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1 ----------------------------------------------
알카트뢰즈
휘잉-
“윽.”
착륙선에서 내리자마자 부는 강한 바람에 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알카트뢰즈의 대기는 상당히 건조하고, 강은 비가 올 때가 아니면 거의 볼 수가 없는 편이다. 그래도 보통은 작은 호수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았는데, 준이 도착한 도시는 그나마 호수도 없어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알카트뢰즈의 개척도시 중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도시인 나하라다. 수형자들이 많지 않아 여러모로 어렵겠지만, 다들 힘을 합쳐서 버틴다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장교는 그렇게 말하고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된다고? 속편한 소리를 하는군.’
딱 봐도 살기 어려운 동네다. 사냥을 하거나 낚시를 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곳이고, 오로지 외도를 잡아 결정체나 부산물을 식료품과 바꿔야지만 살아갈 수 있었다. 게다가 이곳엔 치안을 제공하는 기업들도 전혀 없었다. 막말로 강도를 당하거나 도둑을 맞아도 하소연할 곳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을 자신의 힘에 의존해서 살아가야 했다.
“자신이 머물 곳은 직접 구해야 한다. 집을 지어도 되고, 땅속에 굴을 파도 된다. 처음에는 굴을 파는 쪽을 권한다. 이곳에는 집을 지을 나무도 별로 없으니까. 나중에 상점에서 구입할 수는 있지만 공짜는 아니다.”
장교는 걸어가면서 계속해서 알아야 할 정보들을 이야기 해주고 있었다. 말투나 태도는 차가웠지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가는 사람들에 비하면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돈을 주고 사야하나요?”
겁먹은 얼굴로 두리번거리던 붉은 머리의 주근깨 사내가 물었다. 장교가 예의 건조한 톤으로 입을 열었다.
“이곳에도 물론 외도가 존재한다. 너희들은 그 외도를 사냥하고, 거기서 나오는 결정체와 부산물을 판매해야 물건을 살 수 있다.”
그 말에 몇몇 사람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외도를 사냥하기만 하면 그것을 물건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니 척박한 환경이라도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었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감옥의 대체지다. 수형자들이 외도를 사냥한 돈으로 편하게 살게끔 만들어 줄리 없었다. 이 알카트뢰즈가 돌아가기 시작한지 벌써 삼십년이 넘었고, 그 시간동안 효율적으로 움직인 기관이니 만큼 최대한 가격을 후려치고 후려쳐서 하루종일 사냥을 하지 않으면 딱 굶어죽기 좋게끔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저기다. 저기 보이는 펍에서 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그 외에 필요한 물건들은 그 옆에 붙어 있는 상점에서 팔고 있고, 없는 물건들은 선금을 내고 신청하면 나중에 수령할 수 있으니 적극 이용하도록.”
“저게 도시...?”
준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어느정도 각오는 하고 왔지만, 눈앞에 보이는 도시는 그의 생각보다 더 초라했다. 사실 도시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작은 마을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이었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이 바로 장교가 가리킨 펍이었다. 아마 정부에서 관리하고 있을 그 건물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지만 그 숫자가 기껏해야 스물을 넘지 않았다. 그 외에는 그냥 허허벌판이었다.
“저기... 물은 어디서 구하나요?”
마른 사내가 입을 열자, 장교가 음식점을 가리켰다.
“저 곳에서 물뿐만 아니라 주류도 판매하니 원하면 얼마든지 살수있다. 무기가 필요하면 그 옆의 상점에서 빌리면 된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그럼 필요한 사항은 모두 알려주었으니 난 이만 돌아가지. 수형기간이 끝나면 이 마을에서 기다리도록.”
그는 말을 마치고 천천히 왔던 길을 되짚어 갔다. 준과 나머지 수형자들은 마치 버림받은 어린아이처럼 멀뚱히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펍으로 향했다.
준은 일단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몇 상점을 제외하면 나머지 집들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마 먼저 정착한 헌터가 살고 있는 집인 듯 했다.
“무슨 서부영화도 아니고...”
집은 모두 목재로 지어져 있었고, 낙타가 매어져 있는 집도 있었다.
휘잉-
“윽.”
모래가 섞인 바람이 준의 눈을 때렸다. 준은 일단 바람을 피하기 위해 펍으로 향했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간 준은 내부가 꽤 쾌적하다는 것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 놀랐다.
‘하긴 먹을 것을 파는 곳이 여기밖에 없으니...’
일단 주머니에 든 것이 없으니 당장 음식을 구하긴 무리였다. 준은 바에 적혀 있는 음식값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진짜 사기꾼 같은 놈들이네.’
바에는 음식의 가격이 적혀 있었는데 따로 메뉴는 없고, 일주일치 단위로 팔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치 식대비가 바로 붉은색 결정체 하나였다.
반대로 이야기 하면 특이외도 한 마리만 잡아도 일주일은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의외로 할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일주일 밥값이 백만원이라니. 결정체 값이 똥값은 똥값이군.’
어차피 이곳이 아니면 팔수도 없고, 그렇다고 숨겼다가 나중에 들고 나갈수도 없는 노릇이니 가격은 정하기 나름이었다.
일단 펍을 나온 준은 바로 옆건물인 상점에 들어갔다. 상점 역시 내부는 넓었고, 준처럼 방금 이곳에 도착한 헌터들과, 이미 외도를 사냥하고 흥정을 하고 있는 헌터들로 꽉 차 있었다.
“이렇게나 많이 가지고 왔는데 1크리스탈 밖에 안쳐준다는게 말이 돼?”
등에 칼을 매고 있는 헌터하나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상점주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질이 너무 좋지 않아. 크기도 작고. 이런건 아무리 많아봐야 소용없는거 알잖아.”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하는거야? 밖에 나가면 적어도 중급이상 되는 물건이라고.”
“그럼 밖에 나가서 팔아보든가.”
“젠장. 진짜 장사 그렇게 할거야?”
헌터가 탁자를 쾅 소리나게 내리치며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상점주인의 표정도 무섭게 변했다.
“물건 팔기 싫은 가 보군.”
“쳇...”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상점주인의 그 한마디에 헌터가 꼬리를 말고 물러선 것이다. 그는 투덜거리면서 결정체 하나를 받고서 상점을 빠져나갔다. 밖에서 큰 소리로 욕하는 것이 들려왔지만 상점주인은 익숙하다는 듯 외도의 부산물을 챙겨서 뒤쪽의 상자에 던져넣었다.
마침 물건을 팔려는 사람이 없어 준이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물어볼 것이 있는데.”
“처음인가?”
“그래. 지금 빈털터리라서 말인데, 사냥을 하려고 해도 무기같은 것이 있어야 하지 않아? 여기서 빌려준다고 들었는데.”
“어떤 걸 원하지?”
“그냥 크고 무거운거면 돼. 금속으로 된 거면 좋겠어.”
준의 말에 잠시 뒤쪽의 상자를 뒤적거리던 상점주인은 곧 육중한 망치 하나를 꺼내들었다. 보통 벽을 부술 때 사용하는 해머였다. 준이 한손으로 그것을 가볍게 집어들자, 일순간 상점주인의 눈빛이 ‘제법인걸’하는 눈빛으로 변했다.
‘이정도면 새로 니들리스를 제작하기엔 충분한 크기인 것 같아.’
어차피 망치 역시 공구라 마나를 사용하는데는 상관없었지만 해머보다는 그래도 니들리스가 범용적으로 사용하기엔 더 좋았다.
“이걸로 할게.”
“붉은 색 결정체 하나다. 여기선 1크리스탈이라고 하지.”
상점주인이 손가락 하나를 펴들며 말했다. 예상했던 가격이라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갚으면 되는 거지?”
“다음에 올 때.”
“모자라면?”
“그럼 그 다음.”
“뭔가 대충대충 인데 그래도 되겠어?”
“뭐, 그래봐야 싸구련데.”
상점주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준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거 방금 바가지 씌운 사람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잘 쓰지.”
준은 해머를 든 채 상점을 빠져나왔다. 바깥에 나오자 사람들이 펍의 앞에 모여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준과 함께 막 도착한 수형자들이었다. 그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은 그냥 보기에도 꽤 노련해 보이는 헌터였다. 모든 물자가 부족한 이곳에서 갑옷을 제대로 챙겨 입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일단 경험이 많다는 뜻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막스라고 소개했다.
“보수는 따로 없고 대신 레이드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밥은 줄 테니까 배고픈 놈들은 전부 따라오도록. 건성으로 할 생각은 버리는게 좋을거야. 그런놈들은 내가 먼저 손봐줄테니까.”
그는 험상궂게 생긴 얼굴을 더욱 찌푸리며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조건, 보통이라면 절대 따라가지 않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섯 명이 손을 들었다. 나머지는 고개를 저으며 자기들끼리 욕을 하고 있었다.
고압적인 사내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좀 손해를 보더라도 따라다니는게 낫지.’
준은 그 험상궂은 사내에게 다가가 사냥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일단 여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야 나중에 혼자서라도 사냥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럼 삼십분 후에 이곳으로 다시 오도록. 장비가 없으면 안받아줄테니까 알아서들 챙겨와.”
터벅. 터벅.
한 무리의 사람들이 먼지가 흩날리는 길을 걷고 있었다. 나하라의 주변은 모래사막이 아니라 바위 사막이었다. 곳곳에 풍화된 바위와 자갈들이 흩어져 있었고 그 사이에 선인장같은 가뭄에 강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준은 아직 해머를 들고 있는 상태였다. 일행의 리더인 막스가 들고 있는 무기가 해머였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경험자를 따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니들리스는 언제든지 만들 수 있으니까.’
정보창을 열어보니 제작의 숙련도가 29퍼센트를 찍고 있었다. 세일럼을 떠나기 전에 불스원샷을 대량생산했던 것 때문인 듯 했다.
‘아직 멀었군.’
초조해 할필요는 없었다. 이제 겨우 첫날이고 아직 시간은 충분히 많았다.
“그나저나 이런 곳에 외도가 정말 있습니까?”
착륙선에서 준의 옆에 탑승했던 마른 체형의 사내였다. 그는 어깨에 활을 메고 있었다.
“쉿. 조용해.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까.”
“네?”
“어린애처럼 묻지 말고 따라오기나 해.”
막스는 뒤를 돌아보며 으르렁거렸다. 마른사내의 얼굴이 붉그락푸르락 했지만 더 이상 입을 열지는 않았다.
후두둑.
그때 언덕위쪽에서 자갈 몇 개가 먼지를 뿌리며 굴러내려왔다. 막스가 손을 들어 일행을 정지시켰다.
사막이라고는 해도 식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언덕위쪽에도 키작은 선인장들과 야생풀들이 여기저기 자라고 있었고, 그 틈으로 언듯언듯 뭔가가 보이는 듯했다.
“모두 준비해. 골렘이다.”
‘골렘?’
준은 등에 매어둔 망치를 쥐었다. 연금술사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마법생명체중 하나인 골렘은 사실 외도를 사냥하기 위해서 헌터들이 자주 사용하는 소환수 중 하나였다.
본래 외도는 생명체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준은 좀처럼 골렘이라고 불리는 외도의 정체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르르-
하지만 나타난 외도는 준의 기대를 멋지게 배신하고, 그가 알고 있는 평범한 골렘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광물형 외도는 처음 보는데...”
준의 혼잣말을 들었는지 막스가 큰 소리로 외쳤다.
============================ 작품 후기 ============================
좋은 하루 되세요~
*장교 말투가 중간에 바뀌었네요.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