든 마음껏 하세요.
언제나 성인 산업은 최신기술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다. 현재 나오는 대부분의 야동들은 360도 3D영상이으로 제작된다. HMD를 착용하고 감상하도록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래도 전통적인 2D방식의 영상제작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었기에 델타폰에 적용하도록 만드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준도 그쪽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 그의 제작기술로는 아직 그런 물건들을 제작할 수 없었다. 제작이 중급에 오르면서 태엽시계 같은, 제작 카테고리 안에 없는 물건들도 만들 수는 있게 되었지만 상급은 되어야 HMD같은 물건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제작숙련도도 더 이상 오르지 않던데...’
현재 준은 14레벨 기술자였다. 준은 프로필을 열어보았다.
사용자 ; 준 알스버그
레벨 ; 14
클래스 ; 기술자, 상인
칭호 ; 델타의 소유자(모든 능력치 +10)
능력치
EX필드 1/1 체력 9981/9981 마나 2000/2000 경험치 182221 잔여 스탯 25
힘 16(+12) 민첩성 23(+11) 지능 21(+11) 정신력 29(+11)
기술
엔지니어링(중급, 숙련도 99%), 시뮬레이션(초급, 숙련도 27%), 요리(초급, 숙련도 23%), 건강(중급, 숙련도 66%) 냉철(중급, 숙련도 25%), 정면 내려치기(초급, 숙련도 91%), 파동권(중급, 숙련도 31%), 더블애로우(중급, 숙련도 43%), 근성(초급, 모든 능력치+1, 숙련도 33%), 강인함(초급, 힘 +1, 숙련도 56%), 그래비티필드(초급, 숙련도 1%), 일렉트릭필드(초급, 숙련도 1%), 외도요리(초급, 숙련도 0%), 행상(초급, 숙련도 0%), 도발(초급, 숙련도 1%), 멱 따기(초급, 숙련도 1%), 점멸 가르기(초급, 숙련도 3%)
13레벨에서 14레벨로 오르는데 거의 75만 경험치가 들었다. 15레벨까지 얼마나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100만 이상이 필요할 듯 했다. 하지만 그만한 경험치를 투자했음에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체력의 상승치가 상당히 높다는 것, 10레벨 이후 레벨업을 할때마다 거의 1000씩 체력이 상승했다.
기술 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새 기술이 열리거나 한 것은 없었고, 대신 펠로우쉽의 가용인원이 늘어난 정도 였다.
경험치가 많이 들어간 만큼 레벨업 시의 혜택도 상당히 기대를 했던 준이었기에 이런 결과는 다소 아쉬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15레벨을 찍었을 때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제작기술을 상급으로 올리기 위해서는 15레벨이 필요하단 말이지.”
현재 준을 떠받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기술은 뭐니뭐니 해도 제작기술이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숙련도가 99퍼센트에서 멈춰 있었다.
그외에 전투 기술의 숙련도는 그다지 많이 상승하지 않았다. 지난 한달간은 사냥보다는 제작에 치중했기 때문이었다. 루나와 함께 사냥을 나갔을 때에도 준이 직접 기술을 쓴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 대흉근이 때려잡다 보니 기술의 숙련도 상승이 늦은 편이었다.
‘그나마 막스 덕에 공격기술 숫자가 좀 늘어난 건 다행이군.’
기존의 공격기술은 근거리 기술 하나, 원거리 기술 두개 뿐이었다. 하지만 막스를 펠로우쉽으로 받아들이고 난 이후, 전투기술이 자그마치 세개나 늘어나 있는 상태였다. 도발과 멱따기는 그다지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점멸 가르기의 경우는 꽤나 괜찮은 기술이었다. 일단 시전하면 순간적으로 5미터 가량을 이동한 후에 딜레이 없이 공격을 할 수 있었다.
‘공격기술들이 더 필요해.’
준이 펠로우쉽을 더 늘리려는 이유중 하나는 이런 전투기술들 때문이었다. 일단 기술을 배우고 나면 마나가 허용하는 한도내에서 얼마든지 연속시전이 가능하다보니 기술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던 것이다.
일례로 도발 이후, 점멸가르기, 멱따기, 정면내려치기 콤보를 쓰면 한 번에 거의 2000이상 데미지를 먹일 수 있었다.
하하하.
준은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웃음 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막스의 소개로 이 먼 레이크시티까지 찾아온 헌터들. 알카트뢰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저런 하급헌터들이었다. 소개를 받아 이름정도는 기억하고 있었지만 첫 날 이후로 서로 대화를 나누어 본적은 없었다.
‘이 녀석들도 전부 펠로우쉽으로 만들까?’
준은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들은 막스의 인맥이다. 어차피 자신이 아니더라도 막스가 알아서 할 것이다.
굳이 급하게 마음먹지 않아도 막스쪽으로 타고 들어가는 인맥은 상당히 넓었기에 조만간 훨씬 더 많은 기술들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나하라쪽에서 펠로우쉽이 퍼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일거야.’
막스가 알아서 할 일을 자기가 나서서 할 필요는 없었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미와 검둥이의 밥을 챙겨줄 시간이었다.
그때 밥에게서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준. 큰일 났어.
-응? 무슨 소리야. 주문이 폭증하기라도 했어?
이제는 익숙해진 밥의 호들갑에 준은 가볍게 농담처럼 회신을 보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메시지는 준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나하라가 습격 당했어.
-뭐라고?
나하라 습격 사건.
그것은 헌터들의 상당수가 사냥을 위해 도시를 빠져나간 사이 이루어진 일이었다. 대략 100여명 정도만 남아 있던 나하라에 니들건으로 무장한 밴디트들이 나타난 것은 한창 더울 시기인 오후 2시경이었다.
수십명의 밴디트들은 나하라에 등장하자 마자 눈에 보이는 이들을 향해 니들건을 난사했고, 갑작스런 공격에 미처 대응하지 못한 헌터들이 초기에 절반가까이 쓸려나갔다. 이후에는 그저 학살의 연속이었다.
결정체 폭탄까지 던져가며 도시 전체를 폐허로 만든 녀석들은 상점과 펍에서 물자를 약탈하고는 유유히 나하라를 떠났다고 한다. 군부대에서 훔친 것으로 보이는 트럭을 타고 있었다고 했는데, 그렇다는 이야기는 습격사건이 나하라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시어도어 대령의 표정이 급해보이더라니...’
아마도 볼칸의 경우를 제외하고 몇번 더 이런 일이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철저히 정보를 통제한 탓에 델타포럼에서조차 그런 이야기를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