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 ----------------------------------------------
세일럼의 마녀
그 소리에 총격전이 잠시 멎었다.
“오지마!”
장민성이 갑자기 나타난 준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절규하듯 외쳤다. 숫적으로 너무나도 부족한 상황. 분명 준이 와준다면 도움이 될테지만 그렇다고 총기를 가진 상대로 이길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장민성도 아무것도 안하고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가지고 있던 스마트 패널로 구조신호를 보낸 상황이고, 조금만 더 버티면 구조대가 올 것이다.
“웃기지마. 니가 뭔데 명령이야?”
준은 장민성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타고 온 자전거를 집어 들었다. 힘 수치가 26이 되자 십 킬로그램이 넘는 자전거가 마치 깃털처럼 느껴졌다.
체인이 끊어지고 타이어가 완전히 닳아버린, 짧은 시간 동안 혹사당한 자전거는 이미 다시 쓸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는 상태. 어차피 다시 쓸 수도 없는 것, 준은 자전거를 냅다 밴디트들을 향해 집어던졌다.
휘익!
자전거는 정말 가볍게, 하지만 빨랫줄 같은 직선을 그리며 엄청난 속도로 밴디트들이 숨어 있는 나무들 사이로 처박혔다.
콰직!
“으악!”
“아앗! 내 눈!”
운좋게 자전거 하나가 활을 든 놈 하나에게 직격했고, 자전거가 산산이 부서지며 그 파편이 또 한 녀석의 눈에 박혔다.
단숨에 두 명의 밴디트가 전투 불능이 되었고, 준은 곧바로 불스원샷을 연사로 발사했다.
쾅! 쾅! 쾅! 쾅! 쾅! 쾅!
단번에 여섯 발을 모두 사용한 준은 탄창을 갈아끼면서 재빨리 도로 옆의 나무들 사이로 몸을 감추었다. 마음 같아선 단숨에 돌격해서 니들리스로 머리를 쪼개버리고 싶지만, 총기를 가진 놈들이 있는 이상 무모한 돌격은 자살행위였다.
“으아악!”
20미터 가량이나 거리가 있어 살상능력은 극히 떨어졌지만, 마나를 실은 불스원샷의 화력은 밴디트들이 있는 지역을 불바다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밴디트들이 숨어 있던 나무들이 불타오르기 시작하고 그 중 한놈의 몸에 불이 옮겨붙었다. 그자는 바닥을 뒹굴며 볼을 끄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곧 이어 장민성의 불스원샷이 불을 뿜으며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저 자식부터 죽여!”
권총을 든 두 명 중, 키가 큰 사내가 준을 가리켰지만 이미 숫자는 동일 한 상황. 권총과 불스원샷은 화력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탕! 탕!
게다가 저 들이 가지고 있는 권총은 연사가 되지 않았다. 한 번 총을 쏘고 나면 수동으로 노리쇠를 뒤로 당기는 모습이 보였다. 볼트액션식 수제 권총으로 요즘같은 세상에는 아예 생산조차 하지 않는 물건이었지만, 수백 년 된 구식모델인 만큼 신뢰성이 높아 민간에서 만들어 팔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이군. 저거라면 사거리가 그리 길지는 않겠어.’
준은 잠시 총 소리가 들리길 기다렸다가, 두발의 총성이 울리자마자 바로 몸을 드러내고 불스원샷을 날렸다.
쾅! 쾅!
그렇게 두발을 쏘자 적들이 황급히 몸을 숨겼다. 준은 불스원샷을 든 채로 빠르게 놈들을 향해 거리를 좁했다. 마나를 담은 불스원샷의 살상거리는 10미터 정도로 짧기 때문에 놈들이 몸을 드러내려고 할 때마다 방아쇠를 당기며 달렸다.
“헉. 헉.”
그리고 최대한 근접했다고 생각했을때 나무뒤로 몸을 숨겼다.
탕! 탕!
피슝! 퓻!
준이 숨어있는 나무로 두발의 탄환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 거리는 나에게도 위험해. 자칫 잘못해서 총을 맞으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어. 차라리 내가 시선을 끌고 장민성과 홍창만이 놈들을 공격하는게 나아. 놈들은 포위된 상황이고, 내가 이쪽에서 움직이려는 신호만 보여도 놈들은 나를 향해 사격을 하겠지. 그렇게 되면 장민성이 얼마든지 조준 사격을 할 수 있어.’
불스원샷은 화력이 강한 반면 거리가 조금만 떨어져도 살상능력이 극도로 떨어졌다. 장민성이 아까부터 계속해서 공격을 하고 있지만 놈들을 죽이지 못한 이유였다. 하지만 자신이 이쪽에서 계속해서 시선을 끌어준다면, 장민성도 조준사격을 할 수 있게 되고, 홍창만의 기공술도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준은 반대편에 있는 장민성을 향해 손짓을 했다. 자신이 시선을 끌겠다는 제스춰였다. 장민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준이 큰 소리를 지르며 어깨를 슬쩍 내밀었다.
“이 자식들아!”
마치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자세였다.
탕! 탕!
두발의 총성이 울렸고, 살짝 내민 준의 어깨에 총알이 스치며 피가 튀었다. 아주 잠깐 몸을 내밀었음에도 명중시킨 것을 보면 사격실력 자체는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애초에 실력이 있으니 헌터를 습격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윽!’
-총탄에 맞아 체력이 10 감소했습니다.
순식간에 체력이 10이 날아갔다. 스쳤으니 망정이지 제대로 맞았다면 그정도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장민성과 홍창만이 숨어있던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쾅!
파앙!
홍창만이 외치는 기술명은 불스원샷의 굉음에 먹혀 들리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나무뒤에서 숨어 있는 적들을 향해 날아갔다.
“크헉!”
“아아악!”
불스원샷에 의해 그들이 숨어있던 나무가 불타고, 홍창만의 기공파가 불타는 나무를 관통해 반대편에 충격을 전달했다.
준이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총알은 날아오지 않았고, 나무 뒤에 있던 적들이 쓰러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몇몇은 바닥에서 신음을 흘리고 있었고 또 몇몇은 완전히 불에 탄채로 움직임이 없었다.
하지만 여섯 명 모두 바닥에 쓰러져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준은 참아왔던 숨을 뱉었다.
“후... 다 끝난 건가.”
쿵! 쿵! 쿵! 쿵!
긴장이 풀리며 그제서야 심장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준은 약간 현기증을 느끼며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고개를 돌려 장민성을 바라보자, 그가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뒤!”
“응?”
준이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자신의 이마에 차가운 감촉이 닿았다. 준은 그제서야 한 명이 더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쩐지 한 놈이 다르다 했지.”
“너, 너는?”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이틀 전 자신들이 크립토디라를 잡고 있을 때 나타난 클린트라는 이름의 헌터였다.
“깔끔하게 끝낼 수 있었는데 너 때문에 아주 골치 아프게 됐어.”
클린트는 준의 머리를 총구로 쿡쿡 밀었다. 준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온몸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
외도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준이다. 하지만 이마에서 부터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은 실체적인 공포로 그를 사로잡았다. 자신이 조금만 이상한 낌새를 보여도 놈은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너는 어차피 도망치지 못해.”
준은 창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두려웠지만, 그래도 겁먹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오기라면 오기였다. 설령 여기서 죽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비굴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필사적인 고집이었다.
그리고 뜬금없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원래 이런 녀석이었나...’
준은 살아남기 위해 얼마든지 비굴해 질 수 있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면 바지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질 수 있었다. 지금껏 속마음을 숨기고 살아왔던 날들은 일일이 다 셀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헌데 지금은 비굴해지기 싫었다. 겁먹는 것이 두려웠다. 죽기도 전에 패배하는 것이 죽기보다도 싫었다.
“죽는게 두렵지 않나?”
클린트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미 준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도, 죽고 싶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준이 허세를 부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의 그 질문은 그저 사냥감이 먹이를 죽이기 전에 잠시 데리고 노는 것 같은, 잠시의 유흥일 뿐이었다. 그에게 준의 결의나, 각오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준은 흔들렸던 눈동자를 겨우 녀석의 시선과 맞추었다. 그리고 마치 비명같은 소리를 질렀다.
“죽여봐! 이 개새끼야!”
말과 함께 준은 그대로 클린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갑작스런 준의 돌격에 당황한 클린트가 방아쇠를 당겼고, 비록 살짝 조준이 흐트러졌지만 탄환은 정확히 준의 관자놀이에 닿았다.
퍽!
“준!”
멀리서 장민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은 가물거리는 의식을 붙잡으려 애썼지만 더 이상 생각의 끈을 이어 갈 수 없었다.
툭, 하고 준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의식이 끊기기 직전, 그의 머릿속에 한 줄기 음성이 들려왔다.
-치명적인 일격을 당했습니다. 총탄에 맞아 체력이 180 감소했습니다.
“어?”
준은 번득 정신을 차렸다. 분명히 머리에 총알이 관통했다고 생각했다. 헌데 아직도 죽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시스템메시지에서 확실하게 자신이 살아있다고 말해주었다.
‘체력이 180이 날아갔다는 소리는...’
준은 시야 왼쪽 상단에 있는 자신의 체력바가 아직 3분의 1 이상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그 이야기는 자신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뜻이었다. 권총에 머리를 맞았는데도 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에 놀라기 전에 우선 준은 몸을 일으켰다. 클린트가 노리쇠를 당기고 죽을 각오로 달려오고 있는 장민성을 향해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준은 어깨에 매고 있던 니들리스를 쥐면서 동시에 발로 클린트의 다리를 후려찼다.
뻐억!
콰당!
클린트의 몸이 수직으로 90도 회전하면서 엄청난 소리를 내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컥?”
막 방아쇠를 당기려던 클린트도, 달려오던 장민성도, 파동권을 쓰기 위해 두 손을 내밀고 있던 홍천만도 다들 귀신을 본 것 처럼 자신을 향해 두 눈을 크게 뜬 채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 안 죽었군...”
장민성이 어렵게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나마 준의 비상식적인 행동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응. 하지만 이 녀석은.”
준은 니들리스를 높이 들었다. 스패너의 머리가 푸르게 빛났고, 장민성이 손을 들어 말렸다.
“죽이지마. 물어봐야 할 것이 많아.”
“복수해야 하잖아.”
준은 담담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장민성의 뒤쪽에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서은설이 있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은 되지 않지만, 이미 바닥은 그녀가 흘린 피로 흥건해져 있었다.
저렇게 피를 흘린 이상 아무리 헌터라 해도 살아남기는 힘들었다.
“복수는... 여기서 끝낼 수 없어. 이 녀석들 다크나이트 길드다. 이런 놈들이 더 있을거고, 난 이 놈들을 우주끝까지 쫓아가서 전부 죽여버릴거다.”
“알았어.”
준은 니들리스를 내렸다. 준이 물러서자, 클린트의 공포에 질렸던 눈이 조금씩 돌아왔지만, 그는 뒤이어질 장민성의 분노를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를 잃은 분노가 어떻게 표현될지는 장민성 본인도 알 수 없었다.
클린트를 장민성에게 맡긴 준은 재빨리 서은설에게로 향했다. 가슴을 감싼 붕대는 이미 붉은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급하게 응급처치를 하긴 했지만 모든 출혈을 막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클린트를 나무에 묶어놓고 달려온 장민성이 초조하게 스마트 패널을 열었다. 준이 없었기에 따로 트럭을 빌리지 않았던 것이 이렇게 후회가 될지는 몰랐다.
“이 자식들 대체 언제 오는거야!”
퍽!
소리를 지르며 스마트 패널을 바닥에 집어던진 장민성은 초조하게 도로를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차량이라도 있다면 그녀를 데리고 도시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살아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아니, 솔직히 준이 보기엔 이미 늦어도 한참늦어 보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준은 그녀의 경동맥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맥박이 너무 희미했다. 숨은 거의 쉬지 않았고, 의식은 애저녁에 없었다.
이제는 더 이상 흘릴 피도 없는지, 출혈은 거의 멎어 있었다.
“...이 녀석 꽤나 예쁜 얼굴이었네.”
준은 그녀의 얼굴을 조용히 내려다 보았다. 창백한 얼굴에는 핏기 하나 없었고, 숨은 거의 끊어질 듯 가느다랗게 이어지고 있었다. 초조하게 도로를 바라보는 장민성과, 서은설의 곁에서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는 홍천만.
준은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눈앞이 흐렸다. 그래도, 꽤나 정이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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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라. 서은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