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9 ----------------------------------------------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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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잠깐만요. 지금 다들 너무 흥분한 것 같아요.”
루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도 처음에는 준에게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볼칸의 말에 흔들린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뭔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준이라는 사람이 보이는 태도는 전혀 이기적이라던가, 탐욕에 물든 모습은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의 의도가 들켰다거나 할 때 보이는 반응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한심하다는 듯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그 모습만으로 사람의 진실을 파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그녀가 준을 결백하다고 생각하는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애초에 그가 외도였다면 자신들을 속여서 이곳까지 데리고 올 필요가 없었다. 던전을 찾기위해서 자신들을 이용했다고 했다고 쳐도, 굳이 번거롭게 이 안에서까지 같이 행동할 이유따윈 없었다. 그냥 자신들을 모두 죽이고 그랑튀르를 죽이러 갔어도 될 문제다. 그는 충분히 그만한 힘이 있었다.
“하지만, 미스틸테인님. 저 자가 지금 우리들을 공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볼칸은 여전히 준에 대한 적의를 감추지 않고 있었다. 루나는 고개를 저었다. 군인이란 상명하복에 길들여진 존재다.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 외의 생각을 좀처럼 떠올리지 못한다.
그것은 이곳에 있는 다른 헌터들도 그리 다를 바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비싸보이는 물건을 낼름 삼키려는 준에 대한 적개심이 다른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그들의 사고를 마비시킨 것이다.
“애초에 먼저 오해한 건 이쪽이에요.”
“하지만 저자는 충분히 수상합니다.”
“그래서요? 수상하다는 이유만으로 지금 저 사람을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요? 그랑튀르를 죽인 사람을?”
루나의 말에 볼칸이 입을 다물었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그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하지만 그녀가 준을 편든다는 생각이 들자,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가 그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왔다.
“이 정도 숫자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하. 그랑튀르에게 쫄아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 놈들이 혓바닥은 길구나. 그럼 어디 한번 덤벼보시던가.”
준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로서는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었다. 군인을 죽이게 된다면 분명히 더 많은 죄가 더해지고, 최악의 경우 그랑튀르처럼 수배가 될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냥 죄다 쓸어버리고 그랑튀르가 그랬다고 우기면 그만이었다.
과연 그래도 되는 것 인가하는 의문은 들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당한다는 사실은 그가 헌터가 되고나서 가장 크게 얻은 교훈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자신을 악으로 단정지은 사람들 앞에서 그들을 말로서 설득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준의 생각을 읽은 루나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이러다가는 정말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십중팔구 패배하는 건 이쪽이리라.
“잠시만요.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루나는 준을 향해 그렇게 말하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큰 소리로 헌터들을 향해 소리쳤다.
“정신차려! 이 멍청이들아!”
실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금까지 조용하고, 항상 예의바르게 행동했던 루나의 갑작스런 폭발에 모두들 할 말을 잃은 것이다.
준도 내심 놀라고 있었다. 이런 곳까지 따라올 정도로 강단이 있는 여자라고는 생각했지만, 열댓 명의 헌터들에게 욕설을 퍼부을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뒤에서 보니 루나의 목덜미에서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것이 단지 소리를 지르느라 흥분한 때문인지, 아니면 욕설을 뱉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아. 하아.
그녀는 조용히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입술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볼칸.”
“네, 네?”
자신이 불릴거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볼칸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이번 탐사단의 리더가 누구죠?”
“당신입니다.”
연구소와 군인들 사이에 직접적으로 직위의 상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볼칸의 지위가 루나보다는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이번탐사단의 주체는 루나 미스틸테인이었고 리더 역시 그녀였다. 절대적이지는 않더라도 탐사단을 이끌고 행동하는데 그녀의 의견이 가장 우선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면 제 명령을 따라주세요. 준 알스버그에 대한 적대적 행위는 불가합니다.”
“...알겠습니다.”
뭔가 할 말이 있어보이는 볼칸이었지만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는 않고 물러섰다.
“그리고 바스라님.”
“...뭔가?”
순간적으로 기백에 밀려 볼칸처럼 존댓말을 할 뻔했던 바스라는 가까스로 자신을 추스르고 입을 열었다.
“수형자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나요?”
사실 이 알카트뢰즈에서 그런 경우는 허다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힘이 센 놈이 그냥 모든 것을 가져간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비공식적인 일이다. 엄연히 ‘공식적으로’ 알카트뢰즈에는 그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보안관의 중재를 받아야 한다.”
“보안관이 없다면요?”
“권한이 있는 관리자에 의해 약식판결을 진행한다.”
“이 자리에 그런 관리자가 있나요?”
“...후. 알겠다. 마음대로 하게.”
권한이 있는 관리자라는 말은 사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말이었다. 즉, 연합정부 쪽 인사라면 누구든지 관리자가 될 수 있었다.
바스라가 한숨을 쉬며 물러났다. 그 모습에 루나가 천천히 몸을 돌려 준에게로 다가갔다. 볼칸이 순간적으로 움찔 했지만, 더 이상 그녀를 말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루나는 준의 두 걸음 앞까지 다가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제가 처음부터 오해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대로 싸웠어도 별 불만이 없는데.”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나선겁니다.”
“그 이야기는 내가 싸우려 들지 않았다면 나서지 않았을 거란 이야기인가?”
“...어쩌면요. 그에 대한 변명은 하지 않을게요. 그것까지 포함해서 다시한번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루나는 낮지만 힘 있는 말투로 그렇게 입을 열었다. 준은 가만히 그녀를 쳐다보다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화를 낼 힘도 사라지게 만드는 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준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까지 온데는 자신의 탓도 있었다. 순간적인 오해였지만 그 오해가 쌓이게 된데는 준의 이상한 행동이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는 없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일방적인 매도를 당한 것을 참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루나 미스틸테인은 자신에게 그 참을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다면 적당한 선에서 덮어주는 것도 그녀의 얼굴을 봐서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넘어가는 것도 영 내키지 않았다. 어쨌든 자신을 매도한 것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뒤쪽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헌터들이었다. 사과를 할 것이라면 그녀가 아니라 그들이 해야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노려보는 볼칸의 눈빛이 어지간히 거슬렸다.
‘저 자식이...’
준의 머리가 슬쩍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걸로 이번 일을 전부 용서하는 건 아니야. 멀쩡한 사람을 외도취급하다니,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거 아냐?”
“어떻게 해야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뭐, 이정도로 용서하지.”
“무슨... 아?”
준은 루나의 허리를 잡고 가볍게 당겼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자연스럽게 준의 품에 안겼고, 준은 당혹감과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져 있던 루나의 얼굴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어엇? 야! 너!”
볼칸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그런 준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준은 그런 그의 반응을 무시하며 그대로 루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마주쳤다.
“읍...”
순간적으로 반항하는 듯한 움직임이 느껴졌지만 준은 손의 힘을 풀지 않았다. 반항도 잠시, 결국 그녀는 포기한 듯 준의 움직임을 받아들였다.
마치 영원같은 시간이 지나고, 준은 그녀에게서 고개를 떼었다.
“하...”
루나에게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오고, 준은 만족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괜찮군.”
“저 자식이!”
준은 돌연 불칸이 자신을 향해 검을 빼어들고 달려드는 것을 보았다. 황급히 그의 곁에 있던 부하들이 그를 뜯어말렸다. 어쨌든 머리가 차가워진 그들은 지금 상황의 주도권을 준이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준은 그런 볼칸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세웠다.
“사람을 매도한 대가야.”
으득!
“죽여버릴거야! 이 자식!”
불칸이 결국 부하들을 뿌리치고 준을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그런 볼칸의 앞으로 루나가 끼어들었다.
“제 명령을 잊은 건 아니겠지요?”
“하, 하지만 저 자식이... 너를...!”
“볼칸.”
“으...”
“부탁이니 여기서 그만해요. 더 이상의 분쟁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볼칸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이내 검을 늘어뜨렸다. 돌아서면서 준을 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지만, 준은 그저 어깨를 으쓱 할 뿐이었다.
“정신차렸으면 결정체나 찾으러 다녀. 엄한 사람 붙잡고 실랑이 하지말고.”
준의 말에 볼칸의 어깨가 움찔했지만 더 이상 덤벼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준의 손에 던전의 핵이 있는 이상 외도가 나타날 위험은 없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기에 볼칸과 바스라, 두 팀으로 나뉘어 던전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사라진 방에 루나와 준만이 남겨졌다. 그녀를 데리고 움직이려던 불칸은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는 바람에 고개를 떨구고는 사라졌다.
결정체를 조사해야한다는 그녀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으음... 이거 곤란하군.’
머리가 차가워지고 나자 준은 난감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충동적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순간적으로 화가났고, 그 대상이 볼칸이었고, 그를 가장 화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 순간 자신의 눈앞에 있던 루나 미스틸테인의 모습이 유혹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그 행위가 오로지 자신의 분노를 풀기 위한 행동이었고 그 방법이 올바르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그것이 그녀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부분은 이제와서 그가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몫이었고 그녀가 자신을 비난하고 고소한들 준이 말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건 그것대로 그녀를 능멸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우. 내가 왜 그랬을까.’
일단 모든 것을 떠나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에로신을 연출한 셈이다. 솔직히 말해 처음이기도 했다. 자신이 그럴진대, 눈앞의 여자는 더욱 곤란할 것이다.
어찌보면 그녀는 괜히 가운데서 중재를 하려다가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일단 결정체를 좀 보여줄 수 있을까요?”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 준을 향해 루나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방금전의 일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눈치였다. 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향해 결정체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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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생각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