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4 ----------------------------------------------
미슐랭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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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은 일단 만드라고라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녀석의 음파공격이 어느정도 범위까지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얼추 50미터 쯤 떨어졌다고 생각한 시점에서 준은 대흉근에게 명령을 내렸다.
대흉근과도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명령은 펠로우쉽을 통해서 내려야 했다.
-흉근아. 아까 가르쳐 준 거 있지? 거기에 있는 작은 풀 좀 뽑아봐.
-이거?
-여기서 잘 안보이니까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뽑아봐.
아무리 대흉근이 어느정도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람처럼 기억력이 좋거나 뛰어난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주황색 외도로 진화하면서 이전보다는 좀 더 명령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보였다. 외도들도 결정도가 높아질수록 지능이 높아지는 듯 했다.
대흉근은 준의 명령대로 일단 눈에 보이는 풀들을 닥치는 대로 뽑기 시작했다. 대흉근의 주먹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형태변환이 가능한데, 지금은 사람의 손처럼 변화한 상태였다.
우지끈!
대흉근이 눈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뿌리 채 뽑았다. 준은 한숨을 푹 쉬었다.
“끄응. 하긴 저 녀석에게는 나무도 풀이나 마찬가지겠지.”
대흉근의 크기에 비하면 만드라고라는 거의 새싹이나 마찬가지의 크기였다. 녀석은 그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보다 일단 거슬리는 나무부터 뽑기 시작한 것이다.
쿵!
나무 몇 그루를 뽑아서 던진 대흉근은 멀리서 준을 바라보았다.
-다 뽑았어.
-어... 잘했다.
준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준은 다시 대흉근에게 다가가서 거의 초토화가 되어있는 원시림의 한가운데 부들부들 떨고 있는 만드라고라 풀을 가리켰다.
“내가 조금 있다가 자리를 옮기면 이걸 뽑아. 알았지?”
-너무 작다. 뽑기 어렵다.
준은 투덜거리는 대흉근에게 결정체를 하나 던져주었다. 자고로 말 안듣는 애완동물에게는 간식으로 조련하는 것이 최고였다.
“이거 뽑아. 알았지?”
-알았어.
대흉근은 언제 투덜거렸냐는 듯 태세변환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과 오래 다니다 보니 녀석의 행동이 점점 인간을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은 대흉근에게 만드라고라에 대해서 단단히 각인을 시키고는 다시 거리를 벌렸다.
-지금 뽑아.
-응.
준이 명령을 내리자마자 대흉근이 바닥에 숨어있는 자그마한 만드라고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푸욱!
대흉근의 손은 땅속으로 거의 일 미터 가량 파고 들어가더니 마치 삽으로 뜨듯 흙째로 만드라고라를 퍼올렸다.
“어음...”
이렇게 되니 막상 뽑히면서 비명을 질러야 할 만드라고라도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듯 침묵했다. 일단 흙속에 들어가있으니 소리를 지르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에도 난감한 상황이 연출 된 것이다.
대흉근에게 흙을 좀 털어내라고 명령을 내리자 대흉근은 들고 있던 흙더미를 그대로 바닥으로 내리쳤다.
퍼석!
그러자 흙더미에 묻혀 있던 만드라고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준의 위치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아 그것이 남성체인지 여성체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대흉근의 거친 행동에 만드라고라는 비명을 지를 타이밍을 놓친 듯 했다. 그리고 대흉근은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대흉근의 머리채를 잡았다. 머리채라는 건 땅위로 솟은 만드라고라의 이파리 부분이었다.
퍽!
퍽!
퍽!
-자, 잠깐.
-응?
준은 바닥을 향해 만드라고라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대흉근을 향해 메시지를 보냈다. 대흉근은 완전히 알몸을 드러낸 만드라고라를 다시한번 내리치려는 듯 머리위로 들고 있었다.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
-흙 다 안털었어.
-아아. 괜찮아. 나머지는 내가 할게.
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대흉근에게 다가갔다. 대흉근의 펼친 손바닥 위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만드라고라가 보였다. 대충 툭툭 털어 흙을 모두 벗겨내자 거의 인간이나 다름없는 모습의 그 식물의 뿌리는 뽀얀 살결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여성체?”
준은 깜짝 놀라며 녀석들 살펴보았다. 처음부터 여성체가 나타날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운이 좋군.’
인간과 너무 닮은 형태라 다소 민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대로 확인을 해야한다는 의무감에 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녀석의 크기는 거의 사람의 손바닥 만했는데, 크기가 작은 것과 신체밸런스에 비해 머리가 좀 크다는 것만 빼면 인간과 완전히 동일한 모습이었다.
꿀꺽.
자기도 모르게 침이 넘어가는 것을 느끼며 준은 슬쩍 녀석의 몸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그때까지 정신을 잃고 있었던 여성체 만드라고라의 눈이 번쩍 떠졌다.
“아...?”
준과 눈이 마주친 만드라고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준을 바라보았다. 준의 손가락은 마침 여성체 만드라고라의 가슴부분에 닿아있는 상태였다.
그녀, 아니 그것은 시선을 아래로 내려 준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녀석의 몸이 붉은색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 아니 이건 그냥 확인해보려고...”
대체 뭘 확인한다는 것일까. 준은 자신도 모를 말로 변명을 하며 황급히 녀석의 몸에서 손가락을 떼었다.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 같아 준은 황급히 주머니에서 마스터가 준 젤리를 꺼냈다. 이제와서 도망쳐봤자 늦을 것 같아서였다.
막 젤리를 입에 넣으려는 순간, 만드라고라는 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취했다.
“흑...”
“응?”
녀석의 커다란 눈에서 갑자기 눈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비명을 지를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왜, 왜 우는거야?”
-주인. 여자 울렸다.
“이 녀석은 여자가 아니라고! 그냥 풀이야! 음식재료라고!”
준은 어쩐지 자신을 한심하게 쳐다보는 것 같은 대흉근을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자 조용히 눈물을 흘리던 만드라고라의 울음소리가 통곡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엉엉. 나는... 흑흑... 음식이...엉엉. 아니라.... 으아앙앙.”
“아... 그게.... 휴...”
준은 당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숨을 푹푹 쉬며 울고 있는 여성체 만드라고라를 쳐다보았다. 인간을 닮았다고만 했지 정말로 인간처럼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과연 저런 걸 먹을 수 있을까?
준은 가슴을 밀고 들어오는 엄청난 죄책감에 조심스럽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미안.”
“흐엉엉엉. 보자마자 집어던지고... 땅에다가 내리치고... 엄마한테도 맞은 적 없는데... 흑흑.”
“미안하다니까. 그러니까 그만울어.”
일단 만드라고라에게 엄마가 있는지부터 태클을 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우선 녀석을 달래기 위해서 준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만드라고라의 울음소리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점점 더 커졌다.
“엉어어엉엉!”
위잉-
“으윽. 그만 울라니까.”
준은 귀를 막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런 준의 노력은 소용이 없었다. 녀석의 울음소리는 뇌에 직접 파고드는 듯, 아무리 귀를 막아도 여전히 그의 머리를 시끄럽게 울렸던 것이다.
“이거 줄게! 뚝!”
결국 견디다 못한 준은 인벤토리에서 결정체를 하나 꺼내어서 열심히 울고 있는 만드라고라에게 넘겼다. 그러자 녀석은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더니 준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보니 정말로 인간과 진배없는 모습이었다. 다른 것은 머리칼을 대신하는 초록색의 풀 정도. 그것도 얼핏보면 염색한 머리 같은 느낌이었다.
심지어 꽤나 귀엽게 생긴 얼굴이라 만약 정령이나 요정이 있다면 꼭 이렇게 생긴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는거야?”
“그래. 일단 먹고나서 생각하자.”
“헤헤.”
언제 울었냐는 듯 배시시 웃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를 보는 듯 해 준은 한숨을 쉬었다. 이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그냥 대충 흙이나 털어서 인벤토리에 넣어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처음부터 완전히 틀어진 것이다.
‘환상의 재료라더니... 이거 정말로 먹을 수 있는 거 맞아?’
차마 그 ‘재료’가 눈앞에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소리 내어서 할 수는 없었다.
“저기... 음. 일단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데.”
“시미.”
어느새 결정체를 해치운 건지 커다란 배를 두들기며 반쯤 늘어져 있던 녀석이 입을 열었다. 너무 적나라한 자태라 준은 가능한 한 그쪽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상대가 정신을 잃고 있으면 모를까 뻔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알몸인 상대를 쳐다볼만큼 준의 낯짝이 두껍지는 않았다.
“시미? 그게 이름이야?”
“응.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야.”
“저기...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그 ‘엄마’라는 건 뭐야?”
“엄마는 엄마.”
“아니. 일단 넌 식물이잖아. 식물에도 엄마가 있는 건가?”
“음... 있었는데?”
“아. 네.”
준은 더 이상 묻기를 포기했다. 어쩐지 물어봐야 같은 대답만 나올 것 같고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 잡아 먹을거야?”
시미가 준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마치 내일 저녁은 뭐야? 하는 말투였기 때문에 준은 아무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일 뻔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그야. 맛있으니까?”
“일단 자신이 맛있다는 자각은 있는 거로군.”
준은 도대체 이걸 어째야 하나 싶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냥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마스터에게 가져다주고 싶었지만, 눈앞에 이렇게 멀쩡히 살아서 말을 하고 있는 작은 생명체를 보니 그럴 생각이 싹 달아나버렸다.
‘동물들이 말을 못하는 게 정말 다행이야.’
돼지나 소가 말을 하면 잡아먹을 수 있을까? 준은 새삼스레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생각해보고.”
준은 솔직하게 이야기 했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 였지만 역시나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녀가 다시 울먹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으으...”
“꼬, 꼭 먹는 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럼 안먹을거야?”
“아니... 그게 뭐랄까...”
준은 곤란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어쨌든 이건 음식재료고, 준은 마스터를 돕고 싶었다. 게다가 이건 퀘스트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그녀를 마스터에게 넘겨야 퀘스트가 완료된다. 그 보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존의 경우를 봤을 때 꽤나 짭짤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했을때는 그냥 그녀를 넘겨주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이 녀석은 외도다. 그렇게 생각하면 돼.’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외도를 죽여왔는데, 이제와서 겨우 말 좀 할 줄 아는 녀석이라고 죽이지 못한다는 것은 위선에 가까운 행위였다.
“미안하지만, 나에게도 사정이 있어서.”
“응... 그렇구나. 그러면 잘 부탁해. 나 각오하고 있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웠다. 작은 몸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말을 하는 그 모습은 비장하기보다는 평일 오전타임의 아동용 인형극 같아서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일단 여기서 먹을 건 아니니까. 벌써부터 그럴 필요는 없어.”
준은 그렇게 말하고 녀석을 인벤토리에 넣으려 했다.
-부적합한 명령입니다. 생명체는 인벤토리에 넣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곧 그의 머릿속에 울려퍼지는 시스템 메시지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다. 준은 하는 수 없이 녀석을 상의 앞주머니에 넣었다. 아무리 음식재료로 쓸 거라지만 그렇다고 바지주머니나 가방에 넣고 다닐 수는 없었다.
“후. 이제 다른 녀석을 찾아보자.”
“다른 녀석들?”
“아아. 남성체들도 필요할 것 같아서.”
일단 이곳까지 온 김에 만드라고라 남성체들도 찾을 생각이었다. 운이 좋아 다른 여성체를 찾을 수 있으면 굳이 이 녀석을 먹을 필요가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 녀석도 말을 한다면 곤란하긴 마찬가지 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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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 등장.......... 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