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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교정프로그램
크기는 약 가로세로 5센티미터 정도. 일반적인 엑조틱 결정체에 비해 크기는 약간 큰 편이었다.
“하얀 색이라니... 처음 봐.”
준도 사실 붉은 색 외에는 본적이 없었다. 알려진 바대로라면 결정체는 빨간 색부터 보라색까지 이어지는 가시광선 파장범위내의 색을 따랐고, 결정체의 색깔은 보통 그 결정체의 결정도를 나타내는 신호였다. 어째서 그것이 가시광선의 파장을 따르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대체로 파장이 짧을수록 결정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었다.
“만져도 되려나...”
스스로 빛을 낸다는 점에서 결정체 자체는 대단히 불안정한 광물이었다. 때문에 초창기에는 방사능의 위험성도 경고된 바 있으나 후에 인체에 무해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알려진 형태의 결정체일 경우였다.
이번 경우는 처음보는 물건이다 보니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깜빡.
한 순간 크리스탈이 뿜어내던 빛이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마치 오래된 형광등을 보는 듯한 느낌의 깜빡임. 준은 약간 당황하며 그것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자신이 혹시 LED전구를 결정체라고 잘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결정체 어디에서 전력원은 보이지 않았다. 자기공진을 이용한 무선충전일까도 생각했지만 우주선자체의 전력은 한참 전에 끊겼다.
내장된 배터리가 있나 한참을 들여다봤지만 그저 흰빛을 뿜어내는 투명한 결정체일 뿐이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결정체든 아니든 대박이다 이거지?’
결정체라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 어쨌든 현 시점에서 오파츠로 보이는 물건인 것만은 분명했다.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비싸게 팔 수 있고, 스스로 연구해 볼 수도 있었다.
반도체 공학자도 아니고 제대로 연구할 시설같은 것도 없지만, 돈이 되는 일이라면 투자자를 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잘만 풀리게 되면, 어쩌면, 노벨상도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깜빡.
다시한번 결정체가 깜빡였다. 마치 전력이 떨어지기 직전의 전구처럼, 그것의 빛은 서서히 약해져 가고 있었다.
준은 반사적으로 결정체를 집어들었다. 그 와중에 방사능이라던가, 인체에 대한 유해성 검증이 되지 않았다던가 하는 사소한 것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것을 생각하기엔 준의 상태는 너무나도 최악이었다.
-지지직. 사용사 확인... 지직. 출력이 부족...
그순간 준의 머릿속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오래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처럼 불분명했고, 흐릿했으며, 군데군데 잡음이 섞여 있었지만 분명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누, 누구냐!”
준은 누군가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황급히 움직이는 바람에 격통이 밀려왔지만, 통증보다는 놀람이 더욱 컸다.
“컥, 헉. 뭐야? 아무도 없어?”
실내는 방금 전과 같았다. 아무도 없는 빈 공간. 여기저기 부서진 탁자와 침대같은 것들만이 이곳이 원래 숙소였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럼 이 소리는 뭐지?”
지금도 지지직 거리는 잡음이 그의 머릿속에 울리고 있었다.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 와중에, 몇가지 단어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사용자... 출력... 실패했...
‘설마...’
준은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둔 흰색 결정체를 바라보았다. 혹시나 싶어 결정체를 손에서 놓자, 그 소리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거 결정체나 LED전구 같은 게 아닌데...?”
결정체를 다시 집어 들자, 예의 그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그것은 통신망과 관련없이 준의 머릿속에 소리를 전달하고 있었다. 당연히 외부스피커 따윈 없었다.
‘뇌에 직접 소리를 전달한다?’
그런 기술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고막에 손상을 입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골전도 이어폰 같은 것이 그러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와는 차원이 다른 기술이다. 단지 자신의 손 위에 올려두었을 뿐이다. 피부 접촉만으로 소리를 전달하는 기술 같은 것은, 아직 이론으로조차 성립되지 않았다.
‘대, 대박.’
준은 고통을 잊을 정도로 기뻤다. 이것만 있으면 단숨에 자신의 거지같은 신세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준은 자신의 처지가 현재 얼마나 절망적인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누군가 자신을 이곳에서 구해주지 않는다면 억울해서 눈을 감지 못할 것 같았다.
‘반드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준은 셀럼에게 맞춘 채널로 계속해서 통신을 시도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것밖에 없었다.
‘제발. 제발 걸려라. 제발.’
하지만 삼십여분이 지나도록 통신은 걸리지 않았다. 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 채널을 돌려도 잡음이 심했다. 이 정도 잡음이면 아주 가까이 있더라도 신호를 잡아채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준은 눈앞의 하얀색 결정체를 노려보았다.
‘설마 이것 때문에?’
만약 이것이 정말로 레이더에 잡혔던 엑조틱 에너지원이라면?
그렇다면 통신이 안되는 것도 납득이 된다. 어느정도 거리가 있을때에도 통신에 장애가 있었는데, 지금처럼 코앞에 있는 경우라면 아예 안되는 것도 당연했다.
“진짜 못나가는 거야...?”
통신은 불가능하다고 봐야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셀럼이 이곳에 있는 자신을 찾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라이트를 켜서 자신이 이곳에 있다고 알리는 짓은 오히려 툴리오를 불러들일 수 있었다.
그자를 만날바에는 차라리 이곳에서 혼자 죽는 편이 나았다.
-사용자 확인... 실패... 부족...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에 그 목소리는 계속해서 울렸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것을 듣고 있던 준의 머릿속에서 그 단어들이 조합되기 시작했다.
사용자 확인이 실패했습니다. 출력이 부족합니다.
‘출력이 부족하다고?’
확실히 눈앞의 결정체는 꺼져가는 불빛처럼 깜빡이고 있었다. 하지만 근처에서 전력을 가지고 올 곳이 없었다.
‘헬멧에 배터리가 내장되어 있긴 하지만, 전력이라는 것이 주머니에서 꺼낼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니지. 잠깐, 주머니?’
그때 준은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결정체에 생각이 미쳤다. 그것은 튜틀립프스를 잡고 얻은 결정도 14짜리 결정체였다.
‘혹시 이걸 사용할 수 있을까?’
준은 품에서 결정체를 꺼내었다. 그러자 마치 그에 반응하듯 흰색 결정체가 점점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붉은색 결정체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어.’
죽어가던 빛이 살아난다면 이유는 그것뿐. 즉, 이 하얀 결정체는 다른 결정체를 흡수하는 힘이 있었다.
-사용자 확인. 출력이 부족하여 실패했습니다.
좀 더 또렷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준은 확신을 가지고 붉은색 결정체를 하얀색 결정체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그러자 흰 결정체는 붉은 결정체를 엄청난 속도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마치 잘 달궈진 프라이팬에 얼음조각을 갖다대듯, 흰 결정체에 닿은 부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이래도 되나?”
호기심에 저지른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칠백만원짜리 결정체다. 게다가 저것은 워프엔진에 사용해야할 물건이기도 했다.
당황하는 사이 이미 절반의 붉은 결정체가 사라졌다. 황급히 두 결정체를 떼어내자, 좀 더 또렷하게 소리가 울렸다.
-사용자 확인, 새로운 사용자. 데이터 로딩 중... 실패했습니다. 출력이 더 필요합니다.
‘더 필요하다고?’
준은 고민했다. 아무래도 이 하얀색 결정체는 엑조틱 결정체를 에너지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정체의 절반을 사용했는데도 출력이 부족했다. 그 정도의 엑조틱 결정체면 스팅스 정도 크기의 화물선으로 최소 보름은 항행할 수 있는 에너지로 정제가 가능했다. 하나를 통으로 사용하면 한달치의 연료다. 그걸 다 쓴다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고민하던 준은 나머지 절반도 하얀색 결정체에 먹여버렸다.
‘모 아니면 도지.’
준은 비어버린 한 손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냥 내다팔아도 칠백만원은 벌 수 있는 결정체를 한번에 써버렸다.
준은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왼쪽 손바닥 위에 올려둔 하얀색 결정체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눈부신 빛을 내며 준의 머릿속에 메시지를 남겼다.
-사용자 확인. 새로운 사용자. 데이터 로딩 중.... 과거의 데이터를 복구하시겟습니까?
머릿속을 울리는 말과 함께 그의 눈앞에 (네/아니오) 선택지가 나타났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공중에 떠있는 그것을 터치하자, 자동으로 메시지가 이어졌다.
-데이터 복구 중... 메모리가 손상되었습니다... 출력이 부족합니다. 데이터 복구가 불가능합니다.
“또 출력이 부족하다고?”
결정체 하나를 통으로 썼는데도 출력이 모자랐다. 결국 그냥 날린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하고 절망에 빠진 준의 눈앞에 또 다른 선택지가 나타났다.
-데이터 복구를 포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시겠습니까?
손상된 데이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다음 과정이 있다는 것에 준은 안도했다.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준은 기대감에 차 ‘네’를 선택했다.
-프로필 구성 중... 사용자의 이름을 말씀해주십시오.
“음... 준 알스버그.”
-음 준 알스버그 맞습니까?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에 준은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준 알스버그.”
-아니아니 준 알스버그 생성합니다.
“아니라고!”
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몸 상태도 엉망인 상황에서 소리를 지른 대가는 컸다. 준은 바닥에 엎드려 격렬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했다. 헬멧안은 다시 피로 물들었고, 손가락만한 살점을 토한 것도 같았다. 기분 탓이기를 빌었다.
잠시 후,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준 알스버그, 프로필 생성합니다.
“...놀리냐.”
-신체 스캔 중... 신체가 손상되었습니다. 손상률 30퍼센트. 복구하시겠습니까?
복구하시겠습니까? 라는 목소리와 함께 준의 눈앞에 (네/아니오) 선택지가 나타났다. 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지금 내 몸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준은 반신반의 하며 네를 선택했다. 허공에 뜬 메시지에 손을 가져다 대니 선택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엄청나게 밝은 빛이 흰색 결정체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헉?”
세상이 하얗게 타들어간다고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빛. 하지만 그 빛은 눈이 부시다기보다는 오히려 편안하게 그를 감싸주었다.
준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치 빛의 파도속에 조용히 잠기는 느낌 이었다.
“이거 꽤나 기분 좋...억?”
뚝!
돌연, 어깨뼈가 빠졌다. 예고도 없이 일어난 일에 준은 황당한 얼굴로 자신의 어깨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으아아아아?!”
뚜둑! 뚝!
온몸의 뼈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냥 움직이는게 아니라, 아예 손도 쓰지 못할 정도로 어긋나고 있었다.
근육이 파도처럼 요동쳤고, 피부를 뚫고 뼈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어느순간부터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 준을 괴롭혔다.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야 임마... 사람을 방심시키고 이러기냐...’
준의 의식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눈깔을 뒤집고는 까무룩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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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 추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