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최흉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대륙 가장 중심부에 존재하는 이곳은 사시사철 한 개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새하얗게 타오르는 불꽃은 아무런 열기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대륙 중심에서 그렇게 타오를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불꽃은 보고 있으면 기묘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고.
왠지 모르게 저곳에는 다가가면 안 된다는 감각을 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불꽃이 최흉으로 분류된 이유는 범상치 않았다.
저 불꽃은 어떤 이도 꺼트리지 못한 불꽃이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도 꺼지지 않음은 물론이고, 천상사성 중 어느 누구도 저 불꽃을 꺼트리지 못했다.
그렇기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은 최흉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저 타오를 뿐이지만 그 밝기가 너무 강해서 그 근처에는 어떠한 생물도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식물조차 하나 없는 평원.
덩그러니 타오르고 있는 불꽃의 앞에 서리스가 다가와 섰다.
‘이건.’
그리고 서리스는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왜냐하면, 이 새하얀 불꽃은 자신의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것과 무척이나 유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르마.’
확실하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은 아르마가 확실했다.
서리스는 놀란 눈동자로 잠시간 새하얀 불꽃을 바라보았다.
아르마의 힘은 이미 익히 써본 서리스다.
이것을 흡수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볼 것도 없었다.
서리스는 아르마 덕분에 최흉을 이겨냈다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왔군.”
그러는 순간 서리스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으로 고개를 옮기자 거기에는 다름 아닌 마황 올스타드 스타로드가 있었다.
그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서리스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이곳에 계셨습니까?”
“그래, 네가 최흉을 다 정리하면 마지막으로 이곳에 올 거로 생각했으니까.”
그의 생각은 확실히 적중했다.
“그리고 이제는 아르마가 어디서 나온 건지도 알겠지.”
“예.”
서리스는 아르마의 출저를 깨달았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은 서리스가 사는 세계에 숨결과 같았다.
세계 침식이 아닌 세계 본연 자체의 힘.
수많은 최흉들이 저마다 방법으로 세계를 유지하려 한 것처럼.
서리스의 세계는 불꽃이라는 형태로 자신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만약 용신에게 세계가 결국 멸망 당하더라도 이 불꽃만은 계속해서 타오를 것임을 서리스는 알았다.
“아르마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일부를 정제해 만든 거였다.”
스타로드의 설명을 듣고, 서리스는 자기 몸속에 자리한 아르마를 떠올렸다.
그러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에 반응하듯 서리스의 몸속 아르마가 타올랐다.
마치 자식이 오랜만에 부모를 만난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너라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을 완전히 거둘 수 있겠지.”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서리스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세계 자체를 저에게 맡기겠다는 소리입니까?”
이 힘을 흡수하는 순간, 서리스가 용신에게 패배하는 즉시 이 세계는 끝장이다.
용신은 반드시 서리스를 세계의 힘과 함께 집어삼킬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서리스가 묻자 스타로드는 그를 바라보았다.
“왜, 자신 없느냐?”
스타로드의 질문을 듣고 서리스의 눈이 투명하게 빛났다.
자신 없냐는 말을 듣기에 서리스는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왔다.
“제가 지금까지 받은 게 너무 많습니다.”
용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만난 수많은 이들에게 배운 것이 서리스의 속에는 쌓여 있었다.
그러한 것들을 쌓아 올려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서리스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걸 증명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세계를 집어삼키고, 멸망시킨 용신.
그의 굴레를 끊기 위해 서리스는 세계의 마지막 힘까지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 눈을 보고, 스타로드는 두 걸음 물러섰다.
“그래, 여기서 물릴 것이었다면, 별들이 너를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과 함께 스타로드의 양손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가 별의 저울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미 지금도 너에게 이끌리고 있을 테지만.”
그 말과 함께 하늘의 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체 어떤 거래를 하는 건지 막대한 양의 별들이 밤하늘 위로 흐르기 시작했다.
“완전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마.”
그 말과 함께 스타로드가 손뼉을 쳤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 일렁였다.
“받아들이겠느냐.”
그가 마지막으로 묻자, 서리스가 고개를 들었다.
“부탁드립니다.”
그걸 끝으로 스타로드가 맞잡은 손을 중심으로 주변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서 시작된 스파크와 함께 별 전체가 흘렀다.
구구구구구구구궁!
발아래로는 지진이 일어나듯 땅이 거세게 떨리기 시작했다.
울려 퍼져 나가는 진동과 함께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 더 강하게 타올랐다.
그러한 불길이 서리스를 향하기 시작했다.
마치, 스타로드의 인도를 받듯 불길이 몰려들자, 서리스는 자기 몸에 깃든 아르마를 일깨웠다.
화르르륵!
그 순간, 서리스가 새하얀 불길에 집어삼켜 졌다.
당연하지만 불길은 조금도 뜨겁지 않았다.
단지, 세계 침식과 같이 서리스의 몸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는데.
파직!
그러는 순간 서리스의 몸 위로 검은색 스파크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서리스에게 깃든 세계 침식의 힘이 아르마에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윽.”
당연하지만 그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건 전부 서리스 몫이었다.
그가 이를 악다물었다.
이 정도야 수없이 겪어 본 일이다.
사실상 용신과 싸우기 위한 마지막 발판.
이 발판을 뛰어넘지 못하면 용신을 꺾지 못한다는 생각과 함께 서리스의 두 눈이 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서리스의 몸에 빠른 속도로 아르마가 빨려들어 왔다.
“크흑!”
서리스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속도가 빨라진 만큼 그가 감내해야 할 만한 힘의 반동이 더 커졌기 때문이었다.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흐름과 함께 코피가 터져 흘렀다.
뼈 마디마디 하나가 분해되었다가 재조립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근육이 찢어졌다가 복구되는 것이 반복되기를 한참.
서리스는 몸 내부가 불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와 함께 서리스의 입에서는 그 열기가 고스란히 흘러나왔다.
어느샌가 서리스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몸에서 모든 수분이 빠져나간 느낌을 받은 채 서리스는 점차 흐려지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았다.
“버텨라.”
그러는 순간 스타로드가 불길 밖에서 외쳐왔다.
양손을 내린 채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는 스타로드 또한 얼마나 힘을 쓰고 있는지 느껴졌다.
서리스는 무릎을 펴고 억지로 일어났다.
그러면서 발아래로 그림자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세계를 짊어지기로 한 주제에 세계에 짓눌려서야 쓰나.
견뎌 낸다.
쏟아지던 아르마가 그림자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검은별이 깃들어 있던 그림자 안에 아르마도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렇게 자리만 잡아서는 안 된다.
‘월사자를 상대했을 때처럼.’
서로가 합쳐지도록 해야만 했다.
서리스는 몸속에 별을 지워 나가기 시작했다.
별 대신 아르마의 힘이 서리스의 전신에 깃들어 나갔다.
두근―
심장 소리가 몸 내부에서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고동과 함께 서리스는 몸 전체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음을 느꼈다.
몸 곳곳에 아르마의 기운이 제대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할 수 있다.’
서리스의 의지가 다시금 타올랐다.
이와 동시에 새하얀 불길도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꼬박 하루라는 시간이 지났다.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불길이 사그라들고, 처음으로 주위에 어둠이 찾아왔다.
서리스는 자신의 내부에서 태동하는 힘을 느꼈다.
그 힘과 함께 눈을 뜬 서리스의 눈동자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스타로드가 보였다.
그는 마치 모든 힘을 다한 듯 온몸에 땀을 쏟은 채,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스타로드 님.”
서리스의 눈동자는 이제 완전히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스타로드는 천천히 주저앉았다.
“완전히 받아들였군.”
스타로드가 그리 말하자 서리스는 따라 숨을 내쉬었다.
가만히 있음에도 숨결 하나하나에 세계의 힘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서리스는 그 힘이 거북하지 않았다.
자신 또한 이 세계에서 태어난 이였기 때문에 서리스에게 있어 이것은 익숙한 것이었다.
“이제 사상지평의 대교주가 필히 이곳으로 올 거다.”
그러는 순간 용신의 수하인 사상지평의 이야기를 스타로드가 꺼냈다.
“제가 흡수한 세계 침식과 아르마를 용신에게 바칠 목적인 겁니까?”
“그래, 놈들은 용신을 숭상하는 것만이 전부인 놈들이니까.”
제파림이 없어진 시점에서 열쇠는 이제 서리스 한 명뿐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찾아온다는 말을 듣고 서리스는 아래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림자에서 솟아 나온 악스판시온이 서리스에게 자연스럽게 쥐어졌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군요.”
서리스는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서리스의 예리한 감각에 밤하늘 저 너머에서 무언가가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놈들을 잡아서, 역으로 용신에 관해 추궁하겠습니다.”
하나의 별에 수많은 세계와 자기 세계마저 담았다.
서리스에게 더 이상 두려운 것은 없었다.
“흑마녀.”
서리스의 부름을 듣고, 흑마녀가 나타났다.
“자, 약속한 거야.”
서리스는 그리 말하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의 손끝에서 아르마와 닮은 구슬 하나가 맺혔다가 떨어지며 흑마녀의 손에 쥐어졌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안 흑마녀는 서리스를 바라보았다.
“이겨.”
더 이상 자신과 같은 세계를 만들지 말라고.
그렇게 고한 흑마녀를 향해 서리스는 미소 지어 보였다.
“오냐.”
그렇게 세계를 짊어진 작은 용이 하늘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