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63화 (63/540)

0063 ----------------------------------------------

엔터테인먼트

*

*

*

털썩.

“밥을 왜 그렇게 먹어? 소화가 되기나 하겠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던 준의 앞에 막스가 앉았다.

그에 대한 감정은 복합적이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반가웠다. 이런식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가며 혼자 식사를 하는 것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정도 생각은했지만, 생각보다 불편하네.”

“그러게 왜 혼자가서 일을 저질러. 나름대로 생각해서 말 안한 것도 있었는데 아주 그냥 동네방네 광고를 하고 다녔더만. 니들리스 해머도 네가 만든 걸로 이미 결론 난 상태야.”

“대놓고 앞에서 별짓을 다했으니 모르면 바보겠지. 어쩔 수 없잖아? 그런 놈이 나타날줄은 몰랐다고.”

“그랑튀르 말인가?”

“소문이 어디까지 난거야?”

“글쎄. 그랑튀르가 외도가 되었고, 네가 그걸 처치했다는 것 정도? 그리고 다른 헌터들이랑 싸웠다며? 말싸움 정도긴 하지만.”

“죄다 알려졌구만. 하긴 그 사람들 전부의 입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이미 네 이름을 이곳에서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네 얼굴보다 네가 타고 다니는 분홍색 스쿠터가 더 유명할 정도야.”

“끄응.”

준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하긴 200명밖에 없는 나하라에서 그정도 소문이 퍼지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노릇이다.

그리고 일단 그 분홍색 스쿠터부터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들었다. 스스로 미적감각에 대해서는 둔하다고 생각하는 준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분홍색은 좀 아니었다. 하지만 스쿠터를 강화하는데 들어가는 경험치를 계산하고는 이내 포기했다. 강화는 실패확률이 있고, 그럴 바에는 새로 만드는 편이 나은데 거기에 경험치를 퍼붓느니 차라리 차량을 하나 새로 만드는 쪽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평판이 나쁘지 않다는 정도겠지.”

“정말인가? 나는 상당히 괴롭힘 당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의외였다. 준의 존재는 이레귤러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든 그곳만의 질서가 존재했고, 그 질서를 따르지 않는 이들은 집단에서 배척당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준은 처음부터 특별했고, 그 특별함은 이제 나하라의 어떤 자들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커져버린 상황이었다.

“결정체 양보했다며? 딱히 욕심부린 것도 없고. 오히려 반성하는 분위기더구만. 멀쩡한 녀석들 괜히 의심했다고.”

“그런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놈들도 있는 건가?”

준의 말에 막스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이.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야. 아예 돼지우리처럼 가둬놓고 사는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생각정도는 다 할줄안다고. 그리고 너 정도의 헌터와 굳이 척을 질 필요는 없잖아. 수형자들 대부분은 몸 성하게 이곳을 나가고 싶어하는 녀석들 뿐이라고.”

“그럴리가. 어제만 해도 습격을 받았는데.”

“어디나 예외는 있는 법이지. 그러고 보니 올센이 보이지 않는데 그 때문인가?”

준은 대답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그 자식 여기저기 사고를 치고 다니더니 제대로 걸린 모양이군.”

“어떻게 됐는지는 묻지 않는 건가?”

“알아서 뭐하게. 원래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었어. 물증이 없어서 지금까지 내버려 뒀던 것 뿐이야. 알았다면 나부터도 그 녀석을 가만히 두지 않았을 걸?”

“어우. 보안관 나셨네.”

“이봐. 우리도 습격에 대해서는 민감하다고. 그게 내가 될 수도 있는 문제니까. 그런 일에서는 서로 힘을 합쳐서 해결하는 편이야. 이런 곳에서는 서로돕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바깥에서 살 때 그렇게 상식적으로 살았다면 이런데까지는 오지 않았을텐데 말이지.”

“본인은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것 처럼 말하는군.”

막스는 기가차다는 듯이 웃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넌 대체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게 된거야? 하는 짓을 보아하니 딱히 사고를 칠 녀석 같이 보이지는 않는데.”

“그러는 너는?”

준은 대답대신 되물었다.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과거에 대해 묻는 것은 금기였다. 그런데도 그런 걸 물어오는 막스가 얄미워 질문을 던져본 것이다.

그러면 막스도 입을 다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막스는 별로 거리낄 것이 없는지 주절주절 자신의 사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갤럭시 인더스트리 산하 레이드 팀에 있었는데 말이지. 우리 팀을 담당하던 팀장이라는 녀석이 결정체 가격을 속이고 빼돌리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홧김에 위에다가 꼰질렀는데 오히려 나를 해고하더라 그거야. 열받아서 그 팀장이라는 놈을 가볍게 만져줬는데 그게 문제가 된거지. 연합 놈들. 겨우 그런일로 5년이나 때리다니 너무한거 아니야? 내가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말이지.”

투덜거리는 막스를 보며 준은 고개를 납득했다는 듯 끄덕였다. 레이드 팀을 담당하는 팀장은 아마도 일반인이었을 것이다. 그런 자를 탱커인 막스가 ‘만져’줬다고 하니 어느정도로 망가졌을지는 보지 않아도 훤했다.

그래도 준은 확인할 겸 슬쩍 물었다.

“그래서 그 팀장이라는 놈은 어떻게 된건데?”

“음... 전치 6개월인가... 아마 그럴텐데. 후유증도 심해서 꽤 오랫동안 병원을 다녀야 한다고는 들었지.”

“...그거 거의 죽지만 않은 정도 아닌가? 6개월이라니.”

현대 의학의 발달은 꽤나 눈부셔서, 어지간한 부상은 한 달이면 전부 치료될 정도였다. 심지어 과거라면 반신불수에 이를 정도의 큰 부상도 줄기세포치료를 병행하면 3개월이면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헌데 6개월이라니, 아마 전신의 뼈가 모두 부숴지는 정도가 아니라면 그 정도까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안봐도 비디오군.”

“어이. 그래도 꽤나 반성하고 있다고. 일반인이라는게 그렇게 약해빠진줄 몰랐을 뿐이야. 매번 아무리 때려도 죽지 않는 놈들만 상대하다보니 힘조절이 안됐을 뿐이라고.”

“그걸 변명이라고.”

준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막스는 팔짱을 끼며 의자에 기었다.

“자. 이제 네 차례야.”

“뭘?”

“내 이야기를 했으니까. 네 이야기도 해야지?”

“끙.”

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말이 그다지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그쪽이랑 비슷해. 상사에게 잘못보였다가 팽당한거지.”

그래서 간단하게 이야기 했다. 하지만 막스는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하면 더 궁금해지는데. 굳이 그렇게 까지 감출만한 일이야?”

“솔직히 말하면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뭐, 그렇다면 더 묻지는 않지. 가쉽일 뿐이니까. 이런 이야기도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거든.”

“야. 설마 그 이야기를 팔려고 하는 거냐?”

준은 인상을 구겼다. 그렇지 않아도 막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것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판이었다.

“그냥 재미지. 이런 곳에 오래 있어봐. TV도 없고, 영화도 못보고, 음악은 상상도 못해. 심지어 바깥에서는 쳐다보지도 않을 책 한권이 결정체 하나에 팔리는 상황이라고. 이런 가쉽거리라도 없으면 살 수가 없다고. 그러니 한 번 상상해봐. 요즘같은 때에 네 이야기가 얼마나 인기가 있을지.”

“음... 꽤 잘팔리겠군.”

“돈주고 사고팔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정도 이야기면 꽤나 좋은 정보 두어개 쯤은 얻을 수 있다고.”

“그렇다고 남의 이야기로 장사질이냐.”

“대신 좋게 소문 내줄테니까. 너무 그러지마. 솔직히 너도 그런거 신경쓰이잖아.”

“그건 그렇지.”

준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평판이란 것을 아예 신경쓰지 않으면 모를까, 일단 한번 신경쓰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것이 또 그거였다. 이곳에 있는 모든 헌터를 적으로 돌리지 않을 생각이라면 어느정도 신경쓰는 편이 좋았다.

그리고 막스처럼 입이 가벼운 남자라면 오히려 그런쪽으로 이용해 먹을 수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일종의 홍보전략이었다.

“헌데 그거 말인데. 즐길거리가 없다는거. 그거 정말이야?”

“왜? 이런 황무지에서 놀만한 게 없는 건 당연하지. 술집이라고 해도 여자가 없으면 솔직히 흥도 안난다고.”

알카트뢰즈에서 여성접대부를 고용하는 곳은 아주 한정적이었다. 헌터들이 아주 많이 거주하고 있는 중심도시의 몇몇 장소들을 제외하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 장소는 정부측 사람만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운동 같은 걸 해도 되잖아.”

“가끔 축구나 농구같은 걸 하는 놈들이 있기는한데... 알잖아. 헌터들이 어떤 인간인지.”

“하긴...”

헌터들이 스포츠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일반인이 아닌 각성한 헌터들이 선수로 뛰는 프로스포츠 리그도 있으니까. 최근에 들어서는 오히려 그쪽이 일반 스포츠보다 인기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인들에 비해 훨씬 더 격렬하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헌터들 사이에는 육체적 능력의 차이가 심하게 난다. 그렇다 보니 한 명의 절대적인 선수가 나머지 모든 선수들을 압도하는 경우가 자주 나타났고 그것이 헌터스포츠의 한계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쪽은 좀 낫다. 헌터들의 능력을 감안한 여러가지 제약과 룰들이 충분히 개정되어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생활체육에서의 헌터들은 아예 경기 자체를 못하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일단 축구를 예로 들자면 공을 차면 터진다. 그래서 전용 공을 사용하는데, 하프라인에서 찬 공은 그대로 골대로 들어가게 되고, 태클이라도 한 번 제대로 걸리면 십여 미터를 날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그때문에 사망한 사례도 있으니 문자 그대로의 살인태클이었다.

농구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제자리 뛰기를 해도 최소 몇미터씩 우습게 뛰어버리는 것이 헌터다. 슛은 무조건 덩크슛. 코트의 끝에서 끝까지 뛰어도 워킹바이얼레이션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멀리 뛰기에도 능숙하다.

애초에 스포츠라는 게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노력해서 헌터에 맞게 코트도 넓히고 골대도 넓히고 이런저런 제약을 가하다 보면 결국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스포츠가 탄생해버린다.

결국 적당한 선에서 서로 조절을 하지만 싸움도 잦고 들어가는 장비와 돈도 만만치 않아서 흐지부지되어버리고 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어쨌든 상점에서도 전자기기는 안파는 모양이더라고.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다나 뭐라나 하면서.”

“전자기기라...”

준은 자신이 혹시 그런 물건을 만들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았다. 현재 엔지니어링의 등급은 중급. 만들 수 있는 것은 공구류와 엔진, 그리고 통신모듈 정도였다. 하지만 설계도를 저장하면 만들 수 있는 범위가 꽤나 넓어진다. 실제로 준은 스쿠터를 만들어 냈으니까. 가솔린 엔진을 만들 수 있으니까 아마 스쿠터까지는 성공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에 엔진과 관련된 제품이기때문에 만들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준은 시험삼에 태엽시계를 만드는데 성공한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태엽시계는 위 세가지 카테고리중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 물건이었다.

‘그렇다면 시험해 볼 가치는 있겠지.’

거기다 생각해보면 통신모듈이라는 것은 즉, 휴대폰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초급에는 간단한 무전기 정도겠지만 중급은 좀 더 높은 레벨의 통신장치. 즉 휴대폰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리고 휴대폰은 전자제품이다. 그것으로 음악이나 영상을 볼 수 있는 물건을 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식사를 마친 준은 막스와 헤어지고 상점으로 향했다. 일단은 먼저 그 물건을 파는 것이 문제가 되는지 부터를 먼저 확인해봐야했다.

띠링-

상점의 문을 열자 종소리와 함께 밥이 카운터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하라의 대스타님께서 여긴 어쩐일로.”

“별 소리를 다듣는 군.”

준은 한숨을 쉬며 밥을 향해 다가갔다.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상점안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 작품 후기 ============================

으음... 아슬아슬하게 오늘을 넘겨 버렸네요. 으으...

그래도 제 마음속에선 2편입니다 ㅠ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