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1 ----------------------------------------------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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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남자라면 거절하지.”
준은 패기롭게 입을 열었다.
“남자이긴 하지만 거절하긴 힘들텐데.”
“흠. 뭐 관리소장이라도 부르는 건가?”
“호오. 예상하고 있었던 건가?”
시어도어 대령의 말에 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달의 수익이 워낙 어마어마 하더라고. 그쪽도 상당히 수익이 났겠다 싶어서.”
“덕분에 관리소장 눈에 띄게 되었지. 헌데 자리를 좀 비워주겠나?”
시어도어 대령은 마스터와 밥, 그리고 막스 일행을 향해 입을 열었다. 손님 주제에 주인을 쫓아내려는 모양새가 기분나쁘긴 했지만, 군인들이란 원래 그런 인간들이다. 굳이 얼굴을 붉힐 필요는 없었다.
“동료들이야. 그쪽에서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는 사람들이지.”
“그런가.”
시어도어 대령은 약간 불편한 기분을 드러내었지만, 이쪽 사람들도 강단이라면 어디가서 지지 않을 인간들이었다. 막스가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가 마스터에게 한소리 듣고는 바닥을 닦을 걸레를 가지러 간 사이 준이 입을 열었다.
“헌데 이렇게 올 거라면 미리 연락이라도 좀 하던가. 그러라고 준 물건도 있을텐데.”
“미리 말을 하면 도망갈 것 같아서 말이지.”
“쳇. 잘 아는 군.”
준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관리소장이 자신을 만나서 할말이라는 건 뻔했다. 델타폰을 어떻게 만들었느냐, 니들 건을 저렴한 가격에 혹은 공짜로 지원할 수는 없겠느냐 하는 말일 것이다.
만약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별의 별 방법을 동원해 협박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런 걸 막기 위해 시어도어 대령에게 델타폰도 주고 니들건 까지 만들어 그가 돈을 벌 수 있도록 했지만, 아무래도 관리소장 귀에 직접적으로 이야기가 들어간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했다.
미래연구소 건으로 물고 늘어질 수도 없는 것이, 준이 당시 다운받은 연구자료를 살펴본 결과 이 건은 어디까지나 PMC인 불릿타임과 연계된 연구였다. 인간의 외도화, 즉 헌터를 통제가능한 외도로 만들어 병기화 하려는 계획이었기에 관리소장과의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건으로 시어도어 대령의 목줄은 쥘 수 있어도 클라이드 소장은 건드릴 수 없었다.
“언제까지 가야하는 거지?”
“가능하면 지금 나와 함께 가지.”
“흠. 지금 처리해야 할 일도 꽤 많은데.”
사실 별 일은 없었다. 한동안은 집에서 뒹굴거리기만 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재고를 쌓아두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소홀했던 던전탐색이나 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한가하다고 한들 오라가라하는 이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생각은 없었다. 헌데 돌아오는 시어도어 대령의 반응은 꽤나 의외였다.
“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좀 늦는다고 하는 수밖에.”
“...정말 안가도 되는건가?”
준이 시어도어 대령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 주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늦게 만날수록 좋지. 괜히 네 성격에 관리소장을 들이 받아버리기라도 한다면 나에게 까지 불똥이 튈 것 같거든. 그 양반이 무슨 소리를 할지는 뻔하니까.”
“날 그렇게 막나가는 놈이라고 생각한 건가?”
“설마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시어도어 대령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준이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천명이 넘는 군인들이 있던 곳에서 시어도어 대령을 반쯤 협박했으니 제정신이라면 할 수 없는 짓이었다. 물론 나름대로는 다 계산이 서 있었지만 위험한 행동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하지만 준도 할말은 있었다.
“음. 먼저 총을 쏜 사람이 할 말은 아니군.”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시어도어 대령이 한발 물러섰다. 맘에도 없는 소리라는 것이 뻔히 눈에 보였지만 그렇다고 괜히 싸움을 키울 필요는 없었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안하면서. 뭐 어쨌든 그럼 대체 여기까지 온 이유는 뭐야? 굳이 날 데리고 갈 생각이 없었다면서.”
“사실 관리소장 일 뿐이라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메일 하나만 보내도 충분했겠지. 하지만 다른 문제가 좀 생겼다.”
“무슨 문제를 말하는 거지?”
“일전에 볼칸을 구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있었던 일 기억하는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한번 마스터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조용히 준과 대령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저들은 신경쓰지마. 다시한번 말하지만 나와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니까.”
“흠... 하지만 이 건은 기밀이라 민간인이나 수형자들에게 공개할 수 없는 사안이다.”
“나도 수형자인건 마찬가지야. 그리고 나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거 아니었어? 그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
“후. 그런가. 어쩔 수 없군. 다시한번 말하지, 볼칸이 습격당했을때의 일 기억하는가?”
“아아. 알지. 결정체 폭탄 건 말이지?”
“그래. 같은 사건이 또 발생했다.”
“그건 내가 관여할 문제는 아닌 거 같은데. 군에서 해결해야할 일아닌가?”
“보통은 그렇겠지. 헌데 이번에는 조금 이야기가 달라. 그 자리에서 니들건을 발견했거든.”
“흠... 밴디트들이 니들건을 사용한다는 건가?”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니들건은 그 자체만으로는 사용하기 힘들고, 반드시 발전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도시를 떠나 유랑생활을 하는 밴디트들이 니들건을 사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그리고 생각보다 그건 심각한 문제야. 밴디트들이 총기를 사용하게 되면 지금까지 군인들이 헌터들에 비해 앞서고 있던 장점이 하나 사라지는 거니까.”
“하지만 니들건은 전력이 필요한데. 밴디트들이 전력을 끌어다 쓰고 있다는 거야?”
“누군가 발전기도 같이 팔고 있다고 하더군.”
“끙. 그래도 일반적인 밴디트들은 떠돌이 들이 대부분이잖아. 정착하는 놈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고 들었는데.”
“이미 일어난 일이다. 그런 가정은 의미가 없는 법이지.”
“뭐, 그렇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좀 엄살이 심한 거 아닌가? 그런 무기 하나로 군대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잖아. 진짜 총에 비해서는 사거리도, 파괴력도 낮다고. 군대라는 곳에 무기가 총만 있는 것도 아닐테고, 솔직히 전차 한 대면 니들건 따위 아무리 쥐고 있어도 소용없다고.”
“그거야 상대가 일반인 일 때 이야기지. 마나를 끌어다 쓰는 헌터들이 그런 무기를 손에 쥐게 되면 어떻게 되는 지는 너도 잘 알텐데.”
“흐음... 그거야 그렇지만...”
준은 결국 시어도어 대령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충분히 마나를 실은 니들건의 화력은 전차의 반응장갑을 뚫지는 못하지만, 무한궤도를 상하게 할 정도의 위력은 낸다. 그렇게 되면 몸놀림이 빠른 헌터들의 먹잇감이 되기 딱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미친듯한 반응속도를 보이는 특이외도에 비해 제자리에서 기관총과 대포를 날려대는 전차는 오히려 상대하기 쉬운 적이기 때문이었다.
“중급헌터 정도 되는 이들이 팀을 짜서 니들건과 결정체 폭탄으로 무장하고 테러를 감행한다면 어지간한 부대는 순식간에 휩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군.”
“이제 사태의 심각성이 어느정도인지 알겠나?”
“헌데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니들건의 판매라도 중단하라는 것인가?”
“생각같아서는 그러라고 하고 싶지만, 그건 또 위에서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지. 니들건에 의해서 들어오는 수입이 보통 큰 것이 아니거든.”
시어도어 대령 입장에서는 더 이상 니들건을 팔지 않아도 관계없었다. 이미 자신의 부대에서 쓸만큼은 사두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판매중지를 당한다면 더 이상 다른 이들이 니들건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현재 가진 물건들에 프리미엄을 붙여 팔 수 있어서 나은 상황이었다.
“그럼 뭔가 다른 방법이라도 있는건가?”
준은 약간의 책임감을 가지고 물었다. 자신이 팔아치운 니들건이 밴디트들의 손에 들어가 테러용도에 쓰인 것은 예상외였다. 그런 일 까지 모두 예상하기란 어려운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손에서 나온 물건으로 인해 생긴 일이다.
시어도어 대령은 품에서 델타폰을 꺼내들었다. 준이 그에게 선물로 준 물건이었다.
“이 델타폰 말인데... 어쨌든 스마트 패널과 같은 물건이지 않나?”
“그렇지. 좀 구형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위치추적이 가능하다고 생각되는데.”
“흠... 그렇지.”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델타폰 자체는 준이 조작하는 것에 따라 위치추적 뿐 아니라 도감청 까지도 가능하다.
“그 위치 정보를 제공해다오. 놈들의 거점을 아는 것만으로도 테러는 줄일 수 있으니까.”
“흠. 하지만 이미 팔려나간 델타폰이 5000개가 넘는 상황인데. 그들의 전체 정보를 달라는 거라면 그건 좀 꺼려진다고. 특정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될 수도 있잖아.”
“재미없는 농담이군.”
“농담이 아니라면?”
사실 위치정보 따위야 넘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델타폰의 사용자는 모두 준의 소중한 고객이었다. 나중에 그 정보가 어떤 식으로 쓰여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그냥 넘겼다가 문제가 되면 준만 손해를 보는 일이었다.
“일개 개인이 국가기관의 정보공개 요청을 거부한다는 말인가?”
“연합의 국민은 누구나 자유로운 상업활동을 할 수 있다. 헌법 제 1조 1항 아닌가? 고객정보는 기업의 중요 기밀 중의 기밀이라고. 이건 헌법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이야. 그리고 엄연히 말해 불릿타임이 국가기관도 아니잖아. 외주 업체일 뿐이지.”
“흠. 역시 귀찮은 녀석이군.”
“생각하는 걸 그대로 말하지 말라고.”
준은 표정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시어도어 대령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헌법 어쩌고는 솔직히 전혀 와닿지 않는 말이지만, 네가 그 정보를 건네주기 싫다는 건 잘알겠다. 그렇다면 전체 정보말고 일부 정보만이라도 넘겨다오.”
“일부정보?”
“알카트뢰즈 지도와 대비하여 개척도시가 아닌 곳에 찍히는 위치정보를 넘겨주면 되겠지.”
“그런 방법이 있었군.”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식대로라면 힘들이지 않고 밴디트들의 도시를 알 수 있을것이었다. 적어도 델타폰을 가지고 다니는 녀석들이라면 상당히 결정체를 비축해 둔 녀석들일 것이고, 그런 놈들은 대부분 자신들만의 거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준은 의심스러운 눈빛을 하고 시어도어 대령을 쳐다보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나올 것이지 굳이 전체 정보를 달라고 한 이유는 뭐야?”
“협상의 기본이지.”
“다음부터는 그냥 필요한 것만 달라고 해. 가능한 선에서는 들어줄테니까.”
“그러도록 하지.”
“후. 어쨌든 잠시 기다려 델타폰으로 전송해줄테니까.”
준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다음에도 또 같은 방식으로 요구사항을 전해 올 것이다.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들과의 대화는 이런 면에서 힘들었다.
막스도 이제는 준의 성격을 대충 알기에 적당히 맞추어 주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간을 보며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이득을 볼까 하며 찔러보는 통에 이만저만 피곤한 것이 아니었다.
띠링.
준은 델타OS를 통해 알카트뢰즈의 지도와 비교해 얻은 정보를 시어도어 대령의 델타폰에 전송했다. 그것을 확인하면 니들건을 가지고 군인들을 습격한 놈들의 거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었다.
“흠... 생각보다 많이 퍼져있는 것 같은데.”
“그러게. 나도 보고 놀랐어. 한두 군데가 아닌 걸로 봐선 앞으로 일이 순탄치 않을 것 같은데.”
준도 처음에 밴디트들이 있을 만한 지역이 거의 스무 곳이 넘는 것을 확인하고는 꽤나 놀랐다. 도시당 백명씩만 산다고 해도 거의 이천명이 넘는 수의 밴디트들의 거점을 알아낸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녀석들이 델타폰을 가지고 있는 숫자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인구수를 파악할 수 없어 단순비교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일반 헌터들에 비해서 절대수 자체가 적다고 말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델타폰의 상당수가 그쪽으로 흘러들어간 셈이군.”
“...어쩐지 뭔가 이상하게 많이 팔려나간다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