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커흑, 게흑, 씨바알, 어떻게에.”
서리스의 검에 가슴팍이 꿰뚫린 무장공주가 핏물을 주룩주룩 토해내며 서리스를 노려보았다.
대체 어떻게 그가 천옥성주에 관해 아는 것인지 무장공주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당연하였다.
설마하니 서리스가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왔을 것이라고는.
무장공주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을 테니까.
서리스는 무장공주가 지닌 주요 다섯 무장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 침식자로서 상당한 악명을 떨친 무장공주는 결국 펜타니엄에서 그 끝을 맞이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를 죽인 것은 다름 아닌 검황 펜타니엄 락로드였으나.
그런데 지금 그녀를 죽이게 될 것은 락로드가 아닌 자신이었다.
“얼른 메모리즈를 써라.”
서리스는 그렇게 말함과 함께 그녀의 가슴팍에 박힌 검을 그대로 내려쳤다.
그러자 절단된 그녀의 몸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적셔진 핏물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을 때, 갑자기 진득한 핏물이 위로 치솟음과 함께 그녀의 조각난 몸을 다시 이어 붙였다.
그로테스크한 그 광경을 서리스가 말없이 보고 있자.
무장공주의 몸은 조금 전 반으로 갈라진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말끔하게 복구되어 있었다.
“그윽, 극, 흐으.”
하지만 그녀도 이런 부활 방식의 느낌이 어지간히 끔찍했는지, 한참을 고통에 찬 신음에 잠겨 있었고, 그런 그녀를 서리스는 다시 한번 검으로 내려쳤다.
“개새끼가!”
무장공주는 몸을 복구하자마자 다시 목을 잘라 버리려는 서리스의 검을 손에서 솟아난 새빨간 단검 두 개로 받아쳤다.
그러곤 그 즉시 바닥을 박차며 뒤로 빠진 그녀는.
몸 여기저기에 묻어난 핏물을 짜증스럽게 여기며 서리스를 노려보았다.
천옥성주에 이어 딱 한 번 죽음에서 과거로 되돌려주는 메모리즈까지 알고 있다니.
대체 뭐 하는 녀석인지 무장공주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너 정체가 뭐야.”
“묻는다고 알려주겠냐?”
서리스가 도발하며 대답하자 무장공주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죽인다.
저놈은 반드시 죽인다.
“그래, 내 컬렉션들을 다 안다 이거지?”
그럼 알아도 어찌 못하는 걸 쓰면 그만이다.
그녀는 단도를 다시 몸속에 되돌림과 함께 한쪽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그 순간,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온 붉은색 핏물이 그녀의 전신을 뒤덮었다.
그것은 곧 하나의 갑주가 되었다.
진한 혈향을 흩뿌리며 만들어진 붉은색의 피의 갑주를 입은 무장공주가 갈라진 공간에서 칼 한 자루를 뽑았다.
그건 마치 수십 개의 날을 이어 붙인 듯한 기괴한 모양의 칼이었다.
혈성 갑주 블라디 페라이즌.
수없이 많은 칼로 만들어진 도산지옥(刀山地獄).
주요 다섯 무장 중 두 무장을 꺼내 든 무장공주의 눈이 흉흉한 살기로 번뜩였다.
무장공주가 전심전력을 내기로 결심했음을 눈치챈 서리스는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그의 모습은 마치 언제든 와보라는 것처럼 도발적이었다.
“이게!”
다혈질인 무장공주는 그 도발에 응하듯 바로 발을 뻗었다.
그 순간 그녀의 인영은 흐려지듯 사라지더니 이내 붉은색 점이 되었다.
블라디 페라이즌의 효과는 자유자재로 형태 변환을 하는 것이었다.
붉은 점은 주욱 늘어져 선이 되어 서리스를 지나치자마자, 등 뒤에서 순식간에 무장공주로 변했다.
“죽어!”
그녀는 등장하자마자 도산지옥을 휘둘렀다.
도산지옥에 달린 수많은 칼날이 서리스를 베려 한 그 순간.
서리스의 검은 이미 그 공격 루트를 막아서고 있었다.
그러나 무장공주는 이를 보자마자 두 눈을 빛냈다.
서리스의 검과 도산지옥이 닿기 직전.
무장공주의 몸이 또 한 번 흐려지며 사라졌다.
순식간에 점으로 변한 그녀가 선으로 이어져 서리스의 검을 지나치고.
그녀가 나타난 곳은 뒤편으로 검을 휘두른 서리스 바로 아래였다.
짧은 순간 서리스와 무장공주의 눈이 마주쳤다.
그를 바라보며 무장공주가 히죽거렸다.
마치 기회를 잡은 하이에나처럼 무장공주는 전력을 다해 도산지옥을 휘둘렀다.
칼날비가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당연히 자신의 도산지옥에 서리스가 전신을 꿰뚫릴 거로 생각했던 무장공주가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넌 모르겠지만, 원래 용제는 말이야.”
도산지옥의 칼날을 주먹 하나로 박살을 내버린 서리스는 상처 하나 없었다.
“권법가거든.”
서리스의 손에 깃든 무형의 기운이 반투명하게 빛났다.
거기서 섬뜩함을 느낀 무장공주는 그 즉시 도산지옥을 아래로 꺾었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각!
그녀가 바닥에 도산지옥을 박아 넣자 거기에서 시작된 칼날이 인근 지반을 뚫고 치솟았다.
서리스가 솟아오른 칼날을 걷어차 부수는 사이 무장공주는 또다시 점으로 변하여 하늘을 빠르게 지그재그로 날았다.
‘뭔데. 저놈 뭔데?!’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바람 불면 먼지가 되어 사라질 그런 녀석이었다.
스타린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죽였을 그런 놈.
그런데 그놈이 자꾸 생존본능의 경종이 울리게 하고 있었다.
‘다른 열쇠랑 달라!’
자신의 무기를 모두 꿰고 있음은 물론 지금까지 사냥한 열쇠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안대로 가려진 그녀의 눈동자가 지끈거리듯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죽음이 목을 조여오자 통증이 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씨바알!’
욕설을 내뱉은 무장공주는 하늘에서 원래대로 돌아옴과 함께 안대를 쥐어뜯었다.
검상이 나 있는 그녀의 눈에서 비릿한 핏물이 흘러내렸다.
“하아.”
동시에 그녀의 입에서 피가 증발하여 만들어진 붉은색 입김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무장공주의 몸을 감싸고 있던 블라디 페라이즌이 도산지옥을 뒤덮어 가기 시작했다.
붉은색으로 변한 도산지옥을 쥔 채 그녀는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서리스를 노려보았다.
마치 자신의 공격을 기다려 주겠다는 양, 가만히 서 있는 그의 모습이 무장공주를 더더욱 분노케 했다.
“그래, 너네는 제왕뭐시기인가 큰 검이 자랑이라지!”
분노에 찬 음성을 터트린 무장공주가 두 손으로 쥔 도산지옥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도산지옥의 크기가 점차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블라디 페라이즌을 머금어 붉은색으로 변한 핏빛의 칼날들이 삐죽삐죽 솟아나더니 이내 하늘을 가득 메웠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 빛조차 전부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해진 도산지옥은.
그야말로 지옥의 칼날 산과 똑 닮아 있었다.
오죽하면 그 광경을 성벽에서 보던 이들이 희망을 잃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정도였다.
파직, 파지지직!
무장공주의 검은별이 흑색의 스파크를 터트리며 어둠을 토해냈다.
무장공주 또한 하나 남은 눈에 핏줄을 잔뜩 세운 채 전력으로 검은별을 칼에 퍼부었다.
이 일격으로 끝장낸다.
그 생각 하나밖에 없는 그녀의 눈에 서리스가 악스판시온을 옆으로 긋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는 순간 그의 등 뒤로 스산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악스판시온을 따라 시작된 검은색 일렁거림이 점차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가기 시작하고.
그것은 곧 무장공주가 쥔 도산지옥의 크기와 비견될 만큼 거대한 검이 되어 갔다.
그것을 보자마자 무장공주는 뭔지 모를 불길함에 몸을 떨었다.
서리스가 그 빌어먹을 제왕월영도를 준비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래, 그래에!”
몸에 각인된 공포를 떨쳐내듯 무장공주가 목이 터져라 소리를 내질렀다.
어디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두 눈을 부릅뜬 그녀는 이제는 하늘 위를 다 덮은 도산지옥을 팔이 터져라 강하게 쥐었다.
“썅, 어디 해보라고!”
욕설과 함께 무장공주가 핏빛의 칼날을 머금은 도산지옥을 그대로 내려쳤다.
하늘을 가득 메운 핏빛의 칼날이 땅으로 추락했다.
도산혈옥(刀山血獄)
그 광경은 모르는 이가 본다면 핏빛 칼의 산이 그대로 덮쳐 오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서리스는 자기 머리 위로 도산지옥의 새까만 그림자가 내려앉는 것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펜타니엄 사람에게 그림자는 안식인데.”
그리고 서리스의 등 뒤로 하늘을 가를 만한 거대한 검 하나가 생겨나며 새까만 기운을 토해내었다.
“그것도 모르니 네가 죽는 거다.”
이윽고 제왕의 검이 하늘을 갈랐다.
제왕월영도(帝王月影刀)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맞부딪친 도산혈옥과 제왕월영도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그 탓에 주위가 초토화가 되고 있었지만, 서리스와 무장공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직 서로를 죽이기 위한 수다.
전력을 담은 두 개의 검에서 시작된 후폭풍에 검은 인간들이 수수깡처럼 휘날려갔다.
뿌득, 뿌드드득!
그러나 먼저 부서지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도산혈옥이었다.
서리스의 제왕월영도와 부딪친 도산혈옥의 핏빛 칼날이 하나둘 박살 나고 있었다.
그에 따라 제왕월영도는 더더욱 빠르게 도산혈옥을 분쇄하고 있었다.
“아, 아아아아악!”
무장공주가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한계를 넘어 더더욱 많은 검은별을 퍼부었다.
그 탓에 그녀의 눈은 실핏줄이 터졌고, 코에서는 코피가 흘러내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기서 밀리는 순간 끝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왕월영도에 담긴 기운이 한층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제왕월영도 아래, 서리스의 몸이 어느새 새까만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제2형태라는 듯 검날이 열린 악스판시온에서 검은별이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뿌드드드득!
도산혈옥 쪽에서 한 번 더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진 그 순간.
무장공주의 두 눈이 돌아갔다.
그녀는 도산혈옥을 손에서 놓음과 함께 그 즉시 목구멍에 손을 쑤셔 넣었다.
그러곤 그녀가 꺼낸 것은 다섯 무장 중 마지막 하나 아르판테라.
마제 올스타드 스타린과 싸울 때 썼던 그 무장을 꺼낸 즉시 그녀는 자기 팔에 박아 넣었다.
“으흑!”
한차례 통증 섞인 목소리와 함께 아르판테라가 그녀의 팔에 흡수됐다.
그 순간 그녀의 피부는 흑색으로 물들었고, 새까만 동물의 꼬리와 귀가 돋아났다.
그리고 무장공주가 공중에서 사라졌다.
소리를 넘어선 그녀가 도산혈옥의 거대한 검날 사이를 스쳐 지나가며 엄청난 속도로 낙하했다.
이윽고 서리스의 제왕월영도를 지나쳤을 때, 그녀의 양손에서는 어느새 검은색의 손톱이 돋아나 있었다.
직선거리.
제왕월영도를 휘두르고 있는 서리스를 똑바로 포착한 그녀의 손톱이 대기를 찢으며 서리스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짧은 순간.
그녀의 손이 서리스의 목에 닿기 직전.
서리스의 몸이 흐름을 타듯 그녀의 손톱이 닿기 직전 자연스럽게 틀어졌다.
서리스의 목에서 작은 핏방울 몇 개가 튀었다.
상대의 목을 잘라내지 못했음을 파악한 무장공주의 두 눈이 부릅떠졌을 때.
그녀는 자신이 이미 서리스의 공격 범위 안에 깊숙하게 빨려 들어왔음을 깨달았다.
후발선제의 묘리.
마굴에서 기어코 터득한 묘리의 극치를 보여준 서리스의 손에 쥐어진 악스판시온의 위로 무형의 기운이 치솟았다.
신룡월단(神龍狘斷)
삼식(三式)
만룡(慢龍)
아스판테라로 최고속의 속도를 지닌 무장공주에게 가장 느린 검이 휘둘러졌다.
그러나 그것을 어째서인지 무슨 짓을 해도 피할 수 없었던 무장공주의 한쪽 눈이 치켜 떠졌다.
마지막 그 순간 서리스의 눈을 본 그녀는 깨달았다.
‘졌다.’
이윽고 그녀의 머리가 하늘을 덧없이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