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1 ----------------------------------------------
죽은 자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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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억!
“크헉!”
일격에 스턴에 빠지며 바닥을 나뒹구는 녀석을 뒤로하고, 준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밴디트들을 향해 니들리스 스패너를 휘둘렀다. 힘과 민첩을 바탕으로 한 준의 공격은 어정쩡한 공격으로는 범접하지도 못할 정도의 기세를 흘리며 사정없이 적들을 쓰러뜨려 나갔다.
아아아아아!
목을 가다듬은 시미가 만드라고라의 비명을 질렀다. 준은 머리를 울리는 소리에 잠시 눈을 찌푸렸지만, 지향성 음파공격을 그대로 뒤집어쓴 밴디트들은 머리가 아픈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으아앗!”
“커헉!”
일부는 눈과 귀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상당수는 귀를 막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정면에서 시미의 음파를 뒤집어쓴 붉은머리 사내 한명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으아아아아!”
시미는 지닌바 모든 힘을 짜내어 소리를 질렀다. 준은 그만하라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음파공격에서 어느정도 헤어나온 밴디트들 만을 골라 스패너로 후려쳤다.
퍼억!
“컥!”
“아악!”
준의 전투는 일방적인 학살이었고, 처형이었다. 그것은 당하는 입장에서 보기에는 너무나도 끔찍한 광경. 하지만 준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녀석들의 숨통을 끊었다. 그에게 있어 그들은 외도나 매한가지였다. 아니, 그보다 더 용납할 수 없는 적이었다. 그들을 살려두었다간, 서은설 때와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준이 모두를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언제든지 그와 아는 이들이 밴디트들에 의해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그때가서 후회하느니 차라리 기회가 있을때 모두 없애버리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촤아아악!
그 와중에 골렘들에게 둘러싸여있던 슬로암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4미터에 이르는 청동골렘들의 머리위로 솟구칠 만큼 엄청난 도약을 선보이는 녀석의 발밑에는 회오리 바람이 용솟음 치며 그를 공중으로 밀어올리고 있었다.
“뭐하려는 거지?”
준은 고개를 들어 녀석의 모습을 보았다. 슬로암의 몸은 절반 가까이 부서져 있었다. 다리 한쪽은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았고, 상체도 심장부위를 제외하고는 멀쩡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냥 보기에도 죽음 직전의 모습이었다.
“최후의 발악인가?”
“크아아아아!”
슬로암은 허공에 정지한 채 소리를 질렀다. 분노에 찬듯도 하고, 고통의 비명인 것 같기도 한 그 비명소리에 준을 향해 달려들던 밴디트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크흐흐흐! 아직 충분한 수가 모이지 않았거늘!”
허공에 뜬 채, 슬로암이 큰 소리로 외쳤다.
“충분한 수? 저 자식 처음부터 알 수 없는 소리만 해대고.”
애초에 준은 이 도시의 사정이나 슬로암의 이야기 같은 것은 관심이 없었다. 그저 밴디트를 죽이고, 던전핵을 파괴한다. 그것만이 준의 목적이었다.
파앗!
슬로암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돌연 그의 온몸에서 회색모래가 사방으로 뿜어져나가기 시작했다.
쐐애액!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모래는 마치 날카로운 창처럼 주변에 있는 모든 인간을 향해 쏘아졌다.
파팟!
준은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모래의 창을 피했다. 하지만 준을 제외한 대부분의 밴디트들은 슬로암의 모래창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몸을 꿰뚫렸다.
퍼퍼퍽!
“크헉?”
“스, 슬로암님?”
“으아악!”
거의 100여명에 달하는 밴디트들이 한꺼번에 심장을 꿰뚫리며 그대로 즉사했다. 그 광경에 준은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인간쓰레기들의 집합이라고 해도 단번에 100여명의 인간이 목숨을 잃는 광경은 그도 처음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쯤되니 준은 대충 짐작가는 바가 있었다.
어차피 던전핵을 먹은 자는 외도화가 되어 인간을 먹이로 삼는다. 그랑튀르의 경우가 그러했고, 칼 레이건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들은 인간을 죽여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치환시켰다. 그것은 마치 준이 외도를 죽여 그것을 경험치로 삼는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슬로암은 이 밴디트들의 도시를 자신의 먹이저장소로 삼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마 눈에 드러나지 않게 꾸준히 인간들을 잡아먹었을 것이고, 그러면서도 꾸준히 힘을 키우기 위해 도시를 숨기고 밴디트들을 보호해 왔을 것이다.
거기에 혹해서 데드맨시티로 흘러들어온 자들은 슬로암을 자신들의 구원자라고 여겼겠지만 결국 그들 모두는 녀석에게 잡아먹힐 운명이었을 것이다. 결국 데드맨시티, 죽은 자들의 도시라는 이름 답게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죽을 놈들이 죽은 거니 동정할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살아있었다 하더라도 준이 모두 저세상으로 보냈을 놈들이다. 사람을 사냥하는 자들을 같은 인간으로 볼 필요는 없었다.
고오오--
준은 고개를 들어 허공에 떠있는 슬로암의 모습을 보았다. 녀석의 온몸에서 모래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창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그 창은 이미 죽어있는 밴디트들의 심장에서 피를 빨아들이며 엄청난 기세로 슬로암의 덩치를 키우고 있었다.
단순히 피를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녀석은 죽은 밴디트들의 몸에서 근원이 되는 마나를 끌어들이며 그 힘을 키우고 있는 것이었다.
콰아아-
“큭!”
엄청난 대기의 폭풍이 슬로암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슬로암의 허공에 떠오른 몸은 점점 커져 어느새 거의 2미터를 넘어서 3미터에 달하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간 안되겠다 싶어 준이 사용할 수 있는 원거리 기술인 더블애로우와 파동권을 연이어 쏘아보냈지만, 그의 주변을 도는 모래폭풍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흉근과 골렘들도 니들리스 스피어를 들어 녀석을 향해 공격을 시도했지만 이미 녀석의 몸은 더 높이 떠올라 창의 사거리에도 닿지 않을 정도였다.
“더 강해지려는 것인가...”
슬로암은 노란색 외도였다. 하지만 현재 녀석의 스펙트럼은 노란색을 넘어 점점 초록색으로 변해가려고 하고 있었다. 녀석이 완전히 진화를 하기 전에 무언가 수를 내지 않으면 준도 곤란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나라도 초록색 외도는 무리라고.’
무턱대고 데드맨시티를 제거하려고 든 것은 아니었다. 골렘형제들과 함께라면 300명의 도시라도 충분히 지워버릴 자신이 있었다. 설령 던전핵의 보유자가 칼 레이건 보다 강하다 하더라도 관계없었다. 준도 골렘 형제들도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고, 시미라는 일대다수에 특화된 펫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슬로암이 초록색 외도로 진화한다면 그건 다른 문제였다. 숫자로는 준에게 이길 수 없지만, 강력한 하나의 개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파란색 외도였던 우로보로스만큼은 아니겠지만 초록색 외도는 상급의 헌터 여러명이 힘을 합쳐야 할 정도로 강력한 외도였고, 녀석이 완전한 초록색 외도로 진화를 하게 된다면 아무리 준이라도 힘든 전투를 하게 될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나마 루나를 두고 온게 다행인건가?’
만약 그녀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지금 주변을 흐르는 모래바람에 실린 엑조틱 에너지에 의해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만큼 지금 슬로암이 내뿜는 힘은 어마어마 한 것이었다.
“크하하하! 인간주제에 감히 이 몸을 죽이려고 하다니! 그 오만을 지금 징죄해주마!”
자신의 몸을 타고 흐르는 방대한 힘에 취한 것인지, 지금까지 말이 많지 않던 슬로암이 광소를 터뜨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녀석의 몸은 그야말로 거인이라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이제는 대흉근의 크기를 넘어섰고, 곧 있으면 골렘 형제들의 크기도 넘어설 것 같았다.
“대체 어디까지 커지려는 거야?”
저렇게 커져서야 니들리스 스피어의 속성공격만을 믿을 수는 없었다. 니들리스 스피어는 송곳을 대형화 한 것이고, 그것으로 백날 찔러봐야 아주 적은 범위만을 얼릴 수 있을 뿐이었다.
준은 시미에게 결정체를 하나 주었다. 최후의 순간에는 시미의 정신교란만이 살길이었다. 이미 음파공격을 통해 엑조틱 에너지를 소모한 시미를 회복시키며, 준은 녀석을 상대할 방법을 궁리했다.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는 건가?’
원거리 공격이 시원찮은 준으로선 현재 허공에 떠있는 녀석을 눈뜨고 구경할수밖에는 없었다. 그렇다고 니들건을 쏘아봐야 데미지도 박히지 않을 것이다.
‘원거리 공격이라면 니들건과 불스원샷밖에는 없는데...’
그 어떤 것도 온몸이 모래로 만들어진 외도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리고 결국 슬로암이 지상의 모든 밴디트들의 시체에서 피를 모두 흡수했다.
쿠웅!
“크윽! 흉근아! 일단 애들데리고 물러서!”
준의 명령에 대흉근은 골렘 1,2,3호와 함께 뒤로 물러섰다. 완전히 변화한 슬로암은 붉은 몸체를 띈 거대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얀 천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회색가면은 착용하고 있는 채였다. 덩치에 맞춰 가면도 훨씬 커져 있었다.
“알몸으로 가면만 쓰고 있다니. 정말 최악이군.”
게다가 덩치가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남자의 알몸이다. 성기가 달려있지 않다는 점이 유일한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쉬익- 쉬익-
슬로암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준은 일단 골렘들을 자신의 앞에 열을 맞추어 세웠다. 5미터나 되는 덩치다 보니 갑자기 공격을 해오면 준이라도 위험할 수 있었다.
준은 고개를 들어 녀석을 살펴보았다.
‘일단은 속성공격밖에 없어.’
전대물도 아니고 거의 다잡은 적이 대형화 되어버렸다. 하지만 대흉근과 아이들도 체격으로는 밀리지 않았다. 어찌보면 이제야 체급이 맞는 상대와 싸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준은 재빨리 골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대흉근은 주먹으로 공격. 골렘 1,2,3호는 계속해서 니들리스로 공격해.”
골렘들이 일제히 알았다는 대답을 하고는 슬로암을 향해 쿵쾅 거리며 달렸다. 슬로암은 그런 골렘들을 향해 덤벼보라는 듯 한 손을 까딱거렸다.
촤확!
하지만 그건 단순한 도말이 아니었다. 슬로암이 한 손을 들어 가벼운 물건을 들어올리듯 손바닥을 튕기듯이 들어올리자, 엄청난 회오리 바람이 동시에 세 군데에서 솟구쳐 오르며 골렘들을 튕겨낸 것이다.
후웅!
그 소규모 회오리 바람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골렘 1,2,3호가 바람에 튕겨 공중으로 떠오를 정도의 위력이었던 것이다.
쿠웅!
허공으로 1미터는 넘게 떠올랐단 골렘 형제들이 동시에 바닥을 나뒹굴었다. 무게가 무게이다 보니 단순히 바닥에 떨어진 것만으로 수천에 달하는 체력이 깎여나갔다.
쿵! 쿵!
하지만 그 순간에도 대흉근은 빠른 몸놀림으로 회오리 바람의 권역을 벗어나 슬로암의 전면에 도달했다. 동생들에 비해 비교적 날렵한 편인 대흉근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고 있던 준이 큰 소리로 외쳤다.
“한 방 먹여!”
후웅!
준의 외침과 함께 대흉근의 주먹이 그대로 슬로암의 안면을 강타했다.
쩌엉!
회색가면을 쓰고 있던 슬로암의 안면이 뒤로 튕겨나가며 휘청거렸다. 대흉근은 오른쪽 주먹을 휘두른 그 힘을 살려 몸을 180도 회전하며 ‘크게 휘둘러치기’를 시전했다.
퍼석!
대흉근의 주먹이 슬로암의 허리를 가르고 지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처럼 녀석의 몸이 모래화 되면서 녀석에게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했다.
두 번의 공격.
첫 번째는 먹혔고, 두 번째는 통하지 않았다.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회색가면 만은 모래화 되지 못하는 군.’
처음부터 거슬렸던 회색가면. 대흉근의 첫 일격을 맞고 휘청거린 것. 그리고 녀석의 몸이 커지면서 자동으로 커진 것을 모두 대입해보면 한 가지 결론이 나왔다.
“저게 핵이네.”
외도의 몸안에는 반드시 핵이 존재했다. 대흉근이야 펠로우쉽으로 재조합된 특수한 경우라 제외하면, 일반적인 골렘도 그러했고, 샌드피쉬같이 신축성있는 몸체를 가진 녀석들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준은 계속해서 슬로암의 몸속 어딘가에 있을 핵을 찾고 있었다. 헌데 최초 대흉근과 골렘 1,2,3호가 아무리 공격해도 녀석의 몸속에는 핵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혹시 던전핵으로 인해 다른 외도와 다른 건 아닐까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물속성을 부여해서 녀석의 신체에 직접 타격을 가하는 쪽으로 공격 방법을 선회한 것이다.
준도 회색마스크가 슬로암의 거대화와 함께 함께 커지지 않았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얀 천이 사라진 것과 달리 회색 마스크가 함께 커지는 바람에 그것이 슬로암의 신체와 동기화 되어있다는 것을 알아낸 순간, 녀석의 핵이 마스크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요는 마스크를 부수면 된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