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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럼의 마녀
쿨리킨의 눈알을 모두 수거하니 29개 정도가 나왔다. 생각보다는 많았지만, 다른 외도를 잡을때에 비해서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목숨을 걸고 싸운것치곤 그리 많이 버는 건 아니네.”
투덜거리긴 했지만 그다지 불만은 아니었다. 일단 엄청나게 빨리 잡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불스원샷의 화력을 확인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사냥이었다.
눈알을 모두 챙긴 장민성이 준을 향해 말했다.
“다음 사냥을 하기 전에 일단 어그로가 튄 원인부터 파악해야 해. 내 생각에는 그 무기에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한다.”
“문제라니? 내 제작품에 문제가 있을리 없어. 문제가 있다면 그건 이 세계다.”
“태연하게 그런 소릴 하다니. 아까 그걸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세포가 다 타버리기라도 한거야?”
“농담도 못하냐.”
서은설이 강렬한 태클을 걸어오자, 준이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이거, 항력을 어느정도 중화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가능해?”
“지금으로선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어. 아무래도 연구를 좀 더 해봐야겠지만...”
“그렇다면 처음에 준에게 어그로가 쏠린 까닭을 설명할 수 있다. 쿨리킨이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겠지.”
“일단 항력을 중화시킨다는 것부터가 이상해. 하지만 일단 그건 그렇다고 쳐. 문제는 또 있어. 아무리 그렇다 해도 단 두 방에 녀석을 죽였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
서은설의 말에 준을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스원샷의 화력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도가 겨우 두 발에 불타죽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준은 설명할 필요성을 느꼈다. 사실 자신도 이 현상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쩌면 우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급한김에 저지른 짓이긴 한데...”
준은 확신이 가지 않는 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곤 말을 이었다.
“두 발 째에는 마나를 실어서 쐈던 것 같아.”
준은 당시의 순간을 떠올렸다. 쿨리킨이 자신을 보는 순간, 어그로가 자신을 향했다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탄창을 갈았다. 하지만 기껏해야 부탄가스 하나정도의 화력이다. 그걸로 외도에게 강력한 타격을 입힐만한 딜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은 준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마나를 발현 시킨 것은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가스토치 역시 익숙했던 공구이고, 니들리스를 사용했던 것처럼 마나를 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보다 행동이 더 빨랐고, 준은 자신의 마나가 쑥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방아쇠를 당겼다.
결과는 드러난 대로였다. 초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폭발과 함께 쿨리킨이 죽었고 자신의 앞머리가 절반쯤 사라졌다.
“에? 말도 안 돼. 준님이 정말 말도 안되는 짓을 많이 하긴 했지만, 이건 그중에서도 최고로 말이 안 돼.”
서은설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않는 다는 듯 팔짱을 끼곤 준을 노려보았다.
“실제로 마나를 32정도 써버렸거든.”
“뭐야. 그 기분나쁘게 정확한 수치는? 마나를 숫자로 표현할 만큼 정확하게 계량할 수 있단 말이야?”
“아.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하여튼 마나를 쓴 건 사실이야.”
준은 아차하며 얼버무렸다. 그의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장민성이 입을 열었다.
“그냥 사용해도 어그로를 끌 정도로 실드에 타격을 줄 수 있고, 마나를 넣어서 쓰면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단 말이지?”
“음. 사실이 그렇긴 한데. 아마 이 불스원샷에 마나를 발현 시킬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거야.”
“그건 왜?”
“해볼래?”
준은 불스원샷은 서은설에게 건네 주었다. 그녀는 그걸 받아들고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장민성에게 넘겨주었다.
“난 마법사라서 애초에 무기에 마나를 싣는법을 몰라. 오빠가 해봐.”
“흠. 난 검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렵다. 원거리 무기를 사용하는 이들이라면 가능할지도.”
장민성은 불스원샷을 다시 홍창만에게 넘겨주었다. 그는 기공사로, 마나자체를 물리적 타격이 가능한 형태로 바꾸어 발현하는 재능이 있었다. 결과는 비슷해도 마법사와는 궤가 다른 능력이었다.
홍창만은 잠시 불스원샷을 만져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안 돼. 난 어차피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도 모르는 걸.”
“장풍 쏘듯이 쏜다고 생각하고 방아쇠를 당겨봐.”
“장풍이라니... 틀린말은 아니지만.”
누구 하나라도 실험을 해봐야 했기에 준은 홍창만을 재촉했다. 그는 잠시 한숨을 쉬더니 부탄가스통을 넣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쾅!
엄청난 열기와 함께 불꽃이 전방으로 발사되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무기 자체의 위력만 나타날 뿐 그를 뛰어넘는 폭발력을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때?”
“마나를 받아들이지 않아.”
“역시...”
준이 불스원샷을 받아들며 입을 열었다. 서은설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런거야?”
“이거 공구잖아. 애초에 무기가 아니라고. 화염방사기라든지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장비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거고, 그런 상태에서는 마나를 제대로 발현할 수 없는거지.”
“그럼 이걸 만든 사람이 아니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거네?”
“그런 셈이지.”
“하지만 그냥 사용해도 실드를 깎을 수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거 같아. 대체 뭘로 만들었는데 그런게 가능한거야?”
“나도 모르겠어.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거 같아.”
“흠...”
서은설은 어설픈 솜씨로 변명하는 준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더 이상 캐물을 생각은 없는지 입을 열진 않았다.
사실 준은 대략 원인을 짐작하고 있었다. 제작도구 자체가 경험치를 소모하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경험치는 엑조틱 에너지와 등가로 치환되고, 도구를 만들 때 사용된 엑조틱 에너지가 외도의 항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내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니들리스가 강력한 것도 그 때문이겠군.’
아무리 마나를 많이 사용한다고 해도 준의 딜량이 무지막지한 것은 말이 안되는 측면이 있었다. 준이 서은설보다 열배의 마나로 때린다고 한들, 판테라를 한방에 잡는 화력은 나오지 않아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결국 니들리스 자체에 어느정도 항력을 상쇄시키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했다.
“그러면 전술을 바꿔야겠군. 일단 그 무기는 내가 어그로를 끄는 용도로 사용하고, 이후에 준에게 넘겨서 녀석을 죽이면 되겠군.”
장민성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할일이 없어지는 건데. 꽤 한심한 처지가 됐네.”
서은설의 말에 홍창만도 고개를 끄덕였다. 불스원샷이 일격에 쿨리킨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상 서은설과 홍창만의 딜은 필요가 없게 되었다. 비록 사냥속도는 빨라지겠지만 길드 차원에서 이건 좋은 이야기가 아니다. 레이드에 참여할 수 없다는 소외감도 크지만,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고 생각하면서 버틸 인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호랑이 길드원들의 관계는 사실상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장민성이 그런 그들을 버려가면서 까지 이런 레이드 방식을 지속할리 없다.
그제서야 그 사실을 깨달은 장민성도 ‘아’하고 신음을 흘리더니 한숨을 쉬었다. 이건 단순히 서은설과 홍창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넌 혼자서도 레이드를 할 수 있게 됐군.”
“어? 그렇게 되나...?”
준은 내심 당혹스러웠다. 새로운 무기를 만든다는 생각에 신나서 그로 인한 여파까지 생각해보진 못했다. 물론, 강해졌다는 사실자체는 기쁜일이다. 혼자서 일반외도를 때려잡을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소식이었다.
더 이상 그는 싸구려 근접딜러가 아니었다. 근딜, 원딜 모두 가능한 하이브리드 헌터였고 그 실력도 최하급은 이미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가 호랑이 길드에 있어야 할 이유도 사라지고 말았다.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아침까지만 해도 들떠있었던 준도 결과가 이렇게 되자 그다지 기뻐할 수 없었다.
“역시 준님 대단해. 나랑 결혼하지 않을래?”
서은설의 철없는 소리도, 어쩐지 힘이 빠져 웃을 수 없었다.
“그럼 일단 오늘까지는 같이 사냥하는 걸로 하지.”
일단 트럭까지 몰고 나왔으니 아무런 소득없이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냥은 장민성이 먼저 어그로를 끌고 준이 마무리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해가 슬슬 지기 시작하자, 장민성이 레이드 종료를 선언했다. 그날하루 잡은 쿨리킨은 모두 45마리였다. 발견하는 족족 그냥 쓸어버리니 사냥이고 뭐고 학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해서 얻은 쿨리킨 눈알은 천이백 개. 하루사이에 천이백 만원을 번 셈이다.
덕분에 침울한 분위기는 상당부분 사라졌다. 어쨌든 오늘의 성과는 만족스러웠고, 기뻤고, 또 분에 넘쳤다.
준은 그중 절반인 육백만원을 받았고 불스원샷의 가격으로 백만원을 추가로 받았다. 단 사흘만에 준의 재산은 천삼백 만원으로 늘었다.
“이야. 이거 재벌 되겠네. 준님. 나중에 성공하면 우리 모른 척 하기 없기.”
“바보냐...”
레이드를 끝나고 헤어 질 때까지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굳이 별말을 하지 않아도 준이 내일부터 레이드를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은 서로가 알 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먼저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쿨리킨의 눈알을 모두 팔고, 수익금을 배분한 뒤 장민성이 준을 향해 악수를 청했다.
“며칠뿐이었지만 그동안 고마웠다. 덕분에 내 생각보다 길드가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나도. 덕분에 많은 걸 알게 됐어. 고마웠다. 정말.”
장민성은 호랑이 길드와 함께 자신들의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서은설이 이쪽을 힐끔힐끔 돌아보았다.
준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다른 녀석을 잡으면 또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우리가 좀 더 성장하면 그때 만나지.”
하지만 그때가 되면 준은 더 성장해 있을 것이다. 장민성보다도, 호랑이 길드보다도 훨씬 더 성장해 그들이 쳐다보지도 못할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지.’
하지만 장민성은 돌아보지도, 멈추지도 않았다. 서은설이 장민성의 옆구리를 퍽 소리나게 후려쳤지만, 그는 탱커답게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나...”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장민성의 판단은 옳다. 자신은 이미 호랑이 길드에 필요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사실은 호랑이 길드가 자신에게 필요 없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그런 상황에서 억지로 같은 팀을 짜봐야 서로의 감정만 상하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호랑이 길드가 단순히 돈만 벌기 위한 길드였다면 어떻게든 자신을 끌어들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설령 서은설과 홍창만을 내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준의 존재는 호랑이 길드에게는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나 다름없었으니까. 실제로도 그가 있었던 단 사흘 만에 호랑이 길드는 한 달 동안 버는 것 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자신에게 수익의 절반을 떼어주고도 그랬다.
하지만 장민성의 판단은 반대였다. 그에게 있어 돈은 중요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 돈이 중요하지 않은 헌터는 없어.’
그게 얼마나 말이 안되는 소리인지는 준이 더 잘 안다.
헌터는 목숨을 내놓는 직업이다. 자신의 목숨을 팔아서 돈을 버는 직업이다. 죽어도 좋을 만큼, 위험을 감수할 만큼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헌터로 나선다. 상대가 일반외도라고 해서 위험하지 않을리 없는 것이다.
자신이 헌터가 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헌터가 멋있어 보여서, 쿨 해 보여서 헌터를 한 것이 아니다.
‘돈 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던 거겠지.’
장민성은 냉정한 사람이 아니다. 불같은 성격이고, 누구보다도 성격도 급하다. 그런 녀석을 저렇게 이성적으로 만들 만큼 절실한 것이 그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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