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2 ----------------------------------------------
죽은 자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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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몸에서는 은은하게 노란색과 초록색이 뒤섞인 빛이 퍼져나오고 있었다. 결국 완전힌 초록색 외도는 되지 못한 상태. 녀석이 이야기 했단 ‘빠르다’는 말이 무엇인지 준은 슬슬 이해가 되고 있었다.
‘내가 너무 빨리 왔다는 거군. 적어도 이 자리에 없는 나머지 200명의 힘을 흡수했다면 초록색 외도로 완전 진화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겠지.’
현재 슬로암이 흡수한 밴디트는 100명 정도. 물론 이전에도 조금씩 인간을 죽여서 흡수했겠지만 사람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잡아먹을 생각으로 나름 자중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듯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준이 대부분의 밴디트가 도시를 빠져나가고 없는 시간이 쳐들어오는 바람에 흡수할 만한 인간의 숫자가 대폭 줄어버린 것이다.
“얼굴을 집중적으로 노려!”
하지만 준의 명령은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골렘들이 알아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슬로암의 폭발하는 회오리 공격에 접근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어딜 감히!”
슬로암이 큰 소리로 외치며 양손을 끌어올렸다. 마치 지휘를 하듯 손을 휘두르는 방향에 따라 사방에서 바닥이 터져나가며 회오리바람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거의 자연재해급으로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300명이 살고 있었고, 지금도 살고 있는 수많은 건물들이 슬로암의 회오리바람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쓸려나갔다.
“뭐 저런...”
완전히 초록색 외도가 되지 못한 녀석이 보이는 힘치고는 어마어마하게 강력했다.
준은 회오리바람의 권역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며 골렘들의 움직임을 메시지를 통해 일일이 지정했다.
알아서 회피하는 것은 대흉근 뿐이고, 나머지 골렘 형제들은 준의 명령 없이는 스스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준이 세 마리나 되는 골렘 형제들을 일일이 조종 할 수는 없었다. 결국 골렘 2호가 딛고 있던 바닥이 터지며 녀석의 몸이 수미터나 허공으로 떠올랐다.
“젠장!”
순간적으로 골렘 2호의 몸이 태양을 가리며 하늘이 어두워졌다. 준은 자신의 머리위로 떨어지는 골렘 2호를 피해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쾅!
“크윽!”
골렘 2호가 바닥에 떨어지자 땅이 뒤흔들리며 준이 바닥을 굴렀다. 재빨리 움직인 탓에 깔리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니, ‘모두’가 깔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꽥!”
“아. 미안.”
준은 바닥을 구르다 윗주머니에서 빠진 시미를 재빨리 집어들었다. 시미가 바닥에 쓰러진 준의 얼굴에 깔려버린 것이다. 준의 녀석의 몸이 유연하다는 건 이미 대흉근에게 얻어맞을때부터 알고 있었던 지라 다칠까 걱정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미안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무 격렬해여. 살살 좀.”
“이상한 소리 좀 하지마.”
준은 가볍게 한마디 하고는 재빨리 대흉근의 뒤쪽으로 위치를 옮겼다. 어차피 슬로암의 회오리 공격은 도시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고 어설프게 멀리 떨어져 있느니, 가까운 곳에서 빈틈을 노리는 편이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대흉근에게 일격을 허용한 녀석은 자신의 주위를 완전히 바람으로 감싼 상태였다. 골렘 1,2,3호는 바닥에서 치솟는 바람에 휘말리기 일쑤였고, 대흉근도 겨우겨우 피하기만 할 뿐 녀석을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준이 직접 달려가 녀석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것도 생각하기 힘들었다. 완벽 방어에 이은 원거리 공격.
지금까지 참 많은 적을 상대해 왔지만 이런 식으로 치사한 느낌을 주는 녀석은 처음이었다.
‘이거 어떻게 상대하라는 거야...?’
지금까지는 얼추 대흉근만 밀어넣으면 어찌어찌 해결되는 싸움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준의 역할은 그저 대흉근이 싸우다 남은 녀석들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그쳐왔다.
애초에 준이 전투형 캐릭터가 아니었고, 대흉근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골렘들이 별 힘을 쓰지 못하자 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작에만 힘을 너무 쏟은 건가?’
그동안 나름대로 레벨업을 하고, 강해져 왔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다소 무력감이 들었다.
바람을 뚫고 들어가 슬로암을 때려잡지는 못하더라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 준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 자책할 때가 아니야. 뭐라도 좋으니까 생각하자. 이대로라면 저 녀석이 힘이 빠질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외도도 한정된 에너지를 사용하는 만큼 언젠가는 지치게 마련이다. 저정도의 엑조틱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면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녀석의 힘이 다할 것임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게 언제일지는 알 수 없었다. 만약 그 전에 골렘들이 먼저 뻗어버리면 준에게 남은 것은 맨몸으로 니들리스 스패너를 들고 뛰어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콰앙!
“큭!”
준은 땅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회오리를 피해 대흉근의 어깨위로 올라섰다. 그러자 슬로암이 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회색가면이 마치 빙그레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네게서 달콤한 냄새가 나는 군.”
“시끄러. 이 호모자식아.“
준은 이를 빠드득 갈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준에게서 느껴지는 엑조틱 에너지 때문인지, 그렇지 않으면 펠로우쉽의 어그로 시스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슬로암은 준에게 강렬한 무언가를 느끼는 듯 했다.
쐐애액!
슬로암의 두 손에서 준을 향해 날카로운 바람이 뻗어 나왔다. 모래바람이 휘청이며 날아들자, 대기가 찢은 듯 한 비명을 질렀다.
“치잇.”
준이 대흉근의 어깨에서 뛰어내리자, 모래바람이 방향을 틀어 준을 쫓아왔다. 말이 모래바람이지 그것은 거의 녀석의 몸에서 빠져나온 촉수처럼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하앗!”
니들리스 스패너를 휘둘러 달려드는 두 갈래의 모래바람을 끊어내자, 이내 회오리 바람은 힘을 잃고 미풍처럼 흩어졌다.
콰앙!
허공을 향해 떠오르는 골렘 1호. 하지만 바닥으로 떨어지는 건 골렘 뿐만이 아니었다.
후두둑!
회오리바람의 강력한 힘에 의해 사지가 박살난 밴디트들의 시신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남아있는 혈액이 없어서인지 떨어지는 것은 말라붙은 뼈와 살점 조각들 뿐이었지만 그것들을 그대로 맞고 있자니 기분이 그리 좋진 않았다.
쿠웅!
골렘 1호가 바닥에 떨어지자 준의 몸이 들썩였다. 체력상황을 보니 골렘 1호의 체력이 이번 한 번으로 사천 가량 날아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골렘들도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준은 자신이 뭔가 해야한다는 것을 느꼈다.
‘씁. 하는 수 없나.’
준은 결국 마지막까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하지만 할 수밖에 없는 작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봤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사방에서 회오리바람이 준을 날려버리기 위해서 날아드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생각이란 뻔했으니까.
-흉근아. 저 녀석에게 붙어.
-바람. 날아가.
-그래서 시키는 거야.
-알았어.
준은 대흉근을 슬로암에게 돌격시키고는 그의 뒤를 쫓았다.
쿵! 쿵!
대흉근이 달리기 시작하자, 땅이 떨리면서 밴디트들의 시신이 들썩들썩 움직였다. 슬로암은 대흉근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자 두 팔을 활짝 펼치더니 녀석을 향해 앞으로 쭉 펼쳤다.
콰아앙!
그러자 엄청난 폭발과 함께 이전의 것에 비해 두 배는 더 강력한 용오름이 일었다. 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던 대흉근은 엄청난 기세로 하늘로 치솟았다. 거의 5톤에 달하는 대흉근이 10여미터의 허공으로 날아가는 모습은 순간적으로 중력이 사라진 듯한 착각을 느끼게 만들정도였다.
-우워어어어!
-미안.
그리고 빙글빙글 돌며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대흉근의 몸위에 준이 올라타고 있었다. 용오름의 회전력 때문에 다소 어지러웠지만 대흉근의 무게덕분에 회전속도가 충분히 죽은 상태였다.
순간적으로 대흉근과 함께 사라진 준의 행방을 찾던 슬로암이 고개를 들었다.
“응?”
허공에 있어야 할 대흉근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보이는 것은 그보다 훨씬 작은 체구의 준이었다.
"으아아아아!"
준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며 슬로암의 머리를 향해 자유낙하 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
슬로암이 허공에서 뛰어내리는 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준은 그 자리에서 방금 전 인벤토리에 넣었던 대흉근을 꺼내들었다.
촤아악!
급하게 뿜어낸 회오리바람은 대흉근의 몸에 맞으며 상쇄되었고, 슬로암은 대흉근의 몸에 깔리며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쿠웅!
“허억. 허억.”
준은 어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바닥에 쓰러진 슬로암의 회색가면을 향해 달렸다. 녀석은 당황하며 대흉근에게 깔린 몸을 일으키기 위해서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하지만 바람을 조작하는 능력에 특화되어 있는 슬로암이 대흉근 정도의 무게를 들어올린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을리 없었다.
‘그게 있다면 초록색 외도겠지!’
타타탓!
준은 대흉근의 머리를 밟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 바로 아래에는 슬로암의 회색가면이 있었다.
녀석에게서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아?”
“정면내려치기!”
쾅!
쩌저적!
니들리스 해머의 파괴효과와, 정면내려치기의 기술이 합쳐지자 엄청난 폭음과 함께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노란색 정예외도 급의 슬로암이지만 니들리스 해머의 ‘파괴효과’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던 듯, 그 일격에 회색가면에 금이 가버린 것이다.
“어째서??”
슬로암은 가까스로 대흉근에게 벗어나 자신의 가면을 두손으로 감쌌다. 금이 간 가면에서 회색조각들이 툭툭 떨어져 내렸다.
그 사이로 검은 빛이 마치 피처럼 뚝뚝 흘러내렸다.
‘빛이 흘러내리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주변을 어둡게 만드는 시커먼 빛이 바닥으로 흐르며 산란되었다.
빛이 검다는 것 만으로도 이미 문제인데, 그것이 질량을 가지고 흐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준은 던전핵의 오염도에 따라서 그 색이 점차로 어두워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랑튀르의 경우 회색이었고, 우로보로스의 경우에는 흰색이었지. 그리고 칼레이건은 칠흑같이 검은색이었고.’
결국 인간의 생명력을 얼마나 흡수하냐에 따라, 던전핵의 색깔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슬로암의 던전핵은 검은 것을 넘이 중력의 영향을 받아 아래로 흐를 정도였으니 그 정도가 훨씬 더 심하다고 할 수 있었다.
“크아아아!”
슬로암은 부서져 가는 가면을 한손으로 쥐고는 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준이 재빨리 움직였다.
콰앙! 쾅!
슬로암은 준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향해 미친 듯이 용오름을 시전하고 있었다. 이미 초토화된 도시였지만, 슬로암은 마치 평탄화 작업이라도 하려는 듯 사방을 쓸어버렸다.
시미의 정신교란을 통해 놈의 시야에서 벗어난 준은 대흉근을 제외한 골렘 형제들 마저도 모두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다.
‘그나마 저 녀셕의 능력이 바람조작에서 그친다는 게 다행이로군.’
이미 녀석의 에너지 원인 던전핵에서 엑조틱 에너지가 새어나가고 있었다. 회색가면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가고 있었고, 준의 예상대로라면 얼마지나지 않아 회색가면이 완전히 부서질 것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되면 굳이 준이 가면을 부수지 않아도 알아서 힘을 잃고 쓰러질 것이었다.
“아아... 이런식으로...”
그리고 예상대로 슬로암은 얼마지나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가 부족한 것이다.
그렇게 다리에서부터 육체가 서서히 모래로 화하며 부서지기 시작하던 슬로암은 쿵,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려는 듯 녀석은 사방으로 바람을 쏘아보냈지만 이미 대흉근의 뒤에서 거의 모든 공격을 피하고 있던 준에게 닿는 것은 없었다.
얼추 슬로암의 체력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싶자, 준이 모습을 드러내고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퀘스트 자체는 던전핵만 파괴하면 되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숨통은 제대로 끊어야 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슬로암은 준을 향해 비통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일개 밴디트로서 던전핵을 집어삼키고 삼백이 넘는 엄청난 수의 밴디트를 살해함으로서 강대한 힘을 얻으려 했던 자. 슬로암은 준에게 목숨을 잃을 상황에 처한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나 결혼해. 그만 따라다녔으면 좋겠어.’
자신을 배신했던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를 죽이고, 그를 말리던 그녀의 가족을 죽였다. 그들은 죽어도 싼 자들이었다. 헌데 어째서 자신이 그런 녀석들 때문에 알카트뢰즈에 와야 했던가. 잘못한 것도 없이 이런 척박한 땅에 던져진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결정체 생산의 도구로 사용되는 자신에 대한 환멸과 혐오에 몸부림 쳤던 과거가 떠올랐다. 힘을 있다면 자신을 이곳에 밀어넣은 자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타인을 저주했고, 인간을 증오했고, 운 좋게 외도가 되었다.
“네 놈이... 내... 꿈을..”
쾅!
준은 니들리스를 들어 슬로암의 머리를 내리쳤다. 외도로 변해버린 쓰레기 같은 인간의 한을 들어줄 의무 따윈 그에게 없었다.
“꿈같은 소리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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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내일은 아마 못올릴 것 같습니다. 일이 있어서 본가로 내려가거든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