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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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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녀석들이 그렇게 많이 있을리가 없지.”
아마 상급 레벨은 많아야 한 명일 것이다. 그것도 저 이상한 모래바람이 아니라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었다.
그만큼 상급헌터는 구경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원 밀리언.
백만명 중에 하나라는, 헌터중에서도 최상위의 계층에 존재하는 상급헌터를 일컫는 말이다. 전 인류를 통틀어 상급헌터의 수는 약 3만 명, 인류의 인구가 약 300억 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한줌도 되지 않는 수다.
그들은 전 세계의 직종 중에서 가장 희소하고, 가장 영향력이 강한 이들 중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활동은 단순히 외도를 사냥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일부는 정계에, 일부는 스포츠계에 투신하기도 하고, 몇몇은 연예계로 진출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상당수는 직접 레이드에 참여하지 않고 레이드팀을 운영하는 사업가로서 활동하며 재산을 축적했다.
어차피 초록색 이상의 외도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상급헌터가 나설만한 일은 그리 많지 않았고 자연스레 남는 시간동안 그들은 다른 일에 매진하게 되는 것이다.
“흠. 상급헌터 쯤 되면 별의별 능력을 가진 이들이 많아진다고 하는데.”
상급헌터라는 건, 계단을 올라가듯이 중급에서 더 강해지면 올라가는 그런 경지가 아니었다. 중급에서 상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이가 백년 간 수련만 한다고 해도 상급으로 올라 갈 거라 장담할 수 없었고, 어느 날 갑자기 하급이었던 자가 중급을 건너뛰고 상급으로 뛰는 경우도 있었다.
상급의 헌터들은 그야말로 운과 재능, 그리고 노력이라는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인 것이다.
현재의 준 역시 상급헌터가 된 것은 아니었다. 준의 본 실력은 어디까지나 중급에서 평균적인 정도. 하지만 그의 진정한 힘은 본체의 힘이 아니라, 제작스킬과 펠로우쉽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당장 대흉근과 준이 1대1 대결을 펼친다면 준이 이길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나마도 니들리스 해머의 보정을 감안한 계산이지, 그게 아니라면 100퍼센트 진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의 전력차가 있었다.
준의 자신감은 그런 녀석들을 다수 데리고 있다는 것에서 기인했다. 그런 면에서 상급헌터를 만나더라도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오를 수 있겠지.’
10레벨에 오르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 총기앞에서 버틸 수 있는 EX필드와 델타폰의 장점을 극대화 할 수 있는 통신판매 기술. 그렇게 5레벨 단위로 새로운 직업이 부여되고 그때마다 좋은 기술들을 얻고 있으니 15레벨에 이르면 상급헌터와도 1대1 상대가 가능할 정도로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처럼 빠른 성장은 힘들다는 것이 문제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느린 것도 아니었다.
‘여태까지가 너무 빠르게 성장한거지.’
준이 델타를 얻고 난 후 채 반년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여기까지 성장했다. 피눈물 나는 훈련과 실전을 거치며 성장한 이들에 비하면 지나친 고속성장이었다.
이제 조금 그 성장속도가 늦어졌다고 해서 좌절한다면 그건 성실하게 노력을 하며 실력을 쌓아온 모든 이들을 모욕하는 행위였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아직 갈길은 머니까.”
당장 알카트뢰즈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몸이다. 그렇게 초조하게 자신을 몰아붙일 필요는 없었다. 때로는 천천히 가는 것도 필요한 법이었다.
준은 TV를 켰다. 델타폰 기반이다 보니, 딱히 리모컨 같은 것이 없어도 조작을 할 수 있었다.
준이 선택한 영상은 ‘마스터쉐프 챌린지 시즌2’였다. 화면 속에서는 젊은 마스터가 출연자를 한명 한 명 소개시키고 있었다.
컹! 컹컹!
“으음?”
준은 문밖에서 검둥이가 거칠게 짖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마쉐첼을 보다가 잠든 모양이었다.
“뭐지...?”
준은 소파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그곳에는 흰색 후드점퍼를 깊게 눌러 쓴 열댓 명의 사람들이 쉘터를 빙 둘러서 포위하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먼저 나타나셨군.”
준은 루나와 시미를 깨우고는 쉘터의 문을 열었다. 검둥이가 으르렁 거리며 이를 드러내고 있었고, 사람들 가운데 얼굴을 드러낸 사내 한명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흰색 후드점퍼를 입은 다른 이들과 달리 붉은 색 윈드브레이커를 입고 있었다. 유난히 눈에 띄는 옷차림이었다.
“너는 대체 누구지?”
붉은 색 옷을 입은 사내가 입을 열었다. 준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묻고 싶은 건 오히려 이쪽이었다.
“여행자.”
“여행자라니... 그럼 이집은 뭔가?”
“이거? 일종의 텐트 같은 거지. 이동용 집이랄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군.”
클라우드는 도대체 눈앞의 상대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라믹스로 만든 오토쉘터도 아니고, 저건 누가 봐도 평범한 나무 집이었다. 원래 창고였던 탓에 투박한 외양이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저것을 들고 이동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뭐, 그쪽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 알바 아니고... 그쪽은 보아하니 강도인가?”
“그렇게 보이나?”
붉은 색 옷을 입은 사내, 클라우드 알킨스는 준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누군가 자신들의 도시에 들어오려고 시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근을 수색하다가 난데없이 생겨난 집을 발견했다. 도저히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황무지에 집이 우뚝 서있는 것도 그렇고, 그곳에서 나온자가 이제 갓 스물을 넘겼을 법한 애송이라는 점도 뭔가 석연치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곳에 집이 있었던가?’
이곳은 도시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다. 집이 있었다면 자신이 못보고 지나쳤을리 없었다.
“누가 있어요?”
그때 준의 뒤에서 루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자 클라우드가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좋지 않은데.’
갑자기 나타난 여성의 모습에 하얀점퍼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클라우드는 그녀에게 시선을 빼앗기기 보다는 이 자리에 여자가 있다는 사실의 의미를 곱씹고 있었다.
“여자다. 어떻게 된거지?”
“어째서 여기에...?”
“꿀꺽. 내, 내 차례까지 올까?”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형님이 먼저다.”
하얀점퍼들이 웅성거리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준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사실 그런 반응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루나도 그 정도 음담패설에는 이미 단련될 대로 되어 있는 상태였다.
준이 신경쓰이는 것은 오히려 아무런 반응이 없이 생각에 잠겨있는 붉은 옷을 입은 사내였다.
“정부녀석들인가?”
클라우드가 입을 열었다. 준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냥 평범한 수형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저 여자는 뭐지? 설마 저 여자도 수형자라고 할 생각은 아니겠지?”
“뭐, 이 녀석은 정부소속이 맞겠군.”
준의 말에 루나가 클라우드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군인 같은 말투였다.
“알카트뢰즈 연구소의 수석연구원 루나 미스틸테인이라고 합니다. 그쪽의 신분은 어떻게 되죠?”
“클라우드다. 신분이라... 딱히 이야기 해 줄 것은 없군.”
“굳이 소개할 필요는 없잖아. 이 녀석들 딱 봐도 밴디트 같은데.”
“밴디트요? 그럼 그랑튀르 형제단 같은...?”
“아마도.”
루나는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어느정도 파악한 것인지 준의 뒤로 슬쩍 몸을 숨겼다. 클라우드는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골치아픈 녀석들이 걸렸군.”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들이면 그냥 돌려보내도 된다. 만약 자신들의 도시를 염탐하려는 자들이면 죽여버리면 되었다. 하지만 정부쪽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만약 한 명이라도 사라지게 되면 관리소에서는 그녀가 사라진 곳의 일대를 샅샅이 훑을 것이다. 그러다가 자신들의 도시가 발각이라도 된다면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될 지도 몰랐다.
“말했잖아. 지나가다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뭐가 있는지 좀 보려고 했더니 인식방해라도 걸린 건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더군.”
“인식방해라... 뭐 딱히 틀린 건 아니지. 어쨌든 이렇게 된 이상 함께 가줘야겠다.”
클라우드는 일단 그들을 도시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무턱대고 죽이기에는 뒤이을 파장이 너무 컸다. 일단 살려놓으면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써먹을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클라우드의 말에 준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대체 왜 나만 보면 이렇게 같이 가달라는 녀석들이 많은거지?”
“그럼 저 남자도 준을 좋아해요?”
그때 준의 앞주머니에서 시미가 머리를 내밀고 입을 열었다. 준은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경우는 그 반대 같지만 어쨌든, 내가 그쪽의 말을 들을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준은 클라우드를 향해 입을 열었다.
“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클라우드는 잠시 놀라는 눈빛으로 시미를 쳐다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의 말투에는 일상화된 살기가 묻어 있었다.
“여자만 남겨놓고 모두 죽여.”
살려둘 필요가 있는 건 정부쪽 사람 뿐이다. 클라우드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결국 이렇게 되는 군. 뭐, 별 기대도 안했다만.”
준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루나를 쉘터의 안으로 들여보냈다.
“흉근아.”
쿵!
준의 부름에 대흉근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고, 골렘?”
“저렇게 큰 녀석은 처음인데?”
하얀 점퍼의 사내들은 갑자기 나타난 대흉근을 보며 황망히 물러섰다. 분명히 별것아닌 애송이 하나만 처리하면 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갑작스레 엄청난 적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이건 대체...?”
그리고 클라우드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중급에 이른 헌터,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눈앞의 골렘이 가진 힘을 대략 유추할 수 있었다.
‘저 정도 덩치의 골렘이라면 최소 주황색 외도, 어쩌면 그것을 넘어설 수도 있다...’
대흉근의 키는 대략 3미터 가량 하지만, 덩치는 일반 붉은색 골렘에 비해 훨씬 더 컸다. 다른 골렘들이 녀석의 곁으로 가면 왜소해 보일 정도였다.
클라우드는 큰소리로 외쳤다. 지금은 겁먹고 있을때가 아니었다.
“일단 저 녀석부터 잡아. 소환자를 잡으면 골렘도 힘을 못쓸 거다!”
“하지만 저 골렘은...?”
“내가 맡는다. 너희들은 그동안...”
하지만 클라우드는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대흉근의 뒤를 이어 세 마리의 골렘이 더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쿵! 쿵! 쿵!
“내가...”
클라우드는 금빛이 흐르는 청동골렘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도, 도망쳐!”
하얀점퍼들이 하나 둘씩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조차도 뜻대로 이룰 수 없었다.
그들의 뒤에 어느새 거대한 개 한 마리가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르르르---”
“히, 히익? 괴물 개다!”
하얀점퍼들은 어떻게든 도망치려 하다가 결국 골렘과 검둥이에게 밀려 한 자리로 모였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클라우드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남자는 그다지 강해보이지 않았다. 여자도 연구원이라는 말처럼 별다른 능력이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때문에 준이 여유를 부릴 때 만 해도 허세라고 생각했다. 곧 죽을 녀석이 여자앞이라고 쓸데없는 객기를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호랑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덤벼든 셈이었다.
“하나만 묻지.”
이미 전의를 잃은 하얀점퍼들과 클라우드를 향해 준이 입을 열었다. 클라우드가 입을 열었다.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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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편은 10시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