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밤하늘에 뜬 달이 떠오를 만큼 무척이나 새하얀 구체.
아르마라 부른 그것을 들고 있는 성위를 보고 서리스의 두 눈이 흔들렸다.
“용의 알이라는 건, 그게 용신의 알이라는 겁니까?”
“용신과는 다르네. 정확히는 우리 세계의 용의 알이지.”
서리스는 이해 못 한 표정을 지었다.
각 세계마다 용신과 같은 용들이 여럿 있다는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마 이거 또한 용신이 세계를 집어삼키기 위해 꼭 필요한 물건일 걸세.”
“그렇게 말 하시는 건, 성위님께서도 정확히 아는 게 아니라는 소리십니까?”
“맞네. 나는 그저 미래를 엿보는 천체관측자일 뿐이니까.”
성위는 아르마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자네의 펜던트 속에서 이 이야기를 엿듣고 있을 흑마녀는 이 알에 관해 말하지 않았겠지.”
그러는 순간 성위가 흑마녀를 언급했다.
아무래도 성위가 그때 흑마녀를 믿지 말라고 조언했던 건 저것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펜던트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옅은 검은빛을 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서리스는 품에 있던 검은색 펜던트를 들어 올렸다.
이왕 이렇게 된 상황이다.
확실하게 집고 가는 게 낫겠지.
“흑마녀.”
서리스가 그녀를 부르자 펜던트에서 먹물 같은 어둠이 흘러나옴과 함께 검은색 개구리가 되었다.
개구리는 가볍게 뛰어, 서리스의 어깨 위에 안착하였다.
“흑마녀, 성위님의 말이 사실이야?”
서리스가 물음을 던지자 개구리가 한차례 눈을 깜빡이었다.
그러다 이내 개구리의 입이 스르륵 열렸다.
“……응.”
조용하게 대답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도 서리스는 딱히 충격받거나 놀란듯한 표정이 아니었다.
흑마녀에게 여러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녀와 서리스는 용신을 처치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손을 잡고 있을 뿐인 관계였다.
애초에 숨겨둔 비밀 한두 개가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저걸로 뭘 하려고 한 거냐.”
서리스가 질문하자 흑마녀는 다시금 침묵했다.
그가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보고만 있자, 결국 흑마녀가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우리 세계를 다시 태어나게 하려고 했어.”
서리스는 그 말을 듣고 성위를 바라보았다.
그런 것도 가능하냐는 물음을 담은 서리스의 눈을 보고 성위도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의 힘이 담겨 있는 알일세. 그 방법만 알고 있다면 불가능하진 않겠지.”
용신을 처치하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자신이 저 알을 얻게 될 순간이 올 테니.
흑마녀는 그것을 노렸다는 소리가 되었다.
그녀는 용신에게 자신의 세상이 멸망되었었으니까.
그런 자신의 세상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저 아르마가 필요한 것이었다.
“……미안해. 하지만 네 세계에 폐를 끼치려는 건 아니었어. 아르마에서 아주 약간의 힘만 받아 가고 싶었을 뿐이야. 금방 다시 회복될 수 있을 정도로 조금만.”
흑마녀가 사과를 하자 서리스는 한차례 머리를 긁적였다.
“그걸 나한테 말 안 한 이유는 내가 거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냐?”
자신은 용제가 죽어가면서 맡긴 용신과 맞설 열쇠다.
서리스가 그녀를 내치는 순간 흑마녀는 당장의 문제인 용신을 해결할 방법이 없던 것이다.
용신이 있는 이상 아르마도 어찌하지 못했을 테니까.
“……응.”
그 또한 사실이라는 듯 흑마녀가 대답하자 서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네 말에 의하면 아르마의 일부분을 떼어가도 우리 세계에는 별문제가 없다는 거지.”
“문제없어.”
“그거면 충분해.”
서리스는 그렇게 말하고 개구리를 자신의 손 위에 올려 두었다.
“흑마녀, 오늘부로 너랑 나는 확실하게 거래 관계로 정해졌어.”
“거래 관계.”
“그래, 용신을 처치하면 아르마는 내가 너에게 일부 나눠줄게. 대신, 너도 용신을 처치할 때까지 나를 전력으로 도와.”
서로의 이해관계가 완벽히 일치할 때야말로 가장 믿을 수 관계가 성립되는 거다.
흑마녀는 서리스의 힘이 필요하고.
서리스는 흑마녀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때로 사사로운 정보다 확실한 메리트가 있는 거래 관계가 더 신뢰 간다는 걸 잘 아니까.”
괜히 오랜 시간을 소가문 가주로서 살아본 게 아니다.
그렇기에 서리스가 그리 말하자 흑마녀는 잠시 침묵하다 개구리 손을 들어 보였다.
“알았어.”
“그래.”
흑마녀와의 관계를 재구축한 서리스는 미소를 지으며 개구리 손을 맞잡아 보곤 성위를 돌아보았다.
이거라면 문제없겠냐는 눈빛을 보내자 그는 너털웃음을 흘렸다.
“서리스 학생은 다른 세계도 구하려 하나?”
“우리 세계도 급급한데 무슨 다른 세계까지 구합니까. 그냥 거래 좀 한 겁니다.”
“허허, 그런 셈 치겠네.”
그렇게 말한 성위는 서리스에게 아르마를 건넸다.
그는 어떨결에 아르마를 받곤 성위를 바라보았다.
“……저한테 그냥 주시는 겁니까?”
“흑마녀랑 약속하지 않았나. 그 약속을 지키려면 서리스 학생, 자네가 가지고 있어야지.”
그거야 그렇다마는.
“자네의 그림자라면 그걸 잘 지켜줄걸세.”
그 말을 듣고 서리스는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하긴, 지금도 사상지평에게 자꾸만 노려지는 성위다.
차라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게 낫겠지.
“알겠습니다.”
서리스는 아르마를 그림자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아주 짧은 빛과 함께 아르마가 그림자 속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그림자 안에서 별다른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아르마는 그림자 내부 어딘가에 잘 자리 잡았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서리스는 한 가지 의문을 품고 성위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성위님.”
“음?”
“아르마는 어디서 얻으신 겁니까?”
서리스 기준으로 과거의 성위는 사상지평에 노려져 암살당하거나 하지는 않았었다.
그렇다면 분명 그 당시 성위는 아르마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소리였을 텐데.
어째서 그가 지금 시점에서 아르마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그를 보자 성위가 옅게 웃었다.
“올스타드 스타로드.”
그러는 순간 서리스가 유일하게 만나보지 못한 천상사성이자 마황인 그의 이름이 성위의 입에서 나왔다.
“그가 내 부탁을 받고, 이를 찾아내어 나에게 건네었네.”
“마황께서 말입니까?”
최근 갑자기 종적을 감춰버린 스타로드가 언급되자 서리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마황께서도 용신에 관해 알고 있는 겁니까?”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알고 있네. 서리스 학생, 자네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이들이 세계를 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네.”
그렇게 말한 성위가 옅게 웃음을 지었다.
“자네는 머지않은 시간 내에 그와 마주하게 될걸세.”
“이것도 예언입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예언이지.”
성위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업무용 책상으로 돌아갔다.
“이야기는 끝일세. 아마 내가 이 상태로 말할 수 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겠지.”
자신의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걸 자각하고 있다는 듯한 발언과 함께 성위는 펜을 들었다.
“잘 부탁하네.”
그리고 그 미소를 끝으로 성위의 눈에 깃든 청명함이 사라졌다.
“음? 서리스 학생이 아닌가? 아, 내가 불렀던 모양이군. 이번 일은 정말 고맙네.”
그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마치 그를 오늘 처음 본 것처럼 이야기했다.
“예,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자신 말고도 또 다른 이가 세계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음에 작게나마 감동한 서리스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흑마녀는 어느샌가 펜던트로 돌아가고 없었다.
서리스는 그것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복도 밖을 바라보았다.
제각기 다른 목표가 있는 이들이지만 한가지 목표만은 확실했다.
‘용신.’
놈을 반드시 처치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세계 침식자와의 전쟁을 종식 시킨다.’
* * *
아크단이 새롭게 창설된 이후.
서리스는 곧바로 전장에 발을 들였다.
한창 진행 중인 전쟁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침공파 세계 침식자들은 연이어 최흉을 폭주시키며 가주들을 전선에서 이탈시켰고.
이렇게 만든 전력의 공백을 노리고 가문을 습격하는 야비한 짓거리를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가문들에게 아크단은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아이랑의 정보력과 스타리즈의 기동성 덕분에 서리스는 전장이 위험해질 때마다 아크단을 이끌고 나타났고.
그 결과 몇 번이고 세계 침식자들을 밀어내는 데 성공하기까지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반대파 세계 침식자들이 본격적으로 가문들 쪽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자 전쟁의 양상이 점차 한쪽으로 기울어 갔다.
침공파 세계 침식자들 만큼이나 반대파 세계 침식자들의 세력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한 번 기울어지기 시작한 전열은 서서히 침공파 세계 침식자들을 고립시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리스는 여러 세계 침식자들과 부딪쳤다.
“서리스!”
서발광의 목소리와 함께 서리스가 공중제비를 돌며 악스판시온에 힘을 실었다.
악스판시온에 깃들어진 신룡월단의 기운과 함께 서리스의 검이 전력으로 내려쳐 졌다.
서걱!
“끄, 아악!”
세계 침식자 독중편작(毒中偏鵲)이 극독을 입에서 토해내며 죽었다.
그런 그의 시체를 피한 서리스는 그가 독으로 산화하는 것을 지켜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이번이 몇 번째더라.
어렴풋이 기억을 두드려 보니 이런 전투에 참여한 것도 벌써 10번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아크단의 위상 또한 날로 높아지고 있었고.
단원들도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실전을 경험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쪽!”
“알아!”
지금도 뮤리널과 제로가 서로의 호흡을 맞추며 조력자 한 명을 검으로 동시에 갈랐다.
샬롯을 포함해 가장 학년이 낮은 두 사람이 저 정도 실력을 겸비하게 되었으니.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지끈―
그러나 정작 서리스는 근래 생긴 문제 하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검은별이.’
정말로 한계에 다다랐다.
마치 납덩이가 목을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지끈거리는 머리가 통증을 유발했다.
‘처음에는 검은별을 흡수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세계 침식자와의 전쟁은 세계 침식이 잔뜩 쌓인 장소를 휘젓고 다니는 것과 같았다.
태화조식으로 마굴에 깃든 세계 침식을 흡수한 이후.
서리스의 검은별은 한 단계 더 성장해 은연중에 세계 침식을 흡수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그가 따로 의식하지 않아도 전장에서 검은별이 은연중에 계속 흡수되기 시작했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검은별이 대량으로 쌓이고 있는 상황.
그림자조차도 감당하지 못하게 돼버리자 이제는 검은별이 자신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마치 언제든 폭발할 것 마냥.
서리스의 몸이 검은별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서리스 님?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얼굴빛이 안 좋으세요.”
그러는 순간 서리스는 자신을 걱정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아이랑이 있었고, 그녀와 마주한 서리스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이랑 님.”
“네?”
아이랑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리스를 바라보자 서리스는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버티며 입을 열었다.
다행히 전장은 거의 다 정리되었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아이랑을 바라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제가 지금 펜타니엄 본가로 좀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끝마친 순간, 서리스는 오랜만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