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세계 각지에서 시작된 세계 침식자와의 전쟁.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전투 속에서 서리스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워너힐 아카데미로 돌아오는 일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세계 침식자를 전문적으로 상대하기 위해 창설된 곳이 바로 아크단이었으니까.
‘비록 힐로즈 단장은 죽었지만.’
아크단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찾아온 워너힐 아카데미는 전투의 흔적을 그제야 조금 복구한 상태였다.
살던 사람 수만 해도 만 단위였던 워너힐 아카데미다.
세계 침식자가 학생과 단원들을 주로 노린 만큼 일반 시민들은 큰 인명 피해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이 살던 터전이 날아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서리스는 길거리에 허망한 표정으로 퍼질러 앉아 있는 이들이나 한숨을 쉬며 자신의 가게를 정리하는 이들을 지나쳐 아카데미 본관으로 향했다.
당연하지만 가장 엉망인 건 워너힐 아카데미 본관이었다.
학생들과 단원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던 장소였던 만큼 건물 여기저기가 무너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엉망진창이네.”
옆에서 잠자코 있던 도로시의 말을 들은 서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해 봤을 때, 지금이 그나마 평화로운 거라는 걸 서리스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전쟁 중이라서 특정 누군가에게 이 일의 책임을 물지 못하겠지만.’
여러 대가문의 자녀들이 다니던 워너힐 아카데미다.
분명, 전쟁이 끝나자마자 여러 말들이 튀어나오리라.
‘그때가 오면.’
성위가 워너힐 아카데미 교장직을 내려놔야 할지도 모른다.
성위 쪽에서 워너힐 아카데미에 쳐놓은 결계가 뚫렸다는 점을 반드시 문제 삼을 테니까.
‘그런데…… 용신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성위를 계속 죽이고자 했어.’
사상지평을 이용해 성위를 죽이려 했던 용신이다.
그 이유를 밝히고자 마왕과 독후가 잡아 놓은 사상지평 여럿을 고문했음에도.
그들의 입은 쉬이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애초에 용신의 뜻이라면 목숨도 내놓을 이들이니.
놈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명령이 내려왔으니 움직였을 확률이 더 높았다.
‘성위를 한 번 만나 봐야겠어.’
용신의 숨은 뜻이 뭔지는 몰라도 성위의 존재가 용신에게 방해된다는 건 분명했다.
그러니 서리스도 성위를 한 번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도 정든 곳이었는데.”
그러는 순간 착잡한 얼굴로 말하는 서발광의 목소리를 듣고, 서리스는 둘을 돌아보았다.
성위는 그렇다 치고, 이쪽도 서리스에게는 문제였다.
“둘 다 굳이 날 따라올 필요는 없었는데.”
펜타니엄 쪽은 세계 침식자도 전부 정리가 된 만큼 더 이상 위험이라 부를 만한 요소는 없었다.
세계를 지키라는 명을 가문의 안주인인 어머니에게 받은 것은 어디까지나 서리스다.
그런 만큼 두 사람이 구태여 자신을 따라올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둘은 그럴 리가 없었다.
“서리스가 가는 곳이잖아. 내가 따라가야지.”
“직계님, 서운하게 우리만 쏙 빼놓고 멋진 거 하려고?”
이미 한 번 들었던 대답이었지만, 그 말을 듣고 서리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서발광과 도로시는 위험하다는 말을 들으면 더더욱 자신을 따라오려고 했다.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기분을 느끼며 눈을 감자, 도로시가 서리스의 팔짱을 꼈다.
“그리고 그 아크단이라는 거 도로시도 들어가고 싶은걸!”
그러자 반대편으로 서발광이 따라 섰다.
“나도 마찬가지야, 서리스. 나는 네 친구잖아.”
뒤에 부하라는 말을 하고 싶은 듯하였지만.
서발광은 그쪽은 참고 친구라 말하며 웃었다.
그 말을 듣고 서리스는 헛웃음을 흘리다 양팔을 번쩍 들어 둘의 어깨를 확 낚아챘다.
“아크단이 아주 만만하지? 너희 둘 다 죽도록 구를 줄 알아.”
“꺄하하, 큰일 났네!”
“그래봤자 청랑단 때 보다 심할까.”
왁자지껄하게 웃은 세 사람은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두 사람이다.
당연하지만 서리스에게도 두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것보다 든든한 일은 없었다.
그리고 이곳 워너힐 아카데미에는 두 사람 만큼이나 든든한 자들이 여럿 있었다.
“왔나.”
워너힐 아카데미 본관의 한 교실.
다른 곳과 달리 그나마 무사한 그 장소에 모여든 이들이 있었다.
자신을 제일 먼저 발견하고 손을 들어 보인 스타리즈에게 고개를 끄덕인 서리스는 주위를 쭉 훑어보았다.
같은 아크 단원인 빅토르와 엑스널, 디바쉬부터.
자신과 같은 학년인 스타리즈, 이바드라와 발렌타인, 아이랑, 셀링, 크라페, 거기에 뮤리널과 제로, 샬롯까지.
자신과 연관된 여러 인물들이 이 교실에 모여있었다.
“내가 부른 건, 아크 단원만이었지 않나?”
어째선지 다른 사람들도 잔뜩 모여있었기에 서리스가 이리 묻자 엑스널이 대답했다.
“내 동생이 서리스 후배한테 연락 온 걸, 듣고는 죄다 퍼트려 버렸거든.”
그가 뮤리널을 쏘아보자 그녀는 새침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본 서리스는 한차례 한숨을 쉬곤 머리를 긁적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다들 무슨 생각인지 다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우리가 모인 건, 이번 사태로 곤경에 처한 가문들을 지원하기 위함이야.”
“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모인 거 아이가.”
스타리즈가 바로 대답을 해왔다.
“그럼, 내 말뜻이 뭔지는 다들 알잖아.”
“위험하다는 거 말이죠.”
아이랑 또한 서리스에게 즉답을 해왔다.
“……서리스,”
그러는 순간 이바드라가 자신을 불러왔다.
“이 몸은 호라이즌의 끝이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호라이즌을 제 손으로 죽여야만 했던 이바드라를 보고 서리스가 한차례 침묵했다.
“이 몸은 호라이즌과 같은 실수를 범하는 이가 또 나오는 걸 가만히 지켜만 볼 생각은 없다.”
그의 눈 속에 깃든 투지는 쉽사리 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부탁한다. 이 몸을 아크단에 넣어다오.”
아크단에 들어가 세계 침식자와 직접 맞서겠다고.
그가 그렇게 말하자 서리스는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바드라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서리스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워너힐 아카데미에서 세계 침식자라는 거대한 힘 앞에 무력하게 당해야만 했던 그들이다.
살아오기를 가문을 책임지는 법 위주로 배워 온 이들이기에.
그들은 지금 이 순간, 세계를 지키는 대가문의 한 일원으로서 성장하고자 하였다.
“오빠, 전부 아크 단원에 넣으면 되지. 뭘 그렇게 뜸 들여?”
살룡에게 당한 전적이 있는 샬롯 또한 그 복수를 해야 한다는 듯 두 눈을 날카롭게 띄웠다.
강자에게도 절대로 굽히지 않는 신념을 지닌 그녀다웠다.
“알았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인재가 함께해야 하는 상황이다.
세계 침식자까지는 힘들지라도 조력자를 상대할 수 있는 실력자는 앞으로의 전쟁에서 무척이나 필요할 것이다.
“잠깐, 그 전에 한 가지 확실하게 짚고 가야지!”
그러는 순간 갑자기 빅토르가 손을 들며 앞으로 뛰쳐나왔다.
“후배들이 아크단에 들어오는 거야 상관없는데. 지금 힐로즈 단장의 순직으로 단장 자리는 공석이잖아!”
그 발언을 듣고 서리스가 눈을 깜빡이었다.
“단장, 정해야지?”
그 말과 함께 빅토르가 씨익하고 웃으며 이쪽을 돌아봤고, 서리스는 그도 참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빅토르 선배 그냥 이리로 오세요.”
그러자 이를 보다 못한 엑스널이 빅토르를 질질 끌고 구석으로 데려가 버렸다.
빅토르가 반항하긴 했지만 디바쉬 선배도 나서자 결국 구석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빅토르를 제외하면 모두가 이곳에서 누가 구심점 역학을 하고 있는지는 진작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 단장님.”
스타리즈가 장난스럽게 부르자 서리스는 한차례 헛기침했다.
소가문의 가주로서 이미 리더의 역할을 해본 서리스였다.
이제 와서 이런 자리를 사양할 이유도 없었다.
아크의 2대 단장 검룡 펜타니엄 서리스를 중심으로 그렇게 다시 아크단이 출범했다.
아크단의 재출범 이후 아이랑의 정보력과 스타리즈의 공간 이동으로 우선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곳을 파악하는 사이.
서리스는 잠시동안 자리를 비웠다.
왜냐하면, 회의 때부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듯한 인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리온 교관.”
서리스가 입을 열자 천구 아리즈 아리온이 그에게 미소 지어 보였다.
“오랜만이에요. 새로운 아크 단장직에 취임한 건 축하드려요.”
“성위님 건으로 오신 거죠?”
아리온이 왜 왔는지 바로 눈치챈 서리스가 그리 말하자 아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사상지평에게 두 번이나 노려진 성위다.
그도 이제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겠지.
“아버지께서 서리스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요.”
저쪽에서 먼저 찾아올 줄이야.
원래도 한 번은 찾아갈 생각이었던 서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해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아리온이 걷자 서리스는 그 뒤를 따랐다.
“서리스, 새까맣고 커다란 별 하나가 점점 일어나려 하고 있어요.”
그러는 순간 부서진 복도를 걸어가던 아리온이 그렇게 말했다.
새까맣고 커다란 별.
그것이 용신을 가리킴을 눈치챈 서리스가 고개를 들었다.
“얼마 정도 남은 겁니까.”
성위는 분명 용신에 관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아들인 아리온 또한 용신의 존재를 충분히 알만하였다.
그리고 용신이 일어나려 한다는 것은 곧 그의 열쇠가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제파림.’
자신이 한 번 영혼에 상처를 입히긴 했지만, 그가 회복을 끝내고 또다시 움직이고 있음을 서리스는 눈치챘다.
‘내가 살던 시대까지는 별문제 없을 거로 생각했지만.’
시대가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그런 만큼 제파림이라고 할지언정 변하지 않으리라고 서리스는 장담할 수 없었다.
“정확한 날짜는 저도 점칠 수가 없어요. 단지, 서리스를 중심으로 별이 뒤섞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아리온의 발걸음이 성위가 머무는 교장실 앞에 멈춰 섰다.
다른 곳과 달리 이곳만큼은 그래도 비교적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걸 이겨내는 건 서리스 몫이겠죠.”
그렇게 말한 아리온이 몸을 비켰다.
마치, 별이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갈 시간이라는 듯.
문 앞에서 멀어진 그를 보고, 서리스는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그렇게 열린 문.
그 안에는 여러 서류들을 쌓아 놓은 성위가 있었다.
그는 들어온 지원금을 필요한 곳으로 분배하기 위해 여러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던 듯하였다.
“왔군.”
기다렸다는 듯 미소 지은 그가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서리스는 그런 성위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저를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불러야지. 자네 덕에 목숨을 건진 게 벌써 두 번인데.”
그렇게 말한 성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엉망이 되어가는 세상의 목숨을 구하는 것도 자네 몫이 되겠지.”
“……무언가를 보셨군요.”
천체 관측사인 그가 별의 예언으로 무언가를 봤음을 서리스가 눈치챘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고 성위가 한차례 인자한 웃음을 그렸다.
“때로는 보지 않는 게 좋은 법도 있지.”
늘 그렇듯 두루뭉술한 말을 내뱉은 그가 몸을 일으킴과 함께 한 책장 앞으로 다가갔다.
곧이어 그의 주름진 손이 책장 구석을 한차례 툭 건드렸다.
드드드드득―
작은 떨림과 함께 책장이 양쪽으로 갈라졌고, 그 사이로 금고 하나가 나타났다.
서리스는 그것을 보자마자 그곳에 몇 겹으로 처져 있는 결계의 존재를 눈치챘다.
신룡월단이 아니고서야 베지도 못할 그 결계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성위가 천천히 금고 쪽으로 손을 뻗었다.
“이곳에 사상지평이 나를 노린 이유가 잠들어 있네.”
사상지평이 성위를 노리게 된 이유.
그 말을 듣자마자 서리스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용신이 구태여 명령을 내려 성위를 죽이고자 했던 이유가 저기에 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말한 성위는 모든 결계를 해제한 뒤, 금고 안으로 그 손을 넣었다.
“그건……?”
그가 꺼낸 것은 새하얀 구체였다.
“아르마.”
서리스의 물음에 답하듯, 성위는 그것을 조심히 들어 보였다.
“새하얀 용의 알일세.”
그리고 서리스가 조금도 예상 못 한 답변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