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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델타-4화 (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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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알스버그

그런 자가 자신같은 말단에게 잘해준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고맙기 이전에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부럽다. 젠장. 나도 헌터가 되면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방년 21세. 18살 때부터 새크리파이스에서 일을 했으니 햇수로 4년동안 밑바닥을 기어왔다. 온갖 멸시와 모욕을 견디며 일을 해왔더니 너무나도 자유가 그리웠다. 구속받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오죽 부러웠으면 흑인인 셀럼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는 착각마저 들까.

[셀럼.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뭔데?]

두 사람은 개인채널을 통해 대화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 해킹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우주복을 입은 두 사람의 대화는 엿들을 수가 없었다.

[셀럼 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해요?]

[왜? 헌터라도 되게?]

셀럼은 흑인 특유의 시원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가능하다면요. 갚을 빚도 많고.]

[보이는 엔지니어잖아. 꽤나 유능하다고 들었는데?]

[그래봐야 3D업종이죠. 이런거 해봐야 굶어죽지나 않으면 다행일걸요.]

[전 우주의 공돌이들이 들고 일어날 발언이군.]

셀럼은 과장되게 두 손을 들어올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모습이 고릴라 같다는 생각이 들어 준은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이대로면 전 평생동안 새크리파이스에서 벗어나지 못할거에요. 헌터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잖아요.]

[그렇긴 한데...]

셀럼은 난감한 듯 말끝을 흐렸다. 사실 헌터라는 것이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외도를 사냥하기 위해선 항력을 무시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했고, 그런 기술들은 아무에게나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었다.

[방법이 없을까요?]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거였다면 세상에 헌터가 넘쳐났겠지.]

실제로도 넘쳐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헌터 지망생에 비하면 그 수는 극히 적은 편이었다.

일단 최하급이라고 해도 준의 아버지처럼 경호원 일 정도는 할 수 있어 밥벌이는 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아 하급 이상으로 올라간다면 연봉도 급격히 오른다. 상급이 넘어가면 연봉이 10억을 넘어간다고 들었다.

무역연합에서 기업이 아닌 개인이 그 정도 돈을 번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참고로 헌터들은 자신들의 기술을 남에게 공개하는 걸 극도로 꺼려. 이쪽 세계에서는 그런 것들이 전부 돈이 되거든. 그러니 지금처럼 아무 헌터나 붙잡고 가르쳐 달라고 하면 큰일이 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역시 돈이 문제인가요?]

준은 기가 꺾였다. 자신에게 딱 하나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게 돈이었다.

[그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재능도 있어야 해.]

[재능이라면?]

[마나를 느끼는 힘이지. 딱히 비밀이랄 건 없지만, 사실 외도를 사냥하기 위해선 마나를 다룰줄 알아야 하거든. 외도가 쉴드를 가지고 있다는 건 들어본 적 있지?]

[항력이 작용하는 것 아닌가요?]

[뭐, 네 말대로 항력이니 안티에너지포스니 뭐니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 싸우는 우리가 보기엔 일종의 실드 같은 거거든.]

[그것을 깨기 위해서 마나를 사용해야 한다는 거군요.]

아버지에게 들어본 적이 있다. 헌터들은 마나를 이용한 기술을 사용해 외도를 사냥한다. 어린 시절엔 마냥 그것이 멋있어 보여 아버지에게 헌터가 되고 싶다고 졸랐다.

하지만 아버지는 위험하다며 절대로 헌터의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대신에 어릴때부터 재능이 보였던 공학 쪽 공부를 시켰다. 아버지가 죽고, 자신은 살아있는 것을 보면 선견지명이 발휘되었다고 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지. 돈 만 있다고 된다면 재벌들은 전부 헌터가 되었겠지.]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들은 인간을 초월한 힘을 발휘한다. 단순히 육체적인 능력이 강해지는 것 뿐만이 아니다. 대체로 헌터들은 평범한 인간보다 더 건강하고, 더 오래살고, 더 늙지 않는다.

막말로 초인이라고 불려도 무방한 존재들인 것이다. 그런 이점을 가지고 있으니 수많은 재벌들이 헌터가 되려고 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이들의 대부분이 헌터가 되는데 실패했다.

마나를 다루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뭐, 재능도 여러 가지가 있지. 기본적으로 마나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같지만, 거기서도 수없이 많은 분야로 갈라지거든. 마법사라든지, 전사라든지, 궁수라든지 하는 기본적은 클래스들은 알고 있을테고.]

[셀럼은 어느 쪽인가요?]

[나? 보다시피 전사지! 역시 남자는 힘 아니겠어? 내 밑에서 천국으로 간 여자들 숫자만 해도 한 행성을 채우고도 남을걸? 크하하하!]

거구의 남자가 허리를 실룩이는 장면은 영 보기 힘들었다. 슬쩍 고개를 돌린 준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저에게 재능이 있을까요?]

[그 정도는 알아봐 줄 수 있지. 조금 있다가 쉴만한 곳이 나오면 그곳에서 알아봐 줄게.]

셀럼은 정말로 친절했다. 준은 다시한번 그에게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안타깝지만 보이는 재능이 없어.]

[전혀?]

준은 청천벽력이라도 떨어진 듯한 얼굴로 셀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준의 등에서 손을 뗀 그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거짓말을 안하는 주의거든. 너무 상심하지마. 엔지니어도 좋은 직업이니까.]

혹시나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내심 기대를 많이했던 준은 커다란 실망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제서야 준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헌터의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헌터가 위험하다는,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단순히 자신에게 재능이 없었던 것 뿐이었다.

아마도 어린 아들이 실망하지 않게끔 다른 핑계를 대었던 거겠지.

[그런가요. 뭐, 어쩔 수 없죠.]

준은 억지로 웃었다. 실망감을 모두 감출수는 없었지만, 셀럼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준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래. 웃어. 웃으면 복이 온다고.]

생각보다 회복은 빨랐다. 단지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뿐 진심으로 헌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가지고 있던 복권을 긁어봤더니 꽝이었더라, 뭐 이런 실망감 같은 것과 비슷했다. 단지 복권은 하나뿐이고, 다시 살수 없다는 것만 다를 뿐.

그렇게 십여 분간의 휴식이 끝나고 일행이 막 출발하려 할 즈음, 준은 디스플레이에 이상한 신호가 잡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깐만요. 전방 200미터 앞 생명반응. 이런 곳이니 인간은 아닐테고, 아마, 아니 틀림없이 외도일 겁니다.]

[특이외도?]

셀럼의 질문에 준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목표지점의 엑조틱 반응이 너무 강해서 제대로 결정도가 측정되지 않아요.]

정상적인 탐사라면 행성 궤도상의 탐사선에서 신호를 받아 정밀한 분석이 가능하다. 결정도 체크가 되면 그것만으로도 특이외도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능했다.

하지만 탐사선이 아닌 스팅스에 그런 레이더가 있을리 없었다. 준이 가지고 있는 것은 50년도 더된 구닥다리 제품. 무겁고, 덩치도 크고, 탐사거리도 좁고, 지금처럼 인근에 강력한 엑조틱 원이 있을 경우에는 제대로 분석도 되지 않았다.

[쯧. 하나 맡은 일도 제대로 못하네.]

툴리오가 투덜거렸다. 어쨌든 적의 정체를 특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맞닥뜨린다는 것이 기분나빴다. 엄밀히 따지면 준의 잘못은 아니지만, 이미 그는 이 모든 상황을 준이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헤이. 가이들. 일단 레이드 진형 짭니다. 적은 확인할 수 없지만, 만약을 위해 최악의 사태를 가정하고, 버프있는 분들 버프 돌리세요. 어그로는 제가 잡습니다. 근딜 원딜 분들 포지션 잘 잡으시고, 실수로라도 아군 뒤통수 때리는 분은 제가 직접 보고서 올립니다?]

느릿느릿 움직이던 나머지 헌터들이 셀럼의 마지막 말에 정신이 번쩍 드는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아앗-

준은 무언가 빛나는 것이 몸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몸이 가뿐해지면서 왠지 모를 용기가 샘솟았다.

[오, 오옷!]

여태껏 의욕없이 죽상을 하고 있던 브랜든도 자신의 몸을 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범위 버프라 인근에 있던 자신들까지 같이 버프가 걸린 것 같았다.

[제길! 싸울 것도 아니면서 빨리 안비키고 뭐해! 괜히 마나만 더 빠져나갔잖아! 이래서 비전문가들과 같이 있으면 안된다니까!]

하지만 그런 상황에 신기해하는 것도 잠시, 버프를 건 헌터가 신경질 적으로 외쳤다. 준은 아차 하며 빨리 레이드 진형을 벗어났지만 브랜든은 아니었다.

[아니, 말을 하고 하던가. 지멋대로 걸어놓고 지랄이야.]

[기본도 몰라? 크루는 진작 빠졌어야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진짜 크루도 아니고 레이드 전문가도 아닌데.]

버프를 받고 간이라도 부었는지 브랜든이 따박따박 말대꾸를 시전했다. 아무리 수석항해사라지만 헌터에게 싸움을 거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자칫 외도와 싸우기도 전부터 살인이 날 판이라 준이 안절부절 하는 사이 셀럼이 외쳤다.

[브랜든 셧업!]

[윽...]

브랜든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차마 셀럼한테까지는 대들지 못하겠다는 듯 군소리 없이 물러섰다. 서운할 수 있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헌터의 손을 들어주는 게 맞는 판단이다.

덕분에 헌터들은 진영을 잡았고, 그사이 외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는 대략 2미터. 기본적으로는 인간형이었지만 생긴 것은 사람이라기 보다는 대충 진흙을 모아서 치덕치덕 발라놓은 듯한 생김해였다. 거기다가 피부에서 샛누런 고름같은 것을 질질 흘리며 다가오는 모습이 일반인이라면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외관이었다.

[붉은색이다.]

셀럼의 말에 모두가 긴장을 하며 무기를 쥐었다.

아직은 먼거리라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셀럼의 말대로라면 녀석들의 몸 어딘가에 붉은색 엑조틱 결정체가 있는 모양이었다.

‘아직 100미터 밖에 있는데, 그거 보이는건가?’

의문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나중에 확인해 보면 되는 것이다.

현재 레이드 진형은 탱커 1명, 근딜 3명, 원딜 4명의 구성이었다. 탱커는 셀럼이었다. 그는 다른 헌터들에 비해 몇 배는 무거운 강화수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거의 천때기 하나 걸치고 있는 것이나 다를바 없는 준과는 비교할 것도 없었다.

지켜보던 준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실제로 외도를 보는 것도, 레이드 장면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래도 낯설지는 않은 것이, 영상으로는 많이 접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처음에는 탱커가 공격을 시작하고 어그로가 어느정도 잡히면 딜러가 공격하는 식이었지?’

어느 행성을 가나 그것이 기본적인 레이드 방식이었다. 그래서 셀럼이 큰 소리로 외칠때는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딜 시작!]

[어?]

셀럼이 외도를 향해 달려가며 외치자, 헌터들도 어리둥절하며 딜을 쏟아부었다. 원래대로라면 어그로가 잡히기 전에 딜을 하는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다. 자칫 잘못하면 외도의 눈이 딜러들에게 돌아가면서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약한 딜러들이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리프 어택!]

셀럼이 허공을 날았다. 단숨에 십여미터를 점프한 등에 매어둔 거대한 쌍검을 뽑아들더니 그대로 십일자로 그어내렸다.

쩌적!

단숨에 외도가 세갈래로 조각나며 사방으로 푸른색의 체액이 튀었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끝나버려서인지 모두가 멍하니 셀럼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딜 안합니까?]

[네? 넷!]

그제서야 헌터들은 바닥에 쓰러진 외도가 꿈틀거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분명히 셀럼의 검에 의해 양쪽 어깨가 잘려나가며 삼등분이 났는데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딜러들이 하나 둘씩 딜을 시작하자 셀럼은 검을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이 녀석의 이름은 튜틀립프스. 신체가 잘리는 정도로는 죽지 않고 계속해서 재생합니다. 그 외에 가장 무서운 건 양쪽 어깨에서 쏘아내는 강산성의 진물인데 일단 그건 봉인했으니 그냥 때려잡으면 됍니다.]

셀럼의 설명은 간단했다. 특이외도라고는 하지만 붉은색이라 그런지 공략방법은 그리 어려운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셀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튜틀릅프스는 엄청난 재생력과 함께 상당히 질긴 육체를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녀석의 양어깨를 단숨에 잘라내기는커녕, 생채기만 내다가 계속 재생하는 녀석의 생명력에 지쳐 오히려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어디까지나 어그로를 끄는 탱커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어마어마한 딜을 쏟아붓는 셀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셀럼이 어그로를 끌고 나머지가 마음놓고 딜을 시작하자 튜틀립프스의 몸이 사정없이 찢겨나가기 시작했다. 녀석은 엄청난 속도로 찢겨진 자신의 몸을 다시 재생시키고 있었지만, 생명력은 무한하지 않았다.

어느순간 튜틀립프스의 재생력이 둔화되나 싶더니 한 순간에 재생을 멈추고 마치 모래로 만들어진 인형처럼 붕괴했다.

============================ 작품 후기 ============================

새벽쯤에 하나 더 써서 올릴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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