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콰앙!
용신의 내부에 자리 잡은 거대한 세계 침식의 힘이 흔들렸다.
서리스의 예상 밖의 출력에 용신의 세계 침식도 지레 겁먹었기 때문이었다.
세계가 의지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서리스는 용신의 세계 침식을 눈에 담곤 그를 향해 고개를 내렸다.
용신은 물끄러미 서리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인지 처음으로 당황스러웠던 그의 얼굴도 차츰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거 몇 분이나 유지할 수 있겠나.”
그러는 순간 용신의 목소리가 서리스의 귀에 들려왔다.
눈치 빠르게도 용신은 서리스가 단 하나의 세계를 이어 붙인 것이 그리 긴 시간 동안 유지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신룡월단으로 시간의 모든 흐름을 절단시키고, 금강잔월로 하나의 흐름으로 이은 것.
이것은 무척이나 불안정하기 그지없는 기술이었다.
그렇기에 용신은 처음에만 놀랐지 곧 흥미를 잃고는 서리스를 무감정하게 바라보았다.
저것은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꽃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사그라들어 없어져 버릴 그런 불꽃.
“얼마나 화려하게 탈 수 있을 것 같나?”
그와 동시에 용신의 입술이 쭈욱 째지며 기괴한 웃음이 그려졌다.
“나는 미디엄 레어를 즐기는데 말이지.”
농담 아닌 농담을 던지는 그를 보고, 서리스가 헛웃음을 흘렸다.
여기까지 와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그의 얼굴이 징글맞게 느껴졌다.
그러나 용신은 한 가지 사실을 잊은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서리스는 세계 자체의 별이 되었다.
세계선을 모두 이어낸 초신성은 어떠한 별보다도 강렬히 타오르며 빛난다.
별은 거대하고 강렬히 타오를수록 그 끝이 빠르게 다가온다.
세계가 너무 커져 버린 별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시간이 경과 하면 그것은 별의 마지막 폭발로 뒤바뀔 것이다.
“한가지는 알고, 둘은 모르는군.”
그러는 순간 서리스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를 듣고, 무슨 말을 지껄이냐는 듯 그를 올려다본 순간 용신은 뭔지 모를 스산한 기운을 느꼈다.
마치, 뱃속부터 타고 오르는 그 기이한 감각에 용신이 의문을 느낀 그 순간.
서리스의 발아래에서부터 시작된 진한 그림자가 점차 커지고 있었다.
“별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서리스의 손 위에는 어느새 금색의 빛으로 물든 악스판시온이 들려있었다.
그럼과 함께 그의 등 뒤 그림자를 타고 거대한 제왕의 검들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림자 또한 강해진다.”
가장 강렬히 빛나는 별 아래 드리운 그림자는 어느 때보다도 그 어둠을 짙게 흩뿌리고 있었다.
수십, 수백 자루의 제왕신룡도가 서리스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하.”
용신의 입에서 탄식 아닌 탄식이 나왔다.
그럼과 함께 그의 눈동자가 갈라지며 도마뱀과 같이 만들어졌다.
“기어코 일을 내는구나.”
빠드득―
그의 목 아래에서 비늘이 솟아올랐다.
“내가 원래 일을 내면 좀 크게 내는 스타일이라.”
여유롭게 응대한 서리스가 악스판시온을 내려그었다.
그 순간 제왕신룡도 수백 자루가 동시에 용신의 내부에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전의 한 자루와는 차원이 다른 검들의 춤사위 속에서 용신의 세계 침식이 거세게 흔들렸다.
아무리 용신이라고 할지라도 초신성에 도달한 서리스의 제왕신룡도는 쉽게 막을 수가 없었다.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갈라졌다.
거기에 부서진 세계 침식은 모조리 서리스가 흡수하고 있었다.
“감히.”
그 순간 용신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서리스가 노리고 있는 게 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좀 정신이 드나?”
서리스가 용신을 향해 비웃은 순간 용신의 발아래가 빠득하고 갈라졌다.
“탐할 것을 탐해야지.”
그 목소리가 들려 온 것은 하늘 쪽이었다.
콰앙!
순식간에 바닥에 내려꽂힌 서리스가 자욱한 연기를 일으키며 바닥을 굴렀다.
반사적으로 들어 올린 악스판시온에서 온 충격이 왱왱하고 울려 왔다.
그 사실을 깨달은 서리스가 시선을 위로 올리자 용신의 얼굴이 바로 앞에서 보였다.
콰앙!
또 한 번 서리스의 몸이 꺾이며 하늘을 날았다.
‘빨라.’
대체 어떻게 되먹은 속도인지 초신성까지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용신의 움직임은 서리스의 인지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서리스라 할지라도 계속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꺾인 몸과 함께 등 뒤의 그림자를 움직여 자신을 받아 낸 서리스는 그 즉시 악스판시온을 휘둘렀다.
째에에에에엥!
공간의 거대한 규열이 일어나며 갈라졌다.
서리스의 검과 용신의 권이 부딪치며 일어난 여파였다.
하지만 용신은 그러거나 말거나 바로 몸을 틈과 함께 서리스의 배에 다리를 내리꽂았다.
“커헉!”
기역 자 형태로 꺾인 서리스의 몸이 옆에 있던 세계 침식의 산을 부수고 나서도 몇 번인가 더 굴렀다.
견디기 힘든 통증이 배를 타고 올라와 전신을 강타했다.
그러나 그 통증에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용신은 양손을 모아 그대로 서리스를 향해 내려쳤다.
콰앙!
바닥에 내려꽂힌 서리스의 위에 안착한 용신의 양 주먹이 무자비하게 휘둘러졌다.
그럴 때마다 땅이 갈라져 나가며 서리스의 몸이 계속해서 아래로 꺼져 나갔다.
콰앙!
이윽고 지반이 무너지며 서리스의 몸이 아래로 추락했다.
그 아래는 마치 광활한 우주를 닮은 공간이었다.
수많은 별이 제멋대로 뒤섞여 살아가고 있는 은하 속에서 용신은 서리스를 향해 또 한 번 권을 내지르고 있었다.
투콰앙!
거친 소음과 함께 한참을 튕겨 날아간 서리스가 바닥의 잔해 하나에 부딪쳤다.
그것을 바라보며 용신은 자신의 오른쪽 손에 힘을 주며 뿌득하고 소리를 냈다.
“내가 내 손으로 직접 세계 침식을 흡수했었다는 사실을 잊었니?”
어느샌가 여인의 얼굴이 된 용신이 서리스를 향해 물었다.
“퉤.”
그것을 보고 서리스는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부러진 이를 하나 내뱉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순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상대가 몰아친 덕분에 몸 여기저기에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더럽게 강하네.’
제힘으로 세계 침식을 흡수하고 다녔다는 것이 거짓은 아닌 듯.
서리스는 처음으로 압도된다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 기분이었다.
강하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길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서리스의 눈에는 조금도 포기란 감정이 깃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연격 속에서도 서리스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 공격으로도 죽이지 못한 주제에 시끄럽기는.”
서리스가 그리 도발하자 용신은 한차례 코웃음을 치더니 팔을 뒤로 당겼다.
그 순간 그의 손아귀를 중심으로 세계 침식이 일그러져 가기 시작했다.
“그래,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렴.”
그 말을 시작으로 용신이 팔을 내려그었다.
그 순간 주변 모든 별이 서리스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유성우를 보고 서리스는 바닥을 박찼다.
날아든 첫 번째 별을 가르고, 그 사이를 빠져나간 서리스의 몸이 금색으로 번뜩였다.
별대 별의 승부라면 서리스는 밀려줄 생각이 없었다.
떨어지는 모든 별을 가르며 서리스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자그마한 서리스의 별들이 커다란 별들을 뚫고 지나가는 광경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는 순간 별들 사이로 용신의 모습이 비쳤다.
그것을 본 서리스의 별이 그의 내부에서 압축되기 시작했다.
금강잔월의 빛이 거세게 떠오르며 그의 육체의 강도가 점차 강해지고, 청운귀명의 그림자가 잇따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한차례 사라진 서리스의 인영이 어느샌가 용신에게 도달했다.
아래에서 솟구친 그의 검에는 어느새 신룡월단의 기운이 서려져 있었다.
신룡월단(神龍狘斷)
이식(二式)
천룡(天龍)
하늘을 향해 용이 솟구쳐 올랐다.
서리스의 검과 권을 맞부딪친 용신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왜냐하면, 그의 팔 일부에서 비늘이 후두둑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용제가 쌓아 올린 비기는 거짓이 아니었다는 양.
용신의 세계 침식을 붕괴시켜 놓았다.
하지만 용신이 주목한 부분은 그게 아니었다.
전투 중에도 서리스가 계속하고 있는 행동이 가장 거슬렸다.
그는 지금도 용신의 세계 침식을 계속 흡수하고 있었다.
분명 자신이 심어준 힘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용신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버린 그의 검은별은 탐욕스럽게 주위 모든 걸 집어삼키고 있었다.
서리스의 검은별이 특이점에 도달하고 있었다.
닥치는 대로 모든 걸 삼켜 나가는 검은별을 보고, 용신은 주먹을 아득 쥐었다.
“제정신이더냐. 이대로 네 검은별과 내 세계 침식이 부딪치는 순간 세계 자체가 붕괴할 텐데.”
“네놈에게 먹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서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내지른 검을 회수함과 함께 바로 용신을 향해 휘둘러 나갔다.
또 한 번 부딪친 검과 권이 주변 공간을 박살 내놓으며 일그러졌다.
서리스가 용신의 세계 침식을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서리스는 강해진다.
반면에 세계 침식을 흡수당하는 용신의 힘은 약해진다.
마치, 중성자별과 같이 서리스는 주변 모든 것을 일그러트리며 괴랄하게 흡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점차 서리스를 중심으로 용신의 세계 침식이 일그러져 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를 그냥 둬서는 안 된다고 느낀 용신의 눈동자가 금색으로 부릅떠졌다.
늑대를 키운 줄 알았더니 이건 범도 아닌 용의 새끼였다.
“나와 같은 수순을 밟을 속셈이더냐. 이따위로 흡수한다면 네 세계가 너를 감당하지 못하게 될 거다.”
용신이 자신을 감당하지 못한 세계를 결국 끝끝내 집어삼켜 버렸듯이.
너 또한 자신과 같은 길을 밟기라도 하겠냐는 듯 묻자 서리스는 코웃음 쳤다.
“미안하지만 그럴 생각 없어.”
그때, 서리스에게 깃든 모든 별이 동시에 빛나기 시작했다.
그 거센 빛은 용신마저 눈을 찌푸릴 정도로 밝게 빛났다.
“우리 세계는 우리가 유지 시킬 거니까.”
그리 말한 서리스의 검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별과 별들이 너무 더해져 이제는 그 형태마저 흐릿하게 보이는 서리스의 검이 그 끝에 다다랐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용신의 이가 아득 부딪쳤다.
지금의 폭발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아차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모아온 세계를 전부 날려 버릴 속셈이냐!”
조각조각 쪼개져 날아간 세계는 서리스의 세계에 다시금 퍼져 최흉과 같은 일을 초래할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서리스가 별을 응축시키는 것을 본 용신이 외치자, 그는 땀을 흥건히 흘리면서도 피식하고 웃었다.
“우리는 원래도 그런 세상이었어.”
최흉을 막고, 더불어 살아가며 지금까지 버텨온 세계다.
새삼스러운 것도 없다는 듯 서리스가 그리 외친 순간 용신의 두 눈이 하늘로 향했다.
그의 세계가 서리스의 별에 반응해 뒤틀려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 그만둬라!”
그리 외친 용신이 서리스를 말리고자 전력을 다한 권을 내질렀다.
“내 세계를 망가트리지 말아라!”
하지만 그 공격이 채 닿기 전에 서리스의 별이 특이점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런 소리를 지껄일 거라면 다른 세계부터 지켰어야지.”
그 말이 끝마친 순간, 용신의 세계가 섬광으로 뒤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