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 ----------------------------------------------
알카트뢰즈
준을 포함한 신입 열명과, 막스 일행 3명. 모두 합해 열세명이 나하라를 떠났다. 한참을 걷다보니 니들리스의 무게 때문에 어깨가 쳐졌다.
‘역시 너무 무거운가...’
아무리 힘이 세다고는 해도 20킬로그램은 확실히 무거운 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파괴력도 셀테니 그 잇점을 버리기가 아까운 것도 사실이었다.
‘트럭 같은 게 있으면 좋겠는데.’
비록 최하급 사냥터였지만 세일럼이 정말로 잘 만들어진 헌터도시라는 것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들이 레이드를 위해 짜여져 있었기에 필요한 물품들을 언제든지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하라에서는 모든 것을 직접 만들거나 결정체를 소비해서 기다렸다가 구해야했다. 그것도 모든 물건을 다 구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외부행성과 연락을 하기위한 통신기같은 것은 절대로 취급불가였고, 제한적으로 근거리 통신용 무전기 정도만 판매하고 있었다.
슬슬 어깨가 아파온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무렵 멀리 바위무더기가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근처에 골렘이 많다고 하더니 어제부터 만나는 녀석들 마다 전부 골렘이었다.
“무스타파, 마흐무드!”
막스의 명령에 두 사람이 재빨리 위치를 잡았다. 이미 한번 경험했던 헌터들은 재빨리 움직였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그들이 휘두르는 철봉에 두드려 맞아가면서 자리를 잡아야 했다.
이번에는 딜러들이 많았기 때문에 막스가 어그로를 잡는 시간이 더 걸렸다. 그래도 그리 긴 차이는 나지 않았고, 막스의 신호에 따라 딜러들이 순차적으로 투입되었다. 근접딜러가 압도적으로 많다보니 준의 차례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딜이 강력할수록 어그로가 튀는 것을 막기 위해 나중에 투입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준을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준!”
무스타파가 외쳤고, 먼저 딜을 하고 있던 근접딜러 한명이 빠졌다. 그 틈으로 끼어들어간 준이 새로 만든 니들리스 2호를 들어 내리쳤다. 마나는 역시 평소의 절반만 사용한 상태였다.
쿵!
부들!
준의 일격에 골렘의 몸 전체가 진동했다. 다른 근접딜러들이 혹시 다른패턴의 공격인가 싶어 움찔할 정도였다.
“엇?”
첫날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일격에 막스가 약간 당황하는 낌새가 느껴졌다. 하지만 재빨리 평정심을 되찾은 막스는 마나를 끌어올려 더욱 강력한 공격을 골렘에게 퍼부었다. 어그로가 풀릴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딜 조절해!”
막스의 외침에 준은 들어가는 마나를 더욱 줄였다. 딜레이없이 때릴 수 있는 마나량이 20이라면 지금은 절반의 절반인 5의 마나만을 투입해서 공격했다.
쿵!
“좋아! 그정도!”
그제서야 첫날에 공격했던 데미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준은 새로운 무기의 위력에 흡족함을 느꼈다. 일반 해머로 때리는 것 보다 거의 네배의 공격력이 나오는 것이다.
‘괜히 경험치가 4나 들어가는 게 아니었어.’
많은 경험치가 들어가는 만큼 딜도 강력했다. 하지만 아직 준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쾅! 좌좌좍!
“헉?!”
이번에는 공격을 성공시킨 준이 오히려 놀랐다. 준이 망치를 내리치자, 망치가 가볍게 떨리더니 골렘의 본체에 금이 가버린 것이다.
“실드가?”
갑작스런 현상에 놀란 것은 준 뿐만이 아니었다. 막스는 도대체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실드가 멀쩡히 남아있는 상태에서 골렘의 본체가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어그로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골렘의 움직임이 현격히 둔해졌다. 아무리 골렘이라도 회복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사이 충분히 편하게 딜을 할 수 있었다.
막스는 일단 레이드를 계속 진행시켰다. 확실히 평소와는 달랐지만 그것이 레이드 자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한편 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이게 파괴효과구나. 랜덤하게 터지는 것 같은데, 설마 실드를 뚫고 데미지를 입힐줄이야.’
마나를 최대한 적게 사용하고 있는데도 이정도 위력이라면 딜레이가 있는 차지공격을 했을 때 얼마나 데미지가 나올지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어디 한번 해볼까?’
준은 슬쩍 눈치를 살폈다. 풀차치 공격을 시험할 수 있는 것은 지금뿐이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한방에 죽지 않으면 백퍼센트 어그로가 끌릴것이 확실했기에, 일단 어느정도 실드가 줄어들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쾅! 좌좌좍!
그리고 그렇게 딜 조절을 하는 와중에도 파괴효과는 계속해서 터졌다. 그럴때마다 막스는 더욱 격렬히 공격을 해 어그로를 당겼다.
‘이쯤이면 실드가 절반쯤 소모되었을 거야.’
전날의 기억을 살려 대충 실드의 양을 가늠한 준은 니들리스를 높이 들었다. 풀차지 공격에 들어가는 마나는 대략 40. 마나의 절대량은 늘었지만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마나의 양은 아직 늘어나지 않았다. 그 이상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하아아앗!”
그리고 니들리스 해머의 머리부분에 선명한 푸른빛이 맺혔다. 준은 충분히 마나가 실렸다는 것을 확인하고 온힘을 다해 점프했다.
“준?”
갑작스런 준의 돌발행동에 놀란 막스가 준을 돌아볼 때, 그는 이미 골렘의 머리부분을 향해 니들리스 해머를 내리치고 있었다.
후우웅!
콰아아아앙!
열 셋의 헌터들 앞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골렘이었던 잔해들이 흩어져 있었다. 준의 일격이 정확하게 성공하는 순간, 파괴효과까지 터지면서 코앞에서 딜을 하고 있던 딜러들이 튕겨나갈 정도로 강력한 폭발과 함께 골렘이 산산조각 난 것이다.
“결정체는 없습니다. 아마 폭발에 휘말려 같이 파괴된 것 같습니다.”
무스타파가 골렘의 잔해를 뒤적이더니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막스가 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상당히 미묘한 표정이었다.
“...너 대체 뭘 한 거냐?”
준은 어디선가 들어봤던 대사라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시간을 끄는 게 답답했을 뿐.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하급헌터라고 생각했는데, 내 눈도 이제 쓸모가 다한 모양이군.”
“무슨 문제라도?”
준의 당당한 태도에 막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크크크. 문제라. 문제가 있을 리가 있나. 이렇게 강한 딜러가 있는데. 다만 결정체까지 부수면 레이드의 의미가 없지 않나.”
“그것까지 부서질 줄은 몰랐다. 그걸 내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어.”
“하지만 계속 그래서야 레이드를 하는 의미가 없지.”
막스의 태도는 의외로 유화적이었다. 장민성 때를 생각해 최악의 경우 싸움이 벌어질 것 까지 각오한 준이었기에 오히려 약간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장민성이 특이한 경우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보다 훨씬 더 강력한 딜을 쏟아내는 헌터에게 덤벼든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경험이 많고 경력이 긴 헌터들일수록 그런 경솔한 행동을 삼가는 편이었다.
“헌데, 대체 어떻게 하루만에 그렇게 강해질 수 있는거지?”
준은 대답대신 니들리스 해머를 들어보였다.
“호. 그러고 보니 어제와는 좀 다른 걸. 대체 어디서 구한거지?”
“10크리스탈이다.”
준의 말에 막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바로 어제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다.
“이런, 한 방 먹었군.”
“내 경우는 진심인데.”
“그걸 팔겠다고?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니들리스는 적당한 양의 철과 경험치만 있으면 얼마든지 제작할 수가 있었다. 처음부터 팔 생각은 아니었다. 헌데 대화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걸 느끼고는 한번 질러본 것이었다.
예상외로 막스는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까지만 해도 조금 강력한 정도에 불과하던 준의 딜이, 하루만에 폭발적으로 상승했으니 탐이 날만도 했다.
“10크리스탈이면, 꽤나 비싸군.”
“맘에 안들면 며칠 써보고 반품해도 좋아. 물론 중고는 반값인거 알고 있겠지?”
준의 말에 막스의 눈빛이 달라졌다. 10크리스탈이면 며칠은 고생해야 얻을 수 있는 금액이다. 하지만 만약 써보고 괜찮다면 아끼지 않고 쓸 수 있는 금액이기도 했다. 그리고 만약에 그 능력이 시원찮으면 절반의 금액이라도 건질 수 있으니, 생각해보면 나쁜 딜은 아니었다.
“헌데 이걸 나에게 판다는 이야기는 또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겠지?”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막스의 눈에 순간적으로 탐욕이 어렸다. 만약 준을 이용할 수 있다면 엄청난 결정체를 벌어들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날 협박해서 니들리스 해머를 만들게 시키겠다면 얼마든지 그래도 좋아. 그럴 힘이 있을 때 말이지만.”
준의 말에 막스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속내를 들킨 모양이군. 걱정말아. 잠시 욕심이 들긴 했지만 나는 어쨌거나 평화주의자니까. 싸우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신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이득이지.”
“똑똑해서 좋군.”
“끙. 칭찬인 것 같긴 한데, 영 기분좋게 들리진 않는군.”
“칭찬이다. 자신의 욕망을 이성으로 누를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으니까.”
준은 솔직하게 감탄했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연쇄살인마처럼 생긴 인간이, 이정도로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새크리파이스의 간부인 마리엘 함장과 비교하면 더욱 놀라운 일이다. 그는 철저히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눈앞의 돈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마리엘이 막스의 절반만 닮았어도 자신이 이런 곳까지 오게 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많이 배운 것과 똑똑한 건 확실히 다르지.’
맹자를 아무리 읽어도 성인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준도 그런 면에서는 아직 많이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나이 이제 21세였고, 그 나이에 현명함을 갖춘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저 조금씩 노력해서 나아지길 바랄 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결정체를 받은 준은 일행과 헤어져 다시 나하라로 향했다. 무기도 없고, 결정체도 얻을 수 없는 레이드에 끼여봤자 이득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을에 도착한 준은 우선 상점에 들러 빌린 1크리스탈을 갚았다. 상점주인은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하루만에 갚은 녀석은 네가 처음이군.”
“여기가 별볼일 없는 거겠지.”
“하하. 비록 개척도시긴 해도, 그렇게 허접한 녀석들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런가? 어쨌든 철을 좀 사려고 하는데, 구할 수 있나?”
“철괴를 말하는 거라면 당장은 힘들다. 신청하면 며칠은 걸리겠지.”
“철로 된 무기도 상관없다.”
니들리스 해머도 망치하나와 도끼하나를 섞어서 만든 무기였다. 무게만 나가면 어떤 무기든지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럼 충분히 있지. 개당 1크리스탈. 어때?”
“바가지도 정도껏이지. 열 개에 1크리스탈.”
“허허. 처음이랑 너무 다르잖아?”
“처음이 너무 비쌌던 거라는 생각은 안하시나?”
준의 말에 상점주인이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두개에 1크리스탈. 이것도 잘 쳐주는거야. 바깥에서라도 이 정도는 받잖아?”
“프레스로 찍어대는 무기가 비싸봐야 얼마나 비싸다고. 질은 상관없으니까 무겁기만 하면 돼. 일곱 개에 1크리스탈.”
준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날을 제대로 세운 고급 무기야 개당 백만원은 그냥 넘어가는데다가, 단분자 검같은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만든 무기들은 일억원이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흔했다.
하지만 준이 원하는 것은 그런 고급무기가 아니라 시골집에서도 흔히 구할 수 있는 망치나 도끼 같은 아주 저급의 무기였다.
“좋아. 말 되는 군. 턱도 없는 소리를 하면 쫓아내려고 했지만 솔직히 일리가 있으니까. 세 개에 1크리스탈. 더 이상 깎지는 말자고. 어디가서 이렇게 팔았다고 하면 욕먹으니까 소문내지 말고.”
“콜.”
내심 다섯 개까지 생각했던 준이지만 더 이상 싸게 불렀다가는 흥정이 깨질 것 같았다. 결정체가 이곳에서 하나 당 10만원 정도의 가치밖에 없는 것을 생각해보면 세 개만 받아도 평균이상으로 쳐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럼 몇 개를 드릴까.”
“일단 세 개만 줘. 나중에 또 사러 올테니까. 그때도 같은 가격이면 좋겠군.”
“뭐, 시세는 그때그때 다르니까. 지금 많이 사두는게 좋지 않아?”
“보관할 데도 없어.”
준은 결정체 하나를 건네고 망치와 도끼같은 싸구려 무기들을 받아들었다. 무게가 상당했지만 드는데는 그리 어려움은 없었다.
“이건 서비스.”
툭.
상점주인이 배낭을 하나 던져주었다. 싸구려 폴리에스터 가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결정체를 담을 가방이 필요했던 준이었다.
“아. 고맙군.”
“단골에게 주는 선물이야.”
“이제 겨우 두 번밖에 안왔는데?”
“미래의 단골이지. 아무래도 자주 보게 될 것 같으니까 말이야.”
“장사 잘하네. 영업사원 출신인가? 어쩌다 이런 데 까지 좌천된거야?”
“뭐,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자. 개인사를 주절주절 떠들게 만들거면 그만 가주시고.”
준은 피식 웃으며 상점을 빠져나왔다. 바가지만 씌워대는 악덕 상인인 줄 알았더니 나름대로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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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에요. 이제 자려가야 돼서 오타나 오류등은 내일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