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29화 (29/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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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팅스

준은 플랫폼 내에 있는 유치장에 앉아 부글부글 끓는 속을 삭이고 있었다. 잡혀오면서도 뭔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며 그렇게 하소연을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준은 차분히 앉아 생각했다. 바쉬르 행성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는 것은 셀럼과 브랜든 밖에 없었다. 셀럼이 자신을 고발했을리 없으니 남은 것은 브랜든 뿐이었다.

아무리 결정체를 나누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꽤나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한 사이다. 나름의 정이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이런식으로 뒤통수를 때릴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아니면 단지 레벨업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브랜든의 욕심을 과소평가 했던 것 뿐이일까?

‘하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뭘 근거로 날 잡아넣으려고 하는거지?’

무역연합이 상식이 없고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국가라고 할지라도, 최소한의 기본적인 원칙은 있다. 그중 하나가 증거재판주의였다. 어지간한 문명국에서는 당연하게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형사소송에 있어 반드시 증거에 의해서만 사실인정을 한다는 원칙이다. 즉, 증거가 없는 준의 살인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처벌할 수 없었다.

‘설마... 시신을 회수한 건가?’

바쉬르 행성에는 아직도 헌터들의 시신이 남아 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외도들이 처리했을 것이지만, 아니라면 그 시신에서 뭔가 흔적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아니지. 혈흔 같은 것으로 살해현장을 판단할 순 없어. 일단 그곳은 외도가 있는 곳이니까 당연히 전투중에 사망했을거라고 생각하는게 정상이야. 우주복을 입었으니 지문같은 것이 남아있을리 없어.’

게다가 수라드에 온지 겨우 열흘이 지났을 뿐이다. 그 이후에 바쉬르에 탐사대를 보냈다 하더라도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을 시간이었다.

‘결국 브랜든의 증언만 가지고 날 잡아넣었다는 건데... 젠장. 아무리 그래도 사람말은 좀 들어봐야 할 거 아니야.’

자신의 지위가 아무리 낮다고 해도, 어쨌든 기본권을 인정받고 있는 무역연합의 시민이었다. 그런상황에서 변호할 기회도 박탈당한 채 구속당해있다는 것은 자신의 신변을 책임지고 있는 새크리파이스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고있는 지를 명백하게 방증하는 것이다.

“변호사를 불러야하나...?”

하지만 손발이 묶인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스마트 패널도 압수당한 상태.

“일단은 여기서 나가야 돼. 젠장. 전화라도 좀 할 수 있으면 셀럼에게 도움이라도 요청할텐데.”

그렇지 않아도 유치장을 담당하는 경찰관에게 전화 좀 쓰게 해달라고 했다가 개소리 말라며 욕만 먹었다. 변신술이나 투명인간이 되는 기술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준은 문득 델타의 통신기능을 떠올렸다. 호랑이 길드와는 아직도 펠로우쉽에 연결되어 있었다. 어차피 함장에게 보고를 한 이후 돌아갈 생각이었기에 굳이 해제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장민성이 새크리파이스에 인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셀럼에게 연락을 취해줄 수는 있었다. 그렇게 되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준은 펠로우쉽 관리창을 열어 장민성에게 문자를 보냈다.

-현재 수라드 플랫폼 임시파출소에 범죄혐의로 구류중. 아래번호로 연락해서 지금 내 상황을 알려주기 바람.

준은 그렇게 쓰고 셀럼의 번호를 첨부했다. 그러자 곧바로 문자가 날아왔다. 장민성이 아니라 서은설에게서였다.

-준님 대체 무슨 일이야? 범죄혐의라니? 빵이라도 훔친거야?

-내가 무슨 장발장이냐? 어쨌든 자세한 걸 알려주긴 어렵고, 일단 셀럼이라는 사람에게 지금 내 상황을 알려주면 어떻게든 답신이 올 거야. 자세한 상

황은 계속해서 이걸로 알려줘.

-궁금하게 만들지 말고! 무슨 큰일에 연루되기라도 한 거야? 빚은 다 갚았다며?

-자세한건 아직도 잘 몰라. 대체 나도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어. 일단 상황이 돌아가는 걸 지켜봐야지.

-오케이. 셀럼이라는 사람한테 연락이 오는 대로 바로 그쪽으로 문자보낼게.

일단 통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만으로도 조금 안심이 되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동앗줄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온 기분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것도 없는 칙칙한 구치소 안에서의 시간은 한없이 느리게만 흘렀다. 밖이 약간 소란스러운가 했더니 익숙한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브랜든이었다.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는데?”

“누구 덕분에.”

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브랜든이 입을 열었다.

“날 너무 원망은 하지마. 나도 어쩔 수 없었던 일이야.”

“결국 자기가 안했다는 말은 안하네. 솔직해서 좋다 야. 그건 그렇고 대체 살인에다 횡령이라니 완전히 날 얽어매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더라. 대체 왜 그러는거야? 이유나 좀 알자.”

“이번에 바쉬르 건에 대해서 위에서 감찰이 들어왔어.”

“그건 무슨 소리야?”

“마리엘 함장이 욕심을 너무 부린거지. 바쉬르에서 외계문명으로 보이는 함선을 발견했잖아? 특이외도들도 있었고.”

“그런데?”

“그걸 혼자 먹으려고 레이드 팀을 따로 꾸린 모양이야. 하지만 탐사단이 출발하기도 전에 누가 정보를 흘린 모양이더라고. 감찰단이 뜨면서 지금 마리엘 함장이 똥줄이 타는 상황인거지.”

“그거랑 나랑 무슨 상관인데?”

“마리엘 함장이 탐사단의 목적을 바쉬르 행성에서 있었던 살인사건을 밝히기 위한 거라고 거짓말을 했거든. 그래서 주요 용의자인 네가 걸려든거야. 아마... 셀럼에게도 혐의를 씌운 모양인데, 그는 현재 연락이 끊긴 상태라서 일단 급한대로 널 잡아 넣은 것 같아.”

“결정체 횡령건은?”

“...그건 미안하게 됐다. 마리엘 함장에게 뭐라도 이야기 하지 않으면 내 목이 먼저 잘릴 판이었어.”

“사람 뒤통수를 때려놓고서 미안하다고 해봐야 전혀 용서할 마음이 들지 않아. 씁. 어쨌든 그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그래봐야 어차피 증거도 없잖아. 정식으로 재판을 받게 되면 무죄가 입증될거라고 생각하는데?”

준의 말에 브랜든이 씁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분위기가 어째 이상했다.

“뭐야? 뭐가 문젠데?”

“넌 아마 재판까지 못갈거야. 변호사도 선임할 수 없을거고.”

“왜?”

“감찰단이 오기 전에 마리엘 함장이 약식으로 판결을 내릴 생각인 모양이더라고. 그 일이 일어난 게 마리엘 함장의 관할 하에 있던 때잖아. 게다가 화물선 자체는 민간운수용이지만 마리엘은 사관학교를 졸업한 정식 장교라고.”

“그게 어떻게 된다는 거야?”

“그러니까. 새크리파이스도 정부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고, 함장이 군인신분이다 보니 이런 경우 군사재판과 동일한 기준으로 처리 할 수 있다고 해.”

“뭐라고? 나는 민간인인데?”

“그 이전에 새크리파이스의 소유물이지. 현재 너를 처분할 권리는 새크리파이스에 일임되어 있어. 너는 현재 연합법이 아니라 새크리파이스의 내규에 따라서 처벌받게 되는거야. 마리엘 함장이 이용하려는게 바로 그거고.”

“자, 잠깐 나 여기 오기전에 빚을 갚았는데...? 바로 처리되는 거 아니야?”

“마리엘 함장이 네 계좌를 동결 시켰어. 그 돈을 결정체 횡령으로 번 돈으로 간주하고 증거물로 신청했거든.”

준의 사고가 정지했다. 머리가 어질어질 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희망으로 넘쳤던 세상이 한치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컴컴한 암흑으로 변하는 기분이었다.

“그... 그럼 난 이제 어떻게 되는거지?”

“...모르겠다.”

브랜든은 준의 눈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준은 철창을 붙잡고 브랜든을 향해 외쳤다.

“말해봐! 어떻게 되냐고? 날 팔아넘긴 게 미안해서 여기까지 온거 아냐? 그럴거면 확실하게 말해달라고!”

“그것이...후.”

브랜든은 잠시 주저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마 며칠내로 사형판결이 떨어질거야. 본사에서 감찰단이 도착하기 전에 너를 처리하려고 들거거든.”

“뭐, 뭐라고?”

풀썩.

준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풀렸다.

“하,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증거도 없이 사형을...”

“마리엘 함장도 필사적인 거지. 나도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하지만 그 정도 위치의 인간이 너를 희생양으로 삼은거야. 아마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어 내겠지. 살인사건입증은 몰라도 결정체 횡령 건은 피하기 힘들거야.”

“증거 같은 게 남아 있을리 없어.”

“상관없어. 증거가 없다해도 어떻게든 만들어 낼 수 있는 인간이니까.”

“말도안돼... 세상에 그런에 어디있어? 이제 겨우 빚을 갚을 돈을 모았는데!”

“미안하다.”

“닥쳐!”

브랜든의 말에 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체 뭐가 미안한데? 그거 비밀 지키는 게 그렇게 어려웠어? 그냥 입다물고 있었으면 됐잖아!”

“어차피 내가 아니었어도 마리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집어넣었을거야.”

“변명하지마!”

“네 기분은 알겠는데, 날 비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야.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준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꺼낸 말이었지만, 그게 오히려 역효과였다.

쿵!

“윽?”

브랜든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준이 철창을 주먹으로 때린 것이다. 그곳은 움푹 패여 구부러져 있었다.

“내가...”

“뭐?”

“아주 만만해 보였나보다. 그치? 그냥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브랜든에게로 다가갔다. 둘 사이에는 두꺼운 철창이 있었지만 브랜든은 그것이 전혀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뭐, 뭐 어쩌려는 거야?”

“궁금해?”

준은 철창을 쥐고는 서서히 잡아 당겼다.

끼이이이-

철창이 점점 휘기 시작했다.

“무, 무슨! 여기 수감자가 도망친다!”

브랜든은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 그러자 부산스러운 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막 유치장 쪽으로 들어선 경찰이 준을 보며 경찰봉을 뽑아들었다. 철창은 사람이 드나들 정도로 넓혀져 있었고, 준은 이미 철창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퍽!

경찰봉은 준의 머리에 직격했다. 주륵, 하고 이마에서부터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준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경찰관을 노려보았다. 그 살기어린 모습에 움찔한 경찰관은 하지만 이내 자신이 겁을 먹었다는 사실에 화가나는지 사정없이 경찰봉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퍽! 퍽! 퍽! 퍽!

하지만 준은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 매질을 견디고 있었다. 준의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시스템메시지가 울려퍼졌다.

-경찰봉에 가격당해 체력이 10감소합니다.

-경찰봉에 가격당해 체력이 6감소합니다.

-경찰봉에 가격당해...

턱.

준이 날아오던 경찰봉을 손으로 잡아챘다. 깜짝 놀란 경찰관이 온힘을 다해서 잡아빼려고 했지만 마치 공업용 프레스에 끼인 것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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