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3 ----------------------------------------------
알카트뢰즈
무스타파가 쓰러져 있는 헌터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가서 확실히 죽었는지 좀 확인해봐.”
무스타파가 쓰러진 헌터를 이리저리 뒤집어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막스가 입을 열었다.
“새로 도착한 녀석이니 돈 될 건 없을테고, 무기나 챙겨와.”
“네. 형님.”
그는 죽은 이가 가지고 있던 도끼를 가져와 막스에게 넘겼다. 그는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그걸 대뜸 준에게 넘겼다.
“이걸 왜.”
“아까보니까 실력이 좋더군. 결정체라도 분배해주고 싶지만, 처음의 약속이 있으니 대신 이거라도 받아.”
“고맙군.”
준은 무뚝뚝한 태도로 대답했다. 알카트뢰즈는 약하면 잡아먹히는 곳이다. 굳이 잘 보일 필요도, 얕보일 이유도 없었다. 막스도 말투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장민성을 닮아가는 것 같네. 하긴 그 녀석은 헌터생활을 한지 오래됐었지.’
준은 장민성의 무심한 말투가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생긴 노하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잠시 쉬었다가 이동하지.”
막스의 말에 일행은 태양의 뜨거운 빛에서 숨을만한 그늘을 찾아 적당히 움직였다. 준은 손에 든 도끼를 이리저리 만지다가, 문득 죽은 헌터를 보았다. 아무래도 그냥 두기에는 찝찝했다.
‘묻어줘야 하려나?’
눈에 보이는 곳에 시체가 있다는 것이 못내 불편했다. 거기다가 준은 그 사람의 물건까지 가지고 있었다. 미신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괜히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준은 잠시 갈등하다 한숨을 쉬고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리를 옮겼다.
‘이걸 삽으로 만들어서 땅을 파야겠군.’
준은 제작스킬을 이용해 도끼를 삽으로 바꾸었다. 아니 바꾸려했다.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준의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제작에 실패했습니다. 조건을 충족하지 않습니다.
다행히 경험치를 소모하지는 않았지만 준은 약간 당황스러웠다. 불스원샷 같은 개조 무기도 만들어 내는데 삽이 만들어 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공구라는 개념에 포함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건가?’
공구는 본래 물건을 만들거나 수리 할 때 사용되는 도구다. 그렇게 따지면 삽은 공구라고 보기엔 조금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결국 준은 하는 수 없이 도끼로 땅을 찍어 흙을 뒤집고 손으로 구덩이를 만들었다. 그나마 힘 스탯이 높아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땅을 팔 수 있었다.
준은 그곳에 죽은 자의 시신을 넣고 흙으로 덮었다.
“저놈도 오래 못살겠군.”
가만히 준의 하는 양을 지켜보던 막스가 입을 열었다. 다들 지치고 힘들었다. 다음 레이드를 위해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뜯어말릴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목숨은 자신의 것. 자기가 멋대로 쓰겠다는 것을 말리는 것도 웃긴 짓이었다.
작업은 금방 끝났다. 묘비는 따로 없었다.
‘도끼는 잘 쓰겠습니다.’
준은 죽은 사람의 이름도 모른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때문에 이곳에 오게되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범죄자였고, 분명히 처벌을 받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동정하기 힘든 중범죄를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그냥 죽은 사람을 땅에 묻는 것일 뿐이었다.
특이외도는 확실히 일반외도에 비해 강력했다. 두 번째 골렘을 만나 전투를 치른 준은 자신의 딜량을 계산해보았다. 비록 니들리스를 사용하지 않은 것을 어느정도는 감안해야하지만 골렘같은 놈들에게는 스패너같은 무기보다는 해머가 더 딜을 많이 준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플러스마이너스해서 비슷하다고 치면 큰 오차는 없을 것이다.
거기다 다른 딜러딜의 딜도 계산해야 하니 정확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대충 추산하니 약 열배정도 강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딱 경험치 차이만큼이라는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외도가 가지고 있는 엑조틱 에너지에 따라서 그 강함이 결정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종류마다 약간의 상성이나 특징 정도는 있었다. 바위골렘의 경우 실드는 강력하지만 의외로 본체는 약했다.
‘바위는 물론 단단하지만, 아무래도 외골격을 가진놈들과는 비교할 수는 없지.’
막스가 골렘을 주로 사냥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강력한 공격에 비해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탱킹하기가 수월하고, 실드만 없애면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놈을 상대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결정체를 찾아서 끄집어내는 부분이다. 자칫 잘못하면 결정체에 훼손이 갈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결정체를 채취하는 비결이 없다면 이런 식의 사냥은 할 수 없었다.
준은 혹시나 해서 막스에게 물었다.
“결정체를 어떻게 꺼내는 거지? 그냥 손을 집어서 가져온다고 되는 게 아닐텐데.”
준이 보기에 막스는 바위골렘의 몸체에 박혀있는 결정체에 손을 가져다 대기만 했을 뿐이다. 그렇게만 했는데도 골렘의 몸이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마 마나를 특별한 방식으로 운용하는 듯 한데, 그 방법은 겉으로만 봐서는 알 수가 없었다.
“10크리스탈이다. 공정거래 가격이지.”
막스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가르쳐 주기 싫다는 뜻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 가격으로 거래되는 방법이라는 것인지 확실치가 않았다.
준은 정말이냐고 말하는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혹시 다른 골렘도 있나? 강철 골렘이라던가.”
“있기야 하지만, 그런놈들이 보이면 무조건 도망가야지. 우리로선 도저히 잡을 수가 없거든.”
바위골렘에 비해 강철골렘은 그 몇 배의 질량을 가지고 있다. 골렘에게 있어 질량은 곧 힘이다. 그만큼 결정체의 결정도도 높아 주황색 결정체를 뿜어내는 녀석이었다.
“어디에 있는지 본적 있나?”
“왜 잡으려고? 꿈도 꾸지마. 그 녀석은 적어도 중급헌터는 돼야 흠집이라도 낼 수 있으니까.”
“알아두면 피해갈 수는 있겠지.”
“그건 그렇지. 저쪽 산맥 넘어가면 가끔 나타난다고 하더군. 어차피 우리가 그런 곳까지 갈일은 없으니까. 신경쓰지마. 자. 이제 출발하자. 해가지기 전에 한 마리 정도는 더 잡아야지.”
막스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은 막스가 가르쳐준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냥 봐도 수십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었다. 산맥이라고는 해도 큰 나무는 거의 없었고 바위들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단 당장은 힘들겠군.’
강철골렘을 잡을 수 있다면 제작물품의 재료수급이 수월해 질 것이다. 광물형 외도를 보자마자 떠올린 생각이었다.
단순히 강철골렘 뿐만 아니라, 구리나, 석탄골렘 같은게 있을 수도 있었다. 직접 자원을 분류할 수 없는 준에게 이런 광물형 외도들은 값싼 재료 생산처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녀석을 잡기에 아직 준의 레벨이 너무 낮은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은 천천히 생각해 볼일이었다.
세 마리의 외도를 사냥하고 한 명이 죽었다. 아홉 명이 가서 여덟 명이 돌아왔지만 슬퍼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죽음은 외부에 그의 수형기간이 끝나서야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적당히 은폐되고 축소될 것이다.
펍에서 막스의 이름으로 한 끼 식사를 마쳤다. 그것이 오늘 하루 목숨을 걸고 얻은 대가였다.
‘해가 지기 전에 잘 곳을 구해야해.’
장교가 말했던 것처럼 일단은 땅이나 언덕에 굴을 파서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다. 잘 찾아보면 선배 수형자들이 만들어 둔 굴이 있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늦기전에 움직일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준에게 막스가 말을 걸었다.
“너 이름이 뭐지?”
“준 알스버그.”
“그래 준. 싸가지는 없어보이지만 실력이 좋더구만. 내일부터 같이 행동하지 않겠어?”
준은 잠시 고민했다. 과연 이 사람과 계속 같이 레이드를 해도 괜찮을까? 험상궂은 생김새나 거친 말투치곤 의외로 성격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물론 공짜로 신입들을 부려먹은 것은 좋게 보이지 않았지만 따지고보면 굳이 공평하게 해줄 이유도 없었다.
“분배는?”
“사람 머리 수대로.”
“의외로군.”
“왜? 후려칠거라고 생각했나?”
준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불만이 없게 대하는게 내 방식이다. 문제가 생기게 되면 오히려 그쪽이 더 손해니까.”
“똑똑하군.”
“이런, 내가 꽤나 무식해 보이나 보지?”
“뭐, 약간은.”
준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아부를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여기는 스팅스가 아니었고, 막스에게 빚진 것도 없었다.
“거 참 솔직한 녀석일세. 어쨌든 생각있으면 내일 이곳으로 다시 와.”
“생각해보지.”
바로 승낙을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일단 좀 더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막스가 경험과 실력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준이 이곳에 온 이유는 결정체를 얻기 위해서였다. 지금처럼 여럿이 사냥을 하게 되면 그만큼 결정체를 얻는 일이 힘들어 진다. 준은 가능하면 혼자서 자립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
이런 식으로 강한자에게 얹혀 가는 것은 그 시기를 뒤로 늦출 뿐이었다.
“거 새끼. 계집애처럼 생겨서 튕기기는. 내 맘이 바뀌기 전에 오는게 좋을거다.”
막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이제 그만 가보라는 뜻이었다.
운좋게 마을 근처에서 버려진 굴을 찾을 수 있었다. 땅을 파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 준은 그날 하루를 그곳에서 머물기로 결정했다. 운이 좋다면 내일도 이곳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밤이 되니 좀 추워졌다. 불을 피우려고 해도 마땅한 도구가 없었다. 가스토치 같은 것을 제작할 수 있다 하더라도 정작 가스가 없으니 쓸모가 없었다. 그렇다고 상점에서 사기엔 너무 비쌌다. 그곳에선 최소한 1크리스탈 단위로만 물건을 팔기 때문이었다.
날씨가 추워지니 약간 쓸쓸해졌다. 호랑이 길드원들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겨우 열흘밖에 보지 않은 사인데도 생각보다 많이 정이 들었구나 싶었다.
준은 생각을 돌리기 위해서 제작품을 만들 계획에 집중했다. 망치와 도끼가 있으니 이것을 재료로 더 큰 무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준은 만능공구세트의 세부목록을 죽 열었다. 거의 대부분이 기본적인 물품들로 나열되어 있었고 가장 복잡한 물건이 준이 만든 가스토치 정도였다. 혹시나 건타카나 전동드릴을 만들 수 있나 찾아봤지만 둘 다 망치와 드라이버의 상위호환 제품이라 아직 만들 수 없었다.
‘결국 해머가 답인가.’
막스의 말대로라면 이 근처는 주로 무생물 형태의 외도들이 주를 이룬다고 했다. 그가 망치를 들고 다니는 것도, 상점에서 망치를 내어준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준은 가지고 있는 해머에 도끼를 합쳐 원래의 것보다 더 크고 무거운 해머를 만들어 냈다. 그 크기와 무게 때문인지 경험치가 자그마치 4나 들어갔다. 경험치가 아까웠지만 그만큼 강력한 무기가 나올 것을 기대하며 준은 제작버튼을 눌렀다.
쓸데없이 큰 해머 (B급)
쇠로 만들어 진 대형 망치입니다. 주로 철공소에서 달아오른 쇠를 두드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이 해머는 지나치게 크고 무거워 건물 철거에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B급 이상부터는 특수효과가 붙습니다.
특수효과 : 데미지에 파괴 효과가 붙습니다. 암석을 부술 때 유용합니다.
“응?”
거의 2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해머를 만들었더니 생각지도 못한 옵션이 붙었다. 원래 사용하던 니들리스는 스턴기능이 붙어 있어 외도와 상대할때는 제대로 옵션을 써먹어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왠지 이번 옵션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준은 이 해머의 이름을 니들리스 해머라고 이름 붙였다.
“암석 파괴효과면, 골렘같은 놈들에게도 효과나 나올까?”
아직 실험해 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준은 펍으로 찾아갔다. 그곳에는 이미 막스가 사람을 모으고 있었는데, 첫날보다 오히려 더 사람이 많았다.
“왔군. 헌데 어쩌지? 오늘은 자리가 없겠는데?”
첫날 레이드를 나가지 못해 굶은 헌터들이 죄다 몰려든 것이다. 결국 준과 함께 착륙선을 탔던 사람들 중 죽은 한명을 제외한 전원이 막스의 팀에 끼기 위해서 모여들었다.
“그럼 오늘도 배당은 없는 걸로 하지.”
“호오? 그럼 나야 땡큐지.”
막스는 기꺼운 태도로 그를 받아들였다. 결정체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은 다소 아쉬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니들리스의 위력을 실험해보기 위해서는 참여하는 것이 좋았다.
“밥은 먹어야 힘들을 쓰겠지.”
다행히도 출발하기 전에 아침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레이드의 결과에 따라서 저녁을 줄지 안줄지 결정한다고 하니, 모인 사람들의 투지가 불타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확실히 막스는 사람다루는 솜씨가 훌륭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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