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워너힐 아카데미 임시 피난처.
그곳에 도착한 서리스는 급히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기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어떻게 워너힐 아카데미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인 듯하였다.
그들을 둘러보며 서리스는 우선 다급하게 아는 얼굴을 찾았다.
그러나 거기에 아는 얼굴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서발광, 도로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다름 아닌 그 두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해온 동년배 친구들이다.
그들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서리스의 두 눈 위로 열기가 치솟았다.
“아이랑!”
그러는 순간 다른 인물이 한 명이 안쪽에서 나타났다.
그는 다름 아닌 아이랑의 친오빠 암주 윌즈베르크 다이롱이었다.
그는 아무래도 워너힐 아카데미가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온 모양이었다.
다이롱은 다급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다 서리스와 마주쳤다.
그는 곧장 이쪽으로 달려왔다.
“검룡, 아이랑, 아이랑은?”
별호를 부르며 그가 묻자 서리스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런 그를 보고 다이롱은 절망하듯 얼굴을 감싸더니 비틀거리며 벽에 기대어 섰다.
“……죄송합니다. 아카데미를 비운 사이에 일이 터져 저도 제대로 대처 못 했습니다.”
“……무슨 말이야. 네가 사과할 필요 없어. 세계 침식자가 습격한 거잖아. 누가 책임을 질 만한 문제가 아니야.”
아이랑을 소중하게 여기는 다이롱인 만큼.
그녀와 연이 있는 자신에게 화를 낼 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그렇게 말해주었다.
아이랑을 너무 예뻐하는 그이지만 사리 분별 정도는 할 줄 알았던 것이다.
“문제 해결은?”
“저도 지금 막 와서, 이제 알아보고자 합니다.”
“알았어. 그럼 같이 가보자고.”
서리스가 그렇게 말하자 다이롱은 거처를 나와 대책 회의 본부를 찾았다.
임시로 만들어진 막사에는 여러 사람이 몰려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대가문에서 보내온 자들로 다이롱을 보자 고개를 숙였다.
다이롱은 월하십인에 오른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던 만큼, 다들 그를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리스를 보고는 다들 의문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가 월하십인에 오른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기도 하고.
서리스의 외형이 생각보다 너무 어려 보인 탓에 월하십인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이롱과 서리스가 그렇게 회의 막사 앞에 서자 앞을 지키고 있던 인물이 서리스를 보고 의문을 보였다.
“저, 다이롱 님, 뒤쪽 분은 누구십니까?”
“입구를 지키려면 월하십인 얼굴 정도는 알아두는 게 좋지 않겠어?”
다이롱이 살짝 핀잔을 주자 그 문지기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이렇게 어린데 월하십인이라니 하고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서리스는 그런 그를 보곤 쓴웃음을 지은 채 자기소개하였다.
“검룡, 펜타니엄 서리스라고 합니다.”
“거, 검룡, 이런, 죄송합니다. 미처 못 알아봤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럴 만하죠.”
서리스라도 만약 예전이었다면 20살에 월하십인에 오른 인물이 있다고 하면 거짓말 취급했을 거다.
그 천재인 첫째 형 락스카도 그 어린 나이에 월하십인 자리에 올랐다고 하면, 처음에는 다들 못 믿었을 정도였으니까.
서리스는 다시금 사과하는 그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곤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거기에는 천하오장성에 오른 독후 불터렉스 윈터가 있었다.
그녀는 이쪽을 보곤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서리스, 아니지. 검룡으로 불러야겠지?”
“그냥 서리스라고 불러주십쇼.”
“그렇다면야. 서리스, 오랜만이군. 암주도.”
“얼굴을 보아하니 여전히 무탈하신 모양이군요.”
다이롱이 윈터와 인사하는 사이 서리스는 막사 한구석으로 시선을 옮겼다.
거기에는 팔짱을 낀 한 남성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남성에게서 흘러나오는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그의 높은 경지를 증명했고.
그 순간, 그의 눈이 천천히 떠지며 그와 눈이 마주쳤다.
검왕 펜타니엄 렐리즈.
그가 그곳에 있었다.
“서리스.”
자신을 알아본 그의 부름을 듣고 서리스는 고개를 숙였다.
“부가주님을 뵙습니다.”
“예의는 되었다.”
렐리즈는 인사치레는 필요 없다는 듯한 반응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끄러운 녀석들이 많이도 모였군.”
그러는 순간 막사를 젖히고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무황 강혼이였다.
그가 등장한 것만으로 막사 내의 분위기는 그를 중심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무황께서도 오셨습니까?”
“아, 이 녀석을 훈련 시켜주고 있었거든.”
윈터가 놀란 표정으로 묻자 강혼은 옆에 있던 나를 가리켰다.
그 손짓에 윈터는 ‘무황까지?’라는 놀람을 담아 서리스를 돌아보았다.
“스타린 님께도 훈련받더니. 서리스, 네 수완이 보통이 아니구나. 본녀도 좀 배워야겠어.”
“개인의 수완이라 하기에는 묘한 부분이 많긴 합니다만.”
용제의 연이라는 게 워낙 크게 작용했다 보니.
서리스는 떨떠름한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다른 가문 놈들은?”
강혼이 윈터를 돌아보며 물어왔다.
워너힐 아카데미에는 수많은 가문의 자제들이 있다.
그런 만큼 가문들 처지에서도 워너힐 아카데미가 점령당했다는 소식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강혼의 질문을 듣고 윈터는 대답보다 먼저 탁자 위에 종이를 펼쳤다.
거기에는 여러 인물이 나열되어 있었다.
“각지에서 보내온 지원군들입니다.”
“흐음, 가주 놈들이 직접 오지 않고?”
“다른 곳들에서도 세계 침식자의 움직임들이 포착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가주들은 가문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죠.”
윈터는 천하오장성이긴 하나 불터렉스의 가주는 아니다.
그러니 비교적 운신이 자유로웠던 그녀가 이곳에 올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워너힐 아카데미에서도 꽤 오랜 시간을 악스달 단장으로서 활동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라도 워너힐 아카데미를 더 탈환하고 싶었다.
렐리즈의 경우에는 간단했다.
무려 천상사성 검황 펜타니엄 락로드가 상주하고 있는 펜타니엄이다.
다른 가문과 달리 천상사성과 천하오장성이라는 두 거성이 동시에 있는 펜타니엄이기에.
비교적 여유가 넘쳐 그 또한 직접 워너힐 아카데미로 와준 것이었다.
“그렇군.”
강혼도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안쪽 상황은?”
그리고 다음 질문을 던지자 윈터는 서리스와 다른 이들이 오기 전에 알아둔 듯, 꽤 많은 내용의 정보를 공유했다.
우선 세계 침식자들은 제일 먼저 학생들을 인질로 잡았다.
아무리 세계에서 주목받는 워너힐 아카데미의 학생들이라곤 하나.
그들은 아직 다 꽃피우지 못한 햇병아리들이다.
세계 침식자는 월하십인들 조차 버거워하는 괴물들이 많다.
그런 녀석들이 단체로 들이닥쳤으니 학생들로서는 손쓸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만 있는 건 아니었을 텐데?”
강혼의 질문대로 워너힐 아카데미가 최대의 요충지라 불리는 건.
칼릭스를 제외하더라도 다섯 단장과 교관 등.
여러 강자가 항시 상주하고 있기도 했고, 거기에 성위의 결계도 있다.
그 자신의 무력은 그리 강한 편이 아니나 성위의 결계만은 세계 최고라 평해진다.
그런 그의 결계가 뚫림은 물론 학생들까지 당했다니.
다른 이들은 손 놓고 있었냐 이거였다.
“흑설야(黑雪夜)가 나타났습니다.”
그때, 한 존재가 언급되자 강혼의 눈이 팍 일그러졌다.
“아주 작정하고 워너힐 아카데미를 점령할 생각이었군.”
서리스 또한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얼굴이 찌푸려진 채 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계 침식자 중 가장 위험하다고 손꼽히는 넷 중 하나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흑설야.
그 능력은 가히 천상사성에 비견한다고 불리는 괴물 중 하나.
세계 침식자의 위험도를 가장 올리는 인물이며.
그는 오래전에 천하오장성을 제 손으로 죽인 전적으로 인해 천상사성과 비견된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그가 지나는 곳은 온통 새까만 눈밭이 된다고 한다.
그 눈은 죽음의 눈이며, 일반 사람은 거기에 닿는 즉시 검은 눈이 되어 무너져 내렸다.
‘그런 괴물이 워너힐 아카데미에.’
서리스의 눈빛이 냉정하게 변했다.
초조함은 없었다.
위기는 익숙했으니까.
단지, 이번에는 그 위기가 큰 만큼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상황은 대충 알았다. 단장 중에 사망자가 있나.”
그 말을 듣고 윈터의 얼굴이 잠깐이지만 어두워졌다.
그 모습을 보고, 서리스는 누군가 사망한 사람이 있음을 눈치챘다.
얼마 동안 침묵하던 윈터는 곧 입을 열었다.
“플레미아 단장 신의 여천강, 그리고 아크 단장 아바리안 힐로즈의 사망이 확인되었습니다.”
서리스의 두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단장 힐로즈.
그가 죽었다.
얼마 전까지 서리스의 훈련을 위해 도움을 주던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서리스의 주먹이 강하게 쥐어졌다.
이제야 오랜 세월 노력 끝에 월하십인에 오른 그였다.
그 허무한 죽음이 서리스를 더더욱 분노케 했다.
“다른 이들은?”
강혼은 그 속에서 조용히 다음 질문을 던졌다.
“아직 확인된 바 없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놓고 보면…….”
“죽었을 확률이 높겠지. 알겠다. 학생들이 인질로 잡힌 위치와 놈들의 전력 파악, 그쪽부터 집중하도록 하지.”
강혼이 그렇게 말하며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는 사이.
서리스의 눈은 렐리즈에게 향해 있었다.
윈터와 강혼의 대화 와중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렐리즈의 앞에 서리스가 다가가 섰다.
“부가주님.”
서리스의 부름을 따라 렐리즈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칼릭스를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가 직접 잡아 왔다던 칼릭스.
서리스는 그를 만나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물음을 듣고 렐리즈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와라.”
렐리즈는 의외로 순순히 그와의 만남을 허락해 주었다.
서리스가 강혼 쪽을 보자 그는 갔다 오라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회의는 이쪽에 가장 정통한 윈터와 강혼을 중심으로 흘러갈 거다.
서리스의 경우에는 칼릭스를 만나 혹시 있을 변수를 알아보는 게 나았다.
그 사실을 알기에 서리스는 강혼에게 고개를 숙이곤 렐리즈를 뒤따랐다.
렐리즈는 걸어가는 동안에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예전부터 이렇게 조용한 사람이었다.
서리스가 과거로 오기 전, 당시 자기 아들이 저지른 짓을 알리고 직접 처형하면서도.
그는 일말의 감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마치 펜타니엄을 수호하기 위해 태어난 인물이라도 된 듯이.
그는 그렇게 펜타니엄에 해악이 될만한 존재를 묵묵히 치울 뿐이었다.
서리스가 그를 따라 도착한 그곳은 임시 만들어진 감옥이 있었다.
그 안에는 등 뒤로 양손이 포박당한 칼릭스가 무릎을 꿇은 채 있었다.
“……서리스네.”
오랜만에 본 그 얼굴은 예전과 달리 여유를 잃고 꽤나 어두워져 있었다.
그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펜타니엄 가주를 목표로 했던 그가.
처참히 몰락한 모습이었다.