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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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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이군.”
아무리 그래도 물건을 덜렁거리면서 다니는 녀석과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준은 우선 대흉근의 상태를 살폈다. 눈으로 보기에는 상체의 상당부분이 깨져나가 심각해보였지만 정작 체력은 8만 정도로 아직 충분했다.
물론 그 짧은 순간의 공격만으로 1만이라는 데미지를 먹인 것은 무서운 일이다. 만약 준이 그 공격에 노출되었다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단 저 녀석이 정상적으로 데미지를 입지 않는다는 게 문제인 듯 한데...’
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슬로암의 뒤에 늘어서 있는 밴디트들을 보았다. 대충 눈으로 계산을 해보니 약 100여명 정도만이 눈에 띄었다. 퀘스트에 적힌 숫자가 300인 걸로 보아선 마을의 인원중 상당수가 밖에 나가있는 것 같았다.
‘하긴 지금 시간에 마을에 남아 있는 놈들이 정상이 아닌거지.’
아무리 밴디트라도 마냥 놀고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정부로 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치열하게 사냥을 하러 다녀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아있는 밴디트 들은 슬로암과 대흉근의 전투를 보면서도 싸우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슬로암의 명령이 없기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저 녀석만 처리하면 된다는 이야기네.’
명령권을 쥔자가 죽어버리게 되면 그 밑의 녀석들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다. 게다가 극도로 에고가 강하고 이기적인 밴디트들이라면 그 경향은 더욱 심할 것이다. 지금이야 강력한 지도자가 구심점이 되어 그들을 하나로 묶어 두고 있지만 그 구심점 자체가 사라지게 되면 모래알 처럼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저 녀석을 어떻게 죽이느냐 하는 건데...”
슬로암은 어느새 완전히 신체를 수복하고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몸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 준이 보기에도 녀석은 거의 타격을 입지 않은 것 같았다.
‘단순 물리 공격으로는 힘들다는 건데...’
골렘들이 아무리 주먹으로 휘둘러 쳐도 놈에게는 별다른 타격을 입힐 수 없다는 것은 확인 되었다. 그렇다면 속성을 이용한 데미지를 입히는 수밖에 없었다.
준은 허공에서 니들리스 스피어를 꺼냈다. 골렘용으로 제작되어 보통의 인간이 들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무거웠지만 준은 그것을 한 손으로 집어 들었다.
‘좀 묵직하긴 하군.’
한손으로 20kg짜리 무기를 솜방망이처럼 휘두르는 준도, 100kg을 넘어서는 니들리스 스피어는 확실히 무기로 사용하기에는 버거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자신이 사용할 것도 아니니 별 상관은 없었다.
준이 니들리스 스피어를 꺼낸 이유는 속성부여를 위해였다. 10레벨이 되면서 생긴 제작기술의 강화판인 속성부여는 공격불가 옵션을 제외하고는 아직 제대로 사용해 본적이 없었다.
-제작기술, ‘속성부여’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준이 ‘네’를 선택하자,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각 속성과 그것의 특징, 그리고 현재 무기에 속성을 부여하기 위한 경험치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제작 - 속성부여]
대상물 : 쓸데없이 거대한 송곳(B급)
부여가능 속성
=불 : 무기에 화염 데미지를 추가합니다. 화염으로 인한 범위피해와 지속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화재의 위험이 있으니 실내에서는 사용을 금합니다. 150의 경험치를 필요로 합니다.
=물 : 무기에 물 속성 데미지를 부여합니다. 주변의 온도를 낮추어 적의 움직임을 둔화시키고, 중첩하여 동결을 시킬 수도 있습니다. 불 속성의 공격에 강력한 상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250의 경험치를 필요로 합니다.
=흙 : 무기에 흙 속성 데미지를 부여합니다. 무기의 날카로움을 감소시키는 대신 무게와 충격량을 높입니다. 무기의 내구도가 높아지고, 자가수복이 가능합니다. 200의 경험치를 필요로 합니다.
=바람 : 무기에 바람 속성 데미지를 부여합니다. 무기의 날카로움과 속도를 높이는 대신 중량이 감소하고 충격량이 감소합니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샤프슈터’ 기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250의 경험치를 필요로 합니다.
=번개 : 무기에 전격 속성 데미지를 부여합니다. 랜덤으로 방어무시 데미지를 입힙니다. 짧은 시간의 기절효과를 부여합니다. 350의 경험치를 필요로 합니다.
=공격불가 : 제작자와 펠로우쉽 대상자에 대한 공격이 불가능해집니다. 0의 경험치를 필요로 합니다.
*모든 무기에는 단 하나의 속성만이 부여가능합니다.
‘씁. 들어가는 경험치가 어마어마하군.’
골렘용 니들리스 스피어를 제작하는데 들어가는 경험치가 50이었다. 헌데 단지 속성을 부여하는데 그 대여섯 배가 들어갔다. 경험치가 아깝긴 했지만, 지금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생각에 준은 일단 니들리스 스피어에 물 속성을 부여했다. 흙과 바람 속성을 가지고 있는 슬로암에게 불속성은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할 것 같았다. 자칫 잘못하면 무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을 도로 튕겨낼 수도 있었다.
그나마 현재 상태에서 부여할 수 있는 속성 가운데는 물 속성이 가장 적합해 보였다. 일단 슬로암의 움직임을 둔화시킬 수도 있었고, 녀석을 얼려버리게 되면 제대로 된 타격을 가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흉근아! 이거 받아!”
휘익! 턱!대흉근은 준이 마치 투창을 던지듯이 날리는 니들리스 스피어를 한손으로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바람이 일 정도로 거세게 휘둘렀다.
붕붕!
“갑자기 서늘해지는 느낌인데.”
대흉근의 손에 들린 니들리스 스피어는 차가운 기운을 뿌리면서 주변의 온도를 낮추고 있었다. 대흉근이 본능적으로 사용하는 엑조틱 에너지에 반응하여 대형 니들리스 스피어가 그 힘을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준은 나머지 니들리스 스피어들도 모두 꺼내어 속성부여를 완료했다. 덕분에 1000이라는 경험치가 날아갔다.
‘아슬아슬하네.’
그렇게 속성부여를 하고 나니 남은 경험치가 겨우 50이었다. 물론 아직 보유한 결정체는 많이 있었지만 2만이 넘어가던 경험치가 바닥을 드러내니 알거지가 된 기분이었다.
‘이 녀석을 잡고 나면 적당히 복구 되겠지.’
현재 준의 주 경험치 원은 퀘스트와 던전, 그리고 델타폰에서 들어오는 수익이었다. 그중에서도 퀘스트에서 얻는 경험치가 가장 많다고 할 수 있었다. 미래연구소에서 한 방에 10만 가까이 들어온 경험도 있었고, 이 녀석도 노란색 외도이니 만큼 상당한 경험치를 얻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흉근과 골렘 형제들이 모두 물속성을 지닌 니들리스 스피어를 쥐자 일순간에 주변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준은 순간 그것을 이용해 에어컨이나 냉장고를 만들 수 있지는 않을까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지금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 그 생각은 뒤로 미루었다.
-일단 통상 공격은 먹히지 않는 것 같으니까, 공격은 니들리스 스피어로만 하고 녀석이 이상한 낌새를 보인다 싶으면 재빨리 피할 수 있도록 해. 그리고 공격이 먹히기 시작하면 녀석의 움직임이 느려질테니까, 그때는 다소 피해가 있더라도 집중공격을 해서 둔화효과를 중첩시킬 수 있도록 하는거야. 알겠지?
-몰라.
-모르겠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끙...”
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복잡한 명령이 들어가면 골렘들은 고개부터 저었다. 게다가 그새 까먹은 것인지 골렘 형제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입을 열었다.
‘체력이 높으니 그걸로 만족해야지...’
9만에 이르는 체력을 보유한 녀석이니 만큼 지능까지 높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극단적으로 한쪽에 올인한 형태였던 것이다.
그것은 시미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모든 능력이 정신교란과 음파공격에 집중되어 있었다. 힘민체정으로 대표되는 능력치로만 따지면 겨우 3레벨에 불과한 루나보다도 한참 아래였다.
-아. 몰라 그냥 죽을때까지 패던가.
-오예.
“너 임마...”
준은 한숨을 쉬며 미간을 꾹꾹 눌렀다. 대흉근에 이어 골렘 형제들이 건조하게 ‘알았다’며 한마디씩 남겼다.
슉슉
골렘들이 슬로암을 향해 걸어가더니 창을 푹푹 찔러대기 시작했다. 화려한 기술도, 그럴듯한 자세도 없는 찌르기였다. 왼 팔을 늘어뜨린채, 오른손에 쥔 송곳을 그저 기계적으로 앞뒤로 반복하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엉성한 동작의 공격이라도 슬로암에게는 충분한 위협이 되었다. 마치 산 처럼 거대한 녀석들 네마리가 주변을 둘러싸고 송곳을 찔러대니 거기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치익!
그리고 니들리스 스피어가 슬로암의 몸에 닿을 때마다 녀석의 몸이 조금씩 둔화 되어갔다. 자세히 살펴보니 가는 모래로 이루어진 슬로암의 몸이 조금씩 얼어붙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슬로암이 처음으로 당황하기 시작한 듯, 사방으로 모래바람을 쏘아보내기 시작했다.
휘이잉!
“윽.”
준은 골렘들을 뚫고 흘러나오는 모래바람에 눈을 찌푸리며 몸을 움츠렸다. 날아드는 것은 단순한 모래바람이 아니라 엑조틱 에너지가 섞여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지만 체력이 감소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준은 전투 현장에서 약간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았다. 굳이 그가 끼어들지 않는 이유는 그럴만한 공간적 여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이미 골렘 네마리가 슬로암을 둘러싸고 있는 와중에 준이 끼어들어 딜을 하느니, 차라리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그때그때 명령을 내리는 쪽이 나았다.
슬로암과 골렘들의 전투는 점점 과격해지고 있었다.
촤촤촤촥!
뒤에서 보면 마치 피스톤 운동처럼 단순반복을 하고 있는 골렘들이었지만, 준은 녀석들이 점점 공격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만큼 슬로암의 발악도 점점 거세어졌다.
콰직!
그리고 처음으로 슬로암의 몸이 모래로 변하지 않고 부서지기 시작했다.
“크윽!”
온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모래바람을 난사하던 슬로암의 입에서 신음성이 터졌다. 녀석이 제대로 된 데미지를 입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아무리 노란색 외도라 할지라도 같은 등급의 외도 네 마리가 붙은 상황이었다.
애초부터 녀석들이 질 싸움이 아니었다.
‘속성 무기가 없었다면 다소 힘들긴 했겠지만. 뭐, 그것도 다 능력이지.’
물속성 무기로 모래로 화하는 녀석의 능력을 봉인시키고, 계속해서 공격을 가한다는 단순한 작전이 먹혀 들어간 것이다.
“슬슬 끝나려나...?”
준이 점점 여유로워지는 것과는 반대로 밴디트들의 표정은 더더욱 죽어갔다. 결국 견디다 못한 녀석들이 골렘들을 향해 무기를 치켜들고 덤벼들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죽여라!”
“다 때려부숴!”
“아냐! 일단 저 자식부터 죽여!”
준과 골렘들을 향해 백여명의 밴디트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고 있었다. 백명의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광경은, 실제로 위험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떠나 꽤나 간담이 서늘한 광경이었다.
쐐액!
턱!
준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화살을 손을 낚아채며 입을 열었다. 준에게는 적이 몇명이라도 물리칠 수 있는 존재가 있었다.
“시미. 음파공격 부탁해.”
준은 앞주머니 속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시미의 머리를 톡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아아..흡.”
“무턱대고 날리지 말고 앞으로 보고 날려야지. 내 얼굴에 음파를 날릴 셈이냐?”
준은 자다깬 얼굴로 소리를 지르려던 시미의 입을 틀어막고는 고개를 전방으로 돌렸다. 그러자 녀석의 머리가 180로 휙 돌아 등 뒤를 바라보는 형태가 되었다.
“아악. 목이 돌아갔어요!”
“넌 목뼈도 없잖아.”
“아? 그러네요?”
시미는 신기한 듯 자신의 몸을 처다보더니, 다시 몸을 돌려 원래 상태로 머리와 몸을 맞추었다.
“그래도 좀 부드럽게 다뤄주세요. 시미는 예민하니까.”
“이런 상황에서 자고 있던 녀석이 할말은 아니다만. 어쨌든.”
휘익!
준은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둘러 오는 밴디트 하나의 검을 피하며 그대로 니들리스 스패너를 휘둘렀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을 과연 쓸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