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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델타-17화 (17/540)

0017 ----------------------------------------------

세일럼의 마녀

“일단 오늘은 몇 마리만 더 잡고 가자. 생각보다 빨리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장민성은 준을 흘깃 보았다. 그가 초보가 아니라는 오해는 풀렸지만, 여전히 그 강력한 딜링은 이해가 안되는 면이 있었다.

호랑이 길드는 보통 탱커인 자신을 제외하고 근딜 1명 원딜 2명이서 딜을 쏟아붇는다. 힐러를 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힐러는 어지간하면 최하급 사냥터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숫자가 적은 것도 있지만 최소한의 힐링만 할 줄 알아도 하급으로 취급받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3딜 체제로 외도를 잡는 방식을 선호해 왔는데, 그럴 경우 일반 외도의 실드를 깎아내는데 보통 삼십분 가량이 걸렸다. 그동안은 자신이 모든 공격을 받아내며 버텨야 했기 때문에 부담이 상당히 심했다.

헌데 준은 판테라를 단 두 방에 피떡을 만들어 버렸다. 저 정도면 딜링 자체만 놓고 봤을 때 자신들과 최소 두 단계 이상의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중급에 두기에는 좀 아쉽고, 하급에 놓기에는 너무 과한?

장민성의 생각에 이건 기회였다. 준을 제대로만 이용하면 단기간에 전력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준!”

“오케이!”

마나를 발현시킨 준은 거북이 형태의 외도, 크립토디라의 등껍질을 향해 그대로 니들리스를 내리꽂았다.

쿵!

충격파와 함께 4미터 크기의 거북이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등껍질 속에 숨어있던 머리와 팔다리가 다시 빠져 나왔다.

“준 빠지고, 은설, 창만, 딜 시작해!”

“파동권!”

“더블 애로우!!”

슈숭! 파앙!

허공을 날아간 마나의 구체들은 준을 향해 고개를 돌린 크립토디라의 머리에 명중했다. 하지만 녀석은 그쪽은 신경도 쓰지 않고 준을 향해서 녹색 체액을 뿜었다.

치익!

“더 물러서! 어그로 끌리잖아!”

“윽. 무슨 거북이가 침을 뱉어.”

준은 투덜거리면서 거리를 더욱 벌렸다. 크립토디라의 산성체액은 최대 15미터 까지 날아가기 때문에 거리가 있다고 해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준이 완전히 떨어지자 크립토디라가 다시 장민성에게 눈을 돌렸다. 녀석은 덩치에 비해 날렵한 동작으로 앞발을 크게 움직였다. 거북이 다리라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크립토디라의 앞다리는 신축성이 있었다.

후웅!

“큭.”

장민성이 황급히 상체를 뒤로 젖히며 늘어난 크립토디라의 앞발을 피했다. 자세가 무너진 장민성을 향해 크립토디라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콱!

캉!

몸을 뒤집으며 깨물기를 피한 장민성은 방패를 휘둘러 녀석의 머리를 후려쳤다.

쾅!

꽤애액!

머리를 얻어맞은 크립토디라가 괴성을 지르면서 고개를 쳐들었다. 녀석의 눈빛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장민성이 큰소리로 외쳤다.

“도발 조심! 간격 넓히고 눈 쳐다보지마!”

궁!

대기가 일렁일 정도의 강렬한 음파가 크립토디라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서은설과 홍창만은 그나마 멀리 떨어져 있어 괜찮았지만, 비교적 가까이 있던 준은 강한 영향을 받았다.

‘저거 죽일 수 있겠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크립토디라의 등껍질이 약하게 보이고 한 대만 때리면 산산이 부서질 것 같았다.

준이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머릿속으로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

-사용자가 외도 크립토디라의 도발에 걸렸습니다. 정신력 체크 중... 높은 정신력으로 인해 저항에 성공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크립토디라가 입을 쩍 벌리고 사방으로 체액을 뿌려대고 있었다. 도발 이후 산성액 발사의 연계기인 것 같았다. 장민성은 방패를 세우고 체액을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외도가 사람처럼 저렇게 기술을 섞어서 쓴다는 것은 꽤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실제로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정신력이 도발도 방어할 수 있구나.’

준이 알기로 정신력은 마나회복에 관련된 스탯이었다. 일 분당 정신력 스탯만큼 마나를 회복하는 식이다. 하지만 단순히 마나회복을 위한 스탯이 아니라, 각종 상태이상에 대한 저항력이 정신력의 영향을 받는다면 이쪽의 스탯도 신경을 써야 했다.

‘일단 방어 관련 스탯은 많이 찍는게 좋지.’

준은 대단한 헌터가 되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살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다 보니 안전이 더욱 중요했다.

‘역시 여기서부터 하는 게 맞았어.’

최하급이지만 레이드 경험이 없는 준에게 호랑이 길드와의 협력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이런 정보들 하나하나가 모두 경험이 있어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준! 공격해!”

장민성의 목소리에 준은 니들리스를 들고 크립토디라의 등껍질로 올라섰다. 녀석은 상황이 조금 위험해 진다 싶으면 등껍질 안으로 들어가 체력을 회복한다. 그때 실드도 같이 회복되기 때문에 회복량을 뛰어넘는 딜링을 하지 못하면 녀석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런 성향 때문에 딜이 부족한 팀은 녀석을 봐도 모른척하고 지나간다. 원래라면 장민성도 녀석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준의 딜링을 믿었다. 판테라를 단 두 방에 때려잡은 준이다. 아무리 단단한 등껍질이라도 준이라면 깨드릴 수 있었다.

“하앗!”

쿠웅!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등껍질 안에 숨어있던 크립토디라의 몸이 움찔거리는게 느껴졌다.

“한방 더!”

쿠웅!

쩌적!

단 두방에 실드가 깎여져 나가고, 크립토디라가 못견디겠다는 듯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준 딜 중지! 은설, 창만 공격해!”

장민성은 다시 어그로를 잡기 시작했다.

크립토디라의 사체는 돈이 많이 된다. 일단 등껍질을 이용해 방어구를 제작할 수도 있고, 녀석의 내장, 특히 간은 체력회복약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준은 장민성을 도와 녀석의 등껍질을 해체한 다음 배낭에 담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벌써? 아직 두 시간 밖에 안 지났잖아.”

서은설이 아쉽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사냥이 빨랐다. 두시간만에 잡은 게 판테라 2마리, 엔트1마리, 크립토디라 1마리였다. 밤새도록 잡아도 이렇게 잡은 적은 없었다.

“물들어 올 때 노저어야 되는데... 언제 이렇게 잡을지도 모르고...”

“잡은 수도 많고 배낭도 거의 다 찼어, 어차피 더 잡아봐야 가져가지도 못해.”

사실 몇 마리 더 잡아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장민성은 준을 슬쩍 쳐다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는 꽤나 기분이 좋아보였다.

‘경험치가 2올랐다. 확실히 이 녀석이 다른 외도보다는 강한 게 맞는 것 같아.’

준은 정보창을 보며 미소가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일반외도 4마리를 잡고 경험치를 5얻었다. 결정체를 얻어야만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가 의외의 수확이 생기자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강할수록 경험치를 많이 준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이곳에서 자신의 능력이 통한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사실이다.

부스럭.

그때 일행의 뒤쪽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진형을 잡은 호랑이 길드의 앞에 나타난 것은 이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헌터였다. 그의 뒤로 여섯명이나 되는 헌터들이 천천히 따르고 있었다.

“오... 무슨 소리가 들리기에 와봤더니 크립토디라를 잡고 있었나보군.”

“누구지? 레이드 중에는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게 원칙 일 텐데?”

장민성이 경계심을 누그러뜨리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그의 날카로운 반응이 다소 의외였던지 사내는 웃으면서 두 손을 들었다.

“악의는 없다. 사실 우리도 크립토디라를 추적하고 있었거든. 흔적을 쫓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뿐이지.”

“벌써 잡았으니 다른 녀석을 찾아봐.”

이제 그만 돌아 가보라는 이야기 였지만 사내는 별로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다.

“보니까 네 명이서 저놈을 잡은 것 같은데, 정보공유좀 부탁해도 될까? 보시다 시피 우리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크립토디라를 잡는 게 쉽지 않거든.”

“특별한 방법이 있다면 나도 알고 싶군.”

장민성의 말에 사내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지만, 그 표정은 나타날때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 참고로 그거 팔 생각있으면 다크나이트 길드에 연락해. 좋은 값으로 쳐줄테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장민성의 날카로운 반응에 사내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천천히 돌아섰다.

“참. 내 이름은 클린트다. 그거 팔 때 내 이름 대면 좋게 쳐 줄거야..”

“장민성.”

“그래. 장민성. 그럼 다음에 보지.”

클린트가 완전히 숲속으로 사라지자, 장민성은 후 하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준이 입을 열었다.

“어쩐지 기분나쁜 녀석인데.”

생긴 것은 닮지 않았지만 행동이나 말투가 툴리오와 판박이었다. 은근히 상대방을 무시하는 말투라던가, 자기중심적인 태도라던가.

“돌아가자.”

장민성의 말에 일행은 배낭을 짊어들었다.

가지고온 부산물을 모두 처분하자 25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액수다보니 일행의 표정이 밝을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밤새도록 사냥해도 그 절반도 넘기가 힘들었다.

장민성은 준에게 그 중에서 백만 원을 떼어주었다. 이건 약속했던 세 배 보다도 훨씬 많은 액수였다.

서은설과 홍창만은 다소 불만이 있는 것 같았지만 장민성의 태도는 확고했다.

“이, 이렇게 받아도 되려나?”

준은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자신이 뼈빠지게 일해서 버는 돈이 일년에 천만원이었다. 헌데 방금 두시간만에 백만원을 손에 쥔 것이다. 헌터가 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감동의 폭풍에 빠져있는 준에게 장민성이 입을 열었다.

“그쪽 덕분에 수월하게 사냥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돈은 활약한 것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그래도 적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흠. 그, 그렇죠.”

백만원. 백만원이 손에 있었다. 준은 애써 표정관리를 하려고 했지만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막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다음에도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장민성은 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준이 자신들을 놀린다고 생각해 주먹질도 했지만 감정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니 준이 있으면 훨씬 더 빠르게 사냥을 할 수 있었다. 아예 트럭을 빌려서 밤새도록 사냥하게 되면 오늘 번 것보다 몇배는 더 벌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길드도 더 커지고, 자신들을 믿고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더 많이 지원해 줄 수 있었다.

일부러 수입에서 절반가까이 떼어준 것도 그에게 잘 보이려고 한 것이다. 준은 표정관리를 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이, 이게 갑이라는 것인가!’

기분이 째졌다. 처음에 초보라고 멸시했던 장민성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사실은 멸시한 것 까지는 아니고 약간 걱정했던 것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갑의 입장에 선 준은 이 기분을 좀 더 느끼고 싶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척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흠... 생각 좀 해보도록 하죠. 저도 일정이 있으니까요.”

“와. 똥 싸기 전이랑 후랑 태도가 저렇게 달라지는 구나...”

서은설이 입을 열었다.

“...분위기 좀 깨지마. 지금 너네 길드장이 내 기분 맞추려고 애쓰는 것 안보이냐?”

“아부 좋아하면 대머리까져.”

“나 머리숱 많아! 그보다 대머리는 공짜를 좋아해야 까지는 거야! 그리고 너 왜 반말이야? 레이드 끝났잖아!”

“아. 죄송해요. 제가 그만 무례를 범했죠?”

서은설은 헤헤 웃으면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준은 서은설의 갑작스런 태세변환에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

“아. 부끄럽게...”

서은설이 몸을 배배꼬더니 말을 이었다.

“준 오빠. 우리랑 같이 하면 안돼용?”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 작품 후기 ============================

약속이 있어서 오늘은 한편만 올라갑니다. 내일 많이 쓸게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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