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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268화 (268/275)

268화

검은색 어둠이 흩뿌려짐과 함께 맑은 검명이 울려 퍼졌다.

그 속에서 서리스의 눈은 바쁘게 움직였다.

월사자의 권을 따라 은빛의 무리가 서리스를 향해 계속해서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리스 또한 그에 밀리지 않았다.

검은별의 어둠이 은빛 무리를 집어삼키며 계속해서 맞서고 있었다.

그러나 서리스 입장에서도 지금 상황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서리스 또한 검은별만을 다뤄보는 건 처음이었다.

익숙지 않은 감각.

몸 전체가 세계 침식에 뒤덮인 그 기묘한 감각 속에서 서리스는 오직 지금까지 배운 검술만으로 놈을 상대하고 있었다.

청운귀명도 금강잔월도 없는 상황.

본인의 타고난 감각만으로 싸워나가는 것은 서리스 입장에서도 피 말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서리스는 점차 과거를 깨우쳐 나가기 시작했다.

오래전, 저주받은 몸뚱어리였지만 최흉 속에서 조금이라도 살아남아 보기 위해 아득바득 익혔던 것들이.

지금 서리스에게서 하나씩 발현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육체의 강함 없이 오로지 검술 하나에 모든 집중력을 쏟는다.

그 때문인지 서리스는 배웠던 검술의 진정한 묘리를 하나둘 깨우쳐 가기 시작했다.

검은별이 몸속 깊숙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새까만 검날과 은빛 무리가 또 한 번 맞부딪쳤다.

째엥!

순전히 힘 대 힘 싸움이 시작되었다.

제파림과 달리 서리스는 세계 침식의 힘을 온전히 담는 것만으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만으로는 월사자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서리스의 모습이 점차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육체 내부에 자리 잡은 별 대신 검은별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나에게는 검은별만 있는 게 아니다.’

바탕으로 깔린 검은별 위에 서리스는 아르마를 덧씌우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탑을 쌓아 올리듯.

서리스는 몸속에 깃든 것들을 꺼내어 하나하나 쌓아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서리스에게 있어 또 다른 변화였다.

그는 지금까지 아르마를 전부 흡수해서 사용한 게 아니었다.

내부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아르마는 아무리 사용하려 해도 일정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언제나처럼 요지부동으로 그 일정함을 유지할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몸속에 있던 별이 텅 비고 나니 아르마가 서리스의 몸 전체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럼과 함께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던 별가루가 서서히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마치 서리스가 세계 침식 자체를 밀어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의 눈동자 색이 또 한 번 금색으로 물들었다.

흩뿌려지는 금광과 함께 서리스의 검이 점차 더 그 무게를 더해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그와 부딪칠 때마다 월사자가 뒷걸음질 치듯 물러서기 시작했다.

서리스의 검에 담긴 무게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퍼걱!

월사자의 권과 서리스의 검이 정면으로 맞부딪친 순간.

놈이 휘청거리듯 무너져 내렸다.

서리스의 검과 부딪친 그의 주먹은 마치 금이 가듯 부서져 있었다.

월사자의 은발이 휘날렸다.

그것을 보고, 서리스의 검에 아르마와 검은별이 뒤섞인 기운이 금빛으로 화려하게 타올랐다.

별보다도 더 강렬하게 타오르는 그 힘을 앞에 두고, 월사자는 위압감을 느꼈다.

이 세계 내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를 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서리스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평생이고 느껴본 적 없는 것이었다.

죽는다.

그 생각이 월사자의 뇌리에 스친 순간 놈이 몸을 크게 뒤로 빼었다.

그런 월사자를 보고, 서리스가 바로 뒤쫓으려는 순간 그의 머리 위로 짙은 음영이 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서리스가 안 좋은 느낌과 함께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을 때.

서리스는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는 별을 보았다.

서리스는 그 즉시 몸을 튕기며 자기 머리 위로 떨어진 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반으로 갈라진 별이 부서지며 평원을 박살 내놓았다.

평원에 닿은 그 잔해들로 별가루들이 흩날렸다.

흩날린 별가루 속에서 서리스는 아직까지도 쏟아지고 있는 별들을 보았다.

이대로라면 평원이 전부 박살날 것 같았다.

서리스의 눈에 별가루 평원을 질주하고 있는 월사자가 보였다.

이 별의 폭격을 끝내려면 저놈을 끝장내는 것밖에 없었다.

“후우.”

흘러나온 숨결과 함께 서리스가 하늘 위에서 자세를 잡았다.

단 일격으로 끝장낸다.

그 생각 하나로 서리스는 아르마와 검은별을 응축시키기 시작했다.

점차 하나로 몰려드는 힘과 함께 주변 대기가 일그러져 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구!

서리스를 중심으로 주변 대기가 진동했다.

울려 퍼지는 진동 속에서 서리스는 한차례 숨을 당겼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서리스가 있던 자리에는 은은한 빛의 일그러짐만이 남아 있었다.

서리스가 움직인 자리는 공간이 전부 찢겨 있었고, 그는 쏟아지던 별들도 전부 깨부수며 바닥에 착지해 있었다.

휘날리는 별가루 사이로 서리스의 금광이 빛났다.

고개를 든 그의 눈에 검에 꿰뚫린 월사자의 가슴팍이 보였다.

월사자의 몸이 푸르르 떨려왔다.

쿠웅!

그와 동시에 그의 등 뒤로 또 한 번 별이 떨어져 내렸다.

밤하늘 위, 쏟아지는 별 아래에서 서리스는 월사자의 가슴팍에 박아넣은 검을 뽑아내었다.

그러자 월사자의 몸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월사자를 바라보며 서리스는 한차례 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전신에서 느껴지는 아르마와 검은별의 힘이 폭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서리스의 마음은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소드란 시절에서는 평생을 노력해도 잡을 수 없었던 미래를 이 순간 자기 손으로 잡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복수는 했습니다.”

저주받은 별 아래에서 살아가야 했던 소드란의 역대 가주들에게 그렇게 고한 서리스는 손을 들었다.

마지막 시간이다.

서리스는 죽어버린 월사자의 몸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럼과 함께 월사자의 세계 침식을 흡수해나가기 시작했다.

서리스의 손을 타고 올라온 세계 침식이 그의 몸 전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순간 서리스의 눈앞에 어떤 광경이 펼쳐졌다.

수많은 별이 떠 있는 곳.

그곳에 혼자 남은 사내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발아래로 펼쳐진 평원은 이미 오래전부터 빛을 잃어 있었다.

이 세계는 애저녁에 멸망한 세계였다.

기이하게도 몸속의 별이 굳으며 그 끝에는 별의 석상이 되어버리는 기이한 병 때문에 말이다.

그러한 질병에 의해 여러 이들이 저 별 석상이 되고 말았다.

여러 이들이 병의 치유법을 연구했지만.

그런 이들마저도 결국 하나둘 별 석상이 되어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딱 한 남자만큼은 별이 되지 않았다.

그는 별이 통하지 않는 신기한 힘을 타고났었고,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별 석상이 된 사람들을 구할 방법을 연구했다.

그때, 그 세계를 삼키기 위해 용신이 내려앉았다.

그러한 용신의 등장에 남자는 급히 대응하려 했지만, 놈에게는 그 어떤 힘도 통하지 않았다.

용신은 세계를 집어삼켰고,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별 석상들을 박살 내놓았다.

그 결과, 평원에는 별 석상들이 박살 나며 생긴 별가루만이 흩날렸다.

남자는 울부짖었다.

그리고 날아오르는 용신을 보고 자기 몸속에 세계를 담아 뛰어올랐다.

언젠가 용신을 똑같이 별가루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어떤 세계에서라도 살아남겠다고.

그런 기나긴 결심과 함께 말이다.

서리스의 눈이 떠졌다.

이제는 은색의 빛무리도 바스러진 월사자의 몸이 불어온 바람에 잿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용신에게 세계를 잃은 또 다른 피해자인 월사자를 보고, 서리스는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별가루 평원 전체가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많은 별의 잔해가 존재하는 별가루 평원이다.

그런 별가루 평원에 깃든 세계 침식을 서리스는 그렇게 전부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세계에 침범하면서까지 용신에게 복수를 꿈꾸던 한 남자의 마음을 이어받아 주기로 했다.

죽은 이의 넋두리 정도야 어렵지 않게 들어줄 수 있었으니까.

서리스는 사라져 가는 별 가루들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세계에는 저마다의 존재 이유가 있다.

아주 작은 세계 침식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자기 세계였고.

그러한 세계는 제각기 여러 방향으로 멸망했다.

그 사실을 곱씹으며 서리스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라져 가는 별가루 평원 너머의 성벽 앞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리스가 잘 아는 가족이었다.

천하오장성 신왕 그라말테 세라 에이징부터 크라페, 은신사까지.

익숙한 얼굴들을 보고, 서리스가 손을 들자 에이징이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인사할 때더냐?”

“그렇다 해서 지친 얼굴로 뵐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걸 듣고, 에이징은 성벽 밖을 힐끔 보았다.

밖에서는 별가루 평원이 지워져 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기저기서 난리였다.

별가루 평원이 지워졌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구나.”

그 말대로 서리스는 또 한 번 다음 경지로 발을 뻗고 있었다.

“욕심이 많으므로 이토록 빠르게 성장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 말하고, 서리스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또 다음으로 갈 생각입니다.”

이제 최흉은 딱 하나 남았다.

서리스는 검을 들어 올렸다.

아르마와 검은별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서리스의 몸에는 별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월사자 덕분에 아르마와 검은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 서리스는 다시금 충만하게 차오르는 별을 느꼈다.

신룡월단의 기운이 서리스의 검에 서리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휘둘러진 검이 공간을 갈랐다.

이를 통해 다음 최흉으로 넘어갈 준비를 끝낸 서리스는 크라페 쪽을 보았다.

“잘 지내라.”

긴 이별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작별 인사를 해주고, 걸음을 옮겼다.

그런 서리스의 눈에 새하얗게 타오르고 있는 불꽃이 보였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드디어 최후의 최융에 서리스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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