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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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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언제든지 그것을 다시 잡을 수 있도록 반은 쥐고 나머지 반을 보여주었다. 루나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이 물건, 인간의 몸에 침투해서 그를 외도로 변화시킨다. 그랑튀르도 그렇게 당했고, 어쩌면 당신도 마찬가지일지 몰라.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제가 오해했던 거군요.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다면...”
그랬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루나는 말을 흐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을 거다. 내가 이걸 손에 쥔 시점부터 내 말을 듣지 않았을테니까.”
“그렇게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니에요.”
“글쎄. 방금전의 일을 겪은 입장에서 그 말은 별로 설득력이 없군.”
“꽤나 고집이 세시군요.”
“나도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어.”
준은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라고 처음부터 사람을 못믿게 된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일을 겪다보니 준에게는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냉소가 있었다. 남은 믿을 수 없는 존재.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
‘뭐, 그래도 셀럼은 믿을만하지. 그리고 호랑이 길드 녀석들도...’
그들은 자신에게 충분한 호의를 베풀었다. 셀럼은 아무것도 없던 자신에게 무조건 적인 호의를 베풀었고, 장민성은 자신의 능력에 탐을 내면서도 자신과 거리를 둘 줄 알았다. 그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사람들이고, 믿을 만 했다.
준은 그렇게 자신의 생각에 모순이 있음을 느끼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어차피 세상일이라는 것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루나는 말없이 검출기를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준도 말없이 기다렸다. 이어지는 침묵을 견디기 힘들었던지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앞으로 어쩌실 생각이죠?”
“글쎄. 솔직히 좀 고민되는 군. 그쪽에서 끼어들지 않았다면 전부 죽여버렸을테니 깔끔하게 해결되었을 텐데.”
“사람을 죽인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군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을테니까.”
준은 별일 아니라는 듯 여상스럽게 웃었다. 그 웃음에 루나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렇다고 그를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다.
“서로 이해할 수는 없을까요?”
“이해라는 건 일방에 요구할 수 없는 법이다. 지금만 해도 그렇지. 저들은 내가 외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거다. 그저 날 비난하고 싶었을 뿐이지. 단순히 내가 그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그들보다 낫다는 이유 하나로 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네 중재를 받아들였는지 알아?”
“왜죠?”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으니까. 나 역시 얼마든지 저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내 모든 걸 까뒤집어서 진실을 증명하고 결백을 주장할 수 있었다. 헌데 그러지 않았지. 내 알량한 자존심이, 다른 모든 이들의 목숨보다 중요하니까. 하지만 그런 내가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겠어?”
“...아니요.”
“그래서 난 그냥 내버려 둔 거다.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국 싸울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그런 결론은 나에게 유리했으니까. 하지만 반면에 그런 생각이 있었으니까 누군가 양측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오지랖에 손을 들어줄 수 있는 아량정도는 있었다는 거지. 나도 평범한 사람이고, 사람을 죽이는 게 유쾌하지만은 않아. 그 결과가 설령 나에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말이지.”
“죄송해요. 너무 내 생각만 했군요.”
“너무 미안해 할 필요 없어. 어차피 위급한 순간이 되면 대흉근을 불러내려는 생각이었고, 언제까지 숨길 생각도 없었으니까. 다만 앞으로는 꽤나 귀찮아 지겠지. 바스라는 나하라에 꽤나 지분이 있는 헌터고, 볼칸은 연합정부의 군인이니까. 나에 대한 이야기가 좋은 쪽으로 흘러가게 되지는 않을거야. 최악의 경우에는 실험실에서 나를 마주칠 수 도 있겠지.”
“제가... 당신을 위험에 빠뜨린 건가요.”
루나는 그제서야 자신이 벌인 일의 결말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깨달았다. 준은 단지 몇몇의 적을 늘린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그랑튀르를 처지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밑천을 드러내었고, 그 와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능력을 보였다.
그것이 단순히 좀 특이한 능력자가 출현 했다는 정도로 끝날 리는 없다. 바스라와 그 일행들은 적극적으로 소문을 퍼나를 것이고, 볼칸은 볼칸대로 정부 쪽에 그의 신상에 대해서 보고서를 올릴 것이다.
루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단지 싸움을 말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그녀는 준을 볼 면목이 없었다. 그 덕에 목숨을 건진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자신 때문에 그가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된 것이다.
“굳이 네가 아니더라도 이 순간은 찾아 왔을 거야. 하지만 어쨌든 네 잘못도 없는 것은 아니니까, 하나만 도움을 부탁해도 될까.”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루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던전 위치에 대한 정보가 필요 해.”
“그건 정부기밀 이에요. 외부인에게 알려서는 안되는 정보...”
“어차피 너도 느꼈겠지만 군인들만으로는 던전을 조사할 수 없어. 나중에 요청하면 협력관계로 조사하는데 도움이 되어주지. 별 이상이 없는 핵이라면 한두 개 정도는 넘겨 줄 수도 있어. 물론 그 이상은 힘들지만.”
준의 제안에 루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네요. 하지만 그전에 어째서 던전의 정보를 원하는지 알려주실 수는 없는 건가요? 단순히 결정체에 욕심을 내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아 보이는데요.”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은데.”
“저에게 이것은 굉장히 큰 리스크에요. 정보를 알려드리게 되면 어떻게든 그 일이 발각될 위험이 있다구요. 그렇게 되면 저도 위험할 수 있어요. 물론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 정도 각오는 되어있으니까. 하지만 어차피 같은 배를 타게 되는 처지라면 그 이유 정도는 알아도 되지 않을까요?”
“걱정하지마. 네 스스로 알아낼 수 있을테니까.”
“무슨...”
준은 루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에게 펠로우쉽을 걸었다. 갑자기 나타나는 시스템메시지에 루나의 동공이 커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내 비밀의 일부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에게 씌우는 일종의 족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루나는 이 알카트뢰즈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고위관계자중 하나였고, 준에게 그 정보는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그녀가 과연 끝까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것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때문에 그녀를 옭아맬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준은 펠로우쉽의 체결이 그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어찌보면 그것은 도박처럼 보였다. 펠로우쉽이란 사실상 델타의 비밀을 어느정도 보여줄수밖에 없는 구조였고, 그것에 대해 밝혀지면 밝혀질수록 불리한 것은 준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대상자는 사용자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것을 언제든지 거두어들일 수 있는 것도 준이고, 상대의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읽어낼 수 있는 것도 준이었다. 심지어 대상자의 위치정보까지 파악할 수 있다.
물론 그 범위가 어느정도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알카트뢰즈 내에서 대상자가 준의 눈을 피할 방법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무엇보다도 델타가 가지는 특수성은, 오히려 그것을 발설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만약 그녀가 펠로우쉽에 대해서 정부에 밝힌다면 준을 해부하기 전에 먼저 그녀를 해부하려 들 것이 틀림없었다.
준은 그녀와 리스크를 분담함으로서 오히려 그녀에게 족쇄를 걸어버린 것이다.
“고마워요.”
루나는 준이 어려운 결정을 내렸음을 이해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너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다. 나는 네 위치를 언제든지 알 수 있으니까, 만에 하나라도 배신할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그렇다 해도, 자신의 비밀을 남에게 공유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죠.”
“마음대로 생각해.”
준의 말에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시스템메시지가 들려왔다.
-펠로우쉽이 체결되었습니다. 루나 미스틸테인이 대상자에 추가됩니다. 현재 펠로우쉽 현황(8/10)
루나는 잠시 멍한 눈을 하더니 눈을 깜빡였다. 정신을 차린 후 그녀가 처음 뱉은 말은 준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거... 개인적으로 연구를 해봐도 괜찮을까요?”
“얼마든지. 솔직히 말하면 나도 궁금하니까. 대신 거기서 나오는 정보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 저 역시 실험실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펠로우쉽이 체결되었다. 준은 그녀의 펠로우쉽 창을 열어 그녀의 정보를 확인했다.
사용자 ; 루나 미스틸테인
레벨 ; 1
클래스 ; 초보자
칭호 ; 펠로우쉽의 대상자(모든 능력치 +1)
능력치
체력 71/71 마나 0/0 경험치 0 잔여 스탯 0
힘 6(+1) 민첩성 9(+1) 지능 23(+1) 정신력 15(+1)
역시 과학자라 그런지 지능이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초기 지능수치는 천재라고 자부하던 준에 비해서 2나 더 높은 수치였다. 20대에 연합정부 산하 연구기관에서 권한이 있는 연구원이 될 정도니 사실 이정도도 모자라다고 할 수 있었다.
-연락은 이걸로 하면 될거다.
“아?”
아직 튜토리얼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그녀가 깜짝 놀라며 준을 바라보았다.
-아. 이런 식으로 보낼 수도 있군요.
-절대 걸리지 않을 방법이지.
준의 말에 루나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 일에 발을 집어넣었다는 생각에 가슴을 졸였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런식이라면 절대로 걸리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정부쪽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보이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부탁하지.”
준도 겨우 한숨을 돌렸다.
회색 결정체에 대한 기록이 끝나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엑조틱 에너지의 패턴이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삼십여분에 걸쳐 그 패턴을 모두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을 과연 제대로 분석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회의적이었다.
루나는 회색결정체를 연구소에 있는 제대로 된 실험실에서 돌려보고 싶은 눈치였지만, 준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제대로 된 무언가가 나오기도 힘들겠지만, 혹시 모를 상황이 터질 수가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볼칸과 바스라 팀이 속속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배낭에는 결정체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던전의 핵에서 흘러나온 결정체들이 스스로 모여 형태를 이룬 것으로 보아하니 모두 합해 거의 200개가 넘어 보였다.
그것을 부상자의 숫자까지 포함해 적당히 분류한 바스라는 준에게 작은 배낭을 넘겼다.
“네 몫이다. 쉰 개 넣었으니까 확인해봐. 솔직히 말하자면 더 넣어야 되는 거겠지만 우리도 피해가 크니 그 정도는 가질 자격이 있다고 본다.”
바스라도 던전을 한 바퀴 돌면서 어느정도 머리가 식었는지 그다지 적대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다가 또 분배는 나름 합리적이었으니 준도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준은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