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9 ----------------------------------------------
미슐랭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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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쿵.
“윽.”
준은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둔중한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지금은 던전을 깨끗하게 털고 나하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길이 워낙에 험하다 보니 계속해서 차량이 널을 뛰었고 그만큼 준의 엉덩이도 수난을 겪고 있었다.
“어쩐지 올 때보다 갈 때가 더 힘든 것 같네.”
처음에는 차량을 운전한다는 긴장감과 던전을 탐험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런 부분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모든 일을 해결하고 느긋하게 돌아가는 길이다 보니 자잘한 부분에서 불편함이 느껴졌다.
어쨌든 쿠션이나 충격흡수장치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문제였기에 익숙해질 수밖에는 없는 노릇이었다.
차아악-
준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를 가로지르며 창문을 내렸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엔진음과 배기음, 그리고 바퀴가 흙먼지를 일으키는 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엉덩이가 조금 아픈 것을 빼면 꽤나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멀리 커다란 바위골렘 하나가 눈에 띄었지만 굳이 가서 잡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인벤토리에 자그마치 1500개의 결정체가 있는데 굳이 하나를 더 욕심내느라 지금의 평화로운 기분을 망칠 이유는 없었다.
준은 한손으로 핸들을 잡고 몸을 비스듬히 뉘었다. 어차피 자신을 제외하면 다른 차량도 없고, 이런 곳에서 사람을 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편안한 자세로 바꾼 것이다.
‘자동운전시스템이 있으면 편할텐데.’
차량 운전을 시작한지 겨우 이틀 이지만 준은 약간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처음 운전을 하는데다가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그것도 하필 그 차량이 오프로드 전용인 험비다 보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준은 데이터베이스를 뒤져서 자동운전시스템을 검색해 보았다. 하지만 그런 류의 설계도는 아직 준비 되지 않았다.
준은 루나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대화 가능한가?
-말씀하세요.
준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날아오는 답장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쩌면 자신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저 과학자로서 가지는 호기심 때문이었겠지만 누군가 자신을 기다려 준다는 것이 그리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자동운전시스템에 대한 설계도를 구하고 싶은데. 혹시 구할 수 있겠어?
-음. 어려운 건 아니에요. 연구실 데이터베이스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테니까요. 헌데 그건 왜요?
-차량을 하나 만들었는데, 운전하기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라서 말이지. 이런 오지에서 아무것도 없는 배경을 보면서 하루종일 달리려만 아무래도 금방 피로해지거든.
-그렇군요. 지금 검색 결과가 나왔어요. 50년 전 시스템이라 좀 구형인데 괜찮은가요?
-오래 될수록 좋아.
-네. 혹시 더 찾으면 올리둘게요.
-그래. 수고했어.
준은 루나가 올린 설계도를 훑어보았다. 일단 시뮬레이션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무리해서 제작을 할 필요는 없었다.
준은 설계도를 입력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제작 등급이 낮습니다. 자동운전시스템의 제작이 불가능 합니다.
“쩝. 역시 힘들군.”
준의 제작레벨로는 아직 만들 수 없었다. 엔지니어링을 상급으로 올리면 아마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제작레벨이 중급에 이르자 숙련도 상승치가 정말로 낮았다.
게다가 문제가 하나 더 있었는데, 한 가지 물건을 계속해서 반복 제작하면 일정 숫자 이후로는 더 이상 숙련도가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미 200여개를 팔아치운 델타폰의 경우가 그러했다. 니들리스 같은 경우는 워낙 경험치를 적게 소모하는 물건이라 그런지 처음부터 상승치가 낮았다.
결국 크고, 경험치를 많이 먹는 물건을 다양하게 제작하는 것만이 숙련도 상승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마 험비를 제작하고 강화하며 1퍼센트가 올랐지만 지금 제작숙련도는 여전히 40퍼센트를 밑돌고 있었다.
“뭔가 더 만들만한게 없나...”
준은 자신의 최대강점이 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준 정도 딜을 넣을 수 있는 근접딜러는 차고도 넘쳤다. 상급헌터에는 비할바가 안되었고, 제작품인 니들리스를 제외하고 생각하면 딜량 자체는 어지간한 중급헌터와 비슷한 정도였다.
부족한 기술을 스탯으로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험비를 파는 건 좀 힘들겠지...?”
자그마치 경험치만 3000이 들어가는 물건이다. 준 입장에선 결정체를 300개는 받아야 어느정도 이문이 남는데, 그만한 결정체를 일시불로 지불할 수 있는 헌터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래저래 제작기술의 등급업은 아직 요원해 보였다.
“휴. 일단은 델타폰의 판매에 주력하자.”
기술의 등급업이 느리면 레벨업이라도 빨리 하는 게 나았다. 일단 델타폰은 한번 팔고나면 지속적으로 EP가 들어오기 때문에 한 대라도 더 많이 팔아두면 장기적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준에게 들어오는 경험치는 꽤나 쏠쏠했다. 하루에 거의 200가까이 들어오고 있었으니, 현재 120여대가 팔린 상황에서 평균적으로 한 사람당 하루에 2EP가 조금 못되게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만약 1000대가 팔린다면 하루에 2000이라는 경험치가 공짜로 들어오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굳이 외도사냥을 나가지 않아도 가만히 앉아서 레벨업을 할 수도 있었다.
물론 처음이라 그런면도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평균적으로 수입이 줄어들겠지만 당분간은 이 추세가 이어질 것이다.
“공장이라도 차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여전히 준의 사업은 가내수공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일일이 준이 재료를 모아두고 제작을 활성화 시켜야 했다. 물론 한꺼번에 여러대를 생산할 수는 있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었다.
험비의 경우 10분에 1대를 생산하는 정도였고, 델타폰의 경우 같은 시간에 10대를 생산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정도로도 충분했다. 하루에 10시간 정도 쉬지않고 생산을 한다면 델타폰 600대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었으니까. 그 정도만 해도 알카트뢰즈에 뿌리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델타폰만 뚝딱 거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작숙련도의 상승을 위해서도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 봐야했고, 또 레벨업에 도움이 되기 위해선 던전의 탐사도 해야했다. 제작품이 마진이 많이 남기는 했지만 경험치를 한꺼번에 많이 버는 데는 던전만한 곳이 없었다.
이번에만 해도 총 이만이 넘는 경험치를 한 번에 얻었다.
“흐음... 그나저나 이걸 어느 세월에 다 먹어치우지...?”
준은 인벤토리 안에 있는 결정체를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아직 결정체를 경험치로 환산하지 않고 있었다. 숫자가 자그마치 1500개를 넘다보니 일일이 먹어서는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자동분류처럼 그냥 간단하게 흡수 할 수 있으려나.”
준은 인벤토리를 열어 결정체 하나를 꺼냈다. 한 손으로는 운전을 하면서 나머지 한손으로 그것을 쥐고 천천히 의식을 집중했다.
‘자동분류.’
본래 자동분류는 외도의 사체를 처리할 때 쓰는 기술이다. 하지만 외도의 사체를 분리함과 동시에 결정체까지 엑조틱 에너지로 변환하여 흡수를 할 수 있었다. 그 원리라면 결정체 자체도 자동분류로 흡수 할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준의 생각은 얼추 들어맞았다.
-결정체를 자동분류 합니다. 엑조틱 에너지로 변환하시겠습니까?
준이 ‘네’를 선택하자 손에 들고 있던 결정체가 서서히 가루가 되더니 사라지며 준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정보창을 열어 확인해 보니 경험치가 11정도 상승해 있었다. 일단 먹는 것 보다는 빠른 방법이었다.
준은 내친 김에 열 개를 한꺼번에 꺼내서 실험을 해보았다. 그러자 별무리없이 한꺼번에 흡수가 되었다. 한 개가 흡수되는 시간과 별 차이는 없었다.
“어디...”
와르르!
준은 결정체를 조수석에 약 200개 정도 한꺼번에 쏟아부었다. 갑자기 차량 내부가 붉은 빛에 휩쌓였다.
“고기집 분위기 나는 구만...”
준은 결정체를 향해 한 손을 뻗고는 자동분류를 시작했다. 굳이 결정체에 손이 닿거나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거리가 어디까지 적용될지는 모르겠지만 잘만하면 이 방법으로 남의 결정체를 훔쳐 먹는 일도 가능할 것 같았다.
‘씁. 이러다 나중에 진짜 범죄자가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뭔가 새로운 능력만 생기면 자꾸만 그것을 이용해 나쁜 짓을 할 생각만 떠올랐다. 준은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득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을 시행하는데 커다란 리스크가 없다면 한 번쯤 시도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본능이 시키는 일이라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해서 면죄부를 부여한다면 인간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수천년간의 문명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본능에 몸을 맡기는 것은 짐승이나 하는 짓이지.’
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수석에 있는 결정체들을 한꺼번에 흡수하기 시작했다.
쿵. 덜커덕.
“길 참 더럽구만.”
준은 툴툴 거리며 한손으로는 핸들을 나머지 한손으로는 결정체를 흡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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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번 편은 급 수정하느라 분량이 좀 부족합니다. 부디 양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