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0 ----------------------------------------------
알카트뢰즈
뿌드득!
준이 손에 힘을 주자 강화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경찰봉이 휘어지더니 뚝 하고 부러졌다.
“헉?”
경찰관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건 저렇게 부러질 수 없는 물건이다. 적어도 사람이라면 절대로 힘으로는 부술 수 없어야 했다.
그는 황급히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들었다.
철컥!
“다, 당장 자리로 돌아가. 죽고 싶지 않으면.”
그는 준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대고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 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쏴.”
“뭐?”
“쏘라고.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
“이...”
“못하겠어? 그럼 내가 하게 해줄게.”
준은 손을 뻗어서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히익?”
경찰관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로 총을 쏠 생각은 없었다. 방아쇠를 당긴것도 준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자신의 손에 있던 총이었고, 거기서 총알이 발사되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 내가 죽인 게 아니야...”
“누가 죽었는데.”
“헉?”
퍽!
준은 경찰의 목을 쳐서 기절시키고는 수갑으로 그를 철창에 묶었다. 브랜든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쿵쿵쿵!
그때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쾅!
문이 거칠게 열리고, 총을 든 군인이 구치소 안으로 들어왔다. 문 옆에 대기하고 있던 준은 군인의 다리를 걷어차고는 곧바로 안면을 후려쳤다.
뻐억!
“컥!”
먼저 들어온 군인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자, 준은 바로 자신을 향해 총구를 들이미는 두 번째 군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타타탕!
삼점사로 총알이 발사되었지만, 지나치게 근거리였던 데다 이미 준의 움직임을 놓친 후였다.
뻐억!
총알을 피하기 위해 몸을 한껏 움츠린 준이 바닥을 박차며 총을 쏜 군인의 턱을 올려쳤다.
“컥!”
쿵.
군인이 그대로 혼절하며 쓰러졌다. 준은 말없이 그를 내려다 보더니 바닥에 떨어진 총기를 주워들었다.
준은 잠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곳을 나서면 앞으로 한동안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럼 가 볼까.”
총기를 어깨에 걸친 채로 준은 구치소 바깥으로 나섰다.
차차착!
구치소를 포위하고 있던 군인들이 일제히 준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이 좁은 플랫폼내에서 총소리가 났으니 인근에 순찰을 하고 있던 모든 군인들이 모여든 것이다.
준은 그들을 향해 두 손을 들었다.
“항복합니다.”
[준 알스버그.]
팟!
컴컴한 어둠속에 있던 준은 머리위에서 떨어지는 스팟라이트에 눈을 찡그렸다. 철창에 있다가 탈주를 감행했다는 이유로 독방에 옮겨진 그는 어둠속에서 사흘이나 갇혀 있어야 했다.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틈틈이 호랑이 길드원과 통신을 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 준이 독방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고서 호랑이 길드원들이 플랫폼 까지 찾아와서 면회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장민성을 비롯한 호랑이 길드원은 외국인의 신분이라는 한계 때문에 돕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셀럼의 도움이었다. 하지만 마리엘 함장이 그에게도 혐의를 씌웠다고 하니 연락을 할만한 상황이 아닐 것이다.
[준 알스버그.]
다시한번 준의 이름이 불려졌다. 천장의 스피커에서 들리는 그 목소리는 변조가 되어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네.”
[귀하는 바쉬르 행성에서 있었던 살인과 결정체 은닉 및 횡령에 대한 범죄행위로 구속 되었다. 사유를 인정하는가?]
“아니요.”
[조사관에 의하면 최근에 새크리파이스의 계좌에 1억을 송금했다고 하더군. 맞나?]
“네. 빚을 갚으려고 했습니다. 그게 문제가 됩니까?”
[그 돈이 어디서 났지? 결정체를 불법 판매한 대금이 아닌가?]
심문자는 아예 준을 범죄자로 확신하고 있는 듯 했다.
“1억을 만들려면 대체 결정체를 몇 개나 팔아야 됩니까? 저에게 그만한 수의 결정체가 있을 것 같습니까?”
[스팅스의 워프엔진에 사용된 결정체를 빼돌릴 수도 있었겠지.]
“그게 가능했다면 제가 왜 4년 동안이나 이러고 살았겠습니까.”
[조금씩 훔쳤을 수도 있지 않나?]
심문자는 어떻게든 자신의 입에서 자백을 받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워프엔진은 이미 가공된 결정체로 움직이기 때문에 따로 숨기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보다 이제와서 그런 걸 물어봐야 별로 소용없을 텐데요.”
[...무슨 소리냐?]
“저는 연합법의 재판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마리엘 함장님.”
준은 목소리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독방의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눈치가 제법 빠른 놈이군. 어떻게 나인 줄 알았지?”
독방안으로 들어온 인물은 다름아닌 스팅스의 함장 마리엘 쿤이었다. 그가 직접 준을 심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찍었습니다.”
“아직 자신의 상황을 잘 모르는 모양이군. 그런 농담을 할 때가 아닐텐데?”
마리엘은 불쾌한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준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손에 낀 흰 장갑이 어둠속에서 유난히 빛났다.
퍽!
마리엘이 준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머리속에서 울려퍼지는 시스템메시지를 무시하며 준은 입을 열었다.
“폭행, 공무집행방해, 공공기물파손, 탈옥. 총기탈취 등등. 제가 며칠 전에 저지른 일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살인사건과 결정체횡령 건을 이야기 할 사람이라면 마리엘 함장님 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죠. 솔직히 아니면 말고라고 생각했으니 찍었다고 해도 거짓말은 아닙니다.”
“그렇군. 그렇게 머리가 좋은 놈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지? 정말로 도망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건가?”
마리엘 함장의 말에 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군대와 싸우는 건 미친짓이죠.”
“그럼 왜?”
“그건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엉뚱한 사람을 구속시킨 분께서 한 번 잘 생각해 보시지요.”
“이 자식이!”
퍼억!
마리엘이 다시 한번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준은 조금의 신음도 흘리지 않았다. 그 모습에 더욱 화가 나는지, 마리엘 함장의 구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델타의 보조를 받는 준에게 고통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계속해서 시스템 메시지만 머릿속에 울릴 뿐이었다.
“너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는거냐? 플랫폼에 내에서 총기 탈취라니! 게다가 헌터라는 것은 왜 지금까지 숨겼던 것이냐?”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폭력도, 탈주도 아니었다. 준이 헌터였다는 것과, 그 헌터가 총기를 탈취했다는 사실이었다. 헌터의 총기사용은 10대 범죄 중에 들어갈 정도로 엄중하게 다루고 있는 문제였다.
“처음에는 정식재판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브랜든이 찾아오더군요. 그가 말하지 않았으면 저도 뭐가 뭔지 모른 채 당하고 말았을 겁니다. 크크. 고마운 일이죠. 덕분에 제가 해야 할 일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브랜든...”
마리엘은 이를 갈았다. 준은 이걸로 브랜든에 대한 복수는 어느정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으로 모든 분이 풀리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브랜든에게 고생문이 열렸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일을 크게 벌렸다?”
“정식재판에 가면 적어도 살인죄와 결정체 횡령건에 대해서는 무죄가 나올테니까요.”
퍽!
준의 머리가 다시한번 돌아갔다.
“퉤.”
입가에 고인 피를 뱉은 준은 마리엘 함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왜 나였습니까?”
“글쎄. 물어봐야 아는 건가?”
“하긴. 나 같은 놈 하나 죽여봐야 뒤탈도 없었겠지요.”
준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마리엘 함장이 불쾌한 심정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너만 조용히 죽어줬다면 모든 일이 수순대로 풀렸을 텐데. 너 하나때문에 내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알고 있느냐?”
“글쎄요. 뇌물로 들어갈 돈이 두 배쯤 많아졌으려나?”
퍼억!
“큭.”
“상관에게 존경심을 가져야지. 어쨌든 정식재판으로 간다고 해도 네게 희망은 없을 거다. 중범죄를 저지른 헌터가 어떻게 되는지는 너도 알고 있겠지? 어디 한번 잘 견뎌봐. 그곳에 도착하고 나면 널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마리엘은 등을 돌려 사라졌다.
무역연합은 새크리파이스를 포함한 다국적 기업의 연합체로 만들어진 국가였다. 따라서 준의 처분은 새크리파이스의 사규가 아니라 연합법에 따라서 결정되었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살인혐의와 결정체 횡령 건은 무죄. 폭력, 탈옥, 공공기물파손, 공무집행방해, 총기탈취에 대해서 유죄를 인정한다. 특히 헌터의 총기탈취는 법으로 정한 가중처벌법의 대상임으로, 본 법정은 피고에게 알카트뢰즈 형을 선고한다. 반성의 여지가 있고, 초범임을 감안하여 수형기간은 3년으로 한다.
알카트뢰즈.
그곳은 악마의 섬이라고 불렸던 알카트라즈 섬에서 이름을 따온 곳으로, 일반 감옥에 둘 수 없는 헌터들을 격리하기 위한 행성이었다. 비교적 중형을 선고받은 헌터 범죄자들이 보내지는 곳으로, 해마다 죽어나가는 헌터들의 숫자가 꽤 되는 편이라 모두가 가기를 꺼려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만큼 호랑이 길드원들의 반응은 심각했다. 어떻게든 항소하라며 난리를 피웠지만 연합법은 증거가 확실한 사건에 대해서는 항소를 금하고 있었다.
준도 걱정이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곳에 대한 정보를 셀럼에게 들은 적이 있어 어느정도 사정은 알고 있었다. 잘만하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걱정하지마 별일없을테니까.
-절반은 죽어서 돌아온다던데ㅠㅠㅠ
-절반은 살잖아.
-엄청 긍정적이시네요. 존경스럽습니다.
-기다리겠다.
방식은 달랐지만 다들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통신은 준이 수라드 행성을 떠나자 더 이상 연결되지 않았다. 펠로우쉽은 해제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정보는 닫힌 채로 열람할 수 없게 되었다.
이주 후.
알카트뢰즈 행성에 도착한 준은 여기저기에서 모인 범죄자들과 함께 착륙선에 탑승했다. 함께 탑승한 자들은 모두 11명으로 하나같이 험상궂은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아니, 단지 그렇게 보이는 것뿐인가?’
범죄자라고 생각하고 보니 더욱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자세히 살펴보니 표정들이 굳어 있을 뿐이었다. 아닌 척 해도 다들 알카트뢰즈의 악명에 겁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지각의 대부분이 사막인 이곳은 몇몇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수형자 도시가 건설되어 있다다. 우리는 너희들이 어디에서 살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형기간이 끝날때까지 살아남으려면 다른 이들과 함께 지내는 편이 이득이겠지. 질문있나?”
베이지색 군복을 입은 장교가 수형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는 마치 밀랍인형처럼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표정의 변화가 없어 거의 로봇처럼 보일 정도였다.
준의 옆에 앉아있던 마른 체형의 남성이 손을 들었다.
“말 해.”
“수감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배식이나 이런 것은 어떻게 합니까?”
“없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몇 년을 버티라는 겁니까? 농사라도 짓고 살라는 겁니까?”
“가보면 알게 된다. 다른 질문?”
하지만 더 이상 입을 여는 수형자는 없었다. 다들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걱정과 긴장으로 좀처럼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준도 딱히 더 질문할 것은 없었다. 어차피 필요한 사실들은 밑에 내려가면 전부 알게 될 것이다. 준이 셀럼에게 들어 알고 있는 바로 알카트뢰즈는 외도를 사냥해서 나오는 부산물이나 결정체를 화폐로 사용한다고 한다.
당연히 판매처는 연합이었고, 그 가격은 모든 판매처 중에서 가장 최악이라고 했다. 거의 바깥의 10분의 1수준이라고 하니 연합에서 이 알카트뢰즈를 운영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까놓고 말해서 범죄를 저지른 헌터를 이용해 저렴한 비용으로 결정체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준이 알카트뢰즈에 올 것을 각오하고 일을 저지른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곳의 결정체 가격은 다른 곳에 비해 압도적으로 싸다. 게다가 헌터들이 자급자족하면서 살기 때문에 바깥에서라면 구할 수 없을 결정체를 이곳에서는 눈치를 보지 않고 얻을 수 있어.’
단 열흘간이었지만 세일럼에서 사냥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었다. 사냥만으로는 경험치를 얻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 3레벨이 되는데 경험치가 100이 필요했다면 4레벨이 되는데는 경험치가 얼마나 들어갈지 예측할 수 없었다. 적어도 200이상은 필요할텐데, 그러려면 붉은색 외도만 하더라도 스무 마리를 넘게 잡아야 했다.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었고, 호랑이길드와 파티를 한다면 팔십 마리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너무 오래 걸려.’
차분히 사냥을 이어간다면 언젠가는 4레벨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몇 달이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은, 그리고 그 다음 다음은 기약할 수 없는 세월이 필요한 일이다.
‘더 빨리 강해져야해.’
마리엘에게 당한 것도 힘이 없어서 였다. 그런 일을 두 번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선 총기앞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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