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 ----------------------------------------------
준 알스버그
“빌어먹을 고물딱지.”
준 알스버그가 투덜거리며 엔진룸으로 뛰어들어갔다. 워프항행 도중 기관이상으로 우주선이 엉뚱한 곳으로 빠져버렸다.
우주공간을 밀면서 나아가야하는 워프항법 도중에 생기는 기관이상은 약간의 문제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오차가 나버린다. 지금쯤 함교에서는 위치를 측정하느라고 한창 정신없는 와중일 것이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수령이 50년이 넘는 우주선을 아직도 쓰는 이유가 대체 뭐야.”
그는 현재 무역연합 소속의 화물수송선 ‘스팅스’에 탑승하고 있었다. 알려진 거의 모든 종류의 기관을 다룰 수 있는 뛰어난 엔지니어였지만 현재는 노예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한 상태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빚 때문이었다. 그것도 보통의 빚이 아니라 새크리파이스의 빚이다. 무역연합에서도 악독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기업에 걸렸으니 평생을 노예신세로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거 불길한 걸.”
워프엔진을 살피던 준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폐선직전의 수송선은 언제 폭발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우주선이 비교적 안전한 운송수단이긴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안전규정을 준수했을 때 이야기다.
일단 워프코어 자체가 온갖 반물질들로 구성되어 있다. 몇 겹으로 안전장치를 덕지덕지 발라놓았지만 사용기한이 한참이나 지난 오래된 선체들은 언제 어디서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 막말로 마이크로그램 수준의 반물질만 대기 중에 유출되어도 이정도 우주선은 폭발시키고도 남을 화력이 나온다.
그러나 돈 쓰는 일에는 한없이 인색한 새크리파이스에서 이런 고물우주선에 신경을 써줄리 없었다. 아니, 오히려 사용하다 폭발하면 그것으로 보험금이나 타먹을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콱 죽어버리면 빚은 없어지겠지.”
준은 투덜거리며 수리를 이어나갔다. 빚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줄기는커녕 늘어만 갔다. 처음 오천만원으로 시작했던 빚은 현재 일억에 가까울 정도로 쌓여있었다. 대부분은 이자였지만 새크리파이스에서는 그뿐아니라 온갖 생활비와 부대시설비까지 바가지를 씌워가며 받고 있었다.
이대로는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탈출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주)새크리파이스는 돈에 미친 회사였고, 그들의 사업범위 안에는 장기매매도 있었다. 지금껏 살아있는 것도 어디까지나 준이 사용가치가 있는 엔지니어였기 때문이다.
탕탕.
한창 집중하던 와중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준이 고개를 들었다. 듬직한 체구의 중년사내가 철제난간에 기대어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화물수송선 스팅스의 수석항해사인 브랜든이었다.
“어떻게 되가?”
“아무래도 완전 수리는 어렵겠는데요. 코어에 논리적 균열이 생기면서 반물질원이 상당부분 흘러나갔어요. 일단은 급한대로 우주공간으로 유출시켰지만 덕분에 출력이 부족해요. 엑조틱 재고가 얼마나 있죠?”
“없을걸.”
“뭐라고요? 스페어 안챙겼어요?”
“지금 쓰고 있는게 스페어야.”
“저번에 분명히 요청했잖아요. 재고목록에 있는 것도 확인 했다구요.”
“그게 말이지. 출발날짜는 다가오고, 위에서는 아무말이 없고, 스페어가 없으면 출항허가는 안떨어질거고 그래서 재고목록을 좀 손봤지.”
브랜든은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어깨를 추켜올렸다. 준은 가슴 저 밑바닥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지금 이 양반이 나랑 장난해? 엑조틱이 없으면 뭐 어쩌자는 거야? 휘발유라도 넣고 움직이라는 거야?’
하지만 브랜든은 수석항해사이자, 엄연한 새크리파이스의 직원이다. 물론 단기 계약직에 불과하지만 노예 취급이나 당하는 자신에 비하면 엄청나게 윗사람인 것은 사실. 괜한 짓을 했다간 다음날 아침에 장기가 죄다 사라져있는 경험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준은 필사적으로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조금 곤란해졌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브랜든도 사태의 심각성 정도는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칫하면 우주미아가 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은 준을 절망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한 시간 내로 고쳐놔. 보고서에 네 이름 올릴테니까.”
“퍽유! 브랜든!”
결국 참지 못하고 욕설이 튀어나왔다. 브랜든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래도 약간의 양심의 가책은 있는 모양이었다.
“이대로 죽을수는 없어.”
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브랜든의 저 말은 농담이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문서위조를 포함한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게 될 것이고, 우주선 수리비와 프로젝트 실패에 따른 손해액까지 모두 자신이 배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새크리파이스는 그 돈을 어떻게든 받아내려고 하겠지.
운이 좋으면 빚이 늘어나면서 노예생활이 길어지는 정도에서 그치겠지만, 최악의 경우엔 폐기처분되어 온몸의 장기란 장기를 죄다 떼이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광경이 눈앞에 아른거리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했다. 준은 양자컴퓨터의 홀로그램을 띄웠다. 인근 항성계의 정보가 어지럽게 펼쳐졌고, 그것은 하나하나 살피기에는 너무나도 많았다.
그럼에도 준의 손과 눈은 빠르게 움직였다. 엑조틱이 없다면 궁한대로 자연발생적인 반물질이라도 얻어야했다.
엑조틱Exotic.
이는 현재 인류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물질이었다. 이는 80년 전 우리은하에 나타난 ‘외도’에게서 얻을 수 있는 물질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웜홀을 통해 나타난 이 괴물들은 인간을 뛰어넘는 힘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주변 행성들을 차례로 잠식했고, 한때 인류가 정복했던 거의 모든 행성계들을 장악했다.
이들은 기존의 화약병기로는 상대할 수 없는 독특한 방어막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은 힘의 종류로, 과학자들은 그것을 항력(Anti-energy force)이라 이름 붙였다. 거의 모든 운동의 벡터를 비틀어 버리는 그 힘은 화약병기를 비롯해 발전된 광학무기까지도 되튕겨내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항력을 온몸에 뒤집어쓴 외도들을 상대할 방법이 인류에게는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식민지들을 내어주고 태양계마저 위협에 빠질 무렵, 인류들 가운데서 헌터라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주술, 마법, 무공과 같은 신비한 힘을 이용해 그 외도들을 하나둘 씩 쓰러뜨렸고, 종국에는 잃었던 항성계 상당수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들의 힘은 마치 항력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허나 싸움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인간의 반격이 거세어지고, 외도들의 활동이 위축되자 그에 반발하기라도 하듯 더 강력한 외도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가슴에 서로 색이 다른 결정을 품고 있었는데, 이들은 일반적인 외도에 비해 몇 배는 더 강력했으며 헌터들 마저도 그 특이외도들의 항력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바로 이들이 인류에게 새로운 도약을 제공해 주었다.
결정을 품고 있는 특이 외도를 죽이고 나면 결정은 습득가능한 채로 남겨진다. 연구결과 결정은 엑조틱이라는 형태로 가공이 가능했으며 그것은 놀랍게도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를 이용하면 워프코어의 항행거리를 비약적으로 늘릴수있을 뿐만 아니라, 성간여행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통신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바로 초광속통신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우주 어디에서도 광속 이상의 속도로 정보를 송수신 할 수 있는 이 장치는 오로지 엑조틱에 의해서만 만들어 질 수 있었다.
기존의 과학이론으로 설명될 수 없는 엑조틱이라는 결정체에 대해 연구한 과학자들은 한가지 결론을 내릴수밖에 없었다.
규명 불가.
우리우주의 어떤 물리적 법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원인 엑조틱은, 그 성질의 분석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었다. 특히 외계 식민지를 늘려가고 있던 각연방과 국가들이 엄청난 기세로 엑조틱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엑조틱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가장 등급이 낮은 붉은색 엑조틱의 가격이 개당 1천만원을 호가했다. 낮은 등급의 엑조틱을 품은 외도들은 항성계 이곳저곳에서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고, 때때로 태양계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도 있었다.
외도를 사냥할 수 있는 헌터들의 몸값은 치솟았고, 그들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인류의 영웅이 이제는 고소득 용병이 된 것이다.
그렇게 헌터들의 시대가 열렸다.
헌터는 이제 어디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헌터들 사이에서도 빈부격차가 심하게 벌어졌다.
최정점의 인물들은 수조 원의 재산을 보유할 정도였으나, 밑바닥의 헌터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도 남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런 불합리함 가운데 새로운 형태가 등장했다. 바로 무역연합 소속의 기업들이 주도하는 레이드 사업이었다. 기업들은 단독으로 외도를 사냥하기 힘든 헌터들을 모아 수십 명 단위로 팀을 짜서 사냥을 할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고, 그들을 이용해 돈을 벌여들였다.
처음에는 많은 헌터들이 환호했다. 그동안 실력이 부족해 제대로 된 사냥을 할 수 없었던 헌터들에게 경험과 함께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덩치를 키워가는 무역연합의 레이드 산업체들은 자신만의 카르텔을 구성하기 시작했고, 종내에는 엑조틱 가격의 동결을 이끌어내는 담합으로 이어졌다. 결국 현재 헌터들이 생산하고 있는 대부분의 엑조틱은 후려치다시피 할 정도의 싼 가격으로 기업들에게 판매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항의하던 헌터들도 있었으나, 무역연합의 힘은 강력했고 반대하던 헌터들은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결국 이러한 저항은 헌터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무관심을 가장한 질투와 두려움 속에서 별 다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스러졌다.
시간이 지난 현재는 프리랜서 헌터와, 계약직 헌터들이 반반 정도로 섞여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 내면을 살펴보면 탑티어 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프리랜서들은 최하급에 머물러 무역연합에서도 버려진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운좋게 외도를 사냥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용병으로 활동했다.
준의 아버지 역시 이런 최하급헌터들 중의 한명이었다. 그리고 (주)새크리파이스의 자원탐사대의 경호원으로 활동하던 중 재수없게도 다수의 외도와 마주쳤고, 전투 중 프로젝트팀 전원이 사망했다.
새크리파이스는 갑작스런 아버지의 사망으로 슬퍼하던 준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재판에서 아버지의 귀책사유가 인정되어 손해배상금 오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떨어졌다.
억울하다고 하소연 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재판정의 논리는 간단했다. 아버지는 탐사팀을 보호하기로 계약하고 돈을 받았다. 그 신성한 계약을 이수하지 못했으므로 그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타당하다.
거기에 아버지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무역연합에서 돈이 차지하는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배상의 책임은 후대 뿐만이 아니라 그 후대까지 이어진다. 만약 준이 죽을때까지 그 빚을 갚지 못하면 그의 자식, 그 자식의 자식까지 빚은 이어질 것이다.
때문에 준은 절대로 결혼을 할 생각이 없었다. 자식까지 노예로 만들고 싶진 않았다.
“...찾았다.”
준은 눈을 비비며 자신이 본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붉은 원으로 깜빡이는 점. 홀로그램 패널위에서도 한참이나 구석진 곳에 위치한 한 행성에서 엑조틱 에너지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 작품 후기 ============================
가벼운 sf풍 소설입니다. 치밀한 고증 뭐 이런거 없으니 맘편하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