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46화 (46/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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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출현

쿵!

올센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준은 살인의 씁쓸한 뒷맛을 느끼며 그의 시신으로 부터 등을 돌렸다. 자신이 죽인 사람의 무덤을 만들어 주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죽은자의 품을 뒤지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보다 해야 할 일이 더 있었다.

“아직 한 놈 남았지.”

준은 스쿠터를 타고 도망 간 녀석의 흔적을 쫓았다. 올센을 쫓기 전에 더블애로우를 날렸고, 마법화살이 그자의 다리를 스치는 것을 확인 했었다.

“여기서부터로군.”

준은 핏자국을 확인하고는 그것을 따라 달렸다. 이미 시간이 꽤 지난 다음이었기 때문에 쉽사리 꼬리가 잡히지 않았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하급헌터쯤 되면 아마추어 마라톤 선수 정도의 체력정도는 가지고 있다. 아무리 출혈이 있다고 한들 상처가 심하지 않으면 그 상대로 십수 킬로미터 정도는 우습게 도망칠 수 있었다.

“놓친 건가.”

계속 이어지던 출혈이 드문드문 눈에 띄더니 어느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 추적술 같은 기술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끝까지 쫓아갔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준의 능력으로는 도망자를 찾는 것은 무리였다.

“어쩔 수 없지. 돌아가자.”

맵을 펼친 준은 대흉근이 있는 위치를 확인하고는 그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십여분 쯤 달리니 대흉근이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근처에 사람의 시신으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제대로 내리찍었는지 형체를 제대로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대흉근이 준을 확인하고는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칭찬.

-잘했다.

준은 애써 시신에서 고개를 돌리고는 대흉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외도를 이용해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이 들었지만, 나타났을 때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졌다.

‘어차피 이런 짓을 한두 번 한 놈들도 아닐거야.’

당연하다는 듯이 다른 이의 목숨을 빼앗으려 했던 놈들이다. 과연 운이 없게도 그 첫 대상이 준이었을까? 절대 그럴리가 없다. 적어도 몇 번 이상은 이런 행동을 반복해 왔을 것이다.

준은 대흉근에게 결정체 하나를 먹인 후, 그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굳이 결정체 까지 줄 필요는 없지만 어차피 꾸준히 키울 생각이었기에 이렇게 말을 잘 들을때마다 결정체를 주는 걸로 호감도를 높여두려는 것이다.

키에엑!

쿵!

파워덩크를 내리꽂자 칼리시의 등이 퍽 하고 터지면서 사방으로 체액을 뿌렸다.

치익-

“으...”

준은 체력이 감소한다는 시스템메시지를 들으며 몸에 묻은 산성용액을 준비한 수건으로 닦았다. 시커멓게 타들어간 수건을 바닥에 버린 준은 인벤토리에서 옷을 꺼내 갈아입었다. 이미 상의의 절반은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칼리시의 몸에서 결정체를 꺼내는 것은 골렘의 그것만큼이나 어려웠다. 녀석의 체액은 강한 산성을 띄고 있기에 손을 넣다보면 자연히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체력이 깎여나갔다.

그래서 아예 결정체 채취용 칼을 따로 구입했다.

‘이거 꽤나 유용하군.’

준은 외날의 정글도를 이용해 결정체를 분리하며 생각했다. 준의 근처에는 총 세마리의 칼리시가 쓰러져 있었다. 예전 같으면 일일이 부산물을 채취했겠지만, 지금의 준은 외도의 부산물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거기에 시간을 들일 바에야 사냥을 한 번 더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준은 순조롭게 사냥을 이어 나갔다.

스쿠터를 타고 신나게 달리다보면 소음때문인지 칼리시든 골렘이든 뭐든 나타났다. 그러면 잠시 멈춰 대흉근을 소환한다. 그렇게 되면 인근에 있던 다른 외도들까지 미친 듯이 달려온다.

펠로우쉽을 활성화 시킬 경우 델타가 일정 범위 안에 있는 외도들에게 공격신호를 전달하는 모양이었다.

‘외도를 유혹하는 신호 같은 것이 따로 있는 건가.’

녀석들의 어그로를 끌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개발된다면 레이드는 좀 더 발전할 여지가 있을 것이었다. 아직까지는 탱커의 전투기술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었지만 지금처럼 특정 방법을 통해 외도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한 곳에 외도를 모아 처리하는 방법 같은 것도 생각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델타의 원리가 분석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뭐, 천천히 생각하자고.’

결정체를 모두 분리한 준은 그것들을 인벤에 넣고는 이동을 시작했다. 대흉근이 있으니 확실히 사냥이 수월했다. 골렙협곡에서 돌아다니고 있을 1,2,3호도 조만간 회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렘군단으로 나하라 인근을 전부 쓸어버릴수도 있겠군.’

현재 시점에서 추가할 수 있는 펠로우쉽은 3명이다. 일단은 비워둘 생각이었지만 상황을 봐서 전부 채울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정말 준 혼자서 나하라 인근의 외도들을 싹쓸이 할 수도 있었다.

‘상도라는 것도 있으니, 조금 멀리서 사냥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군.’

준이 외도를 다 쓸어버리면 나하라의 헌터들은 굶을 수밖에 없다. 굳이 남의 사정 봐줄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행성은 넓고 굳이 나하라에 집착할 필요도 없었다. 괜히 이곳에서 외도들을 싹쓸이 했다가 나하라에 사람이 없어지게 되면 준으로서도 손해였다. 기껏 만들어 두었던 인맥이 쓸모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달리다 보니 어느새 화염봉우리의 초입에 도달할 수 있었다. 출발한지 한 시간 만에 도착했으니, 막스 일행이 도착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은 셈이다.

잠시 스쿠터를 세워놓고 그늘을 찾아 쉬고 있자니 금방 무료해졌다.

“생각을 잘못했어. 차라리 나 혼자 움직이는 편이 낫지.”

준이 애초에 막스와 함께 행동하려고 했던 것은 이 근처에 다른 헌터, 특히 그랑튀르 형제단 같은 놈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혼자서도 어느정도는 상대할 자신이 있었지만 기왕이면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편이 좀 더 안전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꼼짝없이 기다려야 된다면 그건 그거대로 고역이었다.

준은 잠시 이곳에서 기다려야 할지 혼자서 탐색을 나서야 할지 고민했다. 다른 것이 걱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랑튀르 형제단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그랑튀르 뒤부어는 중급헌터다. 하급헌터와 중급헌터의 차이는 일반외도와 특이외도 만큼 실력 차가 난다. 방금 전에 하급헌터들에게 습격을 당하고도 손쉽게 물리친 터라 약간 자신감이 상승해 있었지만 중급헌터가 주는 이름값은 무거웠다.

왜냐하면 준이 알고 있는 유일한 중급헌터가 다름아닌 셀럼이었기 때문이다. 준에게 있어 중급헌터란 정말 ‘초인’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자들이었다.

바쉬르에서 셀럼이 툴리오에게 당하고 있었던 것도 방심하고 있던 차에 기습을 당했기 때문이 컸다. 게다가 당시 셀럼은 몇 번을 연속으로 전투를 치르던 와중이었다. 마나의 고갈이 심한 상태에서 화살이 옆구리에 박히는 치명상을 입고도 거의 대등하게 싸웠던 것을 감안해야했다.

“지금 내가 셀럼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준은 확신할 수 없었다. 셀럼은 일격에 붉은색 특이외도의 실드를 박살내고 육체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할 정도의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무서운 것은 그가 딜러가 아니라 탱커라는 점 때문이었다.

과연 지금 시점에서 준의 딜량이 셀럼의 그것보다 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준에게도 여러 가지 다른 능력이 있었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스킬도 두 개나 가지고 있었고, 전투중에 체력과 마나를 회복시킬 수 있는 패시브 스킬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일반 무기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한 위력을 내는 니들리스 시리즈를 보유하고 있었다. 인간을 상대로 하는 싸움에서는 니들리스 스패너를 이용해서 스턴효과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대흉근과 그 똘마니인 골렘 1,2,3호의 존재는 다른 모든 능력을 압도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어싿. 셀럼에게 탱킹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준에게는 탱킹을 할 수 있는 펫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준은 셀럼을 이길거라는 뚜렷한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만큼 준에게 셀럼의 이미지는 강하게 남아 있었다.

때문에 같은 중급이라는 그랑튀르는 얼마나 강력할까, 하고 생각하면 불안해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준이 착각하는 점이 있었다. 셀럼이 중급헌터 중에서도 실력이 굉장히 좋은 편이라는 것이다. 몇 년 만 더 경험을 쌓는다면 스스로도 상급에 올라설 수 있을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뛰어난 헌터였고, 실제로 그는 주황색 외도와도 일대일이 가능할 정도로 강했다. 보통의 중급헌터들이 팀을 짜서 주황색 외도를 잡는 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실력의 차는 명백한 것이다.

하지만 준 입장에서는 알고 있는 중급헌터가 셀럼밖에 없다보니 착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조심해서 움직이자.’

그래도 언제까지 이곳에서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라,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홀로 탐사를 다녀보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그들이 오려면 아직 한 세월이다.

준은 스쿠터를 인벤에 넣고 화염봉우리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경사는 완만했지만 지형이 울퉁불퉁해서 스쿠터로는 이동할 수 없는 지형이었다.

산이라고는 해도 큰 나무는 없었다. 기껏해야 허리정도까지 오는 풀들이었고, 그것도 띄엄띄엄 자라고 있었다. 때문에 혹여 누군가 습격을 가한다면 언덕 위쪽이나 바위 뒤편처럼 제한된 위치만이 가능했다.

하지만 준이 이쪽으로 가는 것은 예상에 없는 행동이었다. 만약 그를 노리는 사람이 또 있다 할지라도 갑작스럽게 저런 곳에서 나타나기는 힘든 일이다.

한참을 걷던 준은 이렇게는 웜홀을 찾을 수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무작정 아무런 정보도 없이 발품을 파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던전이라는 건 상시적으로 열려있는 웜홀이라고 했었지?”

간단하게 생각해서, 웜홀이 열려있다면 그곳에는 계속해서 외도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화염봉우리 근처에서 유난히 외도의 숫자가 많은 곳을 찾으면 던전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현재 가지고 있는 정보가 상점에서 얻은 지도를 바탕으로 한 예전 정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찾을 확률이 더 높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은 맵을 열어 화염봉우리 근처를 확대했다. 외도의 분포도에 따르면 이 근처에서 가장 외도의 밀집도가 높은 곳은 현재 위치에서 직선으로 1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곳이다.

준은 방향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서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인간과 외도에 싸움에서는 저런 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준은 빠르게 움직여 소리의 진원지로 향했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 언덕을 넘자, 그 아래로 산의 능선이 이어져 있었고 헌터들로 보이는 이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음?”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자들을 살펴보니 한쪽은 카키색 군복을 입고 있었고, 한쪽은 제멋대로 입고 있었다. 딱 봐도 연합 측 헌터와 알카트뢰즈의 헌터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이거... 어느쪽을 도와줘야 하는거지?’

상황이 확실히 파악이 되지 않다보니, 어느 쪽도 함부로 도울 수 없었다. 원칙대로라면 연합측을 도와야하는 것이 맞긴했다. 어쨌든 준은 연합의 시민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준은 알카트뢰즈의 수형자였다. 양쪽에 모두 속한 이상 사정도 모르고 끼어들었다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것보다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는 쪽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앙! 창!

상황은 팽팽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양측 모두 합해 약 이십 여명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숫자 자체는 수형자들 쪽이 더 많았지만, 군인들 쪽도 상당한 실력자들이 모여있는 것인지 쉽사리 밀리지 않았다.

헌데 전투를 벌이는 헌터들의 사이에서 준은 익숙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형자 헌터들의 드러난 신체 부분에서 불꽃무늬의 독특한 문신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 저거.’

준은 그 문신을 본적이 있었다. 다름아닌 현상수배전단에 있던 그랑튀르 형제단의 표식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준은 언덕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을 이런 곳에 밀어넣은 정부 쪽 인간들이 마음에 안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랑튀르 형제단은 외도가 아닌 헌터들을 사냥하면서 살아가는 놈들이다.

‘일단은 저쪽을 돕자.’

좁은 지역에 저렇게 밀집해서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는 더블애로우 보다는 파동권 쪽이 낫다는 판단을 한 준이 두 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러자 마나가 쑥 빠지며 강력한 기의 구체가 그랑튀르 형제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퍼엉!

“큭! 뭐냐? 어디서 날아온거야?”

“저기 언덕 위!”

“증원군인가?”

“아니, 군인은 아닌데?”

“누가 저 녀석 좀 잡아!”

갑자기 나타난 준의 존재로 인해 팽팽하던 싸움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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