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3 ----------------------------------------------
니들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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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의 도시’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슬로암을 죽이고 던전핵을 파괴했습니다. 경험치가 주어집니다. 추가 퀘스트는 완료하지 못했습니다.
죽인 자들의 수를 보니 143명이었다. 슬로암이 죽인 이들까지 카운트에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이대로 여기서 기다렸다가 도시로 돌아오는 밴디트들을 쓸어버리는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며칠간은 이곳에서 아예 숙식하며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멀리서 도시의 변고를 깨닫고 도망치거나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냥 이곳을 떠나는 편이 더 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후에 생길 문제는 볼칸에게 떠넘기면 될 일이었다.
‘경험치는 대략 8만 정도 들어온 것 같군. 생각보다는 적은 편인 거 같은데.’
8만이면 절대 적은 경험치는 아니다. 하지만 칼레이건을 잡을 때에 비해 적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마 추가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한 때문인 모양이었다.
-루나. 볼칸에게 이쪽 도시의 위치에 대해서 알려주고 병사를 좀 보내라고 해. 얼마나 많은 밴디트들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하고.
-아. 무사하셨네요. 다친 곳은 없으신가요?
-아아. 나보다는 골렘들이 더 고생했지. 기다리는 동안 별일은 없었어?
-지나가단 밴디트 팀이 하나 있었는데 검둥이가 전부 쫓아냈어요.
-다친 건 아니겠지?
-후훗. 오히려 절 걱정하시는 건가요?
-당연히 걱정이 되지. 곧 돌아갈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준은 데드맨시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대략 전부 얻었다고 생각했다. 도시를 감싸고 있던 모래바람도 슬로암이 죽으면서 사라졌고 남은 밴디트 들도 없었으니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
‘레벨업은 아직 안되었지만 그동안 사용한 경험치도 어느정도 벌충했고... 던전까지 처리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준은 일단 쉘터로 돌아왔다. 검둥이의 말에 따르면 이곳을 습격했던 밴디트 들의 숫자는 모두 다섯명. 이후에 숫자를 더 불려서 찾아올 수도 있었기에 검둥이를 바깥에 세워둔 채 경비를 시키고 휴식을 취했다.
일단 여기까지 온 이상 던전까지는 클리어 할 생각이었다. 밴디트들에게는 다행으로 더 이상 준의 쉘터를 습격하는 녀석들은 없었다.
황무지에서도 밤은 찾아왔다. 씻을 물은 충분했기에 루나도, 준도 가볍게 샤워를 마치고 식사를 준비했다.
“이거 정말 신기하네요. 저도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루나는 순식간에 차려진 저녁식사를 보며 부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준이 허공에서 음식재료를 꺼내고, 그것이 노릇노릇하게 구어진 요리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분. 이런 식으로 바깥에서 야영을 할 때 요리스킬은 더 빛을 발했다.
“흠. 이런 스킬 같은 건 배워두면 좋긴 하겠지만... 일단 5레벨을 찍고나면 뭔가 달라질지도 모르지.”
준이 아는바 현재까지 펠로우쉽 가운데 가장 높은 레벨을 찍은 것은 루나였다. 호랑이 길드원은 자신과 연결이 끊어진 상태라 제대로 성장을 하고 있지는 못했다.
때문에 그녀의 성장여부에 따라 앞으로 펠로우쉽이 어떤 식으로 진화해 갈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루나는 준의 중요한 실험대상이기도 했다.
‘본인에게도 나쁘진 않은거니까.’
실험대상이라고 해도 그녀에게 나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온갖 혜택을 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행은 식사를 시작했다. 쉘터 안으로 들어오길 꺼리던 검둥이도 루나와 함께 있으면서 어느정도 안정을 찾았는지 별 다른 말없이 식사에 동참했다.
시미에게 결정체를 하나 던져주고, 물컵안에 넣은 다음 준도 식사를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식탁에 앉아 제대로 식사를 하는 것은 루나와 준 단 둘 뿐이었다.
달그락. 달그락.
조용한 와중에 식기 소리만이 쉘터안에 울려퍼졌다. 준이 말주변이 없고, 루나도 그렇게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준은 대체 왜 저에게 펠로우쉽 요청을 한거에요?”
루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서였지만, 사실 훨씬 전부터 궁금하던 것이었다.
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필요해서.”
“하지만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괜찮지 않았을까요?”
“던전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우연히 네가 거기에 있었고, 난 네가 마음에 들었다. 그뿐이야.”
“마음에 들었다... 는 건가요?”
“꼭 그 부분만 강조하지 말라고. 핵심은 네가 거기에 우연히 있었다는 거니까.”
“뭐... 그렇게 큰 기대를 하고 물어본 건 아니에요. 그래도 내가 만약 준을 배신했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요?”
“배신하지 않았잖아. 그러면 된거지.”
준은 피식 웃으며 그렇게 입을 열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성급한 결정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었다. 준은 레벨업에 목말라 있었고, 그것을 알아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녀에게서 던전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그녀의 말대로 루나가 배신을 하거나 준을 팔아넘기게 되면 크게 곤란을 겪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준은 그녀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반쯤은 확신하고 있었다.
“어쩌면...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던 건지도 모르겠군.”
“동질감이요?”
“네 존재가 굉장히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도 알카트뢰즈에 어울리는 인간은 아니고. 게다가 던전을 탐사하겠다는 그 무모함도 꽤나 마음에 들었어.”
“칭찬이겠지요?”
“아마도. 어쨌든 너나 나나, 쓸데없이 함부로 남의 이야기를 떠벌리고 다니는 성격은 아니잖아. 그뿐이야.”
“절 신뢰했다는 거죠?”
“내 말의 어디서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거지?”
“정확히 그렇게 말씀하셨는데요?”
“끙... 뭐 어쨌든 결과가 나쁘지 않으니 나쁘진 않은 선택이었다 정도로 해두지.”
준의 말에 루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것이 되돌아오지 못하는 감정이라 할지라도 그녀는 상관없었다. 어디까지나 이 감정의 시작은 준때문이니까, 그러니 마음껏 응석부려도 상관없는 것이다.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출발하지. 어차피 밤이 늦으면 운전은 힘들어지니까.”
아무리 라이트를 켜고 간다고 해도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차량을 운전하는 것은 위험했다. 언제 어디서 외도가 나타날지도 모르고, 지형의 변화도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퍽킹! 마틸다! 오리요리는 어떻게 됐지?
-모, 모르겠습니다.
-모른다고? 여기 누가 오리가 어떻게 된 건지 아는 사람있나? 누가 대답해보라고? 다들 귓구멍에 당근이라도 쑤셔박은거야?
-그... 죄송합...
-닥치고 어떻게 됐는지 말하란 말이야!
-그것이...
마스터의 닦달에 마틸다가 새카맣게 타고 있는 오리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마스터는 주방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꺼져! 당장 이 주방에서 사라져! 다시는 여기에 그 낯짝을 들이밀지마! 그 역겨운 음식은 집에가서 너네 엄마한테나 먹이라고!
준과 루나는 대형화면에서 얼굴을 붉히며 소리치고 있는 마스터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와... 마스터가 저런 사람이었어요...?”
“아아. 회가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시즌1 때는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준은 요리스킬로 만든 팝콘을 집어 먹으며 말을 이었다. 시미도 식물성 음식은 먹을 수 있는지 아예 팝콘 통 안에 기어 들어가 먹고 있었다.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여간 신경쓰이지 않았지만, 저렇게 하면 만드라고라의 정수가 팝콘에 묻기 때문에 준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참. 그런데 펠로우쉽으로는 델타OS에 접속이 안되는 건가?”
“네. 그런 기능은 없는 것 같아요. 데이터베이스 접근 권한은 있지만... 준이 설정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런가...?”
준은 혹시나 해서 튜토리얼을 뒤적거렸다. 준이라고 현재 델타의 모든 성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펠로우쉽 대상자가 델타OS에 접속할 수 있다는 설명은 찾을 수 없었다.
“안되는 모양이군.”
“좀 아쉽긴 하지만... 별 상관은 없어요. 그보다 준은 이 곳을 나가면 뭘 할 생각이에요?”
“글쎄... 딱히 별 생각은 없군.”
“지금의 준에게는 힘이 있잖아요. 상급헌터에 달하는 무력이 있으니, 충분히 밖에 나가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대기업 레이드 팀에 들어가게 되면 연봉도 상당히 나올 텐데요.”
“대기업이라면 지긋지긋해. 차라리 나 혼자 다니고 말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밥과 마스터를 자신의 레이드 팀에 넣을 계획을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루나도 펠로우쉽의 일원인 이상 준의 계획안에 들어가 있었다.
“내가 이곳을 떠나게 되면 넌 어떻게 할 셈이지?”
“글쎄요... 이곳에서 마쳐야 할 연구도 있고, 아직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굳이 강요하진 않아. 하지만 난 네가 같이 가줬으면 좋겠어.”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그야 네가 뛰어난 과학자니까.”
“그 이유 뿐인가요?”
루나는 약간 서운한 눈으로 준을 바라보았다. 준은 그녀가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그에 대한 명확한 선을 긋는 것이 옳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루나의 말대로, 이 건에는 준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 때문에 준은 냉정하게 그녀의 마음을 잘라낼 수가 없었다.
“동료로서... 함께 하고 싶다는 정도로는 불충분한가?”
“그다지 혹할만한 이야기는 아니네요. 하지만...”
루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원래 더 좋아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법이니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팝콘을 쥐며 눈앞의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준은 팝콘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먹는거에요?”
“아. 미안.”
준은 자기도 모르게 시미를 입에 넣을 뻔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얼른 그녀를 내려놓았다.
-형님. 여자 만나본적 없죠?
-시끄러. 임마.
-여기선 그냥 자빠뜨리는 겁니다. 남자가 되어서 여자가 저렇게 까지 대쉬하는데 가만히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에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신경쓰지마.
-네. 네. 나중에 후회하셔도 전 모릅니다. 형님이 방심할때를 노려, 제가 루나님을 낚아챌 계획이거든요.
-네가 사람이라는 걸 알게되면 루나가 가만히 있을 것 같냐?
-호오? 지금 질투하시는 겁니까?
-하하. 이 녀석아. 껍질을 벗겨서 탕으로 만들어 줄까?
-하하하. 농담입니다. 형님. 제가 그럴리가 없지요.
준의 위협에 검둥이가 꼬리를 말고 낑낑 거렸다. 그러자 루나가 무슨일이 있냐며 검둥이를 들어 품에 안았다.
-훗. 그녀의 품은 참으로 안락하군요.
-후후. 곧 안락사를 시켜주지.
자신을 향한 녀석의 눈빛이 굉장히 거슬렸지만, 녀석의 말대로 질투를 하는 것 같아 발끈하지 않으려 애썼다. 대신 준은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루나. 사실 이 녀석 말이지...”
“컹!”
“사실은...”
“멍! 멍!”
“어머. 이 녀석 왜 이럴까. 조용히 해.”
검둥이는 애타는 눈빛으로 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준은 고개를 저으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 녀석은 개가 아니라 사람이야.”
“네?”
루나는 준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을 올려다보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는 검은색 개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사, 사람이요?”
루나는 조심스럽게 검둥이를 품에서 내려놓았다.
“그래. 원래 사람인데, 미래연구소에서 실험대상이 되었다가 외도가 된거야.”
“그럼 사람으로 돌아갈 수는 있는 건가요?”
“아니. 아직까지는 별 해결책이 없어.”
“세상에...”
루나는 안쓰럽다는 듯 검둥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동정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준이 약간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배신감이 느껴지가나 화가 난다면 나에게 말해도 돼. 내가 따끔하게 혼을 낼테니까.”
“네? 별로 그렇진 않은데요?”
“하지만 이 녀석은 지금까지 너에게 달라붙어서는 온갖 이상한 짓을...”
“이상한 짓?”
준은 말을 하면 할수록 스스로에게 말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루나의 얼굴이 조금 붉어지더니 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확실히 좀 불쾌할 때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절 지켜주기도 했는걸요.”
“멍!”
검둥이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