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7 ----------------------------------------------
루나 미스틸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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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온 김에 집터를 좀 알아보기로 하고 주변을 돌아다녔다. 시미는 검둥이의 위에 탄 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고향에 돌아온 기분을 내고 있었다.
“흠. 기왕이면 호수 가까이에 짓고 싶은데...”
준은 루나와 함께 호숫가를 거닐면서 집을 지을 곳을 찾았다. 물은 잔잔했고, 그 속이 들여다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멀리서 불어오는 강한 모래바람도, 호숫가까지 오면 그저 살랑이는 미풍에 그칠 뿐이었다.
“여기 참 좋네요. 삭막한 연구소에만 있다가 이런 곳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 지는 기분이에요.”
“그렇군. 네가 집을 짓는다면 어디가 좋을 것 같아?”
준의 물음에 루나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작은 모래톱이 있는 호숫가를 가리켰다.
“저기가 좋을 것 같아요. 근처에 집을 지을만한 나무도 많고, 큰 바위도 없어서 땅을 다지기에 좋겠네요.”
“그렇군. 내 생각도 그래. 모래톱이 있으니 근처에 배를 묶어놓고 낚시를 하러 다녀도 될 것같고.”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눈여겨 보고 있던 곳인데 루나도 같은 의견이라니 그곳에다 집을 지으면 될 것 같았다.
“헌데 이곳은 정말 조용하네요. 숲이라면 좀 더 시끄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게. 내가 처음 왔을 때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
준은 문득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호수 쪽을 보았다. 호수 깊은 곳에서 부터 물결이 일렁이며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뭐지...?”
준은 눈을 찌푸리며 물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러자 그것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머리가 크고, 입이 찢어진 거대한 물고기가 이쪽을 향해서 엄청난 기세로 헤엄쳐 오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위험!”
촤악!
“꺅!”
준은 수면을 뚫고 뛰어오르는 거대한 물고기를 보며 황급히 루나를 끌어당기며 뒤로 물러섰다. 엄청난 물줄기가 사방으로 뿌려지고 준과 루나는 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완전히 젖어버렸다.
출렁!
녀석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더니 유유히 깊은 호수 속으로 사라져 갔다. 준은 잠시 멍한 얼굴로 물속을 들여다보고는 뿌득, 이를 갈았다.
“저 녀석... 왠지 우릴 놀린 거 같은데.”
“그... 그런가요?”
“틀림없어. 공격할 의사가 있었다면 물만 튀기고 도망갔을리가 없지.”
준은 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루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반쯤 울상을 짓고 있었다.
입고 있던 블라우스는 젖어서 완전히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아쉽게도 겉에 걸치고 있는 하얀 가운 덕에 안이 비쳐보이지는 않았다.
“어딜 그렇게 유심히 보고 있는거에요?”
“아. 미안. 혹시 잘 보면 안이 비쳐지지 않을까 해서.”
“...”
“...미안. 농담이었어.”
준은 루나가 침묵하자 냉큼 사과를 했다. 상황이 우스워서 가볍게 농담을 한다는 것이었는데 도가 지나쳤던 모양이었다.
“별로... 사과할 필요까지는 없어요. 그보다 혹시 갈아입을 옷 같은 것 좀 있나요? 아무래도 이 상태로 돌아다니긴 힘들 것 같은데요.”
“있긴 한데 좀 크지 않을까?”
준이 성인남자 치곤 좀 작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루나보다는 덩치가 있는 편이었다.
“어쩔 수 없죠. 그거라도 주세요. 그렇다고 젖은 채로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알았어. 잠시만.”
준은 인벤토리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내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전투가 격렬해지면 옷을 많이 버리기 때문에 준은 갈아입을 옷만 열댓벌씩 준비해놓고 다니는 편이었다.
그중에서 준은 건넨 것은 가장 무난한 하얀색 셔츠였다.
“잠깐 저 쪽으로 가 계세요.”
“알았어. 어차피 나도 갈아입을거야.”
혹시나 또 그 거대 물고기가 습격해 올지 몰라 물가에서 떨어진 두 사람은 가운데 커다란 나무를 사이에 두고 옷을 갈아입었다.
슥슥.
아무도 없는 조용한 숲속에서 남녀의 옷갈아 입는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준은 대충 상의를 벗어던지고는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인벤토리 안에 있는 더러운 옷들은 조만간 불에 태워버리던지 해야할 듯 했다.
그냥 더러워진 것이 아니라 피가 잔뜩 묻거나 불에 탄 것들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개중에는 멀쩡한 옷들도 있었지만, 세탁에 쓸 물이 아까웠기 때문에 더러워진 옷들은 그냥 버리는 게 속편했다.
“여기서 살면 옷은 마음껏 세탁할 수 있겠군.”
준이 입을 열자 나무뒤에서 루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욕정도는 몰라도 세탁 같은 걸 했다가는 저 호수는 금방 오염될거요?”
“저렇게 많은데?”
“지금이야 그렇죠. 하지만 나중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면 그런 소리 못할걸요?”
“그때까지는 마음껏 써야지.”
“후훗. 쓸데없는 걱정을 했네요. 이제 다 갈아입었어요.”
그녀는 젖은 옷을 손에 들고 나무 옆으로 걸어나왔다. 준은 하얀셔츠를 입고 나타난 그녀를 보며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준의 표정에 루나가 약간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뭐, 뭐가 잘못됐어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준은 고개를 돌렸다. 원래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은 반바지에 블라우스, 그리고 그 위에 연구원용 가운을 입은 상태였다. 헌데 가운과 블라우스 대신 그위에 커다란 셔츠를 입고 있으니 마치 바지를 안입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아... 이거 그 물고기에게 고맙다고 해야하나...?’
준은 피가 한곳으로 쏠리는 것을 느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준도 한창때의 청년이었고 루나는 성숙한 여자였다. 그런쪽으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잠시 쉬었다가 출발하지.”
“저는 괜찮지만... 준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요. 이런 곳에서 쉬는 것도 나쁘진 않죠.”
준이 근처의 바위위에 가볍게 앉자, 루나는 눈치없이 그런 준의 곁에 앉았다. 마땅히 앉을 곳이 거기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옆에 달라붙은 그녀를 보며 준은 몸이 굳는 것을 느껴야 했다.
준은 무슨말을 해야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고, 루나도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그렇게 불편한 침묵이 이어지던 와중, 루나가 손을 탁 치며 입을 열었다.
“헌데 아까 그 물고기가 확실히 보통의 물고기는 아니었죠?”
“아아. 아마도 외도일 거다. 이런 작은 호수에 그런 큰 물고기가 살고 있을리 없으니까.”
“확실히 머리도 좋은 놈 같았어요.”
루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고기 주제에 먼저 모습을 드러내서 도발을 시전할 정도라면 상당한 지능을 가진 놈이라고 봐도 좋았다.
“아마 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말라는 경고였겠지. 이 호수는 자기거라는 어필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야.”
“그럼 여기에 집을 지을 수 없는 거 아닌가요? 그 녀석이 계속 방해를 할 것 같은데...”
“잡아서 매운탕을 끓여버리면 되겠지.”
준의 말에 루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물속에 들어가 있는 녀석을 어떻게 잡으려고요.”
“여기서 얼씬거리면 또 튀어나오지 않을까? 처음에야 방심하다가 당했지만 두 번이나 당할 이유는 없지. 세 번이나 당한다면 그건 구제불능의 바보고.”
준은 자신있게 말했다. 물고기 정도야 더블 애로우나 파동권 만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더블애로우!”
“파동권!”
파팡! 파앙!
촤아!!
두 개의 마법은 쏟아지는 물세례에 가로막혀 사라졌다. 준은 낭패한 얼굴로 물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거대물고기를 보며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번이 세 번째네요. 어디의 누군가가 구제불능의 바보가 되는 순간이에요.”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설마 물보라에 엑조틱 에너지를 실어서 방어를 할 지 어떻게 알았겠어?”
“그건 두 번째도 했던거잖아요?”
“그때는 방심했었던 거고.”
“지금은요?”
“지금은 솔직히 적을 인정한거지. 녀석은 꽤 강한 외도야. 진심으로 상대해야 할 때가 된거지.”
준의 말에 루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물에 홀딱 젖은 채로 그런 말 하니까 변명으로 밖에 안들리는 걸요.”
“뭐, 아니라고는 못하겠군.”
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바닥에 피워놓은 불가로 다가갔다. 어차피 그녀의 옷을 말려야 했기 때문에 물가에서 약간 떨어진 지역에 모닥불을 피워놓은 것이었다. 그곳에는 돌아다니다 지친 검둥이와 시미도 있었다.
검둥이는 몸을 동그랗게 만 상태로 쉬고 있었고 시미는 그 가운데 들어가서 잠들어 있었다.
“원거리 마법으로는 힘들어 보이는데, 다른 방법이라도 있어요?”
“글쎄. 대흉근을 불러내서 잡아버릴까?”
골렘은 그 무게가 무거운 데다가 숨을 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물속에서도 활동 가능했다. 나름 괜찮은 생각같아서 준은 대흉근과 골렘 1,2,3호를 꺼내서 물속을 탐색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녀석들이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거의 삼십분을 기다리자 수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골렘 들이 대형물고기를 찾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눈으로 보지를 못하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준은 대흉근을 향해 메시지를 보냈다.
-어떻게 돼가?
-물고기 커.
-거의 너 만할 걸. 그래서? 잡았어?
-물고기 빨라.
-못잡았다는 얘기구만... 다른 애들은?
-몰라. 안보인다.
물에서는 조금만 움직여도 흙먼지 때문에 앞이 잘 안보인다. 비록 골렘이 눈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녀석도 일단은 빛을 통해서 사물을 판별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앞이 보이지 않으면 적을 찾기 어려웠다.
-끙. 일단 올라와. 1,2,3호 니들도 다 올라와.
-알았다.
-알았다.
-알았다.
-한 명만 이야기 하라고 했잖아.
-알았다. 까먹었다.
골렘 1호의 말을 끝으로 골렘들이 서서히 뭍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몸을 모니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있는 것이 확실히 전투의 흔적으로 보였다. 물속에서 골렘이 물고기의 속도를 따라잡기란 어려운 모양이었다.
“흠. 생각보다 까다롭네.”
준은 조금 심각해진 상태였다. 저 대형물고기가 있다면 호숫가에 집을 짓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했다. 녀석은 물고기 주제에 주황색 외도였고, 자신이 쏘아보내는 물에 엑조틱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녀석이 마음만 먹었다면 첫번째 공격으로 준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까지 하지는 않는 것으로 봐선 어디까지나 경고만을 하려는 의도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경고만 하지는 않겠지.”
자신의 집을 빼앗기고도 참을 수 있는 생명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냥 이곳을 버릴수도 있었다. 하지만 겨우 외도 한 마리 때문에 물러나야 한다는 사실은 꽤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자신은 시미를 포함해서 노란색 외도를 다섯이나 데리고 있고, 주황색 외도도 하나 데리고 있었다. 준 본체의 실력도 어지간한 주황색 외도는 일대일로 발라버릴 수 있었다. 노란색 외도는 아직 힘들다고 생각되지만 니들건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어쩌면 상대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겨우 주황색 외도 한마리 때문에 물러날 수는 없지.’
준은 대형 물고기를 잡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덧 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분하긴 했지만 일단 오늘은 물러서야 했다. 그렇다고 이런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도망치는게 아니야. 꼭 다시 올테니까 그때까지 잘 있으라고. 반드시 매운탕으로 만들어 줄테니까.”
준은 아무도 없는 호수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섰다. 멀리서 물결이 일렁였다. 어쩌면 물속에서 녀석이 코웃음이라도 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아... 배고프다. 자기전에 뭐 먹으면 안되는데...
내일은 아마 늦게 올라갈거에요. 제가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글을 쓸 시간이 안나거든요. 그래도 새벽쯤에 올리겠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시길. 날씨가 점점 풀려서 놀러가기 좋은 주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