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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현세대에서 힐러의 존재는 굉장히 귀하다. 비록 작은 생채기 정도만 회복시킬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낮은 힐러들도 있지만, 최소 레이드 현장에서 도움이 될 정도의 힐러라고 하면 그야말로 엄청나게 귀한 몸이었다.
출혈을 멎게 하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정도의 능력은 땅을 부수고 손에서 불을 쏴대는 것에 비하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필요한 이들에게는 그 어떤 능력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수가 적은 힐러들인데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은 너무 많다는 사실이었다. 조금만 능력이 있으면 유명한 레이드 팀에서 스카웃해가기 바쁘고, 각 기업에서도 엄청난 연봉을 제시하며 끌어들인다. 게다가 유명한 병원들이나 제약회사등에서도 그들을 영입하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
심지어는 신의 기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종교단체에서도 큰돈을 들여 그들을 유혹하니, 현재의 힐러들은 말그대로 현세대의 귀족계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힐러는 일반대중의 선입관과 달리 종교의 유무에 관계없이 타고나는 능력이었다. 현재 종교단체에서 성자, 혹은 성녀라 불리며 치료행위를 하고 있는 힐러들은 대부분 우연히 신자중에서 능력이 발현된 케이스나, 외부에서 영입한 경우였다.
그런 힐러들의 유무에 따라 교단이 확장되거나 축소되니 종교단체들에서는 필사적으로 그들을 끌어모을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그런 현실을 개탄하기도 하지만 현실이 그런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믿음 보다는 눈앞의 기적을 믿는 법이니까. 머리를 한번 탁 치는 것만으로도 앉은뱅이를 일어나게 하고, 소경을 눈뜨게 하는 기적이 벌어지면 누구라도 열성적인 신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원하는 곳이 많다보니 정작 레이드 현장에서 힐러를 찾아보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아. 어디서 힐러 하나 구할 수 없으려나.’
만약 그를 펠로우쉽으로 엮을 수 있다면 준도 힐을 기술로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이 알카트뢰즈에서 나갈 수도 있었다. 힐러의 능력을 가진 귀한 몸을 이런 곳에서 죽어나가게 둘 연합의 인간들이 아니었다.
쿵!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보니, 어느새 크립토나이트가 혀를 빼물고 바닥에 쓰러졌다. 등껍질은 거의 반정도 부수어져 있었다. 하급헌터가 깨뜨릴 만한 것이 아닌데 확실히 니들리스 해머의 위력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었다.
“결정체는 일단 제가 가지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분배는 던전을 클리어한 이후에 하기로 하죠.”
일행 중에서는 가장 경험이 많고 나이가 많은 바스라의 말이었으니 딱히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헌데 결정체를 채취하기 위해 크립토나이트의 몸을 뒤지던 바스라의 표정이 이상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걸린다 싶을 즈음, 바스라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결정체가 없다.”
“뭐라고?”
“몰래 감춘 것 아니야?”
바스라의 말에 헌터들이 동요했다. 녀석은 틀림없는 붉은색 특이외도였고, 그렇다면 당연히 결정체가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가 결정체를 채취하기 위해서 외도의 몸을 들쑤시는 것을 모두가 확인했고, 그 와중에 몰래 숨기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결국 의심을 했던 이들도, 바스라의 말이 맞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건지...”
바스라가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때 갑자기 크립토나이트의 몸이 서서히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던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그리 많지 않다보니 하나하나가 생소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젠장.”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결정체를 얻을 수 없다면 사체라도 챙겨야 했다. 특이외도의 사체는 일반외도의 그것보다 훨씬 더 비싸게 받을 수 있다. 헌데 그것마저 저렇게 사라지니 돈이 허공에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저렇게 사라진 특이외도의 신체가 다시 엑조틱 에너지에 의해서 재구성 되어서 부활하는 방식인가? 이래저래 신기한 구석이 많은 곳이군. 뭐, 덕분에 나만 이득을 보게 된 건 좀 미안하군.’
녀석의 몸에서 결정체가 나오지 않자, 준이 가장 먼저 한일은 정보창을 열어 경험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경험치가 상승했음을 확인한 준은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 대강 이해할 수 있었다.
던전의 외도는 주기적으로 리스폰 된다. 죽었던 녀석이 다시 살아나는 것인데, 녀석의 몸에서 결정체가 사라진 것도 후에 그 에너지를 이용하여 다시금 녀석의 신체를 재구성하기 위함일 터였다.
하지만 지금 그 에너지를 준이 흡수해버렸으니 결국 그 크립토나이트가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준이 죽인 외도는 리스폰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굳이 할필요는 없었다. 실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애써 표정관리를 마친 준은 뒤쪽에 쓰러진 헌터를 향해 부축해 일으켰다.
“괜찮나?”
“크윽. 그럭저럭.”
그는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슴에 통증을 느끼는 것으로 보아, 갈비뼈 쪽이 상한 것 같았지만 전투자체는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전투력은 상당히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반복해서 외도를 사냥하면서 나아가다 보니 일행들의 몸에 점점 피로와 상처가 누적되어갔다. 아무리 하급헌터들이라고 할지라도 특이외도를 사냥할 때 상처하나 없이 전투를 이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아무리 잡아도 결정체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자 사기도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었다. 몇몇에게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훌리오가 옆구리가 뜯어져 나가는 중상으로 리타이어하자, 일행은 잠시 멈춰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훌리오는 일단 응급처치를 한 상태였다. 다행히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할 수는 없었다.
“이만 돌아갑시다. 여기서 더 있다가는 건지는 것도 없이 목숨만 잃게 생겼소.”
나중에 합류한 팀의 리더인 크루시오라는 자가 입을 열었다. 그는 온몸에 무거워보이는 중장갑을 잔뜩 껴입고 있었다. 저런 스타일은 비교적 작고 민첩성이 높은 외도를 탱킹할 때 좋았다. 그러다보니 던전에서는 아직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나타난 녀석들이 골렘과 크립토나이트 같은 대형외도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바스라의 태도는 확고했다.
“하지만 탱커 하나가 전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지않소. 여기서 당신이나, 나 중에 한명만 리타이어 된다고 해도 전원이 위험할 수 있단 말이오.”
“겁이 나는 모양이지?”
“큭. 그런말이 아니지...”
“우리는 이대로 간다. 돌아갈 거라면 돌아가도 좋아. 하지만 돌아가는 길이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겠지.”
바스라의 말대로였다. 던전의 외도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리스폰된다. 그렇다면 돌아가는 길에도 지금까지 만났던 녀석들과 다시 싸워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준이 엑조틱 에너지를 흡수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바스라의 태도가 워낙 확고하자 크루시오도 별수 없이 물러섰다.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아직 이곳에서 얻은 것 하나없었다. 게다가 두 사람이 다치긴 했지만 전투가 불가능할 정도로 다친 것은 훌리오 하나뿐이었다.
“일단 훌리오를 부축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바스라가 입을 열었다. 그를 이곳에 두고간다는 것은 죽게 내버려두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주위를 죽 둘러보다가 준에게서 시선을 멈추었다.
산전수전 모두 겪은 헌터들 사이에서 유난히 앳된 모습을 하고 있는 녀석이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군인과 같이 있던 것이 맘에 걸렸는데, 실력도 별볼일 없는 듯 했으니 차라리 훌리오를 맡기는 것이 나아보였다.
“자네가 훌리오를 부축하도록 하게.”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팀원이 아니다 보니 노골적으로 배척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그리 곱지 않다는 것은 처음 던전을 들어 올 때부터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무시당하는 것이 기분좋을리 없다.
조금은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인벤에서 스쿠터를 꺼내들었다.
“헉?”
“뭐, 뭐야?”
“스쿠터?”
“저게 왜 여기에 있어? 아니, 그보다 어디서 나온거야?”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스쿠터에 다들 헉소리를 내며 놀랐다. 준은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훌리오를 스쿠터에 태웠다. 던전안에서 스쿠터를 타는 게 보기에는 이상할지 몰라도, 걸어서 움직이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더 나았다.
“그건 무슨 능력인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갑자기 스쿠터가 나타났으니 궁금한 것이 사람의 본능이었다. 대놓고 준을 무시했던 바스라도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알것없어.”
“흠...”
바스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지만, 애초에 먼저 사람을 무시한 것은 그쪽이었다.
사실 누가 봐도 신기한 능력이란 것은 부러움과 동시에 질투의 대상이 된다. 때문에 가능하면 이런 건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시를 당하고서 가만히 있을 만큼 너그럽지는 않았다. 최소한 이전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이곳에서는 달라져야했다.
거기다가 현실적으로 중상을 입은 사람을 걷게 만들 수는 없다는 판단도 서있었다.
‘다음에는 들것이라도 준비해두어야겠군.’
바스라는 더 캐묻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단호하게 등을 돌리는 준의 태도에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마법사들은 대체로 사교성이 떨어지고 폐쇄적인 성격들이 많았다. 게다가 워낙 능력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처음 보는 능력이라고 할지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하고 그는 판단했다.
다다다-
조용한 던전내에서 스쿠터의 배기음만이 울렸다. 일행은 조용히 움직이면서도 준이 움직이고 있는 스쿠터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훌리오는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린 채 스쿠터에 타고 있었고, 핸들을 잡아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은 곁에서 서서 움직이고 있는 준이었다.
‘흠. 이제 슬슬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
미니맵을 보자 처음보다 절반정도는 가까이 온 듯했다. 그때 바스라가 손을 들어 일행을 멈춰세웠다.
그가 라이트를 앞쪽으로 비추었다. 멀리 인간의 시체가 보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피비린내가 느껴질 정도로 참혹한 시신이었다. 머리는 뜯어먹힌 듯 이미 사라져 있었고, 신체의 훼손도 심해 제대로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도망친 녀석들인 모양이군.”
바스라가 입을 열었다. 던전 앞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도망친 다섯 명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급한대로 도망치긴 했지만 그곳이 던전 인 이상 예견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을 버려둔 채, 조금더 전진하지 이전에 비해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 안은 별다른 광원이 없음에도 앞을 보는데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밝았다. 마치 동굴 전체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꽤나 안락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쉬어가는 곳인가?”
누군가 농담조로 이야기 하자, 일행들이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일단 일행은 넓은 공동 안으로 들어섰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 공동을 중심으로 몇 갈래의 길이 나 있었다. 아마 그랑튀르도 이곳에서 하나의 길을 택해서 움직였을 것이다. 준이 미니맵을 펼쳐봤지만 길이 모두 밝혀지지 않은 이상 그것만으로는 정확한 길을 알기 힘들었다. 그래도 대략적인 위치로 보아, 북쪽에 나있는 두 개의 길 중 하나를 택해야 할 것 같았다.
일행이 지고 있던 짐을 잠시 내려두고 휴식을 취하는 사이 준이 주변을 살피며 동굴 입구를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그랑튀르가 어느쪽으로 갔는지 그 흔적을 찾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준의 능력으로는 제대로 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는 일행들이 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훌리오는 힘겹게 숨을 쉬며 고통을 억누르고 있었다. 바스라가 그에게 진통제를 주사하고 나자 조금 나아지는 듯 혈색이 돌아왔다.
“아프면 말 해. 참지말고.”
“하. 보스. 그거 비싸잖아.”
훌리오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진통제라든가, 출혈방지 팩이라던가 하는 응급치료 키트들은 대부분 가격이 상당히 비쌌다. 알카트뢰즈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나중에 갚아.”
바스라는 그렇게 말하며 훌리오를 바닥에 눕혔다.
준은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바스라가 그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할말있나? 꼬맹이?”
“날 보는 녀석들은 왜 하나같이 그렇게 부르는 거지?”
애송이, 꼬맹이, 보이 등 준을 부르는 사람들의 호칭은 다르긴 해도 대부분 의미는 같았다. 어쨌든 바스라는 썩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건 준도 마찬가지였으니 딱히 상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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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12시 전에 올리는 군요. 어쨌든 오늘 분량은 여기서 끝입니다.
다음편은 내일 아침에 올라올거에요.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