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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미스틸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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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라에 도착하자 이미 해가 져 있었다.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일단 펍으로 향한 준은 이미 거기서 대기하고 있던 밥과 막스를 만났다.
“어. 이제 오냐. 한참을 기다렸네.”
막스가 손에 들고 있던 브랜디 병을 흔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저렇게 병 채로 마시는 걸 좋아한다. 한 병에 1크리스탈이나 하는 비싼 물건이지만, 예전에 비해 결정체 수입이 늘어 저 정도 사치는 그리 부담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일단 밥먹고 이야기 하자.”
준은 빨리 나오는 종류로 간단히 시켜서 식사를 마쳤다. 검둥이에게도 따로 식사를 시켜주었다. 녀석은 립스테이크를 좋아했는데, 인간일 때도 좋아했던 건지 아니면 개가 되면서 뼈가 붙은 걸 좋아하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였다.
시미는 사람이 먹는 식사는 하지 않았지만 사실 가장 많은 돈이 들었다. 평소에는 컵에 물을 담아 거기에 담궈 놓기만 해도 되었다. 광합성만으로도 움직이는데 충분한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두면 영양분의 불균형으로 상태가 점점 이상해진다. 그럴 때마다 결정체를 하나씩 먹여줘야 정상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실로 가장 비싼 음식을 먹는다고 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루나는 특이외도를 사냥할 때 기록한 파장을 분석하기 위해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검둥이가 그런 루나를 따라 가려다 준에게 잡혔다.
-형님. 왜 이러십니까. 제가 루나님을 지켜드려야죠.
-옷 갈아입는거 훔쳐보려는 거잖아. 여기있어.
-쳇. 들켰나.
검둥이는 툴툴거리며 준의 발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미는 테이블 위에 물컵을 올려놓고 거기에 시미를 넣어두었다.
대충 세팅이 끝나자 막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대충 들었다. 근거지를 옮긴다고.”
“눈치 안보고 사냥을 하려면 아무래도 옮겨야 할 것 같아. 내가 필드 사냥을 나가는 날이면 그날 여럿 공치는 거 알잖아.”
“재수 없게 네가 근처에 나타나면 그날 하루는 그대로 날리는 거지.”
막스가 킬킬거리면서 웃었다. 그도 몇 번 정도 그런식으로 하루를 날린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뭐라 하지는 못해서 그냥 넘어갔을 뿐이었다.
“어쨌든 그래서 근처 오아시스로 거점을 옮길 생각인데, 나는 일단 밥과 마스터가 함께 가줬으면 생각하고 있어.”
“그럼 나는?”
막스가 입을 열자 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스도 생각이 있다면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진 않지. 아무래도 개척마을 형태가 될 테니까 사람이 너무 없으면 안되잖아.”
“뭔가 꼽사리 껴서 가는 것 같아 못마땅한데.”
막스는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안전하게 사냥을 이어왔는데 갑자기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면 그만큼 위험부담을 안게 되는 셈이다. 굳이 무리해서까지 준을 따라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슬쩍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그런 생각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난 찬성. 무조건 따라가지.”
“오. 그래? 의외네. 안 따라온다고 할 줄 알았는데.”
“네 옆에 있어서 손해 본적은 없었거든. 게다가 네가 이곳을 떠나면 신상품 할인도 못받을거 아니야.”
“쳇. 꼭 그렇게 계산적으로 따져야겠어? 이 진정성없는 인간아. 그러니까 내가 그쪽을 못 믿는거야.”
“계산없는 인간관계가 어디있냐? 사람의 진심이라는 건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법이야.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으로 그런 걸 판단하려 하니까 내가 아직도 널 애송이라고 부르는 거란다.”
막스는 특유의 웃음을 흘리며 준의 등을 툭툭 쳤다. 어린애 취급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준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넌 불편해.”
“나처럼 솔직한 어른 옆에 있다는 걸 고맙게 생각해.”
“정말 고마워할 날이 오면 좋겠군. 어쨌든 막스는 그렇다 치고... 밥은 어떻게 할거야?”
“그렇지 않아도 지점을 담당할 직원을 한 명 뽑았어. 앞으로는 그 친구가 나하라를 담당하게 될거야.”
“네가 직접 온다는 거지?”
“사장님 담당은 나니까.”
“또 그 소리.”
준은 그렇게 말하곤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그곳으로 가야할 이유를 모르겠는데. 나는 일개 펍의 주인일 뿐이고, 상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레이드에 참여할 수 있는 헌터도 아니다만.”
“뛰어난 요리사와 함께 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긴 하지만... 사실 곧 여길 떠날 생각이라.”
그가 생각했던 환상의 재료는 결국 사용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그에 근접한 요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는 그것만으로도 어느정도 만족하고 있었고 조만간 이 알카트뢰즈를 떠날 생각이었다.
사실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던 일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 전에 준은 마스터를 어떻게든 데리고 가고 싶었다. 그 정도 실력의 요리사를 놓치는 것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곧 이 알카트뢰즈를 떠날 거야. 아마 1년 안으로 그렇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여러행성을 돌아다니면서 외도를 사냥할 생각인데. 그때 마스터가 나를 위한 요리사가 되어줬으면 좋겠어.”
“흠. 레이드 팀을 조직할 생각인가?”
“그래. 그때가 되면 아마 장거리 탐사를 많이 하게 될 텐데, 그런 경우에 요리사는 꼭 필요하거든.”
“내 나이에 장거리 탐사라...”
“겨우 오십 밖에 안됐으면서 늙은이 티 내는 거요?”
막스가 툴툴대면서 입을 열었다. 마스터는 그 말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별로 구미가 당기는 일은 아니군. 레이드 팀의 요리사라니. 음식맛도 모르는 헌터들을 대상으로 요리를 하는 것은 이미 질리도록 했다네.”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만 이러면 어떨까?”
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내가 마스터를 헌터로 만들어 줄게.”
준의 말에 마스터 뿐만 아니라 밥과 막스도 놀라는 눈치였다. 이미 그들은 준이 기상천외한 짓들을 벌이는 것을 바로 곁에서 지켜봐왔다. 하지만 그것과 마스턱
“흠... 일단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지? 난 요리사라네. 이제 와서 헌터가 된다고 해서 그리 큰 메리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이런 걸 할 수 있게 되거든.”
“무슨...?”
툭.
준은 인벤토리에서 쇠고기 한 근을 끄집어내었다. 그리고는 요리 스킬을 발동했다.
-육즙이 흐르는 미디움 스테이크 요리를 제작하시겠습니까?
준이 ‘네’를 선택하자 시뻘 건 핏물이 뚝뚝 떨어지던 쇠고기가 순식간에 노릇노릇한 스테이크 요리로 변했다. 마스터는 눈을 살짝 찌푸리며 그 모습을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나보고 그런 식으로 요리를 만들라는 건가?”
“아...”
준은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스터는 요리사로서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이에게 기술로 요리를 만드는 것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곁에 지켜보던 밥이 지원사격을 나셨다.
“그래도 헌터가 된다면 레이드에 참여할 수도 있겠지?”
“그래. 아마도.”
“신선한 요리재료들을 많이 구할 수도 있겠군.”
밥이 그렇게 말하며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그 말에는 약간 회가 동하는지 마스터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어차피 마스터도 더 이상 방송에는 미련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이제와서 새 레스토랑을 열기에는 자금도 부족할 테지요.”
“자네 말도 일리는 있군.”
마스터는 그렇게 말하며 컵 안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는 시미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었다. 요리를 할때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다보니 시미와도 꽤나 정이 많이 든 사이였다.
“사실 썩 내키진 않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 녀석과 헤어지고 싶진 않네. 요즘 들어선 마치 딸같이 느껴지곤 해서 말이지.”
“아빠?”
시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마스터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풀썩.
루나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일단 검출기의 기록을 분석한다는 핑계를 대고 서둘러 숙소로 올라오긴 했지만,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그녀의 머리 속은 혼란스러웠다.
‘내가 어떻게 된 걸까...?’
그녀는 입고 있던 셔츠의 옷깃부분을 쥐고는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았다. 희미한 약품냄새가 났다.
‘새 옷이네.’
그녀는 뭔가 아쉽다는 듯 긴 한숨을 쉬었다. 반짝이던 호수의 물결과, 대형물고기가 만들어낸 물보라에 비치던 무지개, 그리고 그 사이 자신을 끌어당기던 준의 강인한 팔이 자꾸만 머리속에 재생되었다.
그 강한 팔로 자신을 꽉 끌어안아 주었으면, 그리고 그 투명한 갈색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봐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퍽퍽.
그녀는 스팀이라도 뿜어 올릴 것 같은 기세로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베개를 퍽퍽 내려치기 시작했다. 마음이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이건 뭔가 이상해. 내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자꾸만 그의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침대에 누워있지만, 그녀의 온 정신은 아래층에 있는 준에게로 향해 있었다.
‘내가 너무 쉬워 보이지는 않았을까?’
준이 준 셔츠를 입고 일부러 그의 바로 곁에 앉았다. 그녀의 기준으로는 놀랍도록 대담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준은 그런 그녀에게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을 천박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 같아.’
어쩌면 그냥 아무 생각조차 없는 건지도 모른다. 자신 혼자만 이렇게 고민하며 끙끙 앓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자, 그런 자신이 너무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으...”
갑작스레 터진 감정은 그녀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귀가 멍멍할 정도로 심장이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그녀도 이 감정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그녀의 나이 스물여섯. 비록 연구에 바빠 연애를 해본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춘기 소녀 시절은 이미 지난 상태였다.
그러다보니 그녀는 자기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납득 할 수 없었다.
‘어째서지? 왜 이렇게 갑자기...’
준을 만난 것은 겨우 이번이 두 번째였다. 물론 첫 번째 만남에서 그에게 어느정도 호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남자로 느꼈던 것은 아니다.
그랑튀르 형제단을 만나 위기에 빠졌을 때 마치 백마 탄 왕자처럼 나타나 그녀를 구해주었을 때도, 모두가 위기에 빠졌을 때 홀로 앞으로 나서 적을 물리쳤을 때도 이렇게 까지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았다.
심지어 볼칸을 도발하기 위해 준이 그녀에게 키스를 시도 했을때도 당황하기는 했지만 별다른 감정이 생기지는 않았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준이 그녀보다 연하였기 때문이었다.
같은 나이의 남자도 어린애로 보이는 판에, 그보다 훨씬 어린 준이 남자로 느껴질리가 없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오늘은 그를 볼 때마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건 펠로우쉽의 영향인 걸까?’
생각끝에 그녀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자신의 이런 감정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은 어느 정도 진실이기도 했다. 펠로우쉽의 호감도 상승시스템이 그녀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서도 그녀의 머리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이미 한 번 생긴 감정이 그런 논리적인 결론 하나로 사그러들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 이 감정이 진짜일리 없어. 델타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것 뿐일거야. 그러니까 이건 가짜야. 가짜 감정에 휘둘려서는 루나 미스틸테인의 이름이 아깝지.’
루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 한쪽이 미칠듯이 아려왔다.
이건 가짜야. 이건 가짜야.
루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계속해서 그렇게 웅얼거렸다.
============================ 작품 후기 ============================
일단 하나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