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1 ----------------------------------------------
루나 미스틸테인
*
*
*
준은 여우처럼 생긴 동물 두 마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녀석은 귀가 상당히 크고 몸은 날렵한 편이었는데, 사시사철 더운 알카트뢰즈의 날씨 덕에 열을 쉽게 체외로 방출하기 위한 식으로 진화한 모양이었다.
‘먹을 건 별로 없겠군.’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신선한 음식재료이기에 준은 녀석들을 인벤토리에 넣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아. 오셨어요?”
“아아. 그나저나 뭐하고 있는거야?”
준은 진화상태의 시미를 무릎에 앉혀 놓고 있는 루나를 보고선 입을 열었다.
“동생 삼기로 했어요.”
“누구맘대로... 꺄하하핫!”
시미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루나가 옆구리를 간지럽히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먼저 항복한 것은 시미였다. 비록 노란색 외도이긴 하지만 그녀의 능력이 근력과는 거리가 멀다보니 성인여성인 루나의 힘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시미의 정신교란이나 비명같은 건 같은 펠로우쉽에 속한 동료에게는 전혀 들어먹질 않았다.
“살려주세요오...”
결국 용을 쓰다가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오길 포기한 즈음 준이 도착한 것이다. 그는 힘이 빠진 시미의 볼을 잡아당기며 놀고 있는 루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음... 그 녀석 한 40살쯤 될 텐데?”
“네? 그렇게 나이가 많아요?”
루나가 깜짝 놀라며 시미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초딩으로 밖엔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시미의 볼을 쿡쿡 찌르며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주머니?”
루나의 말에 시미가 눈을 번쩍 뜨더니 그녀의 손을 꽉 깨물었다.
“아얏!”
“루나는 날 모욕했어요. 당장 결투를 신청해요.”
루나가 깜짝 놀라며 그녀를 놓자, 시미가 그녀의 품에서 훌쩍 뛰쳐나오며 입을 열었다.
“좋아. 종목은?”
“물속에서 숨 오래참기요.”
“그건 불공평해. 넌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잖아.”
“그러니까요.”
“뭐 어쩌자는거야?”
두 사람이 티격태격 하는 사이 준은 인벤토리에서 야외용 테이블을 꺼내 평평한 바닥에 세웠다. 이미 남은 경험치로 인벤토리를 50칸으로 확장시켜 두고는 이런저런 물건을 잔뜩 넣어둔 상태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의자도 세 개를 깔아야 겠군.”
사실 시미의 의자는 굳이 필요없었지만, 이런 식으로 같이 식사하는 기분을 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여우 두 마리를 그 자리에서 바로 간단한 구이요리로 만들어 버렸다.
따로 가죽을 분리하거나 내장을 제거할 필요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요리가 되는 만큼 ‘요리’스킬은 정말 편리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
시미와 티격태격하고 있던 루나가 바람을 타고 전해오는 고기냄새에 고개를 돌렸다. 그 짧은 사이 요리가 완성되어 그럴듯하게 나무 테이블 위에 차려져 있었던 것이다.
“밥 먹어.”
준은 검둥이 전용 그릇을 꺼내어서 테이블 옆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재빨리 다가온 녀석은 능숙한 솜씨로 고기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언제 이런 걸 다...”
루나는 약간 놀라고 있었다. 준이 야생동물을 잡아 온 것까진 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채 오분도 지나기 전에 그럴듯한 요리로 변해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제작이랑 비슷한거지. 참, 그러고 보니 생각난김에.”
준은 인벤토리에서 델타폰을 하나 꺼내어 그녀에게 건넸다. 루나에게 줄 것으로 특별히 S급으로 강화를 시켜둔 물건이었다.
미려한 메탈재질의 외관에 디스플레이 외곽에 살짝 곡선이 가미된 나름 준의 자신작이었다. 거기다가 S급의 특성상 은은한 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게 델타폰이로군요.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네요.”
“설계도는 봤겠군.”
“네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촌스럽지 않은데요? 거의 200년 가까이 지난 옛모델인데요.”
“내가 손을 봤지. 솔직히 그래도 스마트 패널에 비하면 부족한게 사실이지만.”
준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자리를 권했다. 시미도 준의 옆자리로 쪼르르 달려와 앉았다.
“참. 그런데 너는 안 먹어도 되잖아.”
“한 입만.”
시미는 그렇게 말하곤 준의 접시에 있는 고기를 한 입 베어물었다. 그리고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퉤 하고 뱉었다.
“웩.”
“음식 앞에 두고 잘하는 짓이다. 그러게 먹지 말라니까.”
준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결정체를 하나 주었다. 그것을 입에 넣고 나자 그제서야 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루나가 그런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다가 준과 눈이 마주쳤다.
“그거 알아요?”
“뭘?”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는 채, 그대로 말을 이었다.
“저 준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
준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의 고백에 얼음장처럼 굳었다. 자신을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루나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건 펠로우쉽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군.”
“그러니까 내가 멋대로 좋아해도 내 잘못은 아니겠죠?”
“그... 렇겠지?”
준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가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더니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고 있던 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니까 이것도 제 잘못이 아닌거에요.”
“응? 읍?”
준은 자신의 얼굴을 잡고 입술을 마주해 오는 루나를 보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흠.......”
준은 옆자리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허겁지겁 식사를 마쳤다. 루나도 거의 접시만 보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방금전의 그 대담한 행동은 어디로 갔는지, 그녀는 귓불까지 붉어진 채로 아무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좋았어요?”
“푸흡!”
준은 시미의 질문에 마시던 물을 뿜었다. 다행히 재빨리 고개를 돌려 그 물을 맞은 사람은 없었다.
아니, 한 명 있었다.
“미, 미안. 가서 좀 씻고와라.”
테이블 아래에 있던 검둥이가 준이 뱉은 물을 전부 뒤집어쓴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녀석은 묘한 얼굴을 하더니 준을 향해 메시지를 보냈다.
-한 번 더 뿌려주세요. 그 입에 묻은 그녀의 온기가 사라지기 전에.
“시끄러.”
준은 검둥이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르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시미는 뭔가 할 말이 있는 얼굴로 준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 뚫어지겠다.”
“흐음...”
시미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 의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어디 가려고?”
“검둥이에게 물어볼게 있어요.”
“뭘 물어보려고?”
“알고 싶어요?”
시미의 말에 준은 고개를 저었다. 대신 그는 검둥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 녀석에게 이상한 소리 하지마라. 아무것도 모르는 애니까.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걱정되면 애초에 그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죠.
-씁. 내가 한 것도 아니잖아.
-와. 그거 최악의 변명인거 아시죠?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거든요?
-끙... 어쨌든 이상한 거 물어보면 대충 둘러대.
-넵. 형님.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대답하는 모양새가 영 못미더웠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준은 루나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직도 접시에 코를 박고 있었다. 이미 식사는 모두 마친 듯, 더 이상 음식에 손을 대고 있지는 않았다.
“그... 너무 신경쓰지마 나도 옛날에 저지른 일이기도 했고.”
“아. 네. 그렇습니다.”
루나가 고개를 번쩍 쳐들고는 입을 열었다. 어쩐지 굉장히 부자연스러워서 준도 엄청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여자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의 고백이었던 데다가 기습키스까지 당해버리니 뭔가 그녀를 대하기 껄끄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좋긴 좋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느낌?
게다가 그녀 쪽에서도 엄청 어색해 하고 있으니 그 기분은 더했다.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불편한 사이로 있을 수는 없었다. 처음에 준이 사고를 쳤을 때는 그녀 쪽에서 먼저 곤란한 분위기를 해소시켰던 만큼 이번에는 이쪽에서 분위기를 풀어야 할 차례였다.
“그... 내가 뭔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곤란한 게 있으면 이야기 해.”
“네. 그러겠습니다.”
루나는 준과 눈을 맞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시선을 돌렸다.
‘뭔가 역효과 같은데...’
둘 사이에 침묵이 길어졌다. 준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이럴 때는 그렇게 흔하게 나타나던 외도도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뭐라도 나타나서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나면 조금이나마 분위기가 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낌새는 없었고, 준은 한숨을 쉬며 인벤토리에서 술을 한 병 꺼냈다. 심심할 때 마시려고 챙겨둔 것인데 어쩌면 지금이 가장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주운전은 안되는데...”
준은 약간 어지러움을 느끼며 차를 몰았다. 원래라면 음주운전을 혐오하는 그였지만 다니는 길이 도로가 아니고, 다른 차량도 없다보니 별 상관은 없었다. 이런 곳에서 운전하다가 다른 차량에 부딪칠 확률은 거의 0퍼센트에 가까웠다.
“으음...”
뒷자석에서 잠든 루나가 낮은 신음 소리를 흘렸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것이다.
다행히도 루나는 상당히 술이 약했다. 브랜디 두 잔에 휘청이며 잠드는 그녀를 안고 차량 뒷좌석에 눕힌 준은 시미와 검둥이를 태우고 나하라로 향하는 길이었다.
“준. 루나는 준을 좋아하는 거야?”
“뭐... 아마도.”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펠로우쉽의 호감도 시스템이 그런 식으로 영향을 줄거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분명히 지능의 높으면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루나의 지능은 34를 찍고 있었다. 준보다 더 높은 지능의 보유자였던 것이다. 그 정도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호감도 시스템의 위력이 강력한 것 같았다.
‘앞으로 여자들을 펠로우쉽에 받아들일때는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
또 이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물론 준도 남자라 매력적인 여성이 자신을 좋아해준다면 기쁘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펠로우쉽의 영향때문이라면 그다지 내키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차라리 돈이 많아서, 얼굴이 잘생겨서 같은 속물적인 이유라면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의 뇌를 조작하여 강제로 호감을 느끼게 만들다니. 자신이 여자라면 덮어두고 좋아하는 호색한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상식적인 인간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래놓고는 또 거부하지 않았지.’
준은 방금전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얼굴을 붉혔다. 루나가 가까이 다가올 때 솔직히 기대했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 기대가 충족되었을 때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뒤를 생각해보면 마냥 기뻐 할 수만은 없었다. 준은 사실 그녀에 대해서 특별한 감정이 없었다. 미인이고, 똑똑하고, 그리고 자신을 좋아한다.
세상에 이런 행운이 또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거지.’
준은 한숨을 쉬었다. 이런 말을 어떻게 본인에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 말대로 그녀의 의지로, 그녀가 좋아서 스스로 준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이 사태에는 자신도 어느정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으아아. 모르겠다.”
준은 액셀을 밟았다. 차가 부르르 떨리며 거침없이 황무지를 달려나갔다.
============================ 작품 후기 ============================
아... 이런거 쓰기 싫다...
그냥 냄새나는 남자들이나 잔뜩 나오는거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