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아래로 추락하는 제파림의 시체를 보며 서리스는 한차례 숨을 내쉬었다.
전신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파르르 떨렸다.
5분간 모든 걸 쏟아낸 만큼, 몸속에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느낌이었다.
“서리스.”
그러는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서리스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거기에는 새까만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채 공중에 서 있는 흑마녀가 있었다.
“웬일로 똑바로 말하네.”
“여긴 우리 세계의 일부니까.”
그 말을 듣고, 서리스는 깨져 나가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저편으로 떨어지고 있는 유성우가 보였다.
저기가 바로 흑마녀의 세계인가.
서리스는 그런 하늘을 두고, 살짝 고개를 내렸다.
“아래로 좀 데려가 주라.”
용인화가 전부 풀린 서리스가 그리 말하자 흑마녀는 공간을 열어 바로 아래로 보내주었다.
거기에는 심장이 뻥 뚫린 제파림이 있었다.
그는 입가에서 핏물을 쏟아내고 있었는데, 서리스는 제파림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눈치챘다.
‘이놈.’
심장을 다시 만들고 있다.
“그윽!”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제파림은 격하게 피를 토해내었다.
몸을 한차례 부들거리던 그를 보고, 서리스는 그의 심장 속에 박힌 신룡월단의 기운을 감지해 냈다.
서리스가 마지막에 박아 넣었던 신룡월단의 기운이 그의 재생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개, 자식이! 감히, 감히 너 따위가 나를!”
저 꼴로도 아직 숨이 붙어 있는지 그는 서리스에게 소리쳤다.
서리스는 그 꼴을 보곤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털썩 앉았다.
최후의 최후까지도 발악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추한 망령 그 자체였다.
“제파림,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냐.”
“웃기지 마라! 내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온 줄 아느냐!”
격하게 반응하는 제파림의 입에서 재차 핏물이 터져 나왔다.
신룡월단의 기운에 심장이 복구되지 않고 있음에도 악착같이 재생에 매달리는 꼴은 그의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제파림이 평생을 발버둥 치며 살아왔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비틀려 버린 삶.
어찌 보면 과거의 자신과 닮아있기도 했다.
아무런 재능도 힘도 없던 삶이었기에 제파림은 세상을 등졌고.
아무런 재능도 힘도 없던 삶이었다 하여도 서리스는 세상에 남았었다.
‘삶은 변칙적임의 연속이라는 건가.’
어찌 보면 자신보다도 더 삶에 매달렸던 제파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인제 와서 동정할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왜 이토록 마지막까지 발버둥 치고 있는지는 서리스도 대충 알고 있었다.
신룡월단의 기운을 피해 그의 영혼이 분리되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파림, 너 아직 영혼을 나눠 놓은 게 있구나?”
서리스의 입에서 스산함을 담은 목소리가 흘러나온 순간, 제파림의 몸이 한차례 굳었다.
그것을 놓칠 리 없는 서리스의 두 눈이 반달 형태로 휘어졌다.
분명 여기 있는 것은 제파림의 본체다.
검은별의 힘을 가장 많이 머금은 본체 말이다.
그러나 용제가 그를 직접 죽이러 왔을 때조차도 자신이 살아나갈 수 있는 굴을 파 뒀던 제파림이다.
천재를 모방하기 위해 오만한 척을 하며 방심했다고 하더라도 과연 제파림이 그런 수 하나쯤 준비해두지 않았을까.
서리스가 보기에 그럴 리가 없었다.
바퀴벌레는 외부로 모습을 드러낸 시점에서 이미 집안 곳곳에 알을 까놓은 상태일 테니까.
제파림이 지닌 성령불사의 비기가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이미 용제의 기록에서 그 사실을 파악한 서리스였기에 두 번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영혼이라…… 확실히 까다롭지. 신룡월단이라면 벨 수는 있어도 다른 곳에 있는 영혼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니까.”
물론 영혼이 베인 만큼 극심한 피해가 가긴 하겠으나 그래서는 의미가 없었다.
제파림이라면 분명히 어떻게든 회복하고 부활할 테니까.
“하지만 너와 같은 상황인 나라면 다르지.”
그 순간 서리스의 목 뒤에서 검은별의 어둠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제파림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서리스는 제파림과 같은 열쇠다.
그리고 그러한 열쇠들의 특징은 세계 침식을 흡수한다는 점.
열쇠인 제파림의 육체와 영혼은 세계 침식에 절여져 있다시피 하다.
그렇기에 영혼 내부에 깊숙이 박힌 세계 침식을 서리스가 흡수하게 된다면 제파림의 끝이 어떨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눠 놓은 영혼에 조금의 검은별이라도 옮겨 볼 속셈이었던 모양인데.”
“……그만둬라.”
서리스가 제파림의 목적을 언급하자 제파림의 눈이 그칠게 흔들렸다.
그러나 그 눈을 비웃듯 서리스는 손을 들어 올렸다.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인생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거다.”
겪어 보니까 못할 정도는 아니더라.
“그만둬라!”
악을 쓰듯 소리친 제파림의 목소리에도 서리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몸 위에 손을 올렸다.
쩌적―
그러는 순간 그의 몸에 담겨 있던 검은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제파림은 악착같이 버텨보고자 검은별을 꽈악 잡았다.
이대로 검은별이 모두 뺏기는 순간 제파림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게 수포가 될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힘 싸움은 의미 없어.”
하지만 서리스의 검은별은 엄청난 먹성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주변 모든 것을 잡아먹는 중성자별과 같이.
서리스의 검은별이 제파림의 검은별을 탐욕스럽게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힘은 지금까지 삼킨 세계 침식 중에서도 가장 높은 밀도를 지니고 있었다.
제파림이 평생을 악착같이 쓸어 모은 검은별이었기 때문이었다.
“크학!”
그 순간 몸에서 살갗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제파림의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서리스는 조금도 봐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계속해서 제파림의 몸에서 세계 침식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만…….”
평생을 모아 놓은 검은별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꾸만 빠져나가는 검은별에 제파림은 애원하듯 외쳤다.
용제에 의해 한 번 죽음 직전까지 몰린 후, 겨우 부활하여 긁어모은 검은별이었기에 제파림에게 있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그의 인생을 바꿔준 것이 바로 검은별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제파림의 애원에도 서리스의 얼굴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상황이 반대였으면, 네가 날 생각해 줬었을까?”
제파림과 서리스의 전투는 서로의 별을 잡아먹기 위한 별들의 전쟁과도 같았다.
거기서 패배한 이의 말로는 애저녁에 정해져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제파림은 서리스에게 달라붙듯 애원했다.
“내, 내 전부다. 이건, 내 전부라고!”
“알아.”
용제의 별도 펜타니엄의 별도 분명 서리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었지만.
서리스는 자신이 여기까지 성장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이 바로 검은별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평생을 모아온 검은별을 서리스에게 빼앗기는 제파림의 심정 또한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내가 빼앗는 거다.”
그의 탐욕을 뿌리 뽑듯 서리스가 더 강하게 제파림의 검은별을 흡수해가자 그의 몸이 점차 말라비틀어져 가기 시작했다.
세계 침식에 절여진 그의 육체였기에 검은별이 흡수되자, 자연스럽게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말라비틀어진 입술 사이로 더 이상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게 된 순간이었다.
쩌적―
“크하악!”
그 순간 제파림의 몸이 갈라지며 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마치 영혼이 뽑히는 듯한 그 비명과 함께 갈라진 제파림의 몸 사이에서 무언가가 세차게 솟아올랐다.
‘이건.’
마치 기생충과 같이 제파림의 몸 안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뭔가가 튀어나온 순간.
서리스는 반사적으로 검을 잡았다.
신룡월단(神龍狘斷)
일식(一式)
용섬(龍殲)
반사적으로 휘둘러진 검에 얻어맞은 기생충은 그대로 튕겨 나갔다.
어떻게 되먹은 건지 신룡월단의 기운에도 놈은 베이지 않았다.
“흑마녀!”
그것을 본 서리스가 뒤늦게 흑마녀를 부른 그 순간, 그녀는 이미 날아가는 기생충 앞에 도달해 있었다.
짝!
그녀의 맞부딪친 손과 함께 기생충의 주위에 검은 공간이 생겨났다.
이와 동시에 마치 잠자리채로 벌레를 낚아채 버리듯.
기생충은 그대로 그 검은 공간 속에 쏙 하니 들어가 버렸다.
“이건.”
“용신이 심어놓은 씨앗.”
서리스는 흑마녀의 대답을 듣고는 무심코 자신의 배를 더듬었다.
혹시 자신 안에도 저런 게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너한테는 처음부터 없었어.”
“하아.”
그 말을 듣고 서리스는 안도하듯 숨을 내쉬었다.
쩌저저저적―
그러는 순간, 마치 모든 게 다 뽑혀 버린 듯 말라비틀어진 제파림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서리스는 조용히 숨을 삼켰다.
이 늙은 구렁이가 얼마나 많은 세계 침식을 잡아먹었는지 서리스의 몸속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한 놈이 저기에 있었다.
흑마녀가 잡은 기생충에게서 흘러나오는 세계 침식의 힘은 분명 제파림의 것이었다.
제파림이 위험해지거나 배신했을 때를 대비한 용신의 수였겠지.
“흑마녀, 그건 어쩔 거냐.”
서리스가 묻자 흑마녀는 검은 공간 안에 가둬둔 기생충을 서리스에게 내밀었다.
“잡아먹어. 이게 진짜일 테니까.”
그렇다면야.
서리스는 그 즉시 놈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기생충 안에 들어 있던 세계 침식의 힘이 고스란히 그에게로 흘러들어왔다.
제파림이 정말로 죽을 것처럼 보이자, 남아 있던 검은별을 모두 뽑아 도망치려 했던 놈이다.
그래서인지 서리스에게 흡수되는 검은별의 농도는 아까와 차원이 달랐다.
아득―
이를 악다물고 있기를 한참.
서리스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끼이이이익!”
그 순간 기생충이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파삭하고 찌그러지며 사라졌다.
그것을 끝으로 서리스는 천천히 손을 떼었다.
그의 목 뒤에서 흉흉한 기운이 공간을 일그러트리며 감돌았다.
무겁다.
당장 이것을 전부 소화해야 함을 느낀 서리스는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아까 전의 깨달음과 제파림의 검은별.
그가 다음 길로 나아가기 위한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다.
“흑마녀.”
“알았어.”
그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서리스의 주위에 검은색 결계를 쳤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공간을 얻은 서리스는 바로 자리를 잡고 앉아 별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몸 주위로 떠오른 별의 기운이 거세게 빛나기 시작했다.
최흉 속에서 생존해 나가며 극한까지 내몰렸던 상황.
언제나 믿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별빛 단 하나뿐이었다.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이라고 할지라도 의지할 수 있는 건 자신의 별 단 하나뿐이다.
밤하늘을 빛내는 별.
그 하나의 별이 되기 위해 사람들은 언제나 달려 나가고 있다.
서리스 또한 그랬다.
평생을 몰락한 가문 아래에서 별을 올려다보는 것밖에 못 했던 삶이었다.
그러한 삶 속에서도 별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 인간이었다.
악착같이 버텨온 새까만 밤하늘에.
한 개의 별이 떠 올랐다.
주변 모든 별빛을 집어삼킬 정도로 거센 빛과 함께 서리스의 눈이 천천히 떠지기 시작했다.
제파림을 쓰러트리고자 모든 힘을 쏟아부었을 때와 같이 서리스의 눈동자가 금색으로 빛났다.
하나의 별을 상징하는 듯한 그 빛과 함께 흑마녀의 공간 결계가 서서히 사라졌다.
“올랐어?”
흑마녀의 질문을 듣고 서리스는 자기 팔을 들어 보였다.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별의 고동이 느껴졌다.
10성
서리스는 드디어 천상사성들이 사는 세계 초입에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