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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트뢰즈
상점을 나온 준은 나하라를 출발해 북쪽으로 걸었다. 나하라의 암석사막은 하마다라고도 불리는데 모래사막에 비해서 비교적 걷기 쉽고, 지형의 변화가 심하지 않아 길을 잃을 염려도 낮았다.
목적지를 향해 걷기를 한 시간여.
“저기로군.”
멀리 야트막한 언덕이 보였다. 준은 약간 걷는 속도를 늦추어 계속해서 전진했다. 언덕 하나를 넘자 그 아래로 꽤 큰 협곡이 있었다. 그리고 협곡아래에는 상당히 많은 골렘들의 모습이 있었다.
지금까지 만난 놈들과는 조금 다른 녀석들이었다.
“확실히 일반외도라 그런지 좀 작군.”
크기가 약 1미터 정도로 보통 사람 절반보다 약간 큰 정도였다. 형태도 큰 바위가 아니라 크기에 맞는 작은 바위 몇 개가 합쳐져 있는 모습이었다. 상대하기 그리 어려워 보이진 않았다.
준이 맵을 업데이트 하고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이 일반외도의 존재였다. 고민 끝에 특이외도를 사냥하는 것은 아직도 위험부담이 있다고 판단한 준은 우선 일반외도를 잡아 레벨업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맵을 훑어보던 그는 일반외도들이 잔뜩 몰려있는 지역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골렘협곡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비가 오면 강이 되는 간헐하천이었다.
준이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어지간히 인기가 없겠지.’
골렘은 다른 녀석들과 달리 부산물이 거의 없다. 때문에 결정체를 얻을 수 없는 골렘은 헌터들에게 아무런 메리트가 없었다.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잡아봐야 이득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모여들이 큰 무리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지금처럼 한 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골렘들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야 귀찮은 존재이지만, 준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경험치로 보였다.
‘그래도 이정도 잡으려면 마나가 많이 필요할텐데... 그러고보니 장민성에게 마나회복 관련 기술이 있었지.’
준은 펠로우쉽을 열어 배울수 있는 기술목록란을 열었다.
냉철(초급) :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습니다. 전투시에도 평소의 절반만큼 마나를 회복합니다.
호랑이 길드와는 현재 통신이 끊길 정도로 먼 거리에 있기 때문에 기술을 배울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이미 기술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델타에 업로드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경험치 25를 사용하여 일단 ‘냉철’을 배웠다. 다른 것은 몰라도 기술의 효용성을 잘 알고 있는 준이었기에 경험치가 아깝지는 않았다.
‘이렇게 되면 전투중에도 마나가 분당 14정도는 차겠군.’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장기간 전투가 이어지면 분명히 큰 도움이 되는 스킬이었다.
“그럼 가볼까?”
쿵쿵쿵쿵!
준은 니들리스 해머를 들고 협곡을 뛰어 내려갔다. 어차피 몰아서 잡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굳이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는 없었다. 진동때문인지 근처에 있던 십여 마리의 골렘들이 준을 돌아보았다. 기계처럼 일사분란한 놈들의 모습에 신나게 달리던 준도 약간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가 귓가에 속삭이는 듯 했다.
무서워?
그랬다. 싸우는 일은 항상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곧 닥쳐 올 전투의 흥분에 비하면 티끌같은 감정에 불과했다.
준이 니들리스 해머를 바닥에 내리쳤다.
콰앙!
‘오. 럭키.’
바닥에 거미줄처럼 원형의 금이 생기며 충격파가 터졌다. 파괴효과가 발동 된 것이다. 그 엄청난 힘에 준을 향해 달려오던 골렘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멈칫거렸다.
그 사이 준이 니들리스 해머를 쿵쿵 내리찍었다. 마치 두더지 잡기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퍽! 쩌적! 쿵! 깡!
미니골렘들이 납작하게 뭉개지며 바위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래도 녀석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처럼 준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놈들도 마냥 당하고 있지 만은 않았다.
땅!
“윽.”
미니골렘들 중 특이하게 생긴 놈들이 있었다. 온몸이 작은 자갈로 이루어진 골렘으로 놈들은 마치 숨을쉬듯 배를 부풀려서 자갈을 쏘아보냈다.
준이 황급히 몸을 숙이며 피하려 했지만 결국 어깨에 한 방 맞고 말았다.
-투석으로 인해 데미지가 5 감소합니다.
다행히 위협을 느낀 것에 비해 데미지 자체는 적게 들어오는 편이었다. 그래도 여러방 맞으면 꽤나 데미지가 들어올 것 같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와 같은 녀석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이거 내가 레이드 당하는 기분인데.’
준은 기분이 묘했다. 근접딜러 골렘이 자신의 앞에서 길을 막고 있었고, 뒤에서는 원거리딜러 골렘이 자갈을 쏘아보내고 있었다.
주로 헌터들이 덩치 큰 외도를 상대할 때 쓰는 방법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준이 원딜골렘들을 처리하려고 해도 자꾸만 앞에있는 놈들이 길을 가로막았다. 1미터 크기의 골렘이라 점프로 뛰어넘으려고 했지만 그럴때마다 놈들이 필사적으로 몸을 부딪혀 오는 바람에 도저히 뒤의 놈들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그로 관리능력이 대단한데? 이놈들 타고난 탱커인가?’
골렘들의 전술적인 움직임에 감탄하며, 준은 니들리스 해머를 높게 치켜들었다. 솔직히 칭찬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혀 달랐다.
“그래봐야 일반외도.”
콰앙!
미니골렘 한머리의 머리를 내려치자 충격파가 터지며 주변에 있던 놈들이 같이 터져나갔다. 그렇게 몇 번 니들리스 해머를 휘두르고 나니 근접골렘들 중 멀쩡히 움직이는 놈들은 아무도 없었다. 준은 재빨리 움직여 나머지 원딜골렘들을 처리했다.
거의 사방 백미터 안에 있던 골렘들을 모두 처리하고 나자 조금 여유가 생겼다. 마나도 거의 고갈된 상태였고, 체력도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준은 일단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다시 협곡위로 올라섰다.
“이런 식으로 사냥하면 곧 레벨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보창을 열어보자 경험치가 19나 올라 있었다. 적어도 열다섯마리 이상은 잡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직 수백마리의 골렘이 협곡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일반외도들은 어지간하면 자신들의 거주지 안에서 잘 움직이지 않는다. 거기다 일정거리 이상 떨어지면 어그로가 풀리는 특성도 있기 때문에 준은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싸우고 쉬는 것을 반복했다.
고갈된 체력과 마나는 약 삼십분 정도 쉬면 모두 회복되었다. 해가 질 때까지 그렇게 반복한 끝에 준은 기어코 4레벨을 찍을 수 있었다.
사용자 ; 준 알스버그
레벨 ; 4
클래스 ; 초보자
칭호 ; 델타의 소유자(모든 능력치 +10)
능력치
체력 416/416 마나 300/300 경험치 8 잔여 스탯 5
힘 16(+10) 민첩성 8(+10) 지능 21(+10) 정신력 19(+10)
기술
엔지니어링(초급) ; 오랜 숙련과정을 통해 사용자의 뇌에 공학적 사고가 자리 잡았습니다. 기본적인 물품을 손쉽게 제작, 수리 할 수 있습니다.(숙련도 37%)
건강(초급) : 규칙적인 생활과 좋은 식단은 신체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이 회복됩니다.(숙련도 3%)
냉철(초급) :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습니다. 전투시에도 평소의 절반만큼 마나를 회복합니다. (숙련도 10%)
체력도 100이상 올랐고 마나도 정확히 100이 올랐다. 무엇보다도 냉철의 숙련도가 10퍼센트나 오른 것이 고무적이었다. 아무래도 전투중에 발동되는 기술이다 보니 얼마나 전투를 오래하는 가가 중요한 포인트인 모양이었다.
스탯은 일단 두기로 했다.
“그나저나 다음 레벨업도 이렇게 해야하나?”
이번에는 정확히 경험치가 190이 쌓이는 시점에서 레벨업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다음은 아마 310쯤에서 레벨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니골렘을 300마리 정도 잡아야 하는 양이었다.
오늘 하루 잡은 미니골렘의 양을 생각해보면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모습을 상상하니 어쩐지 자신이 하는 짓이 점점 레이드나 사냥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종일 망치를 내려찍고 휘두르고 찍고 휘두르고를 반복하는 일. 어쩐지 그리운 느낌도 들면서 왠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이건 사냥이 아니라 마치... 노가다 같은데.”
한 번 공돌이는 영원한 공돌이라는 말이 머리를 스쳤다. 준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었다.
“어이. 뭐하다 오는거야? 꼴이 엉망이네.”
돌아오는 길이 우연히 막스 팀을 만날 수 있었다. 숫자를 세어보니 11명이었다. 한 명이 줄었다. 굳이 사라진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일반외도를 좀 사냥하고 왔어.”
“그래? 그런데 왜 아무것도 안들고있어.”
“아. 그냥 시험삼아 무기 테스트를 해본거라서, 저쪽 협곡에 있는 미니골렘을 잡았거든. 헌데 그거 어때? 쓸만해?”
준이 막스가 들고 있는 니들리스를 가리키며 말하자, 그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서 딜량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어. 이상하게 마나를 싣기가 어렵더군. 그런데 이 해머에 이상한 마법이라도 걸려있는 모양인지, 때릴때마다 랜덤으로 골렘의 실드를 뚫고 타격을 입히더라고. 그게 진짜 대박이었지! 어그로 잡기가 너무 쉬운데다가 골렘이 제대로 공격도 못하지 뭔가! 이거 하나만 바꿔 들었는데도 레이드가 두 배는 쉬워졌다고!”
막스는 마치 새 장난감을 얻은 어린아이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잘 썼다니 다행이군. 그럼 반품은 없는 걸로?”
“반품이 뭐냐? 그렇지 않아도 마을로 돌아가자마자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그거 몇 개 더 파는게 어때? 무스타파와 마흐무드에게도 주면 사냥속도가 훨씬 빨라질 것 같거든.”
“그만한 결정체가 있어?”
“크흠. 한꺼번에 사는건데 할부는 안될까...? 우수고객 우대라던가.”
막스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뻔뻔한 요구라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흥정할 생각은 없고, 할부도 없어. 개당 10크리스탈.”
“어허. 장사 그렇게 하면 안 돼. 손님들 다 떨어진다? 자자. 그러지 말고 3개월 무이자 할부는 어때? 내가 차근차근 갚아나갈게.”
준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그럴 이유가 없었다. 막스가 자신에게 잘해주긴 했지만 그것은 그가 좋은 사람이라서 라기보다는 정확하게 손익을 계산한 끝에 나온 결론에 따른 행동이었다. 그렇다면 준도 그렇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막스는 애초에 신입헌터들을 헐값에 부려먹는 사람이다. 그에게서 이익을 좀 거둔다고 해서 양심에 거리낄일은 없었다.
“흠. 이 냉정한 녀석 같으니라고. 좋아, 그럼 이건 어때? 골렘에게서 결정체 떼어내는 법 가르쳐 주는 대신 해머 두개에 10크리스탈. 계산 정확하지?”
얼핏 들으면 그럴 듯 했다. 하지만 준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나에게 별 필요도 없는 걸.”
“으윽.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자식! 그래도 한때는 팀이었잖아! 우리끼리는 돕고 살아야지! 콩한쪽도 나눠먹는 게 레이드 팀의 의리 아니었냐?”
“애초에 제대로 된 팀도 아니었고, 그런의리도 없고, 언제 우리사이가 그렇게 돈독했는지 모르겠어. 그냥 돈 모자라면 한 개만 사.”
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으으. 좋아. 그러면 해머 두 개에 15크리스탈. 결정체 떼어내는 법도 알려준다. 됐냐?”
“흠. 잠깐만.”
그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5크리스탈이 적은 액수도 아니고, 당장 5레벨을 찍기 위한 노가다를 해야할 판에 150의 경험치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어떤 식으로 결정체를 떼어내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콜.”
준은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독한놈. 결국 내 밑천을 전부 거덜내는 구나.”
“신입돕는다고 생각해. 그동안 많이 뜯어먹었잖아.”
“어디서 많이 뜯긴놈처럼 말하는 구만.”
“노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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