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정신을 차린 서리스의 눈에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얼마 만에 보는 천장이더라.
서리스는 이곳이 펜타니엄에서 지낼 당시의 자기 방임을 깨닫고, 이마를 감싼 채 일어났다.
아무래도 아이랑이 자신의 부탁을 잘 들어준 모양이었다.
그러나 몸을 일으켜도 여전히 목을 짓누르는 납덩이 같은 검은별이 느껴졌다.
‘큰일인데 이거.’
설마하니 기절까지 할 줄이야.
목 뒤를 매만지던 서리스가 몸을 일으키려 하는 순간, 끼익하고 문이 열렸다.
서리스는 이에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서리스 님.”
“천랑후.”
그는 다름 아닌 천랑후였다.
서리스 전담 집사로 일했었던 그는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집에서 눈을 뜬 기분은 어떠십니까?”
“내 집 같지가 않네.”
“꽤 오래 나가계셨으니까요.”
천랑후는 그렇게 미소 짓곤 들고 왔던 물수건과 통을 옆에 내려 두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전장에서 쓰러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좀 문제가 생기긴 했지.”
천랑후에게 다 말할 수는 없기에, 그렇게 둘러댄 서리스는 몸을 일으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태여 전쟁 중에 펜타니엄으로 돌아왔다.
‘그림자가 검은별을 받아낼 수 있는 수용 치를 늘린다면.’
해결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아마 그 사람을 만나야 할 건데.
‘그게 가능할지는.’
서리스는 확신을 내리지 못한 채 목덜미 쪽을 매만졌다.
“일단 어머니를 좀 만나 뵐 수 있을까?”
서리스가 그렇게 말하자 천랑후가 대답했다.
“아마 그러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니?
서리스가 의문을 띄우자 천랑후가 문 쪽에서 한걸음 물러섰다.
“가주님께서 지금 기다리고 계십니다.”
서리스는 그 말을 듣자마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순간, 어떻게 알고?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마주해야 할 일이었다.
“가자.”
서리스는 천랑후에게 부탁해 바로 이동을 시작하였다.
서리스가 안내받은 곳은 다름 아닌 펜타니엄의 가주실이었다.
평생을 소가문의 가주로 살아봤었어서 인지.
여전히 저 가주실만 보면 괜히 긴장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검은별이라는 문제도 있는 마당.
서리스는 한차례 숨을 내쉰 뒤,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가주님, 서리스입니다.”
“들어와라.”
안쪽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그는 문을 열고 가주실로 들어갔다.
고요한 풍경과 함께 안쪽에서 한 기척이 느껴졌다.
마치 그림자를 직접 빚어 깎아낸 듯한 남성은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마주한 것만으로도 마치 거인이 자신을 직접 내려다보는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꿀꺽―
긴장감에 무심코 서리스가 침을 삼킨 그 순간.
천상사성 검황 펜타니엄 락로드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새까만 눈과 마주한 서리스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인사치레는 되었다.”
그리 말한 락로드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리스가 의아함을 품자 락로드는 그대로 걸음을 옮겨 문 쪽으로 향했다.
“따라와라.”
다짜고짜 따라오라니.
검은별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가주의 명이다.
서리스는 밖으로 나선 락로드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전쟁에서 활약 중이라 들었다.”
전쟁 시기에도 끝없는 초롱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긴 락로드의 말을 듣고 서리스는 고개를 숙였다.
“월하십인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을 뿐입니다.”
“월하십인, 그래, 자리의 의무와 책임은 중요한 법이지.”
락로드는 큰 의의는 두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악스판시온의 모습이 변했군.”
악스판시온은 자신이 워너힐 아카데미에 시험 치러 갈 당시 락로드가 직접 알려준 무기였다.
그의 눈은 모든 그림자를 꿰뚫어 본다.
그렇기에 서리스의 그림자 속에 있는 악스판시온도 알아본 것이겠지. 이에 서리스가 대답하였다.
“예, 명장 바루그에게 직접 부탁하였습니다.”
“흐음.”
이 또한 락로드는 그렇게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 뒤로 이어진 것은 침묵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고는 볼 수 없는 삭막한 풍경 속.
락로드는 걸음을 옮기고, 서리스는 그 뒤를 따랐다.
천상사성이라는 자리에 오르며 마치 감정을 잃어버린 듯.
락로드는 무감정한 표정을 지은 채 그저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그가 도착한 곳은 펜타니엄 저택 내에 있는 한 별실이었다.
정원으로 잘 가꾸어진 그곳은 여러 식물들이 각자의 모습을 뽐내며 자라나고 있었다.
“귀령관이라는 곳이다.”
귀령관.
서리스는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곳이지만 가주의 허락하에 출입할 수 있는 곳이라고 들은 적이 있었다.
‘특별한 것은 없어 보이는데.’
서리스가 정원의 경치를 훑고 있자 락로드는 어느 한 지점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림자가 새까만 덩어리로 가득 찼더군.”
그 순간 이어진 말을 듣고 서리스의 몸이 굳었다.
그림자를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진 그답게 서리스에게 생긴 문제도 눈치챈 것이었다.
“아까 전, 자리의 의무와 책임감은 기억하겠지.”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의 일이다.
잊을 리가 없었던 서리스가 대답하자 락로드의 발아래에서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그럼 지금부터는 네 힘에 대한 의무와 책임감을 보일 시간이다.”
그 순간 그의 그림자가 바닥을 지워 나감과 함께 지하로 이어진 계단 하나를 드러냈다.
정원 아래에 공간이 있음을 몰랐던 서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락로드는 턱짓을 하였다.
“앞으로 와라.”
“……예.”
서리스는 그것을 보자마자 바로 알아차렸다.
락로드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이곳으로 불렀음을 말이다.
계단으로 다가가자 저 밑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심연이 보였다.
마치 심연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으려니 락로드가 말하였다.
“이 안에는 그림자만이 존재한다.”
그 말대로 이 공간 아래에는 새까만 일렁임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빛조차 집어삼킬 만큼 칠흑 같은 어둠만이 말이다.
“네 그림자를 직접 마주해 봐라.”
그 말을 들었을 때, 서리스는 이미 락로드에게 등이 밀어진 뒤였다.
“예?”
서리스가 당황한 음색을 내뱉었을 때 그는 이미 계단 안으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순간 이렇게 막무가내로?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서리스의 몸은 그림자 공간에 잡아먹힌 뒤였다.
그것을 잠시 바라본 락로드가 몸을 돌려 귀령관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 순간, 그의 앞에 한 남성이 나타났다.
락로드보다도 한참 어려 보이는 그는 대뜸 혀를 쯧쯧 찼다.
“설명이라도 해주고 넣지 그랬느냐.”
“직접 겪어보는 게 빠르지 않겠습니까.”
그는 다름 아닌 검제 펜타니엄 요치아였다.
락로드의 할아버지인 그는 혀를 쯧쯧차곤 몸을 돌렸다.
“죽다 돌아오겠구만.”
“서리스를 저기에 넣어 달라 부탁하신 건 요치아 님이셨습니다.”
“그래, 지금의 저놈에게 딱 필요했을 테니까.”
몸은 어려졌음에도 여전히 뒷짐을 쥔 자세로 요치아는 그렇게 걸음을 떼었다.
“자기 앞가림은 할 줄 아는 놈이니,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요치아가 떠나가자 락로드는 뒤쪽을 힐끗 보곤 귀령관의 문을 닫았다.
펜타니엄의 진짜 시험의 시작이었다.
* * *
새까만 그림자 속.
끝없이 떨어지는 듯한 부유감 속에서 서리스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떠도 보이는 것은 어차피 암흑뿐이니 차라리 감고 있기로 한 것이었다.
‘이 느낌.’
예전에 무장공주와 싸우던 당시.
검은별을 일부러 폭발시켜 터트렸던 그때와 비슷했다.
소리도 빛도 아무것도 없는 그림자 속.
서리스는 부유감 속에서 자신의 목 뒤로 손을 옮겼다.
세계 침식의 폭주로 이어지지 않고자 계속해서 제어했던 검은별.
하지만 이 공간에서라면 그 제어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락로드는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을 이곳에 넣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서리스는 억지로 틀어 막아놨던 검은별의 물꼬를 열었다.
그 순간, 마치 댐이 터져버리기라도 한 것 마냥 검은별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그림자로 가득 차 있던 공간에 새까만 어둠이 들이닥쳤다.
“윽.”
강렬하게 쏟아져 나오는 검은별 때문에 서리스 조차도 침음을 삼켰다.
터져 나오는 검은별의 화력이 어찌나 강한지 몸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서리스는 이를 아득 깨문 채 그것을 견뎌 나갔다.
그러기를 한참.
이제는 그림자인지 검은별에서 나온 어둠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주위가 강한 기운으로 가득 차버렸을 때쯤.
서리스는 주위 그림자와 어둠 사이에 있는 작은 틈을 느꼈다.
마치 그림자와 어둠은 양립할 수 없다는 듯.
둘 사이에 있는 거리감을 느낀 서리스는 잠시 후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지금까지 왜 검은별이 그림자와 뒤섞이지 못했던가 했더니.’
그림자와 검은별은 마치 물과 기름 같았다.
이러니 끝없이 모든 걸 수용할 수 있는 펜타니엄의 그림자라도 검은별을 받아내지 못한 것이었다.
‘그럼.’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서리스는 목덜미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뒤섞이지 못하는 검은별과 그림자를 동시에 해결할 방법이 무엇인가.
아무리 매일 같이 싸우는 적이라도 공통의 적이 나타난 순간 합심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검은별과 그림자에게도 이와 같은 것을 만들어 주면 된다.
서리스의 등 뒤에서 별빛이 마치 후광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은별과 그림자가 동시에 서리스에게서 밀려 나갔다.
너무 강렬한 빛 앞에 어둠과 그림자가 물러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모자랐다.
검은별과 그림자가 확실히 뒤섞여 완전히 융합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로 안 되었다.
‘더 강하게.’
금강잔월의 별빛이 서리스 몸 전체에서 터져 나왔다.
그것은 곧 신룡월단의 기운으로 바뀌었고, 서리스의 몸 주위에서 무형의 기운이 뒤섞여 나갔다.
그 순간 서리스는 하나의 별이 되기 시작했다.
너무도 강렬한 그 별빛 앞에서 검은별의 어둠과 그림자가 이를 피하고자 뒤섞였다.
물과 기름 같이 양립할 수 없었던 두 기운이 처음으로 뒤섞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서리스의 별빛이 거세짐에 따라 검은별과 그림자는 더더욱 빠르게 뒤섞여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한참.
서리스는 숨통을 조여오던 검은별이 서서히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림자가 검은별을 본격적으로 받아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펜타니엄의 그림자 색 또한 더더욱 진해져 나갔다.
그림자가 어둠으로 덧칠되어 이제는 펜타니엄이 아닌 오직 서리스만의 그림자가 되어갔다.
그림자 세계.
샬롯과 락스카에게 엿보았던 그 세계가 서리스에게도 구축된 것이었다.
서리스의 그림자 세계는 검은별로 꽉 찬 칠흑 같은 암흑의 세계였다.
‘용제가 어째서 펜타니엄에 그 씨앗을 심어놨나 했더니.’
검은별을 받아 낼 수 있는 것이 펜타니엄의 그림자밖에 없다고 생각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답이었다.
그림자 공간.
서리스는 덧없이 편안한 기분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그의 발아래로 그림자가 몰려들었다.
마치 그를 주인으로 인정하듯 그림자는 서리스를 천천히 위로 올려 주었고.
서리스는 잠시 후 락로드에게 밀어졌던 계단과 마주했다.
그 계단을 천천히 따라 올라간 순간, 하늘에는 아직도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생각보다 빨랐군?”
그런 순간, 락로드가 서리스를 보곤 처음으로 놀란듯한 반응을 보였다.
하루도 채 안 된 시점에서 서리스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역대 가주들조차도 한 달을 넘게 걸린 것을 하루 만에 끝내고 온 것이었다.
“예, 잘 해결하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리스가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듯 웃으며 말하자 락로드는 그를 보곤 몸을 돌렸다.
“알았다.”
그는 잘 해결됐다면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걸어갔다.
하지만 그런 그의 눈에 비친 서리스의 그림자는 이전과 무척이나 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