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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260화 (260/275)

260화

수정 바다를 보고, 서리스는 락로드와 함께 펜타니엄 영지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숲을 벗어난 순간 서리스의 눈에 커다란 성벽이 들어왔다.

끝없는 초롱을 감싸는 구조로 세워진 성벽.

하지만 이제는 그 효용을 다한 옛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성벽 쪽으로 접근하자, 그 위를 지키고 있던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끝없는 초롱이 사그라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이 몰려와 평소보다 북적이는 듯했다.

락로드가 직접 들어간 만큼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지만.

혹시나 끝없는 초롱이 새로운 움직임을 보일 수도 있다고 판단해 이렇듯 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을 보고 서리스는 걸음을 멈췄다.

“가주님.”

서리스가 락로드를 부르자 그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지?”

“이번 일, 가주님께서 해결한 거로 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락로드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어째서지?”

“제 개인적인 일 때문입니다.”

위쪽 대가문 사람들 사이에서야 이번 일의 진실이 퍼지는 건 상관없지만.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런 게 알려지면 오히려 혼란이 생길 뿐이다.

서리스의 말을 듣고 한동안 침묵하던 락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렇게 말한 락로드는 다시 성벽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선택이 꼭 개인적인 이유만은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눈치채고 있었나.

서리스는 한차례 웃음을 짓곤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너도 내 아들이다.”

아들.

그 말을 듣고 서리스가 고개를 들자 락로드는 어느샌가 성벽 앞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네 뜻대로 살아라.”

그 말을 끝으로 그가 사람들 시야에 들어왔는지, 성벽 쪽에서 거센 호응이 터져 나왔다.

펜타니엄의 평생의 숙원이었던 끝없는 초롱을 끝내고 돌아온 영웅이었다.

성벽 전체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속에서 서리스는 몸을 돌렸다.

“흑마녀.”

서리스의 부름을 듣자마자 그의 발 앞에 검은색의 공간이 열렸다.

열린 공간을 보고, 서리스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서리스의 시야가 뒤바뀌었다.

이곳은 서리스도 잘 아는 곳이었다.

윌즈베르크.

그리고 윌즈베르크의 최흉인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이 성벽 너머로 보였다.

‘펜타니엄은 구태여 허락받을 필요가 없었지만.’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의 경우에는 윌즈베르크에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서리스가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저편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발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서리스는 대충 알 거 같았다.

그가 고개를 들자 거기에는 익숙한 얼굴의 한 여성이 있었다.

자수정과 흑요석을 함께 깎아 만들어낸 듯한 머리카락이 먼저 눈에 띄었다.

예전보다 한층 더 성숙해진 듯한 그녀의 얼굴은 이제 숙녀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런 그녀를 보고, 서리스의 두 눈동자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아이랑 님.”

“서리스 님!”

서리스를 발견한 아이랑이 신이 난 표정으로 외쳤다.

그런 그녀를 보고, 서리스는 순간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랑 님이 왜 여기에…….”

“서리스 님이 오실 거 같았으니까요.”

자신이 올 것 같았다는 말을 듣고, 서리스는 아이랑이 꽤 오랫동안 윌즈베르크에서 머물렀음을 깨달았다.

“서리스 님,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에 들어갈 생각이시죠?”

서리스가 최흉으로 향할 것이라는 건 대충 알려져 있었긴 했지만 말이다.

“서리스 님의 그 묘한 힘의 출처는 저도 은연중에 느낀 바가 있어요.”

역시 눈썰미가 좋은 아이랑이라서인지.

그녀는 서리스와 지내는 동안 그에게 밝히지 못할 비밀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이 아니라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서요.”

끝없는 초롱에서만 거의 1년을 꼬박 사용한 서리스다.

확실히 다음 최흉으로 나아갔을 때, 또 얼굴을 볼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흑마녀를 제외하면 1년을 사실상 혼자서 보낸 서리스인 만큼.

그도 웬만하면 여유가 될 때 다른 지인들의 얼굴도 보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서리스가 끝없는 초롱을 흡수했듯이 제파림은 만악의 질병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만약 놈이 만악의 질병을 전부 흡수하고 밖으로 나온다면 십중팔구 최흉을 놓고 자신과 경쟁할 게 분명했다.

‘그 전에 하나라도 더 많이 흡수해야 해.’

최흉을 흡수할 수 있는 시점에서 제파림은 자신과 동급의 강자라는 소리였다.

그런 만큼 서리스는 한시가 바쁜 상황이었다.

“들어가시는 건 소녀가 미리 허락받아 놨어요.”

그런 순간 아이랑의 말을 듣고 서리스가 옅게 웃음을 그렸다.

그러한 서리스의 웃음을 보고 아이랑은 몸을 한차례 움찔거렸다.

1년 만에 만난 서리스는 이전보다도 훨씬 강해졌음을 아이랑은 진작 느끼고 있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힘이나 늠름함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의 눈에 담긴 수심 또한 그만큼 더 깊어졌음을 깨달은 아이랑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더더욱 자신을 고립시키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전부 다 스스로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역시 아이랑 님 답군요. 감사합니다. 매번 신세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을 듣고 아이랑은 소매 아래로 주먹을 살짝 쥐었다.

아이랑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하고 강해져도 서리스의 저런 수심을 받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조금은 기대 주면 좋으련만.

이 사람은 무엇을 하든 전부 혼자 책임지려고만 하였다.

“서리스 님.”

그렇기에 아이랑은 손을 들어 서리스의 머리를 감쌌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조금 당황한 서리스였지만 아이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머리를 이끌어 품에 감싸 안았다.

그런 아이랑에 이끌려 고개를 숙인 서리스의 귀로 아이랑의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심장 박동 소리를 듣고 자랐기에 다른 사람의 박동 소리를 들으면 심적 안정감을 얻는다고 해요.”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말이었다.

서리스가 잠시 침묵하자 아이랑은 그런 그의 머리를 손으로 토닥여 주었다.

“서리스 님이 무엇을 짊어지고, 나아가고 계신지는 소녀도 잘 몰라요.”

서리스가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알린 것은 도로시와 서발광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아이랑은 아쉬운 눈으로 서리스를 보았지만, 따로 설명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가 직접 이야기해 주는 것이 진정으로 의미 있다고 그녀 또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소녀가 그걸 같이 짊어질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하지만, 서리스 님이 지칠 때, 이정도는 해줄 수 있어요.”

그 말대로 서리스는 아이랑의 심장 박동을 듣고, 확실히 안정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의미를 담아 자신에게 이런 행동을 해준지도 잘 알고 있었다.

스르륵―

아이랑이 손을 풀자 고개를 든 서리스를 그녀가 애틋하게 올려다보았다.

이에 서리스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이랑 님, 덕분에 머리가 막혔던 게 조금 풀렸습니다.”

발 빠르게 움직이되 여유를 잃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그 사실을 아이랑 덕분에 다시금 자각한 서리스가 천천히 미소 지었다.

그 웃음이 이전보다 한결 편안해진 것을 보고, 아이랑도 따라 웃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일이 끝나면 다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을 듣고 아이랑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자신이 원하던 것을 서리스가 눈치채고 먼저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부분에서는 눈치 빠른 그라 아이랑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소녀가 너무 욕심을 부렸나요?”

“아뇨. 그동안 해주신 걸 생각하면, 이정도야 당연한 거죠.”

자신은 아이랑에게 여러 빚을 졌으니 말이다.

“바로 들어가실 거죠?”

“예.”

“그럼 이거라도 챙겨가 주세요.”

서리스의 대답을 듣고 아이랑이 손짓하자 저편에서 박쥐들이 날아왔다.

그 박쥐들은 여러 개의 보따리를 들고 있었는데, 얼핏 봤을 때 물과 음식들인 것 같았다.

끝없는 초롱에서 보내는 1년간 마수로 허기를 채웠기 때문인지, 이 부분은 전혀 생각 못 했기에 서리스는 감탄했다.

이것만큼은 정말로 감사해야 할 일인 것 같았다.

“잘 받아 가겠습니다.”

서리스가 그림자에 물과 식량을 차곡차곡 넣는 사이에 아이랑이 그의 손에 직접 작은 보따리 하나를 건넸다.

“원래라면 지금 드시라고 하고 싶지만 참을게요.”

그 보따리 속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소녀가 노력해서 만든 도시락이니. 맛있게 드셔 주세요.”

“이거 참, 몸 둘 바를 모르겠는걸요.”

아이랑은 도시락은 건넨 것이 살짝 부끄러운 듯, 살짝 웃곤 표정을 고치며 서리스를 보았다.

“서리스 님, 무사히 잘 다녀오세요.”

오랜만에 따스한 인사말을 들은 서리스는 그녀에게 답하듯 고개 숙여 인사하곤 걸음을 옮겼다.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을 가르고 있는 성벽은 이미 그가 지나갈 수 있도록 문이 열려 있었다.

그 문 앞에 선 서리스가 고개를 돌리자 자신이 떠나갈 때까지 이쪽을 지켜보고 있던 아이랑이 보였다.

아까 했던 말 대로 이 일이 다 끝났을 때 그녀와는 여러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서리스는 성벽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날 맛본 도시락은 서리스의 인생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따뜻하고 정겨웠다.

* * *

펜타니엄이 끝없는 초롱을 제패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몇 주 후.

저번 세계 침식자와의 대전쟁 당시 마굴이 정리된 이후, 인류가 최초로 최흉까지 제패했다는 사실에 세계 각지가 경악했다.

그 소식은 여러 이들에게 전해지며 펜타니엄의 이름값이 하늘 높이 치솟던 순간.

그 소식을 접한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허어? 이것 봐라?”

수북하게 쌓인 시체 더미 위에서 까마귀가 물어다 준 신문 한 장을 보며 한 남자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신문 일 면에 나온 펜타니엄의 소식을 보며 검지를 버릇처럼 까닥거리고 있었다.

“이건 분명, 그 또 다른 열쇠의 짓이렷다.”

신문의 일면에는 검황 펜타니엄 락로드가 끝없는 초롱을 제패했다고 나와 있으나.

그는 이게 진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최흉은 개인이 막아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이 설령 천상사성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분명 최근에 봤을 당시에만 해도 형님의 씨앗이라는 것 말고는 큰 문제가 없던 놈이었는데.’

고작 몇 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최흉을 흡수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오래 살다 보니 나도 시간 개념이 틀어졌군.’

제파림은 짜증스레 앞머리를 뒤로 넘겼다.

만악의 질병을 흡수하는 것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자리에서 일어난 제파림이 시체 더미를 천천히 걸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는 순간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독기가 시체 더미를 전부 녹여 나갔다.

“네놈이 어떤 식으로 세계 침식을 흡수하는지는 몰라도.”

그리고 그 지독한 독기 속에서 제파림은 스산한 웃음을 흘렸다.

“나를 적으로 둔 이상 내 먹잇감에 불과할 거다.”

그리고 그 독기는.

만악의 질병의 가장 깊은 곳.

용독의 늪과 똑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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