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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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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마음에 드나?”
“지금 이 얼굴이 마음에 드는 얼굴로 보여? 내생에 이렇게 최악인 음식은 처음이었어. 왜 안팔리는지 알겠어. 이런 걸 돈 주고 사먹는 놈들이 제정신이 아닌 거지.”
“입에 쓴 약이 몸에도 좋은거야.”
“그래도 너무 쓰다고...”
준은 바의 테이블 위에 머리를 쿵 하고 박았다. 정말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은 맛이었다. 하지만 건강 숙련도를 위해선 참고 먹어야 한다. 준은 먹어야 한다는 사실과 굳이 그렇게 까지 해서 건강수치를 올려야 하나하는 생각사이에서 갈등했다. 한창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던 준의 귓가에 시원한 무언가가 닿았다.
“앗 차거!”
“서비스.”
“응?”
정신을 차려보니 준의 앞에 붉은 색 음료가 차가운 얼음과 함께 놓여 있었다. 준은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내 작은 유흥에 동참해준 댓가. 그걸 그렇게 열심히 먹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었다.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대부분은 한 입 먹고는 고개를 저으면서 버려 버리는 게 태반이었는데.”
“먹고 싶어서 먹은 게 아니야.”
준이 얼음을 아득아득 씹으며 입을 열자 마스터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그래? 그럼 왜 그렇게 열심히 먹으려고 했지?”
“이 동네는 궁금한 걸 못 참는 사람들만 잔뜩 모여있는 모양이지? 그냥 요즘 몸이 허해져서 좋은 걸 좀 먹으려고 했던 것 뿐이라고. 맛이야 끔찍했지만 어쨌든 확실히 효과는 있는 것 같고.”
“그렇지? 내 야심작이네.”
“아니... 제발 다른 재료는 없을까? 솔직히 도저히 끔찍해서 못 먹겠거든. 먹을 수 있는 외도는 많잖아. 그중에서 맛있는 걸로 좀 만들어 줘. 재료비든 뭐든 내가 낼테니까.”
“오. 제법 재벌 같은 소릴 하는 군.”
“재벌이면 애초에 이런 곳에 오지도 않았을 거야. 어쨌든 다른 걸로 부탁해. 당장 내일 부터 하루에 두 끼 정도는 꼬박꼬박 이곳에서 먹을테니까.”
“흠... 재료라.”
마스터는 잠시 수염을 쓰다듬더니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걸 구해주지 않겠나?”
“그거?”
“이 알카트뢰즈에는 환상의 요리재료로 손꼽히는 외도가 살고 있지.”
“...뭐야 그거? 갑자기 만들어 낸 말 같은 소리 하지마.”
“이런 믿지 못하는 건가? 미슐랭 스타를 받은 이 내가 왜 이런 곳까지 와서 이런 후줄근한 펍의 주인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미슐랭 스타? 농담이겠지. 게다가 이런 곳에 별을 줄만큼 미슐랭가이드가 허접하지는 않을걸?”
준은 펍의 내부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프랑스의 미슐랭 타이어에서 만든 가이드 북에서 시작한 미슐랭 가이드는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며 세계최고의 식당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별을 받은 요리사라면 굳이 알카트뢰즈 같은 곳에 올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냥 평생동안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손님들이 몰려올테니까.
“여기 말고.”
“하긴 그렇겠지. 그래도 믿음은 안가지만. 애당초 그런 사람이 이런 곳에 올 이유가 없잖아.”
준은 고개를 저었다. 방금 같은 그 끔찍한 요리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미슐랭스타 운운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전설처럼 내려오는 환상의 요리를 만들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지.”
“환상의 요리?”
“그래. 젊은 시절 스승님이 단 한 번 맛보여 주신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결국 이런 곳까지 흘러들어왔지. 하지만 벌써 3년째 이지만 그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있어.”
“...지금 그런 걸 나에게 시키는 거야? 3년 동안 구경도 못한 걸 나보고 무슨 수로 찾으라는 거야?”
준은 그 끔찍한 요리의 후유증 때문인지 소리를 지를 힘도 없었다. 분명히 건강숙련도는 올랐는데, 실제 육체의 건강은 저하된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마스터는 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야 넌 슈퍼스타니까.”
“안녕. 그동안 즐거웠어.”
준은 손에 들고 있던 음료를 쭉 들이키고는 탕, 소리가 날 정도로 탁자 위에 강하게 내려놓았다. 마스터는 돌아서는 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토록 준이 빈정대었음에도 전혀 감정의 동요가 없는 듯 차분한 목소리였다.
“맛과 효과는 확실히 보장할 테니까. 생각있으면 찾아와.”
“네네. 알겠습니다.”
준은 등을 돌린 채 손을 가볍게 흔들고는 펍을 빠져나왔다. 해가 거의 서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가 향한 곳은 상점이었다. 델타폰과 니들리스의 재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딸랑!
상점의 문에 달린 종이 맑은 소리를 내자, 막 물품들을 정리하고 있던 밥이 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 그렇지 않아도 찾고 있었는데 잘 됐군.”
“뭐야? 그런거면 전화를 하지.”
“하하. 막 전화하려던 참이었어.”
“그래서, 무슨 일인데?”
준의 물음에 밥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추가 주문! 델타폰 100개 더! 이번에 아예 확실하게 보급을 하기 위해서 투 플러스 원 행사를 기획중이야!”
“뭐야? 그럼 손해인거 아니야?”
지금까지 갑의 위치를 이용해 어떻게 하면 마진을 최대한 붙여먹을까를 생각하면서 장사를 하던 밥이 갑자기 동네 편의점에서나 할 법한 판촉행사를 한다니 약간 어이가 없었다.
“3개 팔고 10크리스탈을 받는 거야. 어차피 나에게는 1크리스탈이 남으니 이득이지. 지금 소문이 괜찮게 퍼지고 있으니까 이번기회에 확실하게 물건을 홍보하려는 생각이지. 어차피 팔 곳은 많으니까.”
“뭐, 나야 손해볼 건 없으니까 상관없지만... 알아서 해. 그럼 언제까지 물건을 넘겨주면 되는거야?”
“내일 아침까지. 지금 닐슨도 급한 모양이더라고. 보통 일주일에 한번씩 오는 녀석이 지금 하루만에 다시 오겠다고 하는 걸 보면 몸이 완전히 달아있는 상태야.”
“재료는?”
“미리 챙겨놨지. 조금있다가 숙소로 올려보낼게.”
“끙. 오늘 잠은 다잤군.”
“돈 버는 일이잖아. 노력하라고.”
“알았어. 그보다 나도 물어볼게 있는데 말이지.”
“응? 뭔데? 또 새로운 상품에 대한 이야기인건가?”
벌써 몇 번이나 준 덕분에 짭짤한 수익을 올린 밥이다. 최근에는 준이 상점에 올때마다 뭔가 새로운 것은 없나 하고 항상 궁금해 하고 있었다.
“아니. 마스터에 대한 이야기야.”
“마스터? 아. 펍 주인장 말하는 거군. 그런데 왜?”
“그 사람 정말로 미슐랭 스타를 받은 적이 있어?”
준의 질문에 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밖에서는 나름대로 꽤나 유명한 요리사였지. 한때 요리프로그램을 진행한 적도 있을 정도로 유명한 요리사야.”
“뭐? 정말? 그 실력으로?”
준은 밥의 말에 두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 요리프로를 볼일이 전혀 없다보니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요리사라도 재료가 엉망이면 좋은 음식을 만들지 못해. 이런 곳에 들어오는 요리재료가 고급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적어도 몇 년 간은 냉동창고에서 썩어가고 있던 것들이 들어온다고.”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그런 저급품으로도 꽤나 먹을 만한 걸 만들어 내는 양반이지. 한 번도 그런 생각해본적 없는 거야? 어째서 이런 황량한 개척마을에 정통프랑스요리가 튀어나오는지?”
“그야. 아무 생각없이 먹었으니까. 그리고 그게 정통프랑스요리 인지 내가 알게 뭐야? 요리도 전혀 고급스럽지 않았다고.”
“그야 모양을 내는데 별로 신경쓰지 않았으니까. 너 같으면 범죄자들을 먹이는 밥에다가 데코를 하겠냐? 그냥 적당히 만들고 말지. 그래도 한 가락하던 사람이라 무의식중에 실력발휘가 된단 말이지. 가끔 좋은 재료가 들어오는 날에는 수형자들도 줄을 서서 먹을 정도라고.”
“...전혀 몰랐어. 그래서 펍에 손님이 많은 거였구나.”
“뭐, 애초에 거기 말고는 제대로 된 식당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스터의 요리솜씨가 대단하다는 점에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
“흠...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른데...”
준은 턱을 괸 채 심각한 얼굴로 중얼 거렸다. 당장 준에게 필요한 것은 외도를 사냥하는 것보다는 건강의 숙련도를 올리는 것이었다. 어차피 하루에 잡는 특이외도의 숫자래봐야 50마리를 넘기 힘들고, 거기서 얻는 경험치는 600에서 700사이. 그 정도는 던전을 한번 털고 나면 들어오는 경험치의 5퍼센트 정도에 불과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마스터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환상의 재료라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는길에 외도도 숱하게 있을테니 어차피 사냥을 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준은 혹시나 해서 밥에게 물었다.
“환상의 재료라고 알아?”
“아... 설마 마스터가 너에게 그걸 구해달라고 한거야?”
“응. 방금 전에.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고 그냥 나왔지.”
“흠. 의외네. 그 양반 아무에게나 그런 부탁을 하지는 않는데. 하긴 너도 아무나는 아니지.”
의미심장해 보이는 밥의 말에 준이 다시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에게나 부탁하지 않는다니?”
“마스터가 찾는 환상의 재료라는 거, 생각보다 찾기 힘들다는 건 알지?”
“그래. 3년 동안 구경도 못했다면서.”
“그걸 구하다가 죽은 헌터만 해도 두 자리수가 넘어.”
“뭐라고?”
준은 황당한 표정으로 외쳤다. 마냥 좋은 사람만은 아니라는 것은 대충 눈치챘지만 설마하니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그렇게 많은 헌터를 희생시켰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하지마. 그 사람도 모든 걸 버리고 이곳까지 올 정도로 그 환상의 요리라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으니까. 생각해봐. 부와 영광을 박차고 이런 척박한 곳 까지 온거야.”
“아니... 난 이해가 안되는데? 그냥 사람 쓰면 되잖아. 그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다면 충분할텐데.”
“그게 냉동을 하거나 하면 안되는 재료라서. 잡고나서 며칠안에 조리하지 않으면 제대로 맛을 낼수가 없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직접 온 거지. 처음에는 몇 명 정도 자신을 도와줄 헌터를 고용했었는데... 뭐. 그렇게 됐지.”
그렇게 됐다는 게 무슨 소린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준은 반은 장난 처럼 생각했던 이번일이 생각보다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할거야?”
“글쎄... 솔직히 말하면 썩 내키지는 않아. 그렇게 위험한 일인지도 몰랐고. 그렇게 까지 중대한 일일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마스터도 최근에는 거의 포기한 것 같으니까. 그저 미련이 남아서 저러고 있는거야. 나중에 지치면 돌아가겠지. 자신이 평생 추구하던 그 맛을 다시는 경험하지 못한 채로 죽겠지만, 뭐... 그런 인생도 있는 거니까.”
“은근히 날 떠미는 것 같은데?”
“하하. 솔직히 너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슨소리야?”
“주황색 외도를 혼자서 처리할 정도라면 충분할 것 같은데? 게다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보통의 중급헌터가 아니던데?”
“어떤 소문을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어. 오늘도 굉장히 위험했고.”
“그래? 이 근처에서 더이상 널 위협할 만한 외도는 없을텐데? 대체 뭐에게 당한거야?”
밥이 의아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뭐, 있어 그런거. 하여튼 그건 생각해볼게. 델타폰은 내일 아침에 알아서 가져가.”
“알았어.”
준은 그렇게 말하고 상점을 빠져나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청난 이야기를 들은 준은 약간 피로감을 느꼈다. 그저 조금 구하기 어려운 요리재료 하나 구해오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생각보다 훨씬 더 무겁고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 젠장. 난 마음이 너무 약해서 탈이야.”
준은 자꾸만 마스터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어차피 던전도 혼자 깨고 돌아다니는 판국에 요리재료 하나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두자리수의 헌터들이 목숨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준보다 강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이 알카트뢰즈에서는 중급 헌터만 해도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수 있었다. 원 밀리언이라고 불리는 상급헌터들의 숫자는 그 별칭만큼이나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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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척!
미슐랭스타 편은 그냥 편하게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