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0 ----------------------------------------------
니들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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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의 새로운 안식처로 만들었던 레이크시티가 순식간에 부상자들이 신음하는 임시병동이 되었다. 갑작스런 폭발 이후 준과 루나가 황급히 달려갔지만 이미 밴디트들은 사라진 이후였다. 녀석들은 볼칸 일행이 트럭을 타고 움직이길 기다렸다가 습격을 한 이후, 재빨리 도망친 것 같았다. 준의 추적능력으로는 적들의 수조차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으음...”
볼칸은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심한 갈증이 일었다. 그는 몸을 일으키고는 침상옆에 있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제서야 완전히 정신이 돌아온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억에 있는 공간이었다.
“녀석이 발견한 모양이군.”
볼칸은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가 누운 곳은 바로 몇 시간 전에 자신의 손으로 만든 호숫가의 목조주택이었다.
끼익.
“아? 깨어났어요?”
그때 루나가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볼칸은 멈칫하고는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루나가 침대 바로 곁에 있는 의자에 앉을때까지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몸이 안좋은 건가요?”
“아, 아닙니다. 제가 얼마나 쓰러져 있었던 겁니까?”
“하루 정도 지났어요.”
“생각보다 그리 오래 지나지는 않았군요. 헌데 다른 병사들은...?”
“일단 부상자들은 펍으로 옮겨두었어요. 한꺼번에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 거기밖에 없어서요.”
“몇 명이나 살아있습니까?”
“절반 정도요. 나머지는 저희가 도착했을 때 이미 늦은 상태였어요.”
“그렇습니까...”
볼칸은 비통한 얼굴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감싸쥐었다. 애써 가린 보람도 없이, 그의 뺨을 타고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루나가 물에 적신 수건으로 볼칸의 얼굴을 닦았다. 그는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아.”
루나와 볼칸의 눈빛이 마주쳤다. 그 순간 볼칸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주마등처럼 스친 기억들의 끝에, 폭발 속에서의 마지막 순간에, 그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황금빛의 머리칼 아래 보이는 눈동자는 투명했고 미소는 아름다웠다.
볼칸은 끓어오르는 격정을 가까스로 누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번다시 보지 못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루나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깨어나 당신의 모습을 보았을 때, 죽어서 천국에 온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살아있어요.”
“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아마 마지막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볼칸의 속내를 직감했음일까. 루나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
“지금은 몸을 추스를 때에요.”
“상관없습니다. 설령 이 육체가 불타 사라진다 해도 상관없어요.”
“대체 무슨 말씀을 하...”
와락!
볼칸은 그녀의 손목을 당겨 그녀를 품에 안았다. 루나는 당황하며 그의 품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성인남성의, 그것도 중급의 헌터의 품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루나 미스틸테인.”
“자, 잠깐만요.”
루나는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볼칸의 몸은 마치 단단한 바위같았다. 그녀의 힘으로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볼칸은 그녀를 안은 손을 풀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루나는 순간적으로 발버둥 치는 것을 멈추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루나는 문득 두려워졌다. 준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도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싫어...’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 이상 달리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냉정해져야만 했다. 돌아오지 않는 애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그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루나는 거칠게 발버둥 치는 대신 부드럽게 볼칸의 등을 쓰다듬었다. 예상치 못한 루나의 행동에 볼칸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녀는 그의 두려움을 읽었다. 이 강인하고 커다란 남자는 자신의 입에서 나오게 될 작은 목소리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녀는 그에게 원하는 답을 주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 것인지를 알면서도.
“미안해요.”
루나가 입을 열었다. 그녀를 안은 볼칸의 두 팔에 힘이 들어갔다. 루나는 숨이 막혔지만, 아무말없이 기다렸다.
그렇게 몇 분인지, 몇 십 분인지 모를 시간이 흘렀다.
볼칸이 그녀를 감싼 팔을 풀었다.
“...저는 어떻게 살아있는 겁니까?”
볼칸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물어왔다. 루나가 별 대답이 없자, 볼칸은 다시한번 입을 열었다.
“차라리 죽는게 나았을까요.”
“말도 안되는 소리 말아요.”
“그냥... 한 번은 투정을 부려보고 싶었습니다.”
볼칸은 가볍게 기침을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해보면 살아있는 것이 기적인 상황이었다. 그는 온몸에 상처를 입고 가슴에는 관통상마저 입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부하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불이 붙은 트럭에 뛰어들었다.
그 트럭이 폭발하는 순간의 기억은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데미지가 적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만져보며 입을 열었다.
“살아있다는게 신기할 정도의 상처입니다. 헌데 생각보다 고통이 없는 건 이상하군요.”
“루나 덕분이지.”
대답은 문 밖에서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루나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주, 준? 어, 언제부터...”
“흠... 언제부터 인 것이 좋을까?”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니. 아무것도.”
“저, 전 잠시 붕대를 가지러 갔다올게요.”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침실을 빠져나갔다. 문밖에서 쿠당탕 하고 무언가 걸려넘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준은 굳이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볼칸이 잠시 눈살을 찌푸리고는 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녀 덕분이라니.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야. 너는 죽음 직전까지 갔었고, 루나가 살린 거지.”
“나는 온몸에 관통상을 입은 상태였다. 거기다 폭발하는 트럭 속에 있었어. 그런데 어떻게하면 그런 상처를 입은 날 치료할 수 있었다는 거지? 그것도 단 하루만에?”
“그러니까. 그녀에게 목숨을 빚진거라는 이야기야. 자세한 설명은 루나에게 직접 듣도록 해. 나도 부상자들 때문에 정신이 없으니까.”
준은 허공에서 커다란 물통을 하나 꺼내어 볼칸의 옆에 내려놓고는 자리를 떴다.
‘역시나 재수없는 녀석이군.’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근본적인 이유가 질투심에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스스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볼칸이 데리고 온 공병부대원 들 중 절반은 사망했고, 나머지 절반은 펍과 상점에 나누어 요양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부상자 중 죽은 사람은 아직 없었다.
준 일행 중 치료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이는 기적적인 일이었지만, 사실 거기에는 준의 꼼수가 있었다.
처음 준과 루나가 폭발 현장에 갔을 때, 준은 온몸에 불을 붙인 채 바닥을 뒹구는 볼칸을 발견했다. 그리고 준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루나가 먼저 그에게 달려가 펠로우쉽을 걸었다.
그녀는 준이 펠로우쉽을 통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저 몇 시간 씩 차량을 타고 움직이는 동안 나왔던, 지나가는 이야기 중 하나였지만 순간적으로 그녀는 그것을 기억해 내고는 볼칸을 살려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따지고보면 죽어가면서도 무의식중에 펠로우쉽 계약을 체결한 볼칸의 의지도 대단한 것이었다. 어쨌든 곧바로 그의 몸에 붙은 불을 끄자 더 이상 그의 체력은 떨어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그를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이 다른 모든 병사들에게 통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의식불명이었던 병사들은 펠로우쉽 체결에 실패했고, 그들은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의식이 있는 자들 중 위급한 이들에게 펠로우쉽을 걸어 목숨만 붙여놓고서는 레이크시티까지 모두 데리고 온 것이다.
준은 돌아다니면서 확연히 혈색이 좋아지고 회복세에 있는 병사들을 확인했다. 준이 사용할 수 있는 펠로우쉽의 여유분은 다섯 명. 그렇다고 그들을 모두 펠로우쉽에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이미 그 자리에는 다른 사람을 넣기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몸 상태가 괜찮은 녀석을 위주로 일단 해제해야겠군.’
게다가 너무 오랫동안 펠로우쉽을 걸어두면 어느정도 정신을 차린 병사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눈에 뭔가 이상한 것들이 보일테니까.
“그런데 이건 뭐지? 눈앞에 이상한게 자꾸 보이는데?”
“나도 그래. 머리를 부딪혀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런게 아니었나?”
벌써 두 명의 병사들이 의문을 표했다. 준은 재빨리 그 두 명의 펠로우쉽을 해제했다. 그러자 곧바로 그들의 눈에 보이던 펠로우쉽의 GUI가 깔끔하게 사라졌다.
“어... 없어졌다.”
“나도 그런데...?”
준은 아직 정신을 차리고 있지 않은 나머지 세 명의 상태를 살피고는 혹시나 상태가 악화된 이들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했다.
부상자들을 모두 확인하고 펍을 빠져나오자 바깥에서 루나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뭔가 할말이 있는 듯 우물거리다가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준. 방금 전 일. 오해하지 말아요.”
“오해하지 않아. 별 수 없었을거고.”
“정말인가요?”
“그래. 그리고 매번 일일이 그런 걸로 신경쓰지 않아도 돼. 난 상관없으니까.”
“상관없는 건가요?”
“아아. 미안하다. 또 쓸데없는 소리를 했군.”
준은 또 다시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못하는 이상 이런 실수는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해줄 수 없었다. 스스로가 비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과하지 말아요. 사과를 받으면 더 비참해지니까.”
“그래. 미...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반사적으로 사과를 하려던 준이 당황하며 말꼬리를 고쳤다. 그 틈을 노려 루나가 준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물컹!
“윽?”
루나의 가슴이 닿는 느낌과 함께 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당장 그녀를 떼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본능은 오히려 그녀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어때요?”
루나가 입을 열었다.
“뭐, 뭐가?”
“아직도 아무것도 아닌가요?”
루나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준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붉어진 준의 얼굴을 그녀라고 보지 못했을 리가 없다.
-후. 형님은 전생에 대체 무슨 짓을 했던 겁니까.
-남을 관찰하는 건 그만두지 않을래? 대체 어디있는 거야?
-위에 있습니다. 날씨가 참 좋네요.
준은 고개를 들어 펍의 지붕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검둥이와 시미가 햇살을 받으며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이제 오해는 풀린거죠?”
“애초에 오해 안했다니까.”
“에이. 했으면서. 그럼 전 이만.”
루나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며 볼칸이 있는 건물로 달려갔다. 종종 걸음으로 뛰어가는 그 모습이 마치 소녀같아 준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두근.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어?”
턱!
그리고 동시에 저 멀리서 신나게 달리던 루나가 굉장한 기세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풍덩.
다행인지 불행인지 호수로 빠진 그녀는, 마치 처음부터 수영을 하려고 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호수를 가로지르며 헤엄을 쳤다.
-누님. 지금 엄청 웃겨요.
-닥쳐.
두 사람의 대화에 준은 표정을 관리하느라 애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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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두편까지는 올라갑니다.
좀 다 뵈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