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8 ----------------------------------------------
죽은 자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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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밴디트의 숫자가 카운트 되어있는 걸로 봐선, 꼭 도시 안에 있는 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숫자가 딱 300인 것은 도시의 인구가 정확히 300이라기 보다는 그 정도를 죽이면 거의 전멸로 인식을 하고 퀘스트를 완료하겠다는 뜻이었다.
“그, 그럼 이제 보내주는 건가?”
클라우드가 준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아아. 그렇지.”
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골렘들에게 명령을 보냈다.
-전부 죽여.
콰드득!
준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대흉근과 골렘 1,2,3호가 동시에 밴디트들의 목을 비틀었다. 클라우드는 잠시 반항하는 듯 했으나, 결국 대흉근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목뼈가 부러지며 목숨을 잃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준을 보며 원망하는 듯 했으나 애초에 준은 그들을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
“흠. 이래도 별 반응이 없는 건가.”
골렘들은 네명의 시신을 아무렇게나 버렸다. 거의 처형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을 보면서도 그들은 준을 향해 달려오거나 하지 않았다. 철저히 상명하복에 익숙하여 명령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동료의 죽음에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았다.
준은 골렘들과 함께 서서히 도시의 입구로 향했다.
쿵. 쿵. 쿵.
골렘들의 발소리에 맞추어 준의 심장고동도 점점 커져갔다. 외도를 상대로 전투를 벌인 적은 많다. 하지만 이 정도 수의 인간을 상대로 싸워본적은 없었다.
‘쓸데없는 고민은 할 필요가 없겠지.’
어차피 밴디트들은 외도나 다를바 없는 존재였다. 아니, 차라리 외도가 나은편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지간하면 자신들의 거주지를 벗어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밴디트들은 수시로 거점을 옮겨가며 다른 헌터들을 사냥하고, 심지어는 도시를 기습하여 통째로 전멸시키기도 하는 녀석들이었다.
쐐애액!
텅!
준의 이마를 향해 날아오던 화살이 대흉근의 팔에 가로막혔다. 녀석의 몸은 덩치에 비해서 상당히 날렵했다. 확실히 진화 이후로 대흉근의 민첩성이 상당히 상승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탄소의 동소체로 만들어 졌다는 것은 대충 알겠는데 풀러렌도, 탄소나노튜브도 아니었다.
어쨌든 석탄보다는 강도도 경도도 높고 무게가 가벼운 편이라 전투력 자체는 대폭 상승한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불붙이기는 되려나?’
더 이상 석탄은 아닌지라 이전처럼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술목록에는 남아있는 걸로 봐서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슈슈슉!
첫 발을 시작으로 화살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적들과의 거리는 대략 백여미터, 준은 대흉근의 뒤에서 달리며 적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따다다당!
대흉근과 골렘형제들의 몸에 화살이 튕기는 소리가 마치 콩볶는 소리처럼 들렸다. 마나가 실린 화살은 골렘들의 체력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대흉근의 체력이 화살로 인해 10 하락했습니다.
-골렘 1호의 체력이 화살로 인해 9 하락했습니다.
펠로우쉽의 전투로그를 펼쳐보니 각 화살당 대략 5에서 20사이의 데미지들이 박히고 있었다. 대흉근의 현재 체력이 9만 가량이니 최대데미지로 맞는다고 해도 오천발 가까이는 맞아야 쓰러질 정도의 충격량이었다.
‘이 녀석들 엄청 부럽네.’
준의 체력은 정확히 5981. 골렘이라는 특징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저 무지막지한 체력은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쐐액!
“이크!”
준은 대흉근을 스쳐지나자 마자 자신을 향해 90도로 꺾어 들어오는 화살을 보며 고개를 틀었다.
핏-
준은 머리칼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는 화살을 보며 가볍게 숨을 뱉었다. 밴디트들 중에 화살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는 실력자가 있는 모양이었다.
마나를 이용해 화살의 벡터를 조종하는 기술은 굳이 궁수가 아니라 투사체를 사용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사용가능한 것이다. 다만 지금처럼 90도에 가깝게 방향을 꺾는 것은 보통의 실력자가 아니라면 힘든 일.
“그걸 피해?”
멀리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방금의 화살을 날린 장본인일 것이다. 사실 놀란 것 그만이 아니었다. 준도 자신이 그정도 속도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할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화살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눈치채었고, 그것을 느끼자마자 몸을 숙였을 뿐이다.
‘역시 능력치가 30을 넘으니까 다르긴 다르군.’
적과의 거리는 대략 80미터. 곡사가 아닌 직사임을 감안해 보더라도 화살의 속도는 최대스피드의 절반이하로 떨어져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속 200km가 넘는 스피드의 화살을 코앞에서 보고 피했다는 건 엄청난 반사신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파파팟!
그 와중에도 화살은 계속 날아들고 있었다. 간간이 날아오는 준을 노리는 화살을 피하거나 쳐내면서 준은 적진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휘잉!
먼저 공격을 한 것은 대흉근이었다. 녀석은 두 팔을 펼치고는 제자리에서 빙글 돌며 분산되어 있는 밴디트들을 거세게 후려쳤다. 크게 휘둘러치기 기술이었다.
퍼퍽!
거기에 휘말린 것은 두 사람. 슬쩍 비껴맞긴 했지만 대흉근의 기세가 워낙 흉흉했기에 그것만으로도 리타이어 될 만큼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뒤이어 골렘 형제들도 긴 팔을 이용해 공격을 시작했다. 잠깐이지만 니들리스 스피어를 쥐어줄까 하다가, 자신에게 익숙한 공격법을 쓰는 것이 낫기에 그만두었다. 니들리스 스피어는 어디까지나 실러스토를 잡기위한 무기였지 적들을 상대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연습을 좀 시켜야겠군.’
그를 통해서 기술을 익힐 수 있으면 맨손으로 싸울때에 비해 몇배의 리치를 이용해 공격을 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호러에 가까운 골렘의 공격력이 한층 더 무서워 질 것이다.
쿵! 쾅!
사방에서 골렘들이 미쳐날뛰고 있었다. 하지만 밴디트들은 아예 골렘들을 상대하기를 포기한 모양이었다. 녀석들은 민첩한 움직임으로 골렘과 최대한 거리를 벌리며 오로지 준을 향해 투척무기들을 던져대고 있었다.
“역시 외도와는 다르다는 건가.”
일반 외도를 상대할 때처럼 어그로라는 개념 자체가 들어먹지 않는 적이다. 하지만 애초에 저들 전원이 원거리 딜러일 리는 없었다. 근딜들이 아무리 준을 향해 투척을 해대도 그것들은 그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준은 대부분의 단검이나 도끼들은 무시하고 오로지 마나가 실려 날아오는 무기들만을 집중해서 막아내었다.
‘저건가.’
쐐액!
날아오는 기세가 여타의 단검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세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화살보다 느린 속도로 준의 몸을 꿰뚫는 다는 것은 어불성성이었다.
텅!
준이 니들리스 스패너를 들어 그것을 막아내었다. 확실히 묵직하게 밀리는 느낌이 그냥 맞았다가는 따끔한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봐야 몇 명 안되겠군.’
원딜러의 숫자는 근접딜러에 비해 대체로 수가 적다. 밴디트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준이 가만히 수를 헤아려 보니 현재 남은 40의 밴디트 중 원딜의 숫자는 겨우 십여명에 불과했다.
“저 녀석들부터 먼저 처리해야겠군.”
준은 대흉근을 앞세워 가장 가까운 원딜러를 향해 움직였다. 애초에 300명 정도의 마을에서 중급헌터가 많을 리 없다. 대부분이 하급헌터들인 이들이 준이나 대흉근의 앞길을 막아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준에게는 시미의 정신교란이 있었다.
“시미. 부탁해.”
“응.”
성장하여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시미는 골렘까지 녀석들의 시야에서 지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정도까지는 필요없었다.
시미가 몸을 바르르 떨자, 그녀의 주위로 엑조틱 에너지가 퍼져나가며 순식간에 환각상태로 녀석들을 빠뜨렸다.
“어, 없어졌다.”
“어디로 간거지?”
밴디트들은 순식간에 사라진 준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골렘들 뿐.
데드맨시티의 원딜러 중 하나인 우르케는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사라진 적이 자신을 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젠장!”
그는 온 힘을 다해 전장에서 이탈했다. 하지만 원거리 딜러인 그로서는 그렇다할 이동기도 없었고, 그렇다고 발이 빠른 것도 아니었다.
결국 대흉근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데는 성공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기껏 도망친 것이 이정도인가?”
“허억?”
유령처럼 나타난 준이 우르케를 향해 니들리스 스패너를 휘둘렀다.
퍼석!
우르케는 한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머리가 깨어지며 목숨을 잃었다. 준은 그렇게 파리처럼 흩어지는 밴디트들을 쫓아 원딜러들만을 골라서 죽이기 시작했다.
준의 의도를 파악한 밴디트들도 어떻게든 그를 막으려고 했지만, 시미의 정신교란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몰이사냥을 하는 것 같군.”
마을을 둘러싼 모래바람 때문에 저들도 멀리 도망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우왕좌왕 하면서 도망치는 놈들은 마치 독안에 든 쥐처럼 결국 모래바람에 가로막혀 준에게 목숨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삐이익-
다섯 번째 원딜러를 죽이고 나자, 마을안에서 호각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그러자 그때까지 필사적으로 골렘과 준을 피해 도망치던 밴디트들이 재빨리 마을 안으로 숨어들어갔다.
“후퇴명령인가? 나름대로 명령체계가 잡혀있는 곳이었군.”
자유롭게 살고 싶어 도망친 밴디트들이 규율을 따른다는 것이 아이러니 했지만, 결국 인간들이 모여살면 그사이에 위계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이런 무질서함에 익숙한 인간들일수록 강력한 힘의 의한 통치가 필요했다.
퀘스트 창을 열어보니 죽은 밴디트의 숫자가 거의 40명에 달해 있었다. 도시의 앞에서 준을 맞이했던 밴디트 들 중 절반의 목숨이 채 10분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사라진 것이다.
준은 도시의 입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쿵쿵. 쿵쿵.
그런 준을 호위하듯 사방으로 골렘들이 에워쌌다. 언제 어디서 또 화살이 날아들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마을의 크기는 나하라의 거의 두 배에 이를 정도였다. 대신 집들의 대부분은 나무가 아니나 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비라도 내리면 금방 무너질 것처럼 위태위태 했지만, 생각해보면 이곳은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곳이다.
설령 비가 내려 집이 훼손된다고 하더라도 다시 흙을 퍼담아 보수를 하면 되었다. 모든 것이 부족하다 보니 생긴 궁여지책이었지만, 이곳의 환경을 생각해보면 썩 나쁘지 않은 방식이었다.
“흠...”
흙으로 만들어진 집의 창문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일단 도시 안으로 끌어들인 후, 포위해서 준을 잡으려는 속셈인 모양이었다.
준은 도시의 입구에서 멈추었다. 굳이 저들의 의도에 맞장구를 쳐줄 필요는 없었다.
“흉근아.”
-왜?
“흠... 너도 말을 높이는 걸 슬슬 배울때가 되지 않았냐?”
-골렘은 그런거 몰라.
“씁. 어쨌든 저 건물들 보이지?”
-응.
“애들이랑 같이 저것들 다 무너뜨려.”
-알았다.
준의 명령에 따라 대흉근과 골렘 형제들이 도시의 입구에 있는 건물부터 차례로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흙으로 만든 집은 골렘들의 주먹이 스치기만 해도 퍽퍽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으아앗!”
“도망쳐!”
그러자 건물안에 숨어있던 녀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며 준과 반대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하급과 최하급 헌터들로 준이나 골렘에게는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는 약한 녀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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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