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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272화 (272/275)

272화

눈이 가려진 성녀는 비스듬히 고개를 숙인 채, 서리스를 직시했다.

마치 어떻게 알았냐는 듯 올라간 입꼬리가 눈에 띄었다.

그걸 본 서리스의 눈살이 서서히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내가 모를 줄 알았던 거냐?”

“응, 그야 그랬지.”

조금 전까지 곱게 울리던 성녀의 목소리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바뀌었다.

동시에 성녀에게서 흘러나오던 기세도 조금 달라졌다.

“실제로 지금까지 본 아이들은 전부 몰랐기도 하고 말이다.”

곧이어 들려온 목소리는 나이 든 남자의 중후하고, 낮은 톤이었다.

이에 성녀는 자기 목을 잡곤 아아하고 한차례 소리를 내뱉었다.

“그래, 이 목소리가 좋겠군.”

조금 전 내뱉은 목소리로 결정한 그녀는 눈에 끼고 있던 안대를 풀었다.

“그렇다면 이것도 필요 없겠군.”

풀어낸 안대와 함께 그녀의 금빛 눈동자가 드러났다.

동시에 흘러나오던 기색도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는 거대한 세계가 놓여 있었다.

최흉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그 거대한 산은 순간적으로나마 서리스조차 뒷걸음질 치게 하였다.

그녀의 눈에서는 무척이나 깊은 여유로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성녀의 몸으로 다리를 뻗어 온 그녀는 책상 위에 엉덩이를 깔고 걸터앉았다.

“내가 너무 여유로워 보이나?”

“……그래.”

열쇠였던 서리스가 무려 마굴은 물론 최흉까지 죄다 잡아먹고 온 상황이다.

거기에다 아르마까지 품었는데 그런 서리스를 보고도, 용신에게는 일말의 걱정도 없었다.

오히려 새로운 유흥 거리라도 생겼다는 양 그녀는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럼 답을 알려줘야겠지.”

용신을 무릎을 당겨 안았다.

여인의 모습도 그에게 있어서는 익숙한 것이라는 듯.

그녀는 당긴 무릎과 함께 고혹적인 미소를 흘렸다.

“나는 원래 나 혼자서도 세계를 흡수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용신이 이 행보의 첫 시작부터 열쇠를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 한두 번이다. 처음에야 재미있을지 몰라도 두 번 세 번이 되어 가다 보면 너무 지루하기 짝이 없지.”

세계를 흡수하는 것을 여흥으로 여기는 그녀를 보고 서리스의 눈살이 더 찌푸려졌다.

하지만 용신은 서리스의 반응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던 중 보았다. 회사라는 체계적인 걸 세운 특이한 세계를 말이지.”

그녀는 과거를 떠올리며 짧게 웃었다.

“사장과 그 아래 직원들. 어느 시점부터 사장은 최종 결정권자의 권한만 행사할 뿐, 그 외의 일들은 전부 졸개들이 맡는 형식이었다.”

용신은 계속해서 혼자만 아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재밌어 보여서 그 방식을 채택했다. 열쇠라는 걸 만들고, 사상지평을 만들어줬지. 그런데 웬걸 그 인간들을 시작으로 많은 이들이 나를 숭상하더군.”

자기 세계를 멸망시킬 이를 숭상하는 자들.

세계가 넓듯이 사람도 많다.

제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이들 중에는 세계가 멸망하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었다.

용신은 그런 이들에게 아주 작은 힘을 줄 뿐이다.

“그러니 일이 무척이나 편해지더군.”

그녀는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그저 기다리고 있기만 해도 결과물을 내게 받쳐오니 말이지.”

“세상이 그렇게 쉬워 보이는 거냐?”

그 가벼운 태도에 서리스는 분노하며 이를 갈았다.

그녀의 사고방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야 너는 자신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나?”

그 질문을 던진 용신은 어느샌가 탁자에서 내려와 있었다.

방금까지 입었던 드레스는 사라지고, 망토와 함께 귀족이 입을 법한 복장이 되었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여러 일들이 터지지. 간혹 부하 직원이 알고 보니 다른 회사의 스파이였다던가. 물론 중간에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동시에 용신의 체격이 커지며 남성의 모습이 되었다.

여성이라면 무릇 홀릴 법한 외모를 지닌 그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천천히 걸어왔다.

“그런데도 사장들은 지켜본다. 때로는 그들이 새로운 히든카드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지.”

그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선명하게 빛났다.

그 금빛은 서리스 보다도 진하고 깊이 있어 보였다.

“너 같은 이들은 늘 있었지. 어느 누가 남이 자기 세계를 무너트리겠다는데 가만히 있겠나?”

그 순간 서리스의 악스판시온이 휘둘러졌다.

용신을 목을 노리고 날아든 검에는 신룡월단의 기운이 고스란히 서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검은 용신에게 닿기 직전 그의 목 앞에서 우뚝 멈췄다.

분명 서리스가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음에도 검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서리스의 두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마치, 거대한 암석에 검이 박혀 버린 듯 꼼짝도 하지 않는 검을 보고, 용신은 천천히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곤 검을 툭하고 미니 서리스의 몸이 튕겨 날아갔다.

콰앙!

벽에 부딪힘과 함께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쿨럭.”

서리스의 입에서 기침이 흘러나왔다.

검을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용신에게 하나도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살짝 들기 시작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서리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내 손으로 정리하는 게 내 몇 없는 취미지.”

그때, 성 자체가 갑자기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서리스의 두 눈 속에 당황이 서렸다.

이 부유성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설마.”

“애초에 여기까지 들어온 시점에서 이미 결과가 정해졌다고는 생각 안 해봤나?”

그는 느긋한 발걸음으로 의자를 빼어 앉았다.

그러곤 다리를 꼰 채 서리스를 향해 미소를 흘렸다.

그 순간, 용신의 얼굴이 뒤죽박죽 섞여 나갔다.

“아이야, 너는 이미 내 속에 들어와 있었단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것처럼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서리스가 바닥을 박차고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문을 열었지만, 그 밖은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마치, 무수히 많은 세계가 뒤섞여 버린 듯이.

수많은 세계가 마치 얼룩지듯 나타나 있었다.

그것을 보고 서리스는 알아차렸다.

이곳 부유성이 이미 용신 그 자체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 광경을 앞에 두고 잠깐 멍하니 있자 서리스의 뒤편에서 용신이 뚜벅뚜벅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미 네가 내 안에 들어온 시점에서 너희 세계는 나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서리스는 이 상황 자체를 염두에 두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잠깐 사고가 정지했던 서리스는 자기 몸에서 빠져나가는 아르마를 느꼈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 서리스의 등 뒤로 거대한 검 한 자루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발버둥이라도 쳐볼 속셈이더냐?”

방금까지 웃었던 것조차 거짓이라는 듯이 그의 얼굴에는 이제 일말의 감정도 없었다.

“한낱 인간인 네가 하늘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고 해서 그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하더냐?”

사람 한 명이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세계 자체를 무너트릴 수는 없다는 듯이 용신은 웃었다.

그 웃음을 보고, 서리스는 자신의 등 뒤에 드리운 제왕신룡도와 함께 천천히 검을 겨누었다.

“그럼 오늘 알게 되겠네.”

동시에 제왕신룡도가 새하얀 빛과 함께 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 검에 종종 하늘이 무너진다는 거.”

그 말과 함께 서리스의 제왕신룡도가 용신의 세계 안에서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흐름을 끊는 신룡월단의 기운은 아르마와 검은별이 더해져 더 강한 힘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폭풍이 일어난 것과 같이 사방으로 제왕신룡도가 휘둘러지기 시작하자 거기에 휘말린 여러 세계에 금이 갔다.

하지만 그런데도 용신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점차 현실을 깨달은 서리스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가 세계를 부수는 속도보다 그의 몸 안에 있는 것들이 빠져나가는 게 더 빨랐기 때문이었다.

서리스의 몸에서 자꾸만 힘이 빠져나갔다.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용신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증거였다.

부유성에 온 시점에서 용신은 이미 서리스를 집어삼킨 것이다.

그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화가 났다.

스스로가 아둔했다는 것이.

좀 더 노력해야 했나.

좀 더 신중해야 했나.

모르겠다.

만약 이걸 알았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달라졌을지 서리스는 장담할 수 없었다.

서리스의 눈동자에 용신이 닿았다.

마치, 죽어가는 벌레의 춤사위라도 보는 듯이.

용신은 자기 세계의 끝을 고하는 이와 같았다.

서리스의 입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입술을 으스러질 정도로 깨문 탓이었다.

더 방법이.

정녕 방법이 없다는 걸까.

곧 서리스의 고개가 들어 올려졌다.

하지만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서리스의 눈에는 포기라는 감정이 깃들지 않았다.

몰락한 가문의 가주로서 더 심한 무력감도 느껴봤다.

자신에게는 아직 해보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내 몸속에는 여전히 아르마가 있다.’

분명 아르마는 세계 침식의 힘을 밀어낸다.

용신이 지금 자신에게 빼내고 있는 것은 세계 침식의 힘.

‘세계 침식은 더 강한 세계 침식에 이끌리니까.’

그러니 아르마를 제외한 세계 침식부터 흡수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에게 깃든 모든 세계 침식을 흡수하는 시점부터 용신은 아르마를 빼앗기 위해 공격해 올 것이었다.

그때는 정말로 끝장이다.

세계 침식의 힘이 있어도 이기지 못한 용신을 약해진 자신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반대로.’

서리스의 두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 순간, 그에게 깃들어 있던 아르마의 색이 빠른 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세계 침식의 힘으로 바뀌었다.

순간 용신의 눈이 꿈틀거렸다.

지금 서리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가능할 거라 보느냐?”

그의 질문을 듣고 서리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웃었다.

아르마를 세계 침식으로 바꿔 가는 과정에서 몸이 뒤틀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입과 눈에서 핏물이 쏟아 내렸다.

그것을 보고, 용신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렇게 해서 나보다 더 많은 세계 침식이 네게 깃들 거라 생각이라도 하는 게냐?”

그의 눈에 서린 것은 의문이었다.

용신은 지금까지 수많은 세계를 집어삼켰다.

그런 자신에게 고작해야 세계 하나의 힘으로 붙어 보려고 하는 것을 용신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서리스가 노리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의 눈이 하늘 위 저편에 있는 용제의 별에 닿았다.

과거 용제는 자신의 별이 가장 빛나는 순간을 찾아 그 흐름을 끊었다.

시간을 역행시켜 펜타니엄 서리스라는 인물에게 별이 이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서리스의 눈은 별이 강렬히 빛난 순간을 찾았다.

별은 항상 하늘 위에 떠 있다.

그것이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그 빛에 이 흐름을 잇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그 순간 서리스의 세계 침식이 모두 단 하나의 별빛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수천, 수백, 수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세계 선의 서리스가 이 순간을 위해 서로의 흐름을 이었다.

하늘 위 별빛이 광명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서리스의 별이었다.

수많은 세계 선의 모든 서리스가 지금 동시에 그 빛을 번뜩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초신성(超新星)

별 수천억 개를 합친 그 빛에 용신의 내부 전부가 섬광으로 휩싸였다.

그것을 목격한 용신의 눈이 처음으로 커다랗게 떠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서리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모든 세계 선의 별빛이 하나로 모였다.

“네가 여러 세계를 흡수해 지금에 이르렀다면.”

별빛 속에서 서리스의 눈이 황금이 환향을 그렸다.

“나는 단 하나의 세계를 모두 이어 붙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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