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4 ----------------------------------------------
던전 브레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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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무슨 작당모의를 하든 준은 별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이곳은 나하라에서도 200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진 곳이었고, 얼굴이 팔린다고 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설령 자신이 던전을 깨고 도망친다고 해도 쫓아올 수도 없을 것이다.
“이곳에 올 녀석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뭐 세상일이라는 게 그런법이지.”
굳이 그들의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었다. 준은 대흉근을 앞세우고 천천히 걸었다. 저번의 던전은 그런 것이 없었지만, 혹시 모를 함정 같은 것이라도 있다면 대흉근이 몸으로 모두 해체해 줄 것이다.
준은 느긋한 걸음으로 움직이며 퀘스트 창을 확인 했다. 나하라의 던전에서 받았던 퀘스트와 큰 차이는 없었다.
던전 레벨 : 쉬움
던전을 클리어 하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던전 내부에 존재하는 핵을 발견하여 파괴합니다.(0/1)
추가 목표.
던전의 모든 외도를 사냥합니다.(0/100)
다만 던전 안의 외도를 사냥하라는 퀘스트가 하나 추가되어 있었다. 다른 헌터라면 아무리 외도를 죽여도 다시 리젠되겠지만, 준이 죽인 외도들은 엑조틱 에너지가 모두 흡수되어 다시 살아날 수 없었다.
그래서 인지 모든 외도를 사냥하라는 조건이 추가된 모양이었다. 메인 퀘스트는 아니니 핵만 부수어도 경험치는 넉넉하게 챙겨 줄 것이다. 하지만 기왕지사 이곳까지 왔는데 긁어갈 수 있는 경험치는 모두 가져가고 싶었다.
“끙. 이거 언제 여길 다 돌아다니지? 그새 다른 녀석들이 오면 골치아프겠군.”
맵을 띄워보니 핵이 있는 위치는 대략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퀘스트는 모든 외도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보니 구석구석을 모두 훑어야 했다. 게다가 한두 마리도 아니고 100마리의 외도였다. 개중에는 일반외도도 섞여 있을테지만 저번처럼 정예외도가 있을 수도 있었다.
물론 지금의 준은 정예외도라고 해도 그리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었다. 주황색 외도였던 그랑튀르도 잡은 경험이 있었지만 그때보다 골렘들의 숫자가 3기나 늘었기 때문이었다.
‘아 귀찮은데, 걍 애들 풀어버릴까.’
하지만 쉽사리 결정하기는 힘들었다. 골렘1,2,3호가 다른 특이외도에 비해서 결정도도 높고 보다 강력하긴 하지만 그래도 붉은색 특이외도에 불과했다. 재수없게 따로다니다가 정예외도라도 만나면 그 자리에서 도망도 못치고 죽을 수도 있었다.
“어떻게 키운 애들인데 그렇게 잃을 수는 없지.”
대흉근을 제외하면 사실상 방목으로 키운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나름 준은 그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두 팀으로 나누기로 했다. 준과 대흉근, 그리고 골렘 1,2,3호를 팀으로 나누어 다니면 정예외도가 나타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준은 골렘들을 모두 꺼내놓았다. 이로서 펠로우쉽 파티가 모두 다섯 명이 되었다. 갑자기 커다란 골렘들이 나타나자 일순간 동굴이 엄청나게 좁아졌다. 맨앞을 대흉근이, 그리고 준의 뒤쪽으로 1,2,3호가 줄지어 뒤따르고 있었다.
그렇게 한 20미터쯤 나아가자 드디어 기다리던 외도가 등장했다. 판테라의 아종으로 보이는 고양잇과의 외도였다.
쿵!
꽤액!
그리고 녀석은 나타나자마자 대흉근의 내려찍기 한방에 목숨을 잃었다.
“일반외도라니. 눈물나니까 그런 녀석은 이런 곳에서 나타나지 말라고.”
준은 약한 동물들을 괴롭히는 느낌에 약간 기분이 찜찜해졌다. 놈들이 외도이고, 인류의 적이라는 것은 물론 잘 알고 있지만 저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리면 죽이는 쪽에서도 미안해지는 것은 어쩔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카운트는 정상적으로 올라가는 군. 일반외도도 한 마리로 쳐주는 것을 확인했으니, 슬슬 찢어져 볼까?”
준이 일부러 외도와 전투가 벌어질때까지 기다린 이유는 그것도 있었지만 또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
다름아닌 델타의 어그로 시스템이 던전에도 적용이 되는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필드에서는 펠로우쉽에 속한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타나는 외도의 숫자도 많아진다. 없는 녀석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고 멀리 있는 놈들을 유혹하는 모양인데, 아마 특수한 주파수의 전파를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추측만 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타난 놈이 한 마리인 것으로 봐선, 이곳의 외도들은 자신들만의 구역이 정해져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되면 한 번에 만나는 특이외도는 많아야 두세 마리 일테니 두 팀으로 나누어서 다닌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혹시나 위험이 생기면 골렘들이 신호를 보내올 것이다. 미니맵에 골렘들의 위치도 표시되는 만큼 늦지 않게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루나에게 연구를 좀 해달라고 할까?’
어그로 시스템에 대해서 생각하던 준은 문득 그녀가 과학자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사실 이런 기술은 준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현재의 과학력으로 풀 수 없는 고차원적인 기술들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외도를 유인하는 기술 같은 것들은 잘만하면 지금의 과학력으로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루나를 대리인 삼아 그 기술을 특허로 등록해서 막대한 로열티를 받아낼 수도 있었다. 자신이 전면으로 나서지 않아도 충분한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녀에게도 어느정도 지분을 약속해야겠지만, 신뢰를 다지는 의미에서 일정지분을 나누어주는 것 까지 거부할 정도로 준은 인색하지 않았다.
‘일단 이곳을 나가면 생각해봐야겠군.’
루나를 영입한 것은 사실 단순히 던전의 위치정보를 알기 위함이었다. 우연히 그녀가 그것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준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 뿐이다. 그에게 그녀의 존재가치란 딱 그 정도였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녀에게서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이득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과학자였다. 델타에 대해서 자신만큼, 아니 그 이상을 이해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것을 분석할 수 있는 인프라도 갖추고 있었다.
준이라면 하기 힘든 연구도 그녀는 제대로 갖추어진 최첨단의 실험실을 이용하여 진행시킬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에게는 그런 연구를 진행할 ‘시간’이 있었다. 준의 경우는 하루종일 제작품을 만들고 사냥을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생각할수록 괜찮은 인재잖아. 심지어 월급도 안주고 부려먹을 수 있어.’
거기까지 생각한 준은 약간 양심의 가책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전도유망한 과학자였다. 운이 좋다면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노벨상 후보에도 오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인재였고, 대학에서는 지금도 그녀에게 상당한 조건으로 교수직을 제안하고 있었다.
그 정도 인물에게 야동이나 수집하게 만들었으니 이 얼마나 국가적 낭비인 것인지. 준은 차마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이었다.
“나란 놈도 참...”
물론 그녀도 야동을 수집하라고 했을 때는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루종일 연구만 하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머리를 쉬어줄 필요도 있으니 그런 쓸데없는 짓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렇다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 뭐, 나중에 돈으로라도 보상을 해줘야겠군.”
델타에게서 얻은 기술에 대한 권리. 준은 그것을 그녀에게 일정부분 양보할 생각이었다. 물론 대리인으로 그녀를 세울 생각이니 법적으로는 그녀에게 모든 권한이 생기겠지만, 준에게는 펠로우쉽이라는 목줄을 그녀에게 채운 상태였다.
만약 그녀가 작은 이득에 눈이 멀어 자신을 배신한다면 펠로우쉽을 끊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깟 특허권 따위 줘버려도 준에게는 별로 타격도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게 했을 때, 델타로 인해 누리던 수많은 이득을 잃어버리게 된 그녀가 느끼는 박탈감은 어마어마하게 다가올 것이다. 어쩌면 정상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었다. 준 자신도 이미 델타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보다 훨씬 더 할 수도 있었다. 과학자이니 만큼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갈망은 더욱 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쿵쿵쿵!
골렘 1,2,3호와 갈림길에서 헤어진 준은 대흉근과 함께 천천히 움직였다. 스토크에서 이곳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린다. 다른 레이드팀이 올때까지 적어도 몇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으니 성급하게 움직이다 실수하는 것보다는 주의를 기울이면서 움직이는 것이 나았다.
던전안은 별다른 조명이 없음에도 적당히 밝았다. 라이트가 없어도 주변을 인식하는데는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멀리 있는 물체를 보기위해서는 손전등이 필요했기에 준은 앞을 비추면서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자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라이트를 비추자 거의 10여미터 아래 열 댓마리의 작은 외도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인간형의 몸체에 키는 1미터 30정도. 얼핏보면 난쟁이들이 모여있는 것 같았지만, 녀석들은 엄연히 임프라는 이름의 외도였다.
거리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지만, 대흉근의 발소리도 컸고 준이 손전등까지 비추었기 때문에 자신을 눈치채지 못할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녀석들은 평화롭게 자신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낄낄거리면서 웃고 있었다. 아마 녀석들의 어그로 인식반경을 넘어선 모양이었다.
‘그래도 공격을 하면 달려들겠지.’
준의 눈앞에 녀석들의 데이터가 주르륵 떠올랐다.
-임프, 크기는 1~1.3m. 대부분 일반 외도이지만 개중 붉은 색 특이외도인 주술사가 섞여있음. 주술사는 죽은 임프를 부활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죽일 것을 권함. 약점은 딱히 없음.
“약점이 없다라...”
보통은 저 말이 무섭게 느껴질 테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임프의 경우 약점이 없다기 보다는 온몸이 약점이라고 보는 것이 옳은 표현이었다. 그만큼 일반외도 중에서는 약한 편이었고, 때문에 혼자다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흉근. 가서 처리해.”
-알았다.
비록 십여마리가 모여있다고는 하지만 전부 일반외도인 만큼 붉은색 특이외도인 대흉근이면 혼자서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럼 느긋하게 구경이나 할까.”
준이 계단의 끝에 앉아서 아래로 손전등을 비추었다. 헌데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던 대흉근이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10여미터나 되는 계단아래로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계단의 폭이 인간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다보니 대흉근이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았던 데다가 경사도 가팔랐던 것이 문제였다.
쾅! 쿵! 쿠당탕! 쾅!
엄청난 기세로 계단을 굴러내려가던 대흉근이 그대로 옹기종기 모여있던 임프무리를 덮쳤다. 놈들은 마치 대흉근을 이제야 발견했다는 듯 크게 당황하며 도망치려했다. 하지만 움직이는 것이 너무 늦은 모양이었다.
키에엑!
쾅!
-외도를 처치하셨습니다. (2/100)
-외도를 처치하셨습니다. (3/100)
-외도를 처치...
그리고 그렇게 대흉근에 깔린 임프들이 조용히 세상을 하직했다. 준은 헛웃음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진 채 바둥거리며 몸을 일으키려는 대흉근을 바라보았다. 그 움직임에 남아있던 임프들도 세상을 하직했다.
“이거 뭐 수수깡도 아니고 치면 죽냐.”
쯧.
준은 혀를 차며 계단을 걸어내려갔다. 남아있던 임프들이 패닉에 빠진 듯 우왕좌왕하며 뛰어다녔다. 준은 녀석들을 향해 더블애로우와 파동권을 날려 처리했다. 중급 기술들이라 몇 번 연속으로 날려주니 금방 처치할 수 있었다.
화아악!
생각보다 수월하게 끝났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쓰러져 있던 녀석들 중 하나가 빛에 휩싸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금 대흉근에 깔려 뇌수가 터져 죽은 녀석이었다.
“진짜 부활하네.”
준은 기가막히다는 듯 쌩쌩하게 살아난 임프를 쳐다보았다. 녀석은 준을 향해 단검을 들고 열심히 달려오고 있었다. 녀석을 향해 더블애로우를 날린 준은, 녀석들을 부활시키고 있는 붉은색 주술사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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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 또 올리겠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