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7 ----------------------------------------------
알카트뢰즈
나하라 마을에 도착한 준은 상점에서 무기를 구매한 다음 니들리스 두 개를 더 만들었다. 둘다 B급이었고 품질에도 이상이 없었다. 대가로 준은 15크리스탈과 함께 골렘의 결정체를 떼어내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거 약간 연습이 필요한 건데. 결정체를 이렇게 한손에 들고, 거기에 마나를 흘려넣어.”
“음... 이렇게?”
준은 손에 든 붉은 색 결정체에 마나를 흘려 넣었다. 그러자 손에서 마치 무언가 불타오르는 듯한 뜨거움을 느꼈다.
“으음.”
“뜨겁지? 결정체 내부의 열기에 동조하면서 생기는 현상이야. 그럼 이제 그 겉을 감싸듯이, 마나를 돌려봐.”
“어, 어떻게?”
“마나를 얇게 펴서 바른다는 느낌으로,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익숙해지면 순간적으로 할 수 있어.”
준은 몇 번에 걸친 시도 끝에 가까스로 흉내를 낼 수 있었다. 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막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이게 중요해. 순간적으로 마나를 동결시켜. 마치 얼음이 어는 것처럼.”
“후. 쉽지 않은데.”
준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막스가 할 때는 순간적으로 끝나는 과정이라 쉬울 줄알았는데 생각보다 과정이 복잡했다.
“연습해. 나도 꽤 오래걸렸으니까. 그게 능숙해지면 결정체에서 흘러나오는 엑조틱 에너지를 일순간이지만 차단할 수 있어. 그렇게 되면 골렘에게 전해지는 결정체 에너지가 사라지면서 놈의 몸이 무너지게 되는거지.”
“흠. 이 방법을 다른 놈들에게는 사용할 수 없는 건가?”
준의 말에 막스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안될걸? 생물형 외도들은 특히 엑조틱 결정체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없더라도 가지고 있는 생명력 자체를 전부 소모하지 않는 이상 죽지 않으니까. 그짓 하느라 시간 끌면 괜히 공격당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건 골렘같이 껍데기만 부수고 결정체를 빼내올때만 유효한 기술이야.”
“흠.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쓸모없는 기술이야. 이런걸 10크리스탈이나 받으려고 하다니 사기꾼이나 다름없어.”
“크. 이 자식. 기껏 알려줬더니.”
준의 말에 막스가 기가차다는 듯 웃었다. 그래도 기분나빠하는 것 같진 않았다. 어쨌든 니들리스 2개는 착실히 챙겨갔으니까.
준에게는 현재 16개의 크리스탈이 있었다. 원래 두 개를 가지고 있었고, 새 니들리스 두 개 만들기 위해서 무기를 사느라 하나를 사용했다. 거기에 15개를 새로 받았으니 모두 합해 16개의 크리스탈이 있었다.
개중에서 역시 두 개를 남기고 14개의 크리스탈을 전부 먹어버리기로 결정했다. 가지고 있어봐야 도난당할 걱정만 들 뿐이었다.
그 덕에 하루만에 총 경험치가 151이 되어버렸다. 니들리스 2개 제작을 위한 경험치 8을 제한 숫자였다.
‘이 장사 꽤나 짭짤한데...?’
노가다와 장사만으로도 충분히 5레벨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약간 자괴감이 들기는 했지만 일단 5레벨을 찍을때까지는 신경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붉은 색 특이외도를 안전하게 사냥할 수 있을테고, 일반외도 노가다에서 벗어나 좀 더 헌터다운 사냥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장사는 포기할 수 없지.’
제작물품을 팔려는 생각은 이곳에 오기전부터 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외도를 잡는 것 보다는 남들이 만들지 못하는 제작품을 팔아 얻는 수익이 상당하다는 사실은 이미 세일럼에서부터 깨닫고 있었다.
‘니들리스를 좀 더 많이 팔 수 있으면 좋을텐데.’
제작 숙련도도 45퍼센트를 찍었다. 이 추세대로 조금만 더 하면 제작스킬도 레벨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상점에다가 팔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상점에서도 무기는 취급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쪽에서 무기를 팔 수 있지 않을 까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다음날.
간단하게 씻은 준은 니들리스 판매 상담을 위해 숙소를 나섰다. 막 상점으로 돌아서려 하는 준의 시야에 멀리서 먼지구름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차량이 들어왔다.
“낙타만 있는 게 아니었군...”
사실 22세기에 낙타는 좀 너무한 감이 있었다.
끼익-
차량이 먼지를 내며 상점 앞에 정차했다. 차량은 꽤나 덩치가 있는 군용 험비였다. 준은 손을 흔들어 먼지를 날려 보냈다. 곧 군용 험비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카우보이모자와 레이벤 선글라스를 쓴, 전형적인 양키스타일의 중년사내였다. 베이지색 셔츠에서 번쩍이는 금색브로치가 눈에 띄었다. 허리에는 권총집을 차고 있었다.
그가 나타나자, 근처의 다른 사람들이 모자를 들어 인사했다. 친밀감을 표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그냥 적당히 아는 척이나 하는 느낌이었다.
뒤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정부 쪽 사람인 듯 했다.
“오우. 보안관님.”
상점주인이 나와서 그를 맞이했다.
‘보안관님?’
준은 예전에 본 영화를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보안관이 등장하는 미국서부개척시대의 이야기는 아직도 영화의 주 소재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보안관이 현실로 존재하는 곳에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연합정부는 수형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결정체를 생산하는 일종의 값싼 노동자로 취급한다. 때문에 헌터들을 거의 방목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알카트뢰즈 행성의 도시들이라 해도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었다. 무법지대가 되어서 살인강도가 만연하면 연합에선 오히려 손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치안을 위해 너무 많은 인원을 투입하면 그만큼 정부예산이 낭비되고, 그렇다고 아예 방치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모른다. 오랫동안 그 숫자는 고무줄처럼 늘어나거나 줄어들었고 최근에 와서는 인구 1000명당 한 명 정도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개척도시를 담당하는 사람은 저렇게 몇 개의 도시를 돌아가며 순찰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하라의 보안관은 닐슨이라는 자로, 연방출신의 군인이었다가 후에 갤럭시 인더스트리로 취업하며 연합으로 적을 옮겼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준에게 관심 밖의 이야기였다. 오히려 그의 시선을 끄는 것은 닐슨보다는 그가 타고 온 차량에 있었다.
‘쩝. 부럽네. 좀 구식에다 기름을 많이 먹긴 해도 오프로드에선 최강인 험비라니. 외도의 습격에도 버틸만큼 튼튼하기도 하고. 기관총이라도 걸어 놓으면 다른 헌터들의 습격에도 안전하겠네.’
준은 험비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런 게 있으면 나하라 인근을 훨씬 더 수월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여기서 가장 빠른 탈것이라고 해봐야 낙타에 불과했으니 준의 눈이 번쩍 뜨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건은?”
상점주인이 물었다. 상점에서 주문한 물건을 가져다주는 일도 보안관의 담당이었다. 한때는 드론으로 물품을 수송한 적도 있지만, 헌터들이 중간에 상품을 탈취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지금처럼 바뀌었다.
“가져왔지. 더 필요한 거 있어?”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험비를 가리켰다.
“주문서는 이미 올렸어. 나중에 확인하면 될거야. 그나저나 이번엔 좀 늦었네.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 그랑튀르 형제단이 근처에 출몰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랑튀르 형제단? 그 녀석들 연쇄강간범들 아닌가?”
“왜 아니겠어. 카랑카에서 도망치더니 여기까지 왔다고 하더라고. 하여튼 현상금 포스터 가지고 왔으니까 가게에도 붙여 놔.”
몇마디를 더 나눈 닐슨과 상점주인은 차량에서 물건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상점에 갈 생각이었던 준이 끼어들었다.
“도와줄까?”
“아. 고마워. 이쪽은 닐슨이라고 보안관이야. 원래 직함은 다르지만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으니까 알 필요 없고. 이쪽은 신입. 장래가 촉망되는 녀석이지.”
“반갑네. 사고만 치지 않으면 나랑 얼굴붉힐 일은 없을거야.”
“반갑다.”
세 명이서 짐을 옮기자 순식간에 일이 끝났다. 준은 상점안에 붙여 놓은 현상금 포스터를 자세히 보았다. 현상금이 100크리스탈이나 되는 녀석이었다. 결정체 백 개면 순식간에 경험치를 천이나 얻을 수 있었다. 약간 구미가 당겼다.
“그랑튀르 뒤부어라는 녀석이 대체 누구지?”
“강간살인으로 170년 형을 받고 알카트뢰즈에 수형된 놈이지. 자기 멋대로 설치고 다니다가 최근 그랑튀르 형제단이라는 이름으로 무리를 이루고는 헌터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고 들었어. 실력이 꽤 좋은 놈들이라 잡기가 어려워서 아예 현상금까지 걸어놓고 놈들을 추적중이야. 여기서도 예전버릇을 못 고치고 강간살인을 저지르고 다닌다는 소문도 있지.”
보안관 닐슨의 말에 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지.”
“하지만 여긴 남자들만 있는데?”
준의 말에 닐슨이 어깨를 으쓱했다.
“사람이란 궁하면 대체재를 찾게 되는 법이야. 어쨌든 너 같이 예쁘장한 녀석들은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가능한 혼자서 돌아다니지 말라고.”
잠깐이나마 준의 머릿속에 상상도가 떠올랐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장면이었다.
“끙. 놈들의 수준은 어느정도지?”
“현상금 포스터가 내걸릴 정도니, 적어도 중급은 넘을거야. 이름에서 알 수 있겠지만 여럿이 돌아다니니까 더 골치아프지.”
현상금이 문제가 아니었다. 잘못하다간 솔로잉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서 조심해야겠군.’
나하라는 사막지형이다. 언덕을 제외하면 몸을 숨겨줄 것이 없기 때문에 일단 만나면 죽어라 도망치거나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럴때는 튼튼한 두다리밖에 믿을 것이 없었다.
준은 고개를 돌려 상점주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혹시 자전거나 오토바이 같은 것도 팔아?”
“안 팔아.”
“어째서?”
“고장나도 수리할 사람이 없어서. 대신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낙타는 어때? 30크리스탈이면 되는데.”
“낙타는 됐고. 만약 내가 알아서 수리하겠다고 하면 팔 수 있는 건가?”
“그러면야 문제될 건 없지. 자전거는 10크리스탈, 오토바이는 50크리스탈.”
“일단 물어만 본거야.”
비싸긴 더럽게 비쌌다. 결정체 50개에 오토바이 하나를 살거면 차라리 전부 경험치로 바꾸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준은 정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상점에서 물건을 구입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보안관이 인사를 하고 상점을 떠났다. 그제서야 준은 상점주인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쪽에서 팔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그러자 상점주인의 시선이 준이 들고 있는 무기에 가 닿았다.
“그거야?”
“눈치 한 번 기가막히네.”
“장사 하루이틀 하나. 그래서 그 건물이나 부술 것 같은 망치를 팔겠다고? 열 개에 결정체 하나주지.”
상점주인이 손가락 열 개를 펴보이며 말했다. 준은 능글맞은 그의 태도에 코웃음을 쳤다.
“내가 아무렴 싸구려 물건을 가져왔으려고.”
“뭐 특별한거라도 있는 거야?”
“외도의 항력을 뚫고 데미지를 주는 능력.”
준의 말에 상점주인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더니 약간 동정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처음부터 너무 빨리 크더니, 미치기도 빨리 미치는 구나.”
“일단 써보고나 말씀하시지?”
“호오. 꽤나 자신있다는 말투구만. 정말 믿어도 되는 건가?”
“벌써 이걸로 재미보는 친구들이 있는데. 가서 확인해봐도 좋아.”
“막스 패거리 말하는 건가?”
“어떻게 알았어?”
상점주인의 말에 준은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그야 그녀석도 이걸 들고 있는 걸 봤으니까. 어째 표정이 싱글벙글하더니 그거때문이었구만.”
“상점주인. 혹시 탐정출신이야? 관찰력이 홈즈급이잖아?”
“밥이라고 불러. 상점주인이 뭐냐. 하여튼 자세한건 알아보면 될테고. 그래 만약 네 말이 진짜라면 그리고 확실한 효과가 보장된다면 꽤나 돈은 되겠지. 얼마를 생각하고 있어?”
밥의 말에 준은 손가락 열 개를 펴들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감사드립니다~
후원쿠폰 주신 검객^^&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수정은 내일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