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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델타-12화 (1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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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2

마리엘 선장에게 보고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결과로만 따지면 이번 탐사는 성공이었다. 원했던 엑조틱 결정체를 얻었고, 특이외도가 있는 행성을 찾아냈다. 게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우주선의 잔해까지 발견했다. 그 정도면 마리엘 입장에서는 엄청난 실적이었다.

내심 엑조틱 에너지원에 대한 부분을 추궁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준이지만 함장이 기뻐하자 오히려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일곱 명이나 죽었는데. 아무런 말이 없네요.”

함장실에서 나오는 길에 준이 입을 열었다.

“별 말 없이 끝났으면 잘 된 일이지. 뭐가 불만이야?”

“그렇긴 한데... 목숨값이라는 게 참 싸구나 싶어서.”

브랜든이 핀잔을 주자 준은 다소 기운이 빠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툴리오를 비롯한 일곱명은 계약직에 불과하고, 월급에 이미 생명수당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계약기간 중 사망했다고 해도 따로 보상금 같은 걸 받기는 어려웠다.

헌터 자체가 엄청난 고위험 직종이다 보니 사망보험 같은 건 생각할 수 도 없었다. 결국 헌터가 죽었을 때, 생계곤란까지 겹쳐 그 가족은 두 배의 고통을 받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준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 사람 가족들이 불쌍해요.”

준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죽인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 가족도 어디선가 자신같은 고통을 떠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을 죽인 것과는 또 다른 이유였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과 같은 이들을 만들었다는 죄책감. 스스로 불합리한 세상에 한 손을 담그고 말았다는 자괴감.

팡!

“윽!”

셀럼이 거칠게 준의 등을 후려쳤다. 거의 혼이 빠져나갈 듯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준을 향해 셀럼이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마. 내가 보기엔 보이가 젤 불쌍해. 그런 너도 잘 살잖아. 그럼 그 사람들도 알아서 잘 살아 갈 거야. 멀쩡한 사람들을 불쌍한 인간으로 만들지 말라고.”

“윽... 그래도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드는 걸 어떻게 해요.”

“하긴 보이는 원래 그런 치킨이었지.”

“지금 겁쟁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문법 엄청 이상한 거 알아요?”

셀럼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피식 웃었다.

“뭐, 멋대로 걱정하라고.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질테니까. 그럼 난 이만 간다. 좀 쉬어야겠어.”

“쉬세요.”

셀럼과 인사를 하고 헤어지자, 브랜든이 눈치를 슬금슬금 보더니 입을 열었다.

“준. 그거 말인데...”

“네? 뭐요?”

준은 브랜든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 채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시선이 따끔거려서 견딜수가 없을 정도였다.

어떻게든 결정체를 나눠먹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 할 거야. 결정체. 보고 안하면 불법이잖아.”

마리엘 선장에게는 결정체를 하나만 얻었다고 보고한 상태였다. 그것은 지금 워프엔진에 쓰기 위해서 따로 보관을 해두었다. 남은 두 개는 준이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브랜든은 그것을 보고해서 보상금을 나눠갖고 싶은 것이다.

“아. 쓸데가 있어요.”

“뭐? 들키면 벌금으로 끝나지 않을거라고.”

“안 들켜요. 그러니 걱정말아요.”

“정말 그럴거라고 생각해?”

브랜든의 얼굴이 초조함으로 달아올랐다. 그는 준이 가지고 있는 결정체가 세 개라고 알고 있었다. 단순계산으로 해도 천오백만원. 그걸 혼자 다 먹는다는 것은 너무 양심없는 처사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나한테도 조금 권리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브랜든은 주위를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셀럼이 슬쩍 경고하긴 했지만 막상 눈앞에 돈이 아른거리자 참을 수가 없었다.

“하하... 그게 말이죠...”

준은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대체 무슨 권리를 말하는 건데요! 도망치는 거? 아니면 나 죽을 때 처 울면서 구경만 하는 거?’라고 확 쏘아붙여 주고 싶었지만, 직장생활이라는 게 그리 맘처럼 되는 게 아니다.

준은 화가 펄펄 끓어오르는 것을 겨우 억누르고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제가 나중에 밥 한번 사드릴게요. 제가 갚아야 할 빚이 많다는 거 알잖아요.”

“빚은 나도 많아. 생각해봐. 셀럼이 내가 보고 있는데 일부러 결정체를 건네줬다는 건 나에게도 좀 나눠주라는 뜻이잖아.”

‘아주 지 마음대로 생각하는 구나. 셀럼이 정말로 나눠 주고 싶었다면 그냥 이야기 했겠지.’

셀럼이 좋은 녀석이긴 하지만 그렇게 까지 머리를 쓰는 타입은 아니다. 물론 그걸 어떻게 해석하든 그건 브랜든의 자유다. 하지만 그렇다고 준이 결정체를 넘겨줄 이유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연신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거머리처럼 들러붙는 브랜든을 겨우 떼어놓고 혼자서 숙소에 돌아온 준은 침대 밑에 숨겨둔 결정체를 꺼내들었다. 은은하게 빛을 뿌려대는 붉은 결정체의 모습은 그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보석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일단 커팅이 불가능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결정도가 낮아진다.

결정체의 반감기는 붉은 색의 경우 대략 6개월 정도. 즉 대기 중에서 반년만 지나면 결정도가 반 이하로 떨어진다는 뜻이다. 1년만 지나도 75퍼센트가 빠지는 셈이니 그쯤되면 보석으로서의 가치도 없어진다.

그러니 ‘변하지 않음’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보석으로 사용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결정체의 가격따위 신경쓰지 않는 부자들은 재력과시용으로, 혹은 건강용품취급하며 원석 그대로 가공하여 몸에 지니고 다닌다. 결정체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몸을 건강하게 해준다나. 심지어는 침대 매트에 깔고 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옥장판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도시전설 같은 이야기였지만, 부자들 사이에서 결정체를 가지고 온갖 사치를 부려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성격상 지금까지 기다린 것도 용했다. 준은 얼른 두 개의 결정체 중 알이 큰 놈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한참을 결정체를 노려보았지만 어떤 시스템 메시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는거지?”

그제서야 튜토리얼에 생각이 미친 준은 곧 성장시스템에 대한 부분을 찾아냈다.

사용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결정체를 흡수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먹는 것입니다. 이후 성장 여하에 따라 피부로 결정체를 흡수할 수 있게 됩니다.

“먹으라고...?”

준은 손에 올려둔 결정체를 보았다. 크기가 어지간한 눈깔사탕 보다 크다. 이런 걸 먹다가 목에 걸리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보니 이거 괴물들 몸에서 꺼내온건데...”

심지어 씻지도 않았다. 준은 잠시 피부로 결정체를 흡수할 수 있다는 말에 손바닥에 올려놓오 정신을 집중해봤지만, 경험치가 올라가기는 커녕 똥만 마려왔다.

“머, 먹기 전에 씻기라도 하자.”

쏴아!

준은 숙소안의 작은 세면대에 결정체를 깨끗이 씻고는 작은 것부터 입안에 넣었다. 혹시 목에 걸리기라도 하면 작은 게 그래도 나을 것 같아서였다.

“응?”

헌데 결정체는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스르륵 녹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되었나 싶어 정보창을 열어봤더니, 경험치가 10 늘어나 24가 되어 있었다.

“침에 결정체를 녹이는 효소라도 있나...”

아밀라아제에 그런 기능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적이 없다. 혹시나 해서 준은 손바닥 위에 올려둔 결정체에 침을 흘려보았다. 실험결과는 실패. 결정체 위에 흘린 침은 그저 번들거리기만 할뿐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했다.

“우와... 더러워... 이건 아닌 것 같다.”

쏴아!

준은 다시 결정체를 씻고는 침대에 앉아 심호흡을 했다.

현재 경험치는 24. 얼마나 경험치를 올려야 레벨이 오를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번것이 실패한다면 앞으로 결정체를 얻을 기회는 다시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제발. 제발. 하느님. 부처님. 알라님. 레벨 업 좀 시켜주세요.’

헌터가 되지 못하면 또다시 노예같은 생활을 지속해야 했다. 준은 마른 침을 삼키며 결정체를 입안에 넣었다.

스르르-

결정체가 녹기 시작하고, 준은 몸안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 먹을때와는 또 다른 느낌. 준은 뭔가 직감했다.

화앗!

-성장에 필요한 경험치를 충족하셨습니다. 경험치를 소모하여 레벨을 올리시겠습니까?(네/아니오)

준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네’를 선택했다. 그러자 준의 몸이 밝은 빛에 휩싸였다.

‘아... 이건 그거군.’

한없이 따스하고, 맑은 기운. 그만 눈감고 잠들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안락한 느낌.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적인...

‘고통이 없다...?’

준은 조심스레 눈을 떴다. 눈앞에 녹색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 있었다.

인간은 때때로 벽에 부딪히고, 쇠락하기도 하고, 한없이 정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겨낸 당신은 이제 한 단계 높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축하합니다.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잔여 스탯이 5 주어집니다. 체력과 마나가 상승합니다.

“나이스!”

준은 만세를 불렀다. 레벨이 오름과 동시에 체력과 마나가 올랐다. 자신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헌터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오로지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것이다.

“그럼 어디 한 번 까볼까?”준은 정보창을 띄웠다.

사용자 ; 준 알스버그

레벨   ; 2

클래스 ; 초보자

칭호   ; 델타의 소유자(모든 능력치 +10)

능력치

체력 249/249  마나 100/100 경험치 1  잔여스탯 5

힘 5(+10)  민첩성 8(+10)  지능 21(+10)  정신력 19(+10)

기술

엔지니어링(초급) ; 오랜 숙련과정을 통해 사용자의 뇌에 공학적 사고가 자리 잡았습니다. 기본적인 물품을 손쉽게 제작, 수리 할 수 있습니다.

“있다. 있어.”

준은 다소 흥분하며 정보창을 유심히 살폈다. 레벨이 오르면서 체력이 거의 두 배로 올랐고, 마나도 100이나 생겼다. 남은 경험치는 겨우 1이었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성공한 것이다.

‘이제 나도 헌터가 될 수 있다.’

아직 마나를 사용하는 기술을 익히지는 못했지만, 일단 마나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기술은 배우면 된다. 정 안되면 마나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최하급 헌터의 취급을 받을 수 있었다.

남은 것은 스탯의 분배였다.

'잔여 스탯이 5개면 골고루 주는 것이 좋을까?‘

아직 어디에 투자를 해야할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다만 지능은 좀 꺼려졌다. 전투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기 때문이었다.

‘마법사라도 된다면 쓸만하겠지만...’

마법은 정말로 배우기 어려웠다. 차라리 힘을 올려셔 셀럼처럼 거대한 검을 휘두르는 쪽이 배우기도 쉽고 헌터로서 인정받기도 좋았다. 물론 그만큼 위험도도 높다. 근접딜러들은 그만큼 큰 위험을 안고 싸우는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마법을 익힐 기회가 생기게 된다면, 지능이 높은 쪽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본업은 엔지니어였다. 본업을 생각하면 지능을 높이는 것이 맞았다.

‘음... 일단 스탯은 나중에 올리자.’

이리저리 고민하던 준은 결국 정보창을 내렸다. 지금 당장 선택할 필요는 없었다. 후에 어느쪽을 올리는 것이 나을지 판단이 서면 그때 올려도 늦지 않았다.

모든 과정이 끝나자, 하얀 빛이 점점 잦아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침대에 앉은 그대로였다. 체감상 그리 많은 시간은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일단 오늘은 푹 쉬자.”

털썩.

준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긴장이 풀리자 잠이 몰려왔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슬슬 허리가 아파오네요. 복근 단련 할 시간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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